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나침반


 


테크 분야 휩쓴 2023년 최고의 스타, ‘항비만 약’

‘너무 잘 팔려서’ 광고를 중단할 정도로 히트를 치는 제품을 찾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올해 5월 제약·바이오 업계에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체중 감량제 ‘위고비’에 대한 얘기다. 전문의약품을 광고할 수 있는 미국에서,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는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는 이유로 TV 광고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만 치료제에 대한 수요와 관심은 그 어떤 의약품과 비교해도 매우 폭발적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는 과거 오젬픽이라는 이름으로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활용되다, 비만에 효과가 있는 것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위고비는 2021년 미국식품의약국(FDA) 비만 치료제로 승인되었으며 기존 약물에 비해 2배 이상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에서는 위고비 품귀 사태가 벌어지면서,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더 적은 용량인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을 대신 처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여기에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 역시 최근 ‘마운자로’ 라는 이름으로,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활용되고 있는 약물 ‘터제파타이드’의 비만 치료제를 승인받았다. 그리고 세 가지 호르몬을 모방한 같은 회사의 약물 레타트루티드 역시 전례 없는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며 큰 관심을 얻고 있다. 최근 과학 저널 네이처는 ‘비만 치료제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표현하며 이들 비만 치료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들의 장기적인 효과는 무엇인지 등을 분석했다.

당뇨병 치료제의 놀라운 부작용… 일론 머스크도 사용

네이처에 따르면 비만 치료 약물들은 사람의 식욕을 감소시키지만 정확히 ‘어떻게’ 식욕을 감소시키는지는 여전히 연구 중이다. 가장 먼저 승인된 세마글루타이드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이라는 호르몬을 모방한 약물이다. 이 호르몬은 음식에 반응해 장에서 생성되며, 췌장에 인슐린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GLP-1 호르몬 모방체는 신체가 인슐린을 너무 적게 만들어 혈당 수치가 상승하는 제2형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해 처음 개발됐다.
그런데 임상 시험을 진행하는 연구원들이 ‘놀라운’ 부작용을 발견했다.

시험 참가자들의 식욕이 감소한 것이다. GLP-1 모방 약물이 장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이 호르몬을 수용하는 수용체는 식욕 조절·보상과 관련된 뇌 영역에도 존재한다. 천연 호르몬보다 더 오래 체내에 그대로 남아 있는 GLP-1 모방체 약물이 체내 수용체를 활성화하면서 포만감을 유도하고, 위를 비우는 속도를 늦추는 동시에 식사와 관련된 보상의 느낌은 줄여준다. 세마글루타이드 약물 복용 시 술·담배 생각이 줄어든다는 사례도 이 같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GLP-1 모방 약물을 중독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한 임상 시험도 진행하고 있다.

더 센 놈이 온다… 일라이릴리 ‘마운자로’(젭바운드), 11월 비만 치료제로 승인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는 GLP-1과 또 다른 호르몬인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촉진 폴리펩타이드(GIP)’를 모방하는 약물이다. 지난 10월 1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된 임상 3상 결과에 따르면, 마운자로를 투약한 환자들은 72주간 평균 26.6%(29.2kg)의 체중을 감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운자로는 ‘위고비보다 더 센 놈’ 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1월 8일 FDA는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 즉 성분명 ‘터제파타이드’를 비만 치료제로 승인했다. FDA는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인 성인이나, 고혈압 등 비만 관련 합병증이 있는 BMI 27 이상인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비만 치료제로 이 약을 승인했다. 이 제품은 '젭바운드'라는 상품명의 피하 주사제(복부 등 근육에 놓는 주사 형태)로 출시된다.

