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기술생활


 


미국 켄터키주 배스카운티의 올림피아스프링스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마을이다. 인근의 진흙온천으로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동네 자체는 거대한 농장 한가운데 듬성듬성 집이 한 채씩 있는 시골일 뿐이다. 1876년 3월 3일 오전 11시, 이 시골이 100년 넘도록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한 사건이 벌어졌으니, 바로 그 유명한 ‘켄터키 고기 소나기’다.

국내 한 TV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 이 사건의 개요 자체는 무척이나 단순하다. 켄터키 시골마을인 올림피아스프링스의 하늘에서 고기조각이 소나기처럼 쏟아진 것이다. 이게 무슨 이야긴가 싶겠지만 우리가 요리해서 먹는 그 생고기 맞다. 흔한 ‘도시전설’로 치부하기에는 당시에도 최고의 언론사 중 하나였던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분명하게 남아있다.



켄터키 고기 소나기 사건 당시 채취됐다고 알려진 낙하물 표본. 면밀한 검토 결과 동물의 사체 조각인 것으로 밝혀졌다. © Kurt Gohde

켄터키 고기 소나기는 워낙에 공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 많은 과학자들이 달라붙어서 나름의 설명을 내놨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설명은 이 지역에 서식하는 독수리의 토사물이라는 것이다. 사체를 뜯어먹고 사는 검은독수리와 칠면조독수리는 무리 생활을 한다. 이들이 날아가다가 위험한 상황을 만나면 방어수단으로 자신이 먹은 것을 토해낸다고 한다. 마치 공포가 빠르게 번져나가듯, 한 마리가 토하기 시작하자 무리 전체가 한꺼번에 뿌려댄 토사물의 고기조각이 켄터키 고기 소나기의 정체라고 한다. 실제로 올림피아스프링스에서 채취한 고기 소나기 표본에는 동물의 폐나 연골이 섞여 있었다.

하늘에서 생고기가 쏟아지는 사건에 대한 설명 치고는 뭔가 맥빠지는 얘기다. 차라리 땅 위의 사람들을 가엾게 여긴 하늘의 누군가가 불가사의한 힘으로 고기를 만들어서 뿌렸다는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작가들은 켄터키 고기 소나기 사건을 모티프로 ‘하늘에서 공짜 음식이 쏟아지는 이야기’를 그려내곤 했다. 2009년 발표된 소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처럼 말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을 재료로 온갖 음식을 만들어내는 기계가 나온다. 불의의 사고로 하늘 높이 쏘아올려진 이 기계는 구름의 수분을 빨아들여서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낸다.

별 노력도 없이 음식이 계속 나온다는 이 불경한 생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특히 쉽게 얻기 어려운, 희소성이 높은 음식에 대해서는 더 그러하다. 농경 사회에서 육류가 바로 그러했다. 공짜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노력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흔한 농작물로 고기 비슷하게라도 만들어 먹어보겠다고 노력해 온 흔적이 어느 문화권에서나 또렷하게 나타난다.

고기를 ‘만들고’ 싶었던 사람들의 콩과 밀

목축보다는 농경에 중점을 두느라 늘 식용 육류가 넉넉하지 않았던 동양권에서는 고기 대신 단백질을 섭취할만한 음식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작물이 콩이다. 콩은 동아시아에서부터 퍼져나간 작물로 고대부터 중요한 농작물 중 하나였다. 옛 사람들이 콩의 영양소가 단백질이라는 점은 몰랐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콩이 고기 대신 써먹을만한 무언가라는 확신은 있었던 모양이다.

두부를 발명한 계기도 중국 한나라 시기 고기의 대체품을 찾으려는 데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대에 발명된 두부는 아는 사람만 먹는 지역의 별식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송대에 이르러 북방 유목민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육류 수입이 끊기자, 이를 대체하고자 두부 소비가 확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조한 내륙지방에서 물고기로 만드는 어간장의 재료를 구할 수 없어서 물고기를 콩으로 대체한 것이 오늘날의 콩간장과 된장의 기원이 된 것과 비슷하다.



