제67회 산기협 조찬세미나가 5월 12일 엘타워 그레이스홀에서 열렸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양자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물리학자 이순칠 KAIST 교수가 ‘양자 컴퓨터 :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미래 산업을 혁신하는 양자 컴퓨터
기술의 변화 속도가 가파르다. 급속한 변화 가운데 반드시 알아야 할 단 하나의 기술을 꼽는다면, 단연 양자 기술이다. 양자 기술, 혹은 양자 정보 과학 기술은 한때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다룰 법한 논의를 함께 다룬다. 혹자는 양자 기술을 두고 ‘슈퍼컴퓨터보다 빠른 컴퓨터’라고 하기도 하고, ‘도청이 불가능한 통신’이나 ‘순간이동’ 등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고도 일컫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혹은 ‘그래서?’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양자 기술은 양자 물리학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인간은 양자물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물리학자들의 멘토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먼은 “양자물리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고, 양자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닐스 보어는 “양자물리 이야기를 듣고도 제정신인 사람은 제대로 양자물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크닉을 즐기는 어느 여인의 치마에 붙은 벌레를 상상해 보자. 벌레는 멀리 떨어져 있는 3차원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이 붙어 있는 치마의 색만 보고 이 세상을 한 가지 색을 지닌 2차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벌레의 제한된 경험을 우주로 확장하는 시도는 이처럼 실제와 다른, 황당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양자물리학은 인간이 우주의 담장 안으로 들려오는 소문만을 듣고 알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양자물리의 등장 이후 30년 동안, 물리학은 지각변동에 가까운 큰 변화를 겪었다. 레이저, 반도체 등 전자공학의 발전으로 우리 주변의 수많은 전자기기가 탄생했다. 안타깝게도 원자폭탄 같은 대량파괴무기도 양자물리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현대의 화학실험실이나, DNA와 RNA를 다루는 현대 생명공학도 양자물리 덕에 생겨났다.
양자물리에 의한 퀀텀점프는 다시 있을 것이다. 양자 알고리듬은 병렬처리가 효율적이다. N개의 데이터를 검색할 때, 만약 고전 컴퓨터가 2400년이 걸린다면 양자컴퓨터는 같은 데이터를 불과 4분이면 처리할 수 있다. 비밀열쇠암호를 격파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일반적인 빅데이터 처리에도 매우 유용하다.
양자물리 발전이 가져올 위기와 기회
양자컴퓨터 혹은 양자통신이 나온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앞서 예를 든 암호 해독과 관련해서, 국방 및 안보 분야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미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은 독일과 일본의 암호를 풀었다. 당시 독일과 일본은 전쟁에서 패색이 짙었으나, 암호가 해독되면서 완전히 패했다.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암호화폐나 NFT 등의 거래 해킹이나 빠른 채굴이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2019년 10월에 양자 우수성이 발표되자 비트코인 가격이 8% 폭락하기도 했다. 고전컴퓨터로 1만년 계산해야 했던 암호체계도 양자컴퓨터로는 200초면 풀리는 까닭이다. 이에 대한 대비로 암호체계변경이나 양자암호화폐 등 방어수단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편으로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빅데이터 처리가 수월해진다.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으므로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초지능성 측면에서 화이트칼라 노동을 대체하고,로봇 서비스나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의 분야에서도 퀀텀점프를 일으킬 것이다.
이 같은 예상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 패러데이의 연구 결과 역시 한때는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패러데이는 “갓 태어난 아이가 커서 어디에 쓸모 있을지 지금 어떻게 알겠는가?” 하고 반문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현재 사람들이 사용하는 대다수 전자기기에는 패러데이가 발명한 전자코일이 사용되고 있다.
이미 통신 분야에서는 양자물리 상용화를 마쳤다. 2018년에는 세계 최초의 양자통신위성을 통해 중국 베이징 근처에서 약 7600km 떨어진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 양자로 암호화된 사진 파일을 안전하게 주고받는데 성공했다. 또한, 양자암호통신 시스템을 판매하는 회사들도 등장했다. 양자컴퓨터의 CPU 비트수 역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다만, 양자컴퓨터는 오류 보정에 취약하다. 나노 기술의 한계도 양자컴퓨터 발전의 부정적 요소다.
아직 완전한 양자컴퓨터는 없으나, ‘양자계 시뮬레이션’, ‘최적화’ 등 활용성 높은 분야들이 있다. 2022년에 발표된 매킨지 보고서는 “양자컴퓨터의 빠른 발전과 투자 증가로 연구결과들이 빠르게 나오고 있다”며, 양자컴퓨터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일례로 한 프랑스 보험회사는 양자암호화로 데이터 보호에 나섰고, 글로벌 제약회사들도 신약 개발에 양자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도 양자머신러닝을 적용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양자암호통신회사 M&A, 난수발생기 스마트폰 삽입 등을 통해 양자컴퓨터 활용에 나섰다.
2030년까지 양자컴퓨터는 고전컴퓨터와 하이브리드 형태로 갈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컴퓨터는 우리에게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가져올 것이다. 양자컴퓨터산업 외 분야의 리더들은 자체 팀을 구성하거나 컨서시움 가입으로 업계 동향을 주시하면서 양자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대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