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산업의 중요성 및 국가적 의미
한 국가의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산업은 그리 많지 않다. 1970~80년대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전략적 배경에는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여 산업화에 성공한 덕분이다. 하지만 산업이 점차 고도화되고 대한민국 스스로가 선진국이 된 지금의 시점에서는 더 이상 기존의 선진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제는 스스로 기술을 개척해야 하는 ‘First mover’의 입장이 되었다.
빅데이터, AI, IoT 등 정보기술 기반의 초연결 혁명을 일컫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배터리를 꼽을 수 있다. 에너지 공급의 시공간적 제약으로부터 해방해 주는 것이 배터리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집, 자동차, 직장 등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사회가 고도화 될수록 배터리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지난해 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미래 대한민국 산업을 이끌 12대 국가전략기술을 발표하였다. 이 중 배터리 기술은 세계 선두권에 있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기술로서 ‘First mover’로의 역할이 당장 요구되는 분야이다. 리튬배터리로 대변되는 배터리 산업은 산업 초기 휴대전화, 노트북 위주의 IT 디바이스 전원시장이 주를 이루었으나, 전기자동차 시장의 개막과 동시에 비약적인 수요의 증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글로벌인포메이션 및 SNE리서치 시장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 배터리 시장이 460억 불 정도의 규모에서 2022년 1,067억 불 규모로 성장하였고, 2030년 3,500억 불 규모의 성장이 예측되는 등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증가세를 이루었다. 향후 이 시장은 전기자동차 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고 모든 시장예측 기관이 전망하고 있다. 또한 잦은 화재 사고로 인한 시장위축이 있었으나, 전력저장시스템 시장의 재도약이 예상되며, 항공 모빌리티 산업 태동에 따른 전원시장 확대 전망도 희망적이다.
배터리 종류, 구조 등 기술 개요
배터리는 화학에너지(충전 시) ↔ 전기에너지(방전 시) 변환을 발생하는 에너지저장장치를 말하며, 종류별 특성이 달라 용도에 맞게 선택적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납배터리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동용 전원으로, NiCd 배터리는 비상용전원, NiMH배터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구동 전원, 플로우배터리와 고온형 배터리는 대형 전력저장시스템에 주로 응용된다. 리튬배터리는 대부분의 응용 분야에 활용되는 배터리로서, 리튬이온을 포함한 전이금속산화물 양극과 리튬이온을 담을 수 있는 음극 물질(예: 흑연계)로 구성된다. 형태에 따라 원통형, 각형 및 파우치형 등으로 구분한다.
점차 치열해지는 각국의 배터리 기술 전쟁
전기자동차 시장을 중심으로 한 배터리 수요증대에 따라 배터리 시장의 확대, 시장 참여자 증가 및 차세대이차전지 기술 경쟁 등 각국의 경쟁 구도가 심화되고 있다. 그간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주도하던 리튬배터리 시장에 유럽을 중심으로 한 신규 기업의 진출 증가와 전기자동차 제조사의 배터리 내재화까지, 전 세계가 배터리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노스볼트(스웨덴), 베르코어(프랑스), ACC(프랑스), 이노밧오토(슬로바키아), 브리티시볼트(영국), 프라이어(노르웨이), 모로우배터리즈(노르웨이), 이타볼트(이탈리아) 등이 유럽에 GWh급 전기차 배터리 공장구축을 계획하고 있으며,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 중이다(배터리는 전기자동차 제조원가의 30~40%를 차지). 배터리 내재화의 선두는 테슬라로서 4680배터리를 양산하고 있다.
일본 토요타는 인산철, 전고체 배터리 자체설계를 추진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도 합작법인을 통해 전동화를 추진 중이다. 폭스바겐 또한 자회사(파워코)를 설립하여 2030년 독일에 150GWh 규모의 공장을 계획하는 등 내재화를 추진 중이다. 중국 BYD는 배터리 제조로 시작한 회사인만큼 내재화는 이미 완성된 기업으로 볼 수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배터리 내재화는 K-배터리 3사의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로서 국내 배터리 산업을 위협할 요소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배터리 제조는 상당 기간의 노하우가 필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기존 배터리 전문 제조사의 수준을 얼마나 빠르게 추적할 수 있을지는 향후 두고 볼 일이다.
인산철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이 무섭다. 우리나라의 주력인 삼원계 배터리와 비교해서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과 안전성을 강점으로 내세워 중국제조사들은 오래전부터 인산철 배터리 개발에 집중해 왔다(삼원계 배터리의 양극재 원가 비율이 40%인데 비해서 인산철 배터리는 17% 수준이다). 세계 1위 배터리 제조사인 CATL을 중심으로 BYD, CALB, SVOLT 등의 중국업체가 생산하는 인산철 배터리의 2025년 목표 연간 생산량은 2,370GWh이다.
K-battery의 위기와 기회
2000년대 리튬전지 세계시장을 독점하던 일본의 기술을 따라잡으며 2010년 세계 1위를 쟁취한 이후로 K-battery는 현재까지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하지만, 인산철 배터리와 중국 내수시장을 앞세운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는 삼원계 제조실력이 떨어지는 이유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팩 기술 개선을 통한 에너지밀도 향상 및 자동차 제조사의 볼륨급 차량으로의 적용 확대, 전력저장시장 및 전기선박 등의 시장에서 인산철 배터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삼원계 배터리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01) 시행에 대한 대처도 필요한데 현재 양극재 원료에 해당하는 전구체의 90% 수준을 중국에 의존하는 우리는 원재료의 공급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02) 도입에 따른 대응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의 세계 1위 수성 전략을 크게 위협하는 요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또한 현세대 배터리의 뒤를 이을 차세대 배터리의 등장으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절실하다. 현세대 배터리가 갖는 발화 위험을 제거하고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자 하는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전고체 배터리를 중심으로 리튬황 배터리 및 리튬금속 배터리 등이 개발되고 있는데, 세계 각국의 개발 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정책 지원에 힘입어 각 배터리 제조사는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다행히 연구개발 선두그룹을 형성하는 등 새로운 시장에 대비하고 있어, 현세대 배터리의 성능을 한 차원 도약시킬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고 있는 등 새로운 기회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
01 IRA : Inflation Reduction Act
02 CBAM :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