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작년에 우리나라 국민이 온라인을 통해 중국 제품을 직접 구매한 금액이 3조 3천억 원에 육박했다.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넘게 늘어난 숫자로, 중국의 직접구매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의 이용자가 빠르게 증가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중국 직구 금액은 초저가 전략과 무료배송을 무기로 최근 아주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전체 해외 직구 금액은 26.9% 증가한 6조 7,567억 원을 기록했다. 중국이 약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은 4,74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0% 늘어났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각각 1조 8,574억 원과 8,764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7.3%와 22.9% 감소했다.
이러한 데이터를 반영하듯 ‘다이소보다 더 싸다’, ‘쿠팡과 똑같은 제품이 반 가격도 안 된다’ 등의 입소문을 타고 10, 20대는 물론 50, 60대에서도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AliExpress(알리익스프레스)’에 이어 ‘TEMU(테무)’도 무서운 진격을 보이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가 작년 3월 한국 시장에 공식 진출한다며 배우 마동석 씨를 홍보 모델로 기용하고 대대적인 투자계획을 내놨을 때만 해도 의아해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중국 앱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높은 데다 이미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과 네이버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의구심을 깨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들 두 기업은 작년에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앱 순위에서 나란히 1, 2위에 올랐다. 12월 말 기준 월간 활성 사용자(MAU)가 알리익스프레스는 713만 명, 테무는 453만 명으로, 국내의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사용자는 천만 명을 훨씬 넘기며 쿠팡에 이어 단숨에 업계 2위의 자리에 올랐다. 관세청 통계에 의하면 2023년 해외 직구 금액은 20.4% 증가했는데, 처음으로 중국 직구가 미국을 추월했다. 미국은 9.6%P 감소한 반면, 중국은 106% 급증한 결과다. 얼마 전까지 쿠팡에서 매일 상품을 사는 부인에게 잔소리하던 남편들이, 요즘은 오히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에서 매일 물건을 사면서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 신세가 되었다는 인터넷 글이 자주 눈에 띈다.
한번 들어서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소위 ‘알리 지옥’, ‘테무 지옥’에 빠진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유통시장이 중국 기업에 급속도로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패스트 패션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SHEIN(쉬인)’도 미국을 넘어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쉬인은 중국 패션 생산의 거점인 광저우에 수천 개 제조업체를 확보해 의류를 대량 제작한다. 이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초저가로 판매하는데, 경쟁사인 Zara나 H&M보다 70%가량 저렴하다. 업력이 12년밖에 안 됐지만 공격적인 저가 전략으로 150여 개 국가의 수억 명이 이용하는 주요 패션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며, 최대 시장은 미국이다.
놀라운 것은 하루에 1,000개가 넘는 신상품들을 출시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얼마 전 국내에 이커머스 플랫폼 ‘틱톡샵’을 열었다. 미국, 영국, 동남아시아 등 6개국에 이은 아홉 번째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틱톡샵은 창작자가 콘텐츠에 제품을 노출하면 틱톡 앱에 상품이 노출되어 즉각 구매가 가능하도록 만든 서비스다. 틱톡샵은 틱톡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프로젝트로 지난해 전 세계 44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4배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본격적으로 아마존과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듯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틱톡샵 등 중국 이커머스 4대 천왕의 한국진출은 국내 유통기업들을 극도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사실 이들 4대 천왕은 모두 세계적인 대기업이다. 2024년 2월 중순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테무를 운영 중인 ‘핀둬둬’와 홍콩에 상장된 알리익스프레스의 모기업인 ‘알리바바그룹’의 시가총액은 각각 240조 원, 250조 원이 넘는다. 핀둬둬의 2대 주주는 텐센트(시가총액 453조 원)로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에서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맞붙은 형국이다. 한편 금년 상반기 미국 증시에 상장할 예정인 쉬인은 100조 원이 넘는 금액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으며,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는 500조 원 이상으로 평가되는 초대형 헥토콘 기업이다. 참고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쿠팡의 시가총액은 37조 원이고, 코스피의 이마트는 2조 1천억 원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가격 경쟁력’이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앱에 접속해 보면 쿠팡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되는 비슷한 물품의 가격이 최소 절반에서, 많게는 5분의 1 수준까지 판매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심지어는 동일한 제품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보조금이나 물류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초저가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미국 시장에서의 기세는 더욱 놀랍다. 테무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제치고 2023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이다. 더욱이 미국 소비자가 아마존 앱에서 하루 평균 10분을 소비하는 데 비해 테무 앱에서는 18분을 보내며, 테무가 이커머스 플랫폼 중 평균 사용 시간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젊은 사용자가 테무 앱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리익스프레스는 평균 사용 시간 11분으로 2위다. 작년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아마존의 주문량이 전년 대비 30% 감소한 반면, 테무와 쉬인 등 중국 플랫폼의 판매량은 3배 이상 늘어나며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도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 미국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이들 기업은 모기업과 주요 주주가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이기에, 플랫폼의 운영과 공급망 관리가 굉장히 뛰어나고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전략을 구사하면서 세계 시장을 빠르게 공략하고 있다. 아울러 고객들은 워낙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품질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 오히려 가격 대비 고품질의 상품이 배송되면 보물을 찾은 듯한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 사이트에 머물면서 ‘보물찾기’에 열중하게 된다. 그러나 무료 배송, 무료 반품에 엄청난 물량의 할인 쿠폰까지 제공하는 마케팅전략이 과연 지속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사람들이 이들 플랫폼에 열광하는 이유는 경쟁 불가의 초저가 상품 판매, 쇼핑에 게임이나 도박의 요소를 가미해 흥미 유발, 가입의 간편성, 무료배송, 무료 반품, 전액 환불, 그리고 100만 가지가 넘는 상품의 다양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지식재산권 침해 우려 및 부족한 상품 설명서, 느린 배송 등의 단점도 지적된다. 중국의 유통 골리앗은 글로벌 시장에 불어닥친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유통 질서를 파괴하는 수준의 초저가 전략으로 위축된 소비심리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새롭게 등장했다. 중국의 유통 골리앗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