대만의 식료품점에 진열된 다양한 두부 제품들. 두부가 어떻게 고기의 대용품이 될 수 있을지 의아하다면, 요즘 중국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부피 식재료의 식감을 생각해보자. © TamuT / Shutterstock.com

두부는 역사에 처음 등장한 이래 동아시아의 식단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전에도 콩을 다양한 방식으로 먹긴 했지만, 두부는 맛과 식감이라는 분명한 강점이 있었다. 이라는 부가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반도는 두부가 전래된 이래 ‘두부 맛집’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군사들을 얌전하게 진정시킨 비장의 무기가 바로 두부였을 정도였다. 물론 대가가 따랐다. 두부는 단순히 콩을 삶거나 볶아먹는 것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갔으며, 전근대 기간 동안 고급스러운 별식에 가까웠다. 당시 고기 대용으로 사용한 두부가 오늘날의 두부와 다르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훠궈나 마라탕을 자주 먹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탕이나 볶음 요리에 넣는 말린 두부가 고기 대용으로 사용한 과거의 두부에 더 가깝다.

사실 고기 대용으로는 두부보다 훨씬 있기 있는 재료가 있었다. 바로 밀고기다. 말 그대로 ‘밀로 만든 고기’라는 뜻으로, 밀가루 반죽을 치대 글루텐 조직을 충분히 형성하고 이를 물로 씻어내 만든다. 완성된 밀고기는 글루텐 덩어리라 끈적하고 말캉한 식감을 자랑한다. 이를 조리하면 맛은 몰라도 적어도 식감은 고기를 어느 정도 흉내낼 수 있었다.



밀고기를 간장에 버무려 볶은 요리. 모양으로는 고기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 shutterstock

밀고기는 흔히 ‘세이탄’이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일본어로 ‘신선한 단백질’이라는 뜻으로, 1962년 일본의 마루시마 쇼유가 제품화하여 1969년부터 미국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의 영향으로 유럽과 북미에서는 세이탄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밀고기의 역사는 두부만큼이나 오래됐다. 밀고기는 중국에서 국수의 형태로 6세기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송대에 이르러서는 ‘미안진’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됐는데, 주로 약처럼 사용됐다고 한다. 유럽에 전래된 이후에도 당뇨 환자의 식단으로 권장됐다.

콩과 밀로 만든 고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오늘날 판매되는 ‘대체육’을 살펴보자. 가장 성공한 대체육 기업인 ‘비욘드미트’가 내놓은 햄버거 패티는 완두콩과 코코넛기름, 카놀라유를 배합해 만들었다. 경쟁사인 ‘임파서블푸드’ 역시 콩단백질을 주원료로 사용한다. 둘 다 영양학적으로 보면 두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다만 오늘날의 대체육은 단지 고기를 아쉬운 대로 흉내내는 데만 그치지 않고 향과 맛까지 모방했다는 점이 다르다.



비욘드 미트의 패티 제품 © Beyond Meat

콩과 밀로 만든 대용품은 아무리 잘 만들더라도 고기맛을 내기는 어렵다. 여러 재료를 함께 쓰는 탕이나 볶음에 대용 육류를 사용하는 이유도 양념이 없다면 별다른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기맛을 모방하기 어려운 이유가 ‘육즙’ 때문이다. 육즙은 조리할 때 고기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로, 숙성 과정에서 단백질로부터 분해된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고기 특유의 향과 감칠맛을 결정하는 것도 바로 육즙이다. 고기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면 어떻게든 육즙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임파서블푸드의 패티. 선홍색 육즙이 보인다. © Impossible Foods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푸드의 패티는 블라인드테스트에서 제법 높은 평점을 받았다. 두 제품 모두 육즙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얘기다. 비욘드미트는 고기 향을 내는 용액을 별도로 첨가하여 육향을 모방한다. 대체육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것이 이 용액이다 보니 조성이나 배합은 기밀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임파서블푸드는 ‘레그헤모글로빈(leghemoglobin)’을 이용해 육즙을 구현한다. 레그헤모글로빈은 콩과 식물의 뿌리에 서식하는 뿌리혹박테리아의 콜로니에서 발견되는 색소단백질로, ‘헤모글로빈’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기능이 비슷한 만큼 동물의 적혈구에 포함된 헤모글로빈과 화학적으로 유사하다.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레그헤모글로빈에서는 옅은 피냄새가 난다. 육즙을 구현하는 데는 최적의 재료인 셈이다. 그런데도 레그헤모글로빈이 잘 사용되지 않았던 이유는 식물에서 대량으로 얻기 어려웠던 탓이다. 임파서블푸드는 콩의 유전자를 삽입한 효모를 배양해서 레그헤모글로빈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하고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누군가가 다른 방법으로 레그헤모글로빈을 대량생산하지 않는 이상 임파서블푸드는 넘어서기 어려운 경쟁력을 확보한 셈이다.



