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활용




내년도 정부 R&D(연구개발) 관련 예산안이 올해 대비 5조 2,000억 원(16.6%) 삭감되어 25개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게도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존에 기관이나 회사에서 연구에 종사하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학교를 막 졸업한 신진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상황과 맞물려 이공계 기피 현상이 확대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도 적지 않다. 

STEPI01의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R&D 지원으로 과제를 수행한 기업 수는 약 2만 8천여 개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정부 지원으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에는 R&D 예산삭감으로 중소기업이 연구개발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과제의 시급성이나 중요성 등을 따져 좀 더 신중하게 우선순위를 정해서 추진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이렇듯 어렵게 이루어낸 연구 결과물인 기술이 유출되어 발생하는 피해의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데, 중기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02에 따르면 중소기업 기술 유출에 따른 5년간(2017~2021년) 피해액은 2,827억 원에 달한다.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를 위한 대표적인 방법은 제도적으로 해당 기술을 특허출원하여 특허법에 따라 보호받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바 이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보호 법률에 따른 ‘원본증명서비스’나 ‘기술임치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이렇듯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나 기술 탈취를 방지하는 제도는 오래전부터 제도화되어 있었지만 보유한 기술을 금융 측면에서 활용하는 것이 최근에 논의되고 있다.

기술임치제도는 중소기업의 핵심 기술자료 및 영업비밀을 ‘기술자료 임치센터’에 안전하게 보관하여 해당 기업의 기술개발 사실을 입증하는 제도로 기술 유출, 탈취 등 분쟁 시 증거물로 활용하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는 거래관계에 있는 대기업, 중소기업과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일정한 조건에서 서로 합의해서 핵심 기술자료를 안전하게 보관함으로서 기술 유출의 위험을 줄이고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파산, 폐업 시 해당 임치물을 이용하여 관련 기술을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삼자 임치와 중소기업과 재단 간에 이루어지는 양자 임치로 나뉜다. 하지만 이렇게 임치된 기술의 경우 기술 보호에는 많은 도움이 되지만 이러한 임치물을 이용한 금융지원이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방법은 마땅치 않다.

지식재산(IP)이 담보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법 제도적 기틀은 2010년 6월 10일에 제정된 ‘동산·채권 등의 담보에 관한 법률’(이하, 동산채권담보법이라 한다)에서 ‘담보약정’의 대상으로 동산, 채권, 지식재산권을 정하였다. 이후 2012년 6월 11일에 시행된 개정안에서 지식재산권자가 약정에 따라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2개 이상의 지식재산권을 담보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특허원부, 저작권등록부 등 그 지식재산권을 등록하는 공적(公的) 장부에 이 법에 따른 담보권을 등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지식재산(IP)을 담보로써 법적 지위를 가지는 제도의 도입은 당시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것인데, 미국에서는 지식재산권을 일반 무체재산권으로 분류하고 지식재산권을 담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중국에서는 2006년에 “담보법”을 근거로 지식재산 담보제도를 시행하였으며 일본에서도 2009년에 일본정책금융공고(日本政策金融公庫)가 중소기업에 지식재산 담보 융자를 제공하였던 추세에 부합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지식재산(IP)을 평가하고 기술금융펀드를 조성하는 등 지식재산투자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IP 금융 관련 제도와 정책은 특허를 보유한 기업인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러한 지식재산(IP)의 금융제도를 임치된 기술에 적용하는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임치된 기술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다. 이는 담보 또는 금융적 자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식재산(IP)’과 ‘임치된 기술’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임치된 기술은 영업비밀로서 기밀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기술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지하고 이를 대가로 독점권을 가지는 지식재산(IP)과는 개념이 상이하다. 따라서 임치된 기술은 이러한 기밀성의 특성에 의해 제삼자가 그 기술 내용을 파악하여 가치를 산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또 임치 대상물인 기술자료는 물품 등의 제조 방법, 생산 방법과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진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가치를 평가하기 곤란한 성격의 자료도 있으며 정형화 되어 있지 않아 신뢰성을 재고할 수 있는 평가 방법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치된 기술의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블랙박스화) 기술에 대한 가치평가가 가능하도록 가치평가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기술이 적용된 제품으로 특정되고 제품에 사용된 임치 기술 종류가 어떤 것이고 제품의 성능이나 기능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성능평가, 시험인증 등)가 존재할 경우 임치된 기술 내용에 대한 간접평가가 가능할 수 있다. 이는 기술 내용을 파악하여 가치를 평가하는 IP가치평가시스템과는 다른 방법이며 이를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그림 1]과 같다. 

따라서, 서비스와 같은 기술은 가치평가는 제외하고 특정된 제품에 적용된 기술로서만 인정이 될 수 있기에 성능평가, 시험성적서 같은 간접적인 자료로써 가치평가가 가능할 수 있다. 또한, 임치 대상물을 분류하는데 있어서 상표권 국제 분류인 니스분류를 차용하여 분류하면 물품에 초점을 두어 대상을 한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치평가모델을 개발하는데 있어서도 종래의 기술성, 권리성, 시장성, 사업성으로 나눠 평가하는 IP가치평가모델을 참조하여 임치된 기술의 가치평가에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임치된 기술의 가치평가를 위해서는 등록관리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임치된 기술이 담보로서 금융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동산채권담보법에 따라 담보약정을 위해 담보 대상이 되는 질권의 지위를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술을 임치물로 등록할 수 있는 등록 절차와 등록부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동산채권담보법 개정을 통해 동산, 채권, 지식재산권에 더하여 ‘임치된 기술’도 대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임치기술의 종류와 제공되는 내용이 상이하여 모든 임치기술을 가치평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가치평가 대상이 되는 기술을 임치하는 중소기업이 등록 여부를 선택하게 하고, 등록하고자 할 경우 필요한 시험성적서 같은 추가적인 자료를 요구하여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 정비를 위해 상생협력법, 중소기업기술보호법, 동산채권담보법 등 관련 법률 및 규칙, 고시 등 하위법령의 정비가 필요하다. 

셋째, 임치된 기술이 담보로서 가치가 부실화 될 경우 이를 회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지식재산(IP)이 무효심판(소송)을 통해 담보가치가 없어지듯 이 임치물이 임치기업의 기망 등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휴폐업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담보물이 부실화 될 경우 이를 처분할 수 있는 회수지원시장의 조성이 필요하다. 이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지식재산(IP) 금융투자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에 임치물을 포함시켜 운영하는 것이 임치물 담보 금융투자를 초기에 정착하는데 바람직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이 어려워지고 있는 환경에서 기업의 기술을 단지 보호한다는 관점을 넘어 기업경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술을 공개하지 않고 임치제도로서 기술을 보호하는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임치된 기술에 대해서도 금융기법이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 법제도적 관점에서 필요한 개정사항과 가치평가방안, 부실채권 회수프로그램 같은 제도적 장치 마련과 담보로서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등록관리 프로세스의 필요성에 대해 논하였다. 임치된 기술의 담보제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고려할 사항이 많아 실질적으로 제도화되기에는 긴 시간과 여러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직접적인 R&D 예산을 지원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새로운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제안해본다.  


01  한국과 미국의 중소기업 R&D 지원 비교와 시사점 (STEPI Insight vol 231)
02  국회 김정호 의원실 보도자료(2022. 10.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