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노량》과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관심을 사고 있다. 고려사에도 기록된 것처럼, 고려의 양규 장군은 거란의 대군과 싸워 나라와 백성을 구한 ‘고려의 성웅 이순신’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손자병법과 같은 병서를 논하지 않더라도 전쟁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며,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적에게 큰 타격을 주며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고려와 조선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병력과 무기를 갈고 닦으며 전략을 세우는 등 투자했다면, 전란과 고난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가 평화를 위해 전쟁을 대비하는 자세는, 기업이 비즈니스 전쟁에서 기술과 특허라는 무기를 갈고 닦아 기술개발 및 특허전략(IP-R&D 전략)을 세우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다시 고려거란전쟁의 상황으로 들어가 보자. 양규 장군의 희생으로 거란이 물러나자, 고려의 국왕은 전후 민생을 보살피거나 나라의 재건에 힘쓰기보다는 지방 호족의 지나친 권력을 통제하는 데 집착한다. 그러나 강감찬 장군은 거란의 재침략을 감지하고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립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위험에 대비한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으로 거란은 패배와 함께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야만성에 기반한 강국은 그 힘을 과시하다 결국 패망한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한편으로 침략을 당하던 우리에게는, 전쟁을 대비하지 않았을 때의 뼈저린 교훈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역사에 ‘만약에’는 존재할 수 없지만, 조선에서 10만 양병설을 받아들여 전쟁을 준비했다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한 그 많은 사상자와 문화재 유실, 국토유린과 도자기공의 납치 등과 같은 환란은 없었을 것이다. 역사가 국가의 흥망성쇠에 주는 교훈은 그대로 기업의 비즈니스 전쟁에 대입된다.
시장은 국토이고 병력은 인재이고 무기는 제품과 기술 및 특허로 대입된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 침략을 견제하고 전쟁을 막기 위해 군대를 양성하며 최신 첨단무기를 개발해 배치하는 것과 같이, 시장을 지키거나 확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술의 개량과 혁신으로 최후의 공격과 방어에 필요한 무기인 강력한 특허를 준비해야 한다.
저성장시대 생존전략
빅테크 업계는 지난해부터 감원 칼바람에 시달렸다. 지난해 가장 많은 인력을 줄인 글로벌 빅테크는 아마존(2만 7,000명)이다. 메타는 전체 직원의 20% 이상인 2만 1,000명을, 엑스(옛 트위터)는 직원의 절반 이상인 3,700명을 지난해 해고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도 각각 1만 2,000명과 1만 1,000명을 내보냈다. AI와 로봇은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대체하고 있으며, 전쟁과 불경기는 세계 경제를 안개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따라서 올해도 구조조정은 이어지고 있다.
저성장시대로 진입하면서 경제적으로 시장이 위축되고, 시장경쟁과 이종 산업 플레이어 간의 극한 경쟁이 악화하고 있다. 이때 특허 리스크 또한 커지게 되며, 시장 선점 및 방어와 기업 간의 경쟁, 미래 시장 선점에 있어 강한 IP의 확보는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저성장시대에는 남는 자원을 공유해 가치를 창출하는 공유경제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가진 K-컬처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K-POP 순례 프로그램이나, K-컬처 가이드 연결 플랫폼, K-Speak 티칭 플랫폼 등을 꼽을 수 있다.
더욱이 요즘 삼성과 하이닉스의 메모리 사업 시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 위기를 겪었던 만년 2위 하이닉스가 메모리의 Z축 활용 기술에 집중한 결과, AI 빅뱅과 함께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일이겠지만 삼성은 성과금이 없고, 하이닉스는 성과금을 제법 제공했다고 한다. 이는 위기의 시기에 약점을 극복하여 미래를 대비한 덕분일 것이다. 더 나아가 메모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AI 시대 메모리 혁신의 중심인 PIM(Process In Memory) 기술에 집중해 미래를 대비한다면, 반도체 생태계에서 대한민국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혁신과 조총과 클래식
역사적 혁신 사례를 전쟁의 사례에서 살펴보면, 조선과 일본의 조총 기술혁신을 비교할 수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조총을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며, 국내 장인이 일본의 왜총을 견본으로 하여 조총을 만들었다. 반면 일본은 조총을 빠르게 도입하여 지속적인 개량으로 전국시대를 종결시켰고, 이는 임진왜란을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일본의 조총 기술은 격발장치 제조에서 용수철을 사용하는 등의 비약적 발전으로, 일본 국력의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조선과 일본의 미래가 무기 기술혁신의 관점에서 달라진 주된 이유는, 일본이 서구의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근대화를 이루는 데 성공한 반면, 조선은 이러한 변화에 더디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일본이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고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조선이라는 국가 시스템의 한계가 혁신을 방해함으로써, 나라와 국민이 고난을 겪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혁신의 사례는 국악과 클래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악기의 지속적인 개량은 음악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악기의 개량은 음악적 표현의 폭을 넓히고 연주자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아코디언은 갈대와 공기를 사용하여 소리를 내는 악기로, 다양한 피치와 음색을 생성할 수 있다. 또한 더블베이스와 같은 현악기의 개량은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음악의 베이스라인을 강화한다.
새로운 악기들이 도입되고 기존 악기들이 개량됨에 따라 작곡가들은 더욱 복잡하고 섬세한 음악을 창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악기의 기술적 진보는 음악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국악의 경우는 그 독창성과 문화적 정서의 표현력 측면에서 높은 아름다움을 지니지만, 대중성과 완성도 및 혁신성의 측면에서는 조총과 같은 사회 시스템 등의 문제로 클래식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볼 수 있다. 국악과 클래식의 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의 환경 차이가 결과적으로 성공과 발전의 차이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혁신 생태계의 차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K-Pop을 비롯한 K-컬처에서 발휘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은 끊임없는 혁신
전 세계적인 전쟁 분위기와 공급망 재편, 패권 경쟁에 불경기까지 겹치며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해있다. 여기에 Chat GPT를 포함한 AI의 폭발적 성장이 많은 일자리와 기술을 위협하고 있어 우리는 더욱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R&D 규모마저 축소되어 기업 및 관련 연구기관의 연구가 중단되는 상황이라 전쟁과도 같은 처참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대한민국은 수많은 역사적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K-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은 당장의 구조조정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미래 기술을 대비한 연구개발에 R&D 인력을 흡수하고, 연구소 체계를 강화해야만 한다. 더불어 연구개발과 함께 IP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다가올 미래 시장을 선점하고 방어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삼성과 TSMC의 순위를 가른 것도, 결국은 삼성이 경영권방어로 초미세공정 투자를 실기했을 때 TSMC가 적극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과 특허를 삼성보다 먼저 더 많이 확보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이순신 장군의 혁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다. 전라좌수사 부임 시 이순신 장군의 혁신은 판옥선에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 수군은, 등선 백병 전술에 천착하던 왜의 수군에 비해 총통 포격 전술을 구사하는 첨단 수군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 근접 돌격용 포격선인 거북선을 만들어 왜군의 등선 백병 전술에서 아군을 보호하고, 선수 용머리 입에서 발사되는 현자총통에 인명 살상용 조란탄을 사용해 왜군의 피해를 극대화했다.
더불어 근대 함포 포격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학익진으로 왜의 수군을 전멸시킨 이순신 장군은, 혁신만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임을 말씀하고 있다. “신이 일찍이 왜적의 난을 염려하여 별도로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臣嘗慮島夷之變 別制龜船).” 지금 우리의 위기에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거북선을 설계하고 학익진과 같은 전술을 준비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의 대한민국 생존전략은 각자도생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끊임없는 혁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