콩과 식물의 뿌리에서 공생하는 질소고정세균이 만든 혹. 오른쪽에 보이는 단면에서 선홍색 부분이 바로 레그헤모글로빈이 풍부한 곳이다. © Jennifer Dean

나뭇잎과 곰팡이, 별 데서 다 만드는 고기

비욘드 미트와 임파서블 푸드의 제품에서 보듯 콩 기반의 대체육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 사람에 따라서는 실제 소고기 패티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마저 한다. 다만 단지 고기를 그럴듯하게 흉내내기만 하는 것 치고는 아직 대가가 너무 크다. 대체육에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수십억 달러의 투자가 이어졌다. 식물성 재료로 고기를 만들면 축산업의 필요성을 줄일 수 있고, 축산 분야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온실가스나 목초지를 만드느라 삼림을 파괴하는 일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대체육이 시장에 등장한 이래 핵심 키워드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콩 기반 대체육은 사용하는 토지나 에너지 대비 생산량이 적은 편이고 비용도 높다. 애당초 공정의 상당부분이 기밀이라 제조 과정에서 에너지와 물을 얼마나 쓰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문제다. 공정이 복잡한 탓에 식물성 대체육은 진짜 고기 제품보다 비싸다. 그리고 높은 가격 탓에 대체육이 내세운 윤리적 가치가 무의미해진다. 대체육은 ‘축산업이 필요없는 세상’을 내세웠지만 소와 같은 반추동물의 젖과 고기가 기후 문제로 농경이 곤란한 지역의 식생활을 책임져왔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런 지역 대부분이 평균소득이 낮고 인프라가 부족한 곳이다. 소과 동물에 식생활을 크게 의존하는 지역에 대체육은 지나치게 비싼 솔루션인 셈이다. 시간이 지나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면 해결될 수도 있다지만 지금처럼 콩과 같은 일부 작물에만 의존해서는 폭발적으로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

그렇다면 콩보다 싸게, 더 많이 재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많은 연구자와 기업이 나뭇잎이나 해조류에 주목한다. 대체육의 주원료는 단백질이다. 그리고 단백질은 생명현상을 매개하는 핵심 물질이다. 당연히 모든 생물에는 단백질이 풍부하다. 그렇다면 단백질을 꼭 콩의 열매에서만 얻어야 할까? 그냥 아무 나뭇잎이나 써도 되지 않을까?



LPC 덩어리. 식물의 종류에 따라 색상이 다르다. © veganoo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연구중인 재료가 ‘잎 단백질 농축액(LPC)’이다. LPC는 나무의 잎에서 추출한 단백질 덩어리를 말한다. 아주 직관적이다. 식물이 광합성과 호흡을 하는 잎에서는 대사작용이 활발하니 단백질이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뭇잎을 으깨서 단백질만 추출해 뭉치면 대충 고기 비슷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나뭇잎은 딱히 가격이랄 것도 없고 종을 가릴 것도 아니니 재료비는 공짜에 거의 가까울 것이다.

단순한 아이디어인 만큼 역사도 깊다.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LPC가 잠재적인 대용 식품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산업적 규모의 대규모 추출은 20세기의 ‘녹색혁명’ 시기에 들어서였다. 다만 기대와는 달리 LPC는 그다지 인기있는 식재료는 아니었다. 잎에서 갓 추출한 LPC는 암녹색 치즈와 비슷한 상태의 물질이다. 이를 건조하면 9~11%의 질소, 20~25%의 지질, 5~10%의 전분과 다양한 단백질이 포함된 상태의 가루가 남는데, 시금치나 차와 비슷한 쓴맛이 난다. 영양소야 어쨌건 쓴맛이 나는 꾸덕한 녹색 점액 덩어리라니, 식욕이 뚝 떨어지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LPC는 대량생산에 성공한 이후에도 사료의 첨가물로 활용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LPC를 구호용으로 활용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Leaf for Life의 홈페이지 ©LeafforLife

그러나 현대의 기술적 발전 덕분에 LPC의 녹색 성분과 흰색 성분을 분리할 수 있게 되자 다시 주목받고 있다. LPC를 역하게 만드는 주범은 녹색 성분에 있다. 쓴맛이 나는 성분도 녹색쪽이다. 녹색 성분을 걷어내고 나면 희거나 투명한 성분만 남는데, 이쪽은 맛이 쓰거나 하지 않아 거부감은 적은 편이다. 이 부분을 아쉬운 대로 사용하면 재해 지역에서 긴급 구호용 대체식량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도시화되지 않은 대규모 재해현장에는 열악한 교통사정으로 구호품이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일도 많은데, 제대로 된 구호품이 충분히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 목적으로 LPC 추출 및 분리설비를 설치하는 것이다. 현장 근처의 나무에서 잎을 따서 넣기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양의 필수영양소를 얻을 수 있으니 재해 현장에서의 생존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LPC를 보급하는 비영리 단체인 ‘Leaf for Life’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나뭇잎 목록을 관리하며 현장에 적합한 나뭇잎을 추천하기도 한다.



