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기술은 사전적으로 어떤 것을 잘 만들거나 고치고 다루는 능력이며, 인간이 창출한 창조적 능력이라는 포괄적인 정의도 있다. 기업은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에,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모든 수단과 과정을 기술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가 보유한 핵심기술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실제로도 많은 연구개발자에게 자사의 핵심기술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핵심기술에 대한 설명을 짧고 쉽게 들었던 기억은 매우 드물다. 보유한 기술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인지에 따라 비즈니스가 달라진다. 이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거나 기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비즈니스의 기본 요건을 갖추게 된다.

SK엔펄스는 반도체 CMP(Chemical Mechanical Polishing) 공정에 사용되는 CMP pad를 개발하여 사업화에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존의 핵심기술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비즈니스를 변화시킨 것이다. SK엔펄스의 기술혁신을 통해 기존의 핵심기술을 활용하여 더 높은 가치에 도전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 기술은 2016년 개발에 착수하여 2018년 1차 성과, 2021년 2차 성과를 거두며 사업화에 안착하였으며, 2023년 18주 차 장영실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계속 진화 중이다.

글. 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

핵심기술과 CMP pad 개발의 관계

어떤 기업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때, 처음부터 관련 기술을 모두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아무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창업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기존 주력 사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마련이다. 이를 핵심기술이라고 부르자.

SK엔펄스는 폴리우레탄 기술을 핵심기술로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폴리우레탄은 그 자체를 제품으로 볼 수도 있고 재료로 볼 수도 있다. 대부분 구체적인 제품명 뒤에 기술을 붙여 폴리우레탄 기술이라 부른다. 이를 좀 더 알기 쉽게 ‘가치’ 중심으로 설명하면, 고객이 원하는 물성이나 형태로 폴리우레탄을 가공할 수 있는 개발 능력과 가공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폴리우레탄은 합성섬유나 단열재, 자동차 내장재, 고무 대체재 등에 사용하는 열경화성 수지로, 우리가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접하는 재료다. 원하는 물성과 형태로 폴리우레탄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이 기술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가 사업을 결정짓는다. 값싸고 진입장벽이 낮은 제품을 만들 것인지, 보다 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 것인지에 따라 사업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SK엔펄스는 보유한 핵심기술로 반도체 공정 중 웨이퍼를 화학적 · 기계적으로 연마하는 ‘CMP 공정에 사용하는 패드’ 개발에 도전했다. CMP pad는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진다. 웨이퍼 표면을 연마하기 위해서 웨이퍼와 직접 닿아 이를 지지하기도 하고, 웨이퍼를 연마하는 화학물질인 슬러리를 유동시키는 역할도 한다. [그림 1]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CMP pad 개발이 왜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자. 반도체 웨이퍼는 nm 단위의 회로들이 표면에 새겨져 있는 기판이다. 이러한 기판의 표면을 연마하는 작업이니 얼마나 높은 정밀도가 요구될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이때 표면을 직접적으로 연마하는 것은 슬러리라는 화학물질로, 이는 유동성 있는 액체 상태다. 액체가 돌아다니며 표면을 미세하게 깎아내기 위해서는 패드가 3가지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첫 번째로, 패드는 웨이퍼를 견고하면서도 부드럽게 지지해 주어야 한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이렇게 상반되는 지지가 필요하다. 기판이 회전하면서 발생하는 온도 상승 및 작용하는 여러 가지 힘에도, 변형이 최소화되는 성질을 가져야 한다. 두 번째로, 슬러리가 골고루 잘 돌아다니며 연마할 수 있도록 패드 표면에 구멍과 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구멍은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매우 미세한 기공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판 표면이 얼마나 연마되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창이 필요하다.

자동차 세차를 하거나 왁스 칠을 하다가, 잘못하여 표면에 상처를 내고 속상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왁스가 골고루 칠해지지 않으면 얼룩이 생기고, 표면에 이물질이 있는 상태에서 문지르면 스크래치가 생긴다. 초정밀도를 요구하는 반도체 웨이퍼의 CMP 공정에서 이와 같은 문제는 수율과 직결된다.

CMP pad는 전 세계적으로 월 20만 장 정도가 소모되어 연 1조 원이 넘는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향후 연평균 8%에 가까운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폴리우레탄으로는 단열재나 내장재 등을 만들 수도 있고 CMP pad를 만들 수도 있다. 동일한 재료이지만 가치는 수십 배 차이가 난다. 폴리우레탄을 다루는 기본적인 원리는 다르지 않지만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따라 핵심기술의 변화가 일어난다. 같은 무쇠로 도끼를 만드는 것과 바늘을 만드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핵심기술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따라 유기체처럼 성장하고 변화한다고 볼 수 있다.


