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R&D



유럽연합(EU)이 오는 8월부터 디지털 서비스 법(DSA)에 근거해 구글, 아마존, 애플, 메타, 틱톡, 알리바바 등 19개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콘텐츠 및 사용자 보호 관련 규제를 본격 시작하기로 했다. 영국은 좀 더 강력한 디지털 서비스 규제 법안을 공개했다. 유럽 각국이 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규제 대상이 된 19개 테크 기업은 거짓 또는 불법 정보의 신속한 삭제, 외부 감사 시행, 규제 기관과 연구자들에 대한 자료 제공 등의 의무가 부과되며, 인종이나 정치적 견해 등 사용자의 민감한 정보에 근거한 광고를 할 수 없으며,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생성된 영상이나 사진 등에 대해서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이를 어길경우 전 세계 전체 매출의 최대 6%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최근 영국 반독점 규제 기관인 경쟁시장청(CMA)은 마이크로소프트가 IT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92조 원을 들여 추진해온 블리자드 M&A를 허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불허한 바 있다. 이 같은 결정이 기술 혁신과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MS와 블리자드는 즉각 항소했지만, 뉴욕타임스는 앞으로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 인수합병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시그널로 읽힌다고 논평했다.

각국 정부가 빅테크 기업의 M&A에 계속 제동을 걸고 있다. 얼마 전 FTC는 엔비디아의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인수를 저지했으며, CMA는 메타와 GIF 이미지 파일 공유 플랫폼 지피의 인수합병을 무효화하며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렸다. 규제 당국은 아마존이 추진 중인 로봇업체 아이로봇의 인수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 유럽, 중국 등 각국 정부가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빅테크 기업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테크래시는 범세계적인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빅테크 기업 규제를 논의하는 디지털 뉴라운드 협상을 추진하자는목소리도 높아졌다.

‘빅테크 기업, 특히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플랫폼 기업의 독점과 영향력에 대한 강력하고 광범위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정의된 테크래시(Techlash)는 기술을 뜻하는 ‘Technology’와 반발을 의미하는 ‘Backlash’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신조어다.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으로 대표적인 사례는 정부 규제다.



지금까지 빅테크 기업은 M&A를 통해 규모를 키우고, 사업을 확장해왔다. 애플은 2000년 이후 100여건의 크고 작은 인수합병을 단행하며 AI, 반도체 경쟁력을 키우고 생태계를 넓혀왔다. 페이스북 역시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탄탄한 서비스 기업들을 흡수해 거대 소셜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구글도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모토로라 등을 사들였다.

각국 정부는 빅테크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주로 반독점 권한을 활용하고 있다. FTC 위원장인 리나 칸은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리는 대표적 반독점주의자이다. 칸은 빅테크의 사업 확장에 공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

챗GPT 열풍과 더불어 AI 관련 선도기업도 거대한 테크래시의 장벽에 직면해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이 ‘바이든이 재선되면’이란 제목의 광고를 냈다. 영상엔 금융시장이 붕괴하고 국경엔 불법 이민자가 몰려들고 범죄가 급증하는 등 혼란스러운 장면들이 담겼다. 마치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일어난 일인 것처럼 보이는 영상 끝엔 아주 작은 글씨로 ‘전부 인공지능이 만든 이미지임’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렇게 디지털 시대의 폐해는 가짜 뉴스의 급속한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플랫폼에서 공유되는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규제하라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빠르게 발달하는 AI가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가짜 정보를 생성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면서 주요국 정부가 거짓 정보에 맞서기 위한 규제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를 도입할 겨를도 없이 급속히 발달한 첨단기술이 가짜 뉴스와 조작된 정보를 만들어 돈벌이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하고, 특정 세력의 여론조작을 위한 도구로 동원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의 규제 기관들은 합동 콘퍼런스에서 AI를 악용한 각종 범죄, 차별 행위 및 특정 기업의 독점적 이윤 추구 행위를 강력히 규제하겠다고 한 바있다. AI로 인해 잘못된 편견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민을 상대로 한 AI의 위법행위에 대해 모든 법적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할 정부의 ‘최고 AI 책임자’를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테크래시에는 미국과 중국이 국가 권력을 넘보는 빅테크 기업의 독점력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크다. 주목해야 할 것은 테크래시가 갈수록 범세계적인 성격을 띰에 따라 디지털 뉴라운드 협상이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디지털 뉴라운드 협상은 디지털 경쟁정책 라운드(빅테크 독점 규제), 디지털 기술 라운드(랜섬웨어 차단), 디지털 노동 라운드(빈곤층 고용 차별), 디지털 환경 라운드(무관세 모라토리엄 방지) 등이 핵심이다.

그러나 아무리 각국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결코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사람들은 디지털 기술로 인해 서로가 연결되고, 더 즐거워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쉽게 교육받을 수 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더 편리한 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이러한 유혹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의 성장으로 발생하는 소비자의 비용 상승,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사생활 침해, 가짜 뉴스의 범람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등과 같은 피해로 빅테크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것또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코로나로 인한 횡재효과(bonanza effect)를 누린 빅테크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의 상흔효과(scarring effect)를 좀 더 세심하게 보살피고, 기술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을 극대화하여 더 나은 디지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