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2009년 개봉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공상과학(SF) 영화 아바타에는 외계 행성 판도라로 향하는 인류의 모습이 그려졌다. 판도라 행성에서 자원을 채굴하려 하지만 그곳에 살던 부족인 ‘나비족’의 반발에 부딪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비족 몸에 인간의 의식을 연결해 원격으로 조종하기로 한다. 주인공은 미 해병대 출신이었지만 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제이크 설리. 그는 아바타의 몸으로 판도라 행성을 마음껏 뛰어다닌다. 화려한 영상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상상한 독특한 스토리는 대중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나온 후속작 ‘아바타: 물의 길’도 국내에서 관람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아바타 외에도 인간이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종하는 기술을 다룬 영화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단순히 재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했다는 대리만족 때문이거나 이 기술을 실제로 구현하고 싶은 열망 때문일 수도 있다.


 

과연 SF 영화 속만의 이야기일까? 아바타처럼 생각만으로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현실로 다가왔다. 바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 이야기다. BCI는 단어 뜻 그대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뇌의 신호를 통해 외부 기기를 제어하는 기술을 말한다. 전 세계 과학자들과 테크 기업들이 상상만 하던 기술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의료 산업뿐 아니라 게임, 통신 등 산업 전반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조사 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14억 8,800만 달러(약 1조 9,000억 원)였던 BCI 시장 규모는 2030년 54억 6,300만 달러(약 6조 9,000억 원)로 급성장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BCI는 1970년대부터 연구가 이뤄졌다. 이미 단순한 BCI 기술은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다. 인공와우(人工蝸牛)도 BCI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인공와우는 난청 환자에게 삽입해 청각 신경을 자극하는 장치다.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 환자의 뇌 신호를 모니터링 해 발작을 예측할 수 있다. 최근 기술이 발전하며 BCI 기술은 고도화되고 있다. 뇌 신호를 측정하는 센서와 더불어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BCI 기술 발전의 속도가 높아진 것이다. AI가 사람보다 뇌 신호를 더 잘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연구진의 성과도 AI가 적용되며 이전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40세 남성 게르트 얀 오스캄 씨는 2011년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연구진은 BCI로 그를 다시 걸을 수 있게 했다. 아이디어는 이렇다. 손상된 척수를 우회해 뇌와 척수를 다시 연결하는 시도였다. 먼저 연구진은 오스캄 씨의 두개골과 척수에 전극을 이식했다. AI를 이용해 오스캄 씨가 신체의 특정 부위를 움직이려고 할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했다. 예컨대 발목을 움직이려고 할 때와 엉덩이를 움직이려고 할 때 켜지는 신호를 구별한 것이다. 이후 뇌에 심은 전극과 척수에 심은 전극을 연결했다. 척수 전극에서는 신체 다른 부위에 전기신호를 보내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뇌와 척수 사이에 신호는 300밀리초마다 전송된다. 그가 어떤 동작을 할지 생각하면 뇌의 신호를 빠르게 분석해 척수를 통해 신체 각 부위로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BCI 기술로 훈련을 받은 오스칸 씨는 걸음걸이가 좋아졌고, 계단과 경사로도 이동할 수 있었다. 이제 장치를 끈 상태에서도 목발을 짚고 스스로 걸을 수 있다. 심지어 친구들과 서서 맥주를 마실 정도로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BCI는 움직임뿐 아니라 말 못 하는 사람들의 의사소통도 돕는다. UC 샌프란시스코 연구진은 말을 할 수 없는 마비 환자의 뇌 신호를 해독했다. 마비 환자들은 보통 타이핑이나 커서를 움직여 단어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의사소통한다. 하지만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음성으로 분당 최대 150~200단어의 속도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연구진은 15년 전 뇌졸중을 앓고 사지의 움직임이 어려운 30대 남성에게 BCI 기술을 시험했다. 그는 이전까지 야구 모자 끝에 포인터를 붙여 글자를 찍어가며 의사소통을 해왔다. 먼저 연구진은 환자의 뇌에 전극을 이식했다. 그리고 50개 정도의 단어를 알려주고 이를 말하려 할 때 뇌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기록했다. 신경 신호의 패턴을 단어로 번역하는 원리다. 여기서도 AI가 활용돼 미묘한 뇌 신호 패턴을 구별했다. 연구진이 50개 단어로 구성된 짧은 문장을 말해보라고 요청하고, 환자가 대화를 시도하자 컴퓨터 화면에 그 문장이 나타났다. 또 “오늘 어떠세요?”, “물 좀 드릴까요?” 같은 질문을 할 때 “좋아요”, “아니오, 나는 목마르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할 수 있었다. 분당 최대 18단어의 속도로 머릿속 생각을 해독해 낸 것이다. 정확도는 최대 93%였다. 비록 속도는 아직 느리지만 이전보다는 편리한 방법으로 의사소통 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의료분야에서 BCI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BCI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생각만으로 게임을 하거나 로봇을 조종할 수 있다. 이에 테크 기업들도 BCI에 뛰어들고 있다. 이 분야에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머스크가 2016년 설립한 뉴럴링크는 지난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를 승인 받았다. 뉴럴링크는 지금까지는 동물에 칩을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해 왔다. 뇌에 칩을 이식한 원숭이가 조이스틱 없이도 생각만으로 게임하는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여러 차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 도전했지만 안전성을 이유로 불발되다 이번에 승인을 받은 것이다. 뉴럴링크 역시 뇌에 칩을 이식해 마비나 실명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머스크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기억을 업로드하고 나중에 다시 다운로드 한다는 구상이다. 뉴럴링크의 경쟁사로 꼽히는 미국 뇌 신경과학 스타트업 ‘싱크론’은 생각만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심장에 혈관 확장용 스텐트를 삽입하는 것처럼 작은 장치를 혈관에 이식한다. 장치는 혈관벽에 붙어 신경의 신호를 기록하고 외부 컴퓨터로 전송된다. 두개골에 직접 전극을 이식하는 뉴럴링크와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싱크론은 올해 초 7,5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는데 투자자 가운데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와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가 포함됐다. 전 세계 재벌들도 BCI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다. 또 다른 스타트업 ‘패러드로믹스’는 뇌 신호를 문자나 합성 음성으로 변환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동물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기술 초기 단계인 BCI는 질병 극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처럼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서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눈을 뜨는 일들이 앞으로 계속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먼 미래에는 BCI가 스마트폰처럼 필수품이 될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대체해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영화 아바타의 후반부에서 주인공 제이크 설리의 영혼이 아바타 육체로 옮겨지듯 우리의 머릿속 정보를 모두 옮기는 날도 올 수 있다. 머스크도 이 같은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술의 발전에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기 쉬운 것처럼 스마트폰이 뇌에 직접 연결되면 얼마나 더 중독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 철학과 프레데릭 길버트 교수는 “BCI를 사용한 환자는 장치에 너무 의존하게 돼 장치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고 느낄 수 있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말했다. 일종의 중독 증상이다. 이뿐 아니다. BCI는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해킹의 위험성도 지적한다. 재앙과 편리를 동시에 가져다 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BCI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