 

도전과 성공의 과정

고객사 입장에서는 CMP 공정이 반도체 수율과 직결되기 때문에 새로운 패드 제품이 나오더라도 쉽게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세계 시장 점유는 특정 회사가 독점에 가까운 구조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고, 도전자가 있어도 성공적으로 시장 점유를 차지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도전이 없는 경우 기술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우며, 기술혁신이 일어나더라도 시장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

세계 선두인 국내 반도체 기업들 역시 외산 CMP pad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국산화에 대한 니즈와 더불어 사용자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개발을 원해왔지만, 도전장을 낸 회사들이 중도에 개발을 포기하거나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한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SK엔펄스의 기술혁신은 기술과 비즈니스 두 가지 측면에서 성공 요인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이 상보적으로 리스크를 낮추며 성공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정은 하나지만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기술 측면에서, SK엔펄스는 폴리우레탄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었으므로 패드 개발의 필수적인 조건은 갖춘 상태였다. 개발된 패드는 기본적으로 만족시켜야 할 여러 요구 조건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공정에서 기존 패드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기능과 성능 구현을 통해 반도체 수율에 문제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패드 개발사가 단독으로 진행할 수 없고, 반대로 사용자인 반도체 제조사에서 단독으로 개발 및 실증을 할 수도 없는 문제다.

다시 말해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개발품을 현장에 투입해 실증을 통해서만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증을 위해서는 최소 2~3개월이 소요되고 높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기에, 개발 책임자인 서장원 팀장이 개발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꼽았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개발 및 실증에 대한 리스크를 줄여주고 시너지를 높여준 것은 바로 반도체 제조사였다. 반도체 제조사는 개발사의 다양한 기술적 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었고, 각종 검사 및 실증 결과 데이터에 대해 아낌없는 피드백을 해주었다. 단지 비즈니스적 이해관계가 맞아 공동개발을 한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시너지가 발생했다.

요약하면 SK엔펄스는 기존 핵심기술인 폴리우레탄 기술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가장 적합한 니즈를 찾아서 도전했다. 도전 과정에서 여러 기술적 난관들이 있었지만, 반도체 제조사가 다양한 기술적 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고 피드백함으로써 기술적 리스크 및 사업화의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를 낮출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핵심기술의 진화가 일어났고, CMP pad가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술혁신 성과와 향후의 기술혁신 준비

기술적 성과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CMP pad에 적합한 물성을 구현하기 위해 조성을 설계하고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의 확보다. 이는 기존 폴리우레탄 기술의 진화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패드의 중요한 역할 3가지 중 하나인 견고하고 부드러우며 열변성 및 각종 힘의 작용에 견디는 특성과 연관된 것이다. 쉽게 말해 고객이 요구하는 물성의 패드 개발이 가능해진 것이다. 두 번째로는 패드와 기판 접촉면의 기공 구조와 균일도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는 패드 물성과 더불어 반도체 CMP 공정의 수율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서, 슬러리의 유동성과 연관되며 웨이퍼의 결점(defect) 발생이나 스크래치를 최소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마지막으로는 양산 방식의 변화이다. 비유하자면 빵을 덩어리로 굽는 것이 속까지 균일하게 익을지, 얇은 낱장으로 굽는 것이 균일할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경쟁사는 대량 생산에 유리하도록 덩어리로 구워진 빵을 잘라서 패드로 사용하는 것에 반해, SK엔펄스는 패드 전체의 품질 편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낱장 생산 방식을 택함으로써 앞의 두 가지 기술적 성과를 극대화하였다.

SK엔펄스의 CMP pad는 2016년 개발에 착수하여 2018년 첫 제품의 판매가 시작되었다. 2021년에는 두 번째 주력 제품 출시가 이루어져 국내외 주요 고객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을 위한 평가가 진행 중이다. SK엔펄스의 CMP pad는 글로벌 독점 경쟁사의 견고한 성벽을 뚫고 시장 진출에 성공하였으며, SK엔펄스의 주력 사업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2023년 현재까지도 기술의 진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증거로 8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무려 200여 건이 넘는 국내외 특허를 출원하고, 100여 건이 넘는 등록 특허를 확보한 것을 들 수 있다. 서장원 팀장을 포함하여 단 8명의 개발진이 이뤄낸 성과다. 단순 계산으로도 매년 25건 이상의 특허를 확보했다.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특허는, 기술적 성과를 넘어 시장 진출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SK엔펄스 사례뿐만 아니라, 잘 키운 핵심기술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 사업화에 성공한 사례는 종종 목격된다. 어느 날 갑자기 고부가가치 기술이 탄생하는 경우보다는 기존의 핵심기술을 진화시켜 고부가가치를 실현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서장원 팀장을 비롯한 개발진은 핵심기술을 또 한 번 진화시키려 하고 있다. 진화의 방향은 ‘친환경’이고 크게 세 갈래 길로 나누어 답을 찾아가고 있다. 각각이 모두 의미 있는 답을 찾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