영국 말로우푸드의 대체육, 쿼른 © Anja

아직 본격적인 소비시장에는 진입하지 못한 LPC와 달리, 곰팡이에서 유래한 단백질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바로 1985년 영국의 ‘말로우푸드’에서 출시된 ‘쿼른(Quorn)’이다. 쿼른은 ‘푸사리움 베네나툼(Fusarium venenatum)’이라는 곰팡이에서 추출한 ‘마이코프로틴(mycoprotein)’을 이용해 만든다. 마이코프로틴이란 버섯에서 유래한 단백질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달걀에서 추출한 단백질인 알부민을 첨가하고 압착해서 작은 육각형이나 다진 고기 모양으로 만든다. 모양만 보면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빚어낸 패티 같은 느낌이다. 쿼른은 라자냐나 피자 토핑, 캐서롤 등의 요리에 흔히 이용된다.

쿼른은 제법 성공적이다. 출시 이후 영국 대체육 시장의 60%를 장악했고, 2006년에는 북미 시장에, 2012년에는 독일 시장에 진출하는 등 급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균류를 주원료로 한 만큼 섬유질 함량이 유독 높아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아기, 어린이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또한 육즙이랄 것이 없어 풍미를 위해 첨가물을 넣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라 소듐 함량에 신경써야 한다.



쿼른의 재료인 푸사리움 베네나툼의 현미경 사진. 어떻게 보아도 버섯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버섯과는 ‘문’ 단계에서 다른 생물이기 때문이다. 어류부터 포유류까지 포함하는 척추동물의 분류군이 ‘문’ 단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푸사리움 속의 곰팡이와 버섯이 얼마나 다른지 짐작할 수 있다. © Unai Ugalde/Applied Mycology and Biotechnology

다른 한편으로 소비 시장에서는 곰팡이를 주원료로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버섯이 식재료로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에서는 버섯조차도 곰팡이라며 먹기를 꺼리는데, 진짜 곰팡이에서 얻은 식재료라면 거부감이 엄청날 것이다. 이 때문에 말로우푸드는 쿼른을 홍보할 때 주성분이 버섯에서 유래했다고 이야기했다. 자신들이 발견한 성분에 버섯을 뜻하는 ‘마이코-‘라는 접두어를 사용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쿼른의 주재료인 푸사리움 베네나툼은 균류 중에서도 자낭균류로, 담자균류인 버섯과는 ‘문’ 차원에서 구분된다. 비슷해 보여도 사실상 버섯과는 완전히 다른 균류인 셈이다. 이 때문에 말로우푸드는 원료의 출처를 속였다는 비판에 시달렸으며, 현재 쿼른은 ‘곰팡이’에서 유래한 성분을 이용했음을 명기하고 있다.

우주에서도 먹을 수 있는 고기, 박테리아 단백질

곰팡이나 효모나 둘 다 균류다. 그런데 곰팡이를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효모가 들어간 빵은 잘만 먹는다. 아마 효모는 상하거나 오염된 것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인 데다, 단세포 균류라서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박테리아는 어떨까? 박테리아로 만든 식재료에도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까?

이 문제는 지금부터 부딪혀봐야 할 듯하다. 박테리아에서 얻은 성분이 식품으로 나올 전망이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기업인 ‘솔라푸드’가 개발한 ‘솔레인(Solein)’을 언뜻 보면 강황이나 샤프란 가루처럼 보인다. 냄새는 향신료보다 달걀 요리에 더 가깝지만 그 외에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고단백질 성분이니 보기에 따라서는 프로틴 보충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솔레인의 놀라운 점은 그 모양이나 냄새, 맛에 있지 않다. 솔레인이 특별한 점은 그 출처다. ‘공기’로부터 만들어낸 단백질 가루이기 때문이다.



