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한 것인가, 개발한 것인가? 결과론적으로는 동일한 결과물이지만 발명과 개발에는 어감 차이가 있다. 우리가 어느 쪽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가 다르다. ‘세상에 불을 밝혀준 발명’과 ‘세상에 불을 밝혀준 개발’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구분 없이 보면 발명은 옛말이고 개발은 요즘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데 동의하고 싶다 . 건설장비인 휠로더의 안전 작업을 위해 개발된 ‘투명 버킷’은 기술 자체의 혁신성도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지만, 개발 배경과 개발 과정에서 귀 기울여 경청해야 할 대표이사의 R&D 철학이 담겨있다. 성과에만 주목한다거나 성공에 이른 외형적 틀에 주목하기보다 그 과정에 담긴 R&D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잠시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보는 것은 아깝지 않은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2022년 30주차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한 투명 버킷은 개발보다는 발명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투명 버킷의 발명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혁신의 철학에 대해 알아본다.
 

투명 버킷 기술 개발의 배경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휠로더라는 건설장비를 머릿속에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사진만 보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건설장비이다. 큰 휠로더는 불도저처럼 생겼고, 작은 휠로더는 지게차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앞에 달린 것의 모양과 용도가 불도저나 지게차와는 완전히 다르다. 휠로더 앞에 달린 것의 이름은 우리말로 양동이나 들통으로 번역되는‘버킷’이다.

손잡이가 아래쪽에 달린 커다란 들통을 양손으로 들어올리면 시야가 가려진다는 것을 금방 상상할 수 있다. 부피가 큰 짐을 손으로 들어 나를 때 우리는 시야가 가려지는 경험을 많이 했고 의도치 않게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다른 사람과 부딪힌 적도 많을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휠로더 역시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버킷을 들어 올리면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항상 안전상 위험에 노출된다. 휠로더라는 장비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로 이 문제는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장비의 사용 목적에만 충실한 제품들로 계속 발전해왔다.

투명 버킷의 정식 기술 명칭은 ‘건설장비 전방투시기술’이다. 버킷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지만 전방 시야를 운전자에게 확보해주는 기술이다. 말로는 간단하게 이해되나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휠로더 장비마다 범용적으로 전방 투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차별성이자 기술 난이도를 말해준다. 더 이상의 기술 설명 없이도 누구나 그 가치가 이해됐으리라 생각된다. 혁신 기술을 한마디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가치가 쉽고 분명하게 인식되는 것이 혁신 기술이다.

본 기술은 이상훈 책임연구원의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하여 회사 내부의 NTD(New TechnologyDevelopment) 프로세스를 통해 인큐베이션 되던 기술이었는데 코로나 펜데믹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소비자 가전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NTD에서NPD(NewProduct Development)프로세스로 직행하게 된 경우였다. 아직 프로토타입도 만들어지지 않은 단계에서 기술 콘셉트와 시뮬레이션만 으로 참가한 전시회였지만 의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고객의 눈에 쉽고 분명하게 가치가 이해됐다는 것은 일단 기술 콘셉트가 시장에서 반응을 일으켰다는 의미이다. 현재 HD현대사이트솔루션 대표이사인 이동욱 당시 기술원장은 이 순간의 시장 반응을 놓치지 않았고, 이상훈 책임에게 기술 제품화를 연내로 완료하라는 숙제를 부여했다.

기술 콘셉트가 세상에 공개되고 차별성이 인정된 이상 기술 제품화라는 숙제는 누가 더 빨리, 더 완벽하게 제품을 내놓을 것이냐의 경쟁으로 phase 변화가 일어난다. 바꿔말하면 기술 경쟁의 핵심은 수단으로서의 기술 그 자체보다도 어떤 수단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 수단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에서 이미 승부가 절반 이상 난다. 그것이 기술 콘셉트다.

이제 남은 기간은 8개월여 남짓이었다. 개발 완성 단계에 접어든 신제품 휠로더가 출시되기 전에 투명 버킷을 완성하여 장착한다는 목표로 투명 버킷 제품개발 프로젝트를 NPD 프로세스에 얹었다. 프로젝트가 자동차라면 프로세스는 고속도로에 비유된다. 고속도로 상황도 좋아야 하지만 운전자 실력도 좋아야 빨리 목적지 톨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다.

