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중국 CATL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36.9%에 달했고, BYD가 15.9%의 점유율로 뒤를 이었다. 중국 1, 2위 기업의 점유율을 합하면 53%로 절반이 넘는 수치이다. 반면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점유율은 24% 정도이다. 얼핏 보면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 밀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중국 전기차 판매량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0%인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중국시장을 제외할 경우 국내 3사의 점유율은 50%에 근접해 여전히 K-배터리는 글로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향후 북미시장 증설 및 중국 대비 늦었던 LFP(인산철배터리) 개발이 본격화 될 경우 K-배터리의 점유율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양극재, 음극재 등 소재 성능이 배터리 경쟁력을 좌우
그러나 한국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가 존재한다. 특히 중요한 것이 배터리 밸류체인 업스트림에 해당하는 소재 산업의 경쟁력 강화이다. 배터리 산업에서 소재의 중요성은 4대 핵심소재(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으로 설명할 수 있다. BNEF의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배터리 원가에서 4대 핵심 소재의 비중은 74%에 달하고 있다. 특히 양극재의 원가비중이 51%, 음극재가 12%에 달해 두 소재가 전체 배터리 원가의 3분의 2에 달함을 알 수 있다. 전기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주행거리, 출력, 충전 속도, 배터리 수명 등을 결정하는 것도 양극재와 음극재이다. 양극재는 배터리 성능(주행거리)을 결정하고, 음극재는 배터리 수명과 안정성에 영향을 미친다.
양극재는 리튬 산화물에 다른 금속이 더해져 만들어진다. 양극재에 쓰이는 금속의 종류와 비율에 따라 배터리 용량 등 성능이 달라지는데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NCM(니켈·코발트·망간), LFP(리튬·철·인) 등 다양한 양극재가 사용되고 있다. 음극재는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받아들여 전류를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음극 소재로는 구조적으로 안정성을 갖추고 있는 흑연이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리튬이온의 저장과 방출이 반복될수록 흑연의 구조 변화로 저장할 수 있는 이온의 양이 줄어들어 배터리 수명이 감소한다. 음극재가 수명을 결정하는 만큼 용량이 크고 충전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실리콘 음극재 같은 차세대 음극재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결국 양극재, 음극재를 비롯한 배터리 소재를 보다 저렴하고, 경쟁력 있게 만드는 것이 K-배터리가 글로벌 경쟁력 1위를 지속하기 위한 핵심 과제임을 알 수 있다.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도 탈피 절실
그러나 배터리 소재 시장은 대부분 중국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22년 기준으로 4대 소재의 중국기업 점유율은 금액 기준으로 양극재 55%, 음극재 86%, 전해질 59%, 분리막 56%에 달하고 있다. 배터리보다 소재 영역에서 점유율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 배터리사는 자국산 외에 중국기업한테도 소재 조달을 하는 반면, 중국 CATL의 경우 양극재와 음극재 모두 전량 자국 소재사로부터 조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소재는 업스트림의 광물 가공/제련 경쟁력이 중요한데 이를 사실상 중국이 장악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지원과 상대적으로 느슨한 환경규제도 중국 소재사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 EU 등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는 주요 국가들은 자국의 전기차 확산 정책이 자칫 중국 기업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도 커졌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희토류, 바이오, 배터리 4대 공급망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배터리의 경우 소재 및 광물 제련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소재기업들에게 유리한 환경 조성
다행히 지정학적 여건은 국내 배터리 소재기업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의회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통과, 발효되면서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IRA는 표면적으로 인플레이션 방지이나, 법안의 핵심은 4천억 달러 규모의 지원 방안이 담긴 전기차/배터리 분야이다. IRA에 따르면 전기차 구매 시 최대 US$7,500를 세액공제 형태로 지원할 예정인데, 이 때 보조금 지급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양극재, 음극재 등 핵심 소재와 리튬, 니켈 등 핵심 원료의 원산지 요건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요 부품/소재의 생산을 북미로 유도하되, 특히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중국, 러시아 등에서 생산되는 배터리 원료/소재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유럽 또한 올해 3월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을 발표하였다. 역내 배터리 공급망 구축이 목적이지만 특정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개별 소재의 비중이 EU 연간 소비량의 65%를 넘지 않도록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것도 목표로 삼고 있다. 이처럼 미국, 유럽의 탈중국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 되면서 국내 소재 기업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친환경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것도 한국의 소재 기업들에게는 호재이다. 중국 기업들은 제조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며, 전력망에서 석탄화력의 비중이 높아 이산화탄소 간접배출량 또한 국내 기업들보다 많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중국 기업들과 비교할 때 차별화된 친환경 경쟁력을 확보할 경우 국내 기업들이 중국을 따돌리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배터리 소재기업 육성을 위한 국가차원 전략 필요
IRA, CRMA 법안이나 환경규제가 국내 소재기업들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외부여건에만 의존해서는 안될 것이다. 결국 품질, 원가 등 본원경쟁력이 뒷받침 되어야 지속가능한 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 현재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LFP 양극재 시장 진출이나 핵심 원료인 리튬, 니켈 확보를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차세대 이차전지소재 개발을 위한 투자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차전지소재 R&D 인력을 확충하고 연구개발에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기업뿐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IRA 법안은 2010년대 초중반 위력을 발휘했던 중국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정책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중국은 2013년부터 중앙정부, 지방정부에서 전기차 구매가격의 최대 50%까지를 보조금으로 지원해 주는 정책을 펼쳤다. 이는 전기차/배터리 산업 생태계 육성이 목적이었는데, 이 정책은 단기간 내에 큰 효과를 발휘해 중국 기업들이 원료-소재-배터리-전기차에 이르는 밸류체인 전체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향후 지속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시기에 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단순한 제조사의 역할을 넘어 공급망 강건화라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K-배터리 소재 산업 생태계 강화와 글로벌 소재 기업 육성을 위해 연구개발, 인재양성, 정책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와 지자체, 기업, 연구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