솔레인 가루. 마치 강황이 들어간 카레가루같지만 삶은 달걀 냄새가 난다. © Solar Foods

솔레인의 아이디어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소간 우주경쟁이 한창이던 시기,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아폴로계획 이후를 준비하면서 1년 이상의 장기간 우주여행 동안 식량을 안정적으로 얻는 방법을 모색했다. NASA의 과학자들은 수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혐기성 세균에서 단서를 얻었다. 혐기성 세균은 산소 대신 다른 물질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다. NASA 과학자들은 혐기성 세균 중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먹이’로 삼고, 이를 수소와 반응시켜서 에너지를 얻는 ‘수소산화박테리아’가 우주여행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우주선에서 이들을 배양해서 단백질로 정제한다면 우주비행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만으로도 식량으로 쓸 만큼 충분한 양을 얻을 수 있을뿐 아니라 우주선 내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절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SF 작품에서나 볼 법한 NASA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아쉽게도 빛을 보지 못했다. 우주경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NASA의 예산도 대거 삭감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생물 식량이라는 대담한 아이디어는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핀란드에서 그 생명을 이어나갔다. 핀란드기술연구센터(VTT)와 라핀란타-라티공대(LUT)는 NASA의 선행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수소산화박테리아를 이용하여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데 성공했다. ‘잔토박터(Xanthobacter)’속(屬)에 속하는 이 박테리아는 대기에서 추출한 이산화탄소와 물, 물에서 전기분해로 얻은 수소, 기타 영양소가 있으면 대량으로 증식할 수 있다. 이렇게 증식된 박테리아를 건조하고 정제하여 영양성분만 남긴 것이 바로 솔레인이다. 솔레인은 단백질 65~70%, 지방 5~8%, 식이섬유 0~15%, 미네랄 3~5%, 소량의 철분과 비타민B군으로 이루어진다.

솔레인의 성분만 보면 쿼른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솔레인이 특별한 점은 박테리아가 증식하는 데 이산화탄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솔레인 생산 규모가 충분한 수준으로 커진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솔라푸드의 경영진은 솔레인만의 이러한 강점에 자부심이 남다르다. 솔라푸드의 CEO인 파시 바이니카는 “솔레인 발명은 감자의 발견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한다.

감자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유럽에 소개된 이래 구황작물로서 수많은 목숨을 살리고 18세기의 인구 증가에 중대한 공헌을 한 바 있다. 솔레인도 마찬가지로 굶주림과 기후변화라는 전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덕분에 솔레인은 기후변화와 식량문제 해결에 동시에 기여하는 솔루션으로 평가받으며 수천만 유로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솔라푸드의 미생물 배양조.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서 박테리아가 번식한다. 왼쪽에 있는 사람이 솔라푸드의 CEO 파시 바이니카. © Solar Foods

미생물을 이용하는 데 따른 또 다른 장점이라면 생산단가다. 미생물 배양 탱크의 생산조건을 맞추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일이지만, 일단 적합한 조건만 찾으면 배양 단가는 크게 낮아진다. 식품업계에서는 솔레인의 가격이 kg당 5유로선을 형성할 것으로 보는데, 이는 대두단백질보다는 두 배가 넘는 가격이지만 완두콩단백질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식물성 단백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골칫거리인 항영양소나 독성성분을 걸러내느라 고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솔레인은 2023년 싱가포르에서 식품허가를 받은 데 이어 2024년부터 본격적인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대기 중 탄소를 식량으로 바꾼다는 아이디어가 솔라푸드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미국의 에어프로틴은 B2B 시장용 원재료에 초점을 맞춘 솔라푸드와 달리, 박테리아를 정제한 단백질 분말로 대체육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제품들은 우주식량도 넘보고 있다. 화성에 반영구적인 정착지를 건설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다. 식물이야 식물공장을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동물성 단백질을 얻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화성의 제한된 환경에서는 가축을 기르기도 거의 불가능한 데다, 설령 기른다고 한들 에너지와 식량, 물의 낭비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증식하는 미생물을 이용한다면 안정적으로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다. 장기간의 여행이 필요한 우주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양육, 3D 프린터 기술과 조합된다면 박테리아로부터 그럴듯한 고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방과 단백질 재료를 잉크 삼아 3D 프린터로 고기를 재현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푸드테크 기업인 리디파인 미트는 3D 프린터로 실제 고기와 비슷한 수준의 고기덩어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기술이 단백질 제조기술과 결합하면 고기를 공산품처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 Redefine Meat

지금까지 언급한 대체육이나 식재료 기업의 제품들은 모두 2030년 이전에는 상용화될 전망이다. 어쩌면 우리는 조만간 기계에서 고기가 찍혀나오는 시대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듯 기계가 모양을 잘 갖춘 햄버거를 뱉어내는 수준은 결코 아니겠지만, 예전보다 저렴하게 고기를 즐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시장 초기인 만큼 성분의 안전성도 검증해야 하고, 실제 고기보다 떨어지는 맛과 식감도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겠다만, 대체육과 대체 단백질은 켄터키 고기 소나기처럼 어디선가 고기가 만들어져 나오는 모습이 실현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