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첫 조찬세미나가 지난 1월 18일, 엘타워에서 열렸다. 〈2024년 통상여건 및 세계경제 전망〉을 주제로 진행된 제71회 조찬세미나는 이시욱 원장과 함께 세계 경제 동향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이루어졌다.
역사적 흐름에서 살펴본 국제통상여건의 이해
지금은 영구적인 위기의 시대다. 다른 표현으로는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라고 한다. 선진국으로부터 시작된 인구 구조의 변화와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소비적 선호 변화는 물론 디지털 전환 등의 기술 변화, 기후위기와 팬데믹과 같은 자연재해 등 다양한 도전 요인이 각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최근 위기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한 안보위기 등 국제통상질서를 둘러싼 구조적인 변화가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정부는 시장에 더 개입해야 할까. 정부의 시장 개입과 관련한 관점은 크게 시장 근본주의와 국가 개입주의가 있다. 정책 패러다임의 흐름을 역사적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살펴보자. 근대 국가의 개념이 생긴 시기는 대략 16세기부터다. 지금은 국가의 경제력을 판단할 때 GDP를 지표로 활용하지만, 당시에는 금·은 보유량이 지표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각 국가는 금과 은을 다량 보유하고자 애썼다. 수출을 통한 대가로 금과 은을 받은 후, 수입은 가급적 적게 하는 중상주의 사조가 강세였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1차 세계화가 일어나며 역사의 추는 시장 근본주의로 넘어간다. 그러다 양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냉전시대를 겪으며 다시 국가의 개입이 늘어났다. 그리고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고 이야기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발전 모델이 부상하면서 자유무역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상대적으로 국가 개입이 줄어들고 다자 질서를 통한 국제통상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세계화의 유형 변화와 미·중 패권경쟁의 전개 방향
이때만 해도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교과서대로 경제가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와 국가 불평등 확산, 미·중 패권 경제, 보호 무역 확산 등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가 커졌다. 이 흐름은 이제 갓 시작했다. 이를 볼 때 앞으로 40~50년 동안은 큰 흐름에서 정부의 개입이 늘어나고, 이 같은 국제통상여건이 지속되리라 예상한다.
현 상황은 1차 세계화가 종료되었던 시점인 1910년대와 비슷하다. 다만 과거에는 최종재 위주로 생산과 거래가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글로벌 밸류 체인을 통한 초연결성이 강하다. 세계화의 유형도 달라진다. 기존의 상품 위주의 교류가 아닌, 기술과 자본, 정보 교류 형태로 바뀐다. GDP 대비 수출만이 아닌 다양한 지표를 함께 보며 세계화를 이해해야 한다.
미·중 패권경쟁은 중장기적으로 ‘상호압박→비용 상승→위기 고조→타협’ 순으로 진전될 수 있다. 양국 GDP 역전과 2050년 군사비 균형이 예상되지만, 문제는 중국의 인구 구조가 변화하면서 성장 잠재력이 하락해 경제·군사적 격차가 지속될 가능성도 상존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플랫폼 시대에서의 내수 시장 규모의 우위성, 전략 자원 부존도 등을 고려하면 중국의 영향력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경제안보(Economy Security) 개념이 부상했다. 전통적인 안보 개념은 군사적 영역에 국한되었으나, 현재의 안보 개념은 통상, 기술, 환경, 노동, 인권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중이다.
2024년 세계경제전망과 기업 시사점
2024년 세계경제를 전망하기에 앞서 2023년을 돌아보자. 2023년 세계경제는 미국이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고용을 바탕으로 완만한 성장을 이끌었다. 금리는 인플레이션 둔화에도 통화 긴축이 지속되면서 높은 수준의 국채 금리가 지속되고 있다. 환율은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강달러가 예상되는 가운데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유가의 경우, 원유 수요가 회복되는 가운데 공급 불안 요인에 따른 고유가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는 원유 수요가 공급을 소폭 상회하면서 2023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유가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2024년의 세계경제는 높아진 경제적· 정치적 부담에 적응해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가능한 여력을 당겨쓴 까닭에 성장 압박이 커진 탓이다. 이를 볼 때 2024년 세계경제는 고금리·고물가 부담이 증가하면서 전년 대비 0.2%포인트 낮은 2.8%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리스크도 있다. 중국 경제의 중장기 저성장 경로 진입, 고부채와 고금리의 이중 작용에 따른 성장 저하, 지정학적 충돌 악화와 추가적인 공급 충격 등을 비롯해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주는 폴리코모니 현상 등 정책 불확실성까지 증가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경우, 전통적인 산업의 공급망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겠지만, 반도체, 배터리, 재생에너지 등 기술패권과 연관된 첨단 산업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으로 환경보호와 노동, 인권 등도 통상과 연결되고 있다. 한 가지 예가 EU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이다. 그 밖에도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인권·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는 유럽 공급망 실사,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노동의무 준수 모니터링 등도 참고해야 한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연관성을 갖고 있는 시대에는 다양한 시각에서 정책을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만 통상여건의 실체에 더욱더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