외신에서는 젭바운드의 등장으로 위고비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쏟아져나온다. 외신들은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가 위고비보다 약 20% 저렴한 점에 주목하며, 신형 비만 치료제 경쟁에서 2위 주자인 일라이릴리가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미국 보험사들은 부분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인해 위고비 보장을 꺼려왔다.”라면서 “젭바운드 출시 후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가 보험사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리베이트 등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과학자들은 체중 감소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식사 후 포도당의 흡수를 촉진하는 GIP 수용체를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GIP가 식욕 억제와 지방 분해 촉진 등을 비롯해, GLP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외에도 꾸준히 밝혀지고 있다. 지난 6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당뇨병학회의 발표에 따르면, GIP 수용체 하나만을 활성화해도 사람의 체중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의 GIP 수용체를 활성화하는 약물은 메스꺼움이나 구토 등 일부 GLP-1 모방 약물의 부작용을 억제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추가 항비만 치료제도 속속 개발 중

하지만 개발 중인 일부 약물은 그 반대의 작용, 즉 GIP 수용체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일례로 바이오 제약사 암젠이 개발한 한 후보 약물의 경우, GLP-1 수용체를 켜고 GIP 수용체를 끄는 기전으로 작용한다. 초기 단계의 임상시험에서 이 후보 약물의 최고 용량을 투여한 결과, 3개월 후 체중이 약 1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젠의 약물에는 다른 호르몬 모방 약물보다 더 큰 분자인 항체가 포함되어 있어 뇌에는 도달하지 않고, 장에 머물러 GIP 수용체를 비활성화해 체중 감소를 유발하는 원리일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장 호르몬인 ‘글루카곤’도 비만 치료제로서 관심받고 있다. 글루카곤 수용체를 활성화하면 간에 ‘포도당을 생산하라’는 신호를 보내 혈당을 높인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오히려 글루카곤 수용체를 비활성화하는 것이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간에서 글루카곤 수용체를 활성화하면, 포도당을 생성하는 동시에 간에서 지방을 분해하는 과정도 시작된다. 이는 교감신경계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다. 다만 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하면 심박수와 혈압이 높아질 수도 있다.

각 호르몬을 개별적으로 모방해도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함께 사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서로를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GIP 활성화는 GLP-1 활성화 부작용을 억제하고, 이 두 호르몬 모방체는 인슐린을 자극해 글루카곤이 혈당을 너무 높게 올리는 것을 방지한다. 글루카곤과 GIP, GLP-1 수용체를 켜는 ‘삼중 작용제’로 개발 중인 약물이, 최근 임상 3상을 승인받은 일라이일리의 레타트루타이드다. 레타트루타이드 2상 시험 결과 참가자들은 1년간 최고 용량 복용 시 평균 체중의 24%를 감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 더 이상 ‘게을러서’ 아냐… 인식의 전환과 적극적인 치료 필요

과학자들은 혁신적인 비만 치료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사회가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일부 비만 환자는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비만을 해결하기가 어렵다. 비만을 '의지력 부족'으로 치부하지 않고 약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인식한다면, 비만 환자들에 대한 편견 역시 감소할 것이라는 기대다. 

실제 비만은 ‘게을러서’ 혹은 ‘관리에 실패해서’ 오는 산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만약의 개발 역시 이러한 인식의 변화로부터 시작됐다. 199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분류했다. 2013년에는 미국의학협회(AMA)가 “비만은 질병이다.”라고 공식 발표했으며, 2008년 미국비만학회도 이에 동의했다.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식이조절이나 운동 등으로 치료가 어려운 병적 고도비만 환자의 수술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실제 비만인은 정상인보다 당뇨병과 고지혈증,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등 만성질환에 취약하다. 각종 암과 관절질환의 발병률도 높다. 

WH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율은 1975년 이후 3배 가까이 늘었다. 현재 기준 전 세계 비만 인구는 약 8억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계비만연맹에 따르면 2035년 세계 비만 인구는 20세 이상 기준 15억 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FDA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70%가 비만이거나 과체중이다. 세계비만재단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인구의 14%였던 비만 인구는 2035년경 24%로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