기술혁신의 외적인 틀, NTD와 NPD 프로세스

성공한 사람, 업적이 뛰어난 사람들을 탐구할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발자취이다. 사실 그 사람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엿볼 방법이 없기 때문에 멀리서 경로를 바라 보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운 좋게도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거나 직접 남긴 글을 볼 수 있다면 조금 더 생각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마찬가지로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NTD, NPD 프로세스를 먼발치에서 보고 어떻게 기술혁신이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유추해보자. NTD 프로세스는 장차 제품이나 공정에 사용될 잠재성을 가진 후보 기술 또는 기술 아이디어를 인큐베이션 하는 프로세스다. 기술 확보가 제품력이나 서비스 제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사에서는 흔히 운영하는 프로세스라서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 다시 말해 NTD 프로세스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가 기술 성공의 중요한 열쇠가 아니라 프로세스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NTD 프로세스 운영의 레슨 포인트는 ‘자유도’에 있다. 자유도란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 아이템의 선정, 콘셉트 개발 등의 자유를 연구원에게 얼마나 줄 것인가 또는 주어도 될 것인가의 문제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NTD의 성공 요인은 ‘검토하고 지원하되 간섭하지는 않는다’로 요약된다. 방임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NPD 프로세스는 제품의 ‘완성도’가 양산과 시장으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보다 엄격한 관리를 요구 받으며 상대적으로 경직된 프로세스다. 반면 NTD는 넓게 문을 열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실패를 허용해야 창의적 도전이 계속될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단순한 사실이지만 기업의 R&D 환경에서 실천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시장의 냉정한 판단 위에 놓인 기업들 입장에서 실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불가피하므로 적정한 타협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간섭을 하지 않으면 방임에 가까워져 효율은떨어질 수밖에 없고, 효율을 높이려고 관리와 성과를 강조하면 결과가 보이는 일에만 매달리게 되어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단순화하여 말하면 연구소장은 보고 받는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도움을 요청하는 과제 책임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과제 책임자는 과제를 수행하는데 직업인으로서의 개발자를 넘어서서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는 발명가의 마음으로 과제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 에디슨이 전구 발명 과정에서 1,000번 이상의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라고 생각한 마음과 같다. 마지막으로 서로 간의 믿음이다. 이 믿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투명 버킷 개발 과정을 예로 들면 최초의 기술 콘셉트에 대해 충분한 개발 가치가 있다고 서로 믿었고 CES 가전 전시회를 통해 기술 콘셉트는 고객들의 1차 적인 검증을 받았다. 이례적으로 짧은 8개월이라는 신제품 개발 기간에 이동욱 기술원장은 과제 책임자에게 단 한 번의 중간 보고도 요구하지 않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다. 과제 책임자였던 이상훈 책임연구원도 오직 8개월 안에 제품개발, 현장 실증, 신제품 휠로더에 장착하기까지 기간 내에 어떻게 해야 할지만을 고민했다. 개발과 현장 실증에 직접적으로 관여된 인원만 약 25명이기 때문에 2주 단위로 계획과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소통하고 다시 계획을 수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전폭적인 권한 위임과 책임감 그리고 몰입 없이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간의 의사소통과 협력 그리고 책임감은 믿음의 다른 표현이다.

NTD 프로세스 운영에 있어 앞서 세 가지 전제 조건은 기술 개발의 중요성이 높은 회사일수록 훌륭한 지침이 될 수 있다. 참고로 HD현대 글로벌 R&D센터에서는 이와 같은 R&D 방식과 철학을 더 널리 공유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혁신의 내적 요인, R&D 철학

과거 우리 기업들은 추격자 전략(Fast Follower)을 통해 성장했다. 방향은 정해졌고 빨리 쫓아가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빠르고 싸게 만드는 것만으론 경쟁력을 높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중간에 끼인 상태가 되었다. 선도자(First Mover)를 추월하기엔 역량 부족이고 속도와 가격 경쟁력만으론 추격자를 따돌릴 수 없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Stuck in the middle)이 되었다. 뒤로 돌아가 다시 추격자가 될 수 없다면 이제 선두 그룹에 속하거나 추월해버리는 방법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 동안 우리는 선도자 그룹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부를 해왔다. 여기에 대해 이동욱 대표이사의 솔루션을 들어보자.

선도자 그룹에게서 R&D 운영 방식, 체계(system)를 배웠고, 체계 안에서 일의 흐름을 효율화 할 수 있는 프로세스도 배웠지만 정작 뛰어난 성과를 내는 진짜 알맹이는 조직문화에 있었고 창의력 극대화에 있었다. 결국 답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 먼저 바뀌면 말이 달라지고 글이 정교해진다.


 

기존의 경쟁 판도에서 글로벌 시장 1~2위는 소위 ‘넘사벽’의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는 단지 기술력과 제품이 좋은 것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는 고객의 인식을 포함하는 아성이다. 그러면 기술력을 아무리 높여도 도저히 고객의 인식을 바꿀 수 없는 것인가? 생각의 틀을 바꾸면 된다. 고객은 지금의 고객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즈니스의 범위, 사용 환경, 사용 기능 등을 새롭게 정의하면 달라질 수 있다. 변화된 시장에서도 기존의 경쟁력만을 추구한다면 현재 1위도 도태될 수 있다. 시장은 늘 변하고 시장이 원하는 가치도 다시 정의된다. 새롭게 시작하는 start up을 보면 30대product owner가 소신껏 일하여 성공을 만들어내는 유연성을 자주 보게 된다. 큰 기업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부하직원들의 보고를 요구하고 효율성과 기대성과를 따져 지원에 인색하게 되면 유연성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기업들은 start up의 유연성을 배우고 연구원의 창의력 극대화를 장려해야 경쟁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발명에 가까웠던 1세대 R&D부터 시장 중심의 현재 4세대 R&D에 이르기까지 R&D의 발전 단계를 보면 목적 의식이 분명하다. 효율성을 높이는 것에서 출발하여 성과 중심으로 귀결된다. 발명과 개발은 결과물 중심으로보면 동일한 성격이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와 비슷하다. 어느 것이 더 낫다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발은 발명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생각이다. 1등과 2등은 제품이나 기술에서 종이 한 장 차이 일 수 있다. 만약 4세대 R&D로 일하되 발명가처럼 생각 할 수 있다면 start up의 유연성과 효율성 그리고 유익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성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동욱 대표이사의 솔루션을 통해 R&D 철학을 배웠고 리더의 길을 엿볼 수 있었다.

투명 버킷은 출시 첫해인 2021년 305억의 매출을 올렸고 22년에는 유럽과 북미 시장에 진출하여 100억 가까운해외 매출실적을 올렸다. 2025년에는 500억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으며 제품을 구성하는 카메라, 모니터, 컨트롤러 등 핵심부품 모두를 100% 국내 개발하여 HD현대사이트솔루션 뿐만 아니라 협력사의 매출 및 고용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