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기 짝이 없는 계기판이지만 조작하는 손은 망설임이 없다. 카브레터를 예열하고 스로틀을 살짝 당긴 후 스위치를 켠다. 주변에 위험요소가 없는지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확인하고는 점화스위치를 켜고 스로틀을 서서히 올려 주기장에서 활주로로 이동한다. 심현철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선보인 파이봇이다.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로봇이 계기판을 조작하는 모습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비행기를 시동걸고 이륙하는 절차야 일정한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고, 주어진 작업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이미 50년도 더 된 해묵은 기술이니까. 어쩌면 오토파일럿도 있겠다, 자율주행차처럼 비행기에 자율비행 시스템을 적용할 수도 있을텐데, 굳이 로봇을 앉혀두고 조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괜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KAIST에서 개발한 로봇 파일럿 파이봇 ⓒ KAIST
그러나 파이봇의 조종이 사전에 입력된 명령어를 그대로 수행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KAIST 연구팀은 파이봇에 비행기의 시동과 이륙 방법을 입력한 적이 없다. 단지 사람의 언어로 기술된 매뉴얼을 파이봇에 학습시켰을 뿐이다. 파이봇은 자연어 모델을 이용해 매뉴얼의 내용을 숙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종석에서 상황에 적합한 절차를 스스로 선택하여 적용한다. 요컨대, 파이봇은 특정한 임무를 차질없이 반복 수행하도록 설계된 항법장치가 아니라, 기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조종사인 셈이다.
꼭 사람을 닮을 필요가 있을까?
파이봇은 오늘날 인간형 로봇이 왜 다시 주목받는지 보여준다. 사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자동화는 제법 오래된 개념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산업 현장에는 중앙집중식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의 대규모 공장에서는 자동화된 로봇이 익숙하다. 근래에는 로봇과 제어시스템의 유연성도 커져서 필요에 맞게 생산 라인을 변경할 수도 있다. 비행기의 오토파일럿이나 자동착륙시스템도 이미 널리 사용되는 기술이고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도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금도 자동화는 충분한데 굳이 사람 모양의 로봇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자동화된 공장 내부 ⓒ Shutterstock
문제는 효율성이다. 기존에는 사람을 대신할 때 기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형태를 적용했다. 굴삭기는 땅을 파는 데 적합한 도구를 장비해야 하지, 사람의 팔 모양을 흉내낼 필요는 없다. 에너지 효율 높은 바퀴를 두고 굳이 다리를 달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자율주행하려면 자동차 내부에 자율주행을 돕는 장치를 장착하면 될 일이지, 굳이 운전석에 사람 모양의 기계를 앉힐 이유는 없다. 이미 신뢰성이 입증된 기능적 형태를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 모양의 로봇은 구현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롭다. 사람에게는 206개의 뼈와 500~600개의 근육, 100개 이상의 관절이 있다. 사람의 동작을 흉내내기라도 하려면 적어도 수십 개의 관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들 각각의 관절에는 별도의 정교한 제어장치가 필요하고, 각 관절끼리의 상호작용도 계산해야 한다. 그만큼 정비요소가 늘어나고 유지보수도 어려워진다. 설계하기도 어렵고 유지보수하기는 더 까다롭다 보니 사람을 닮은 로봇은 분명 ‘로망’을 자극하는 기술임에도 진지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편이었다. 기껏해야 로봇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비교적 높은 일본에서 기술력을 과시할 목적으로, 또는 한국의 휴보처럼 로봇 자체보다 기술 실증을 위해 만드는 정도였다.
일본 혼다의 P 시리즈 모델들. 휴머노이드 로봇은 복잡하고 값비싸서 기술을 과시할 목적으로나 개발되곤 했다 ⓒ Morio
분위기가 급변한 계기는 인공지능이다. 과거에는 사람 형태의 로봇이 두 발로 걷게 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의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를 정교하게 수치화하여 로봇에 입력해야 했고, 그나마도 통제된 환경에서나 제대로 작동했다. 단순히 걷는 일만 제대로 할 수 있는 주제에 가격은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학습 덕분에 기계가 환경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조건에서 넘어지기 전에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처럼 기능을 개선하는 데 사람이 일일이 수많은 조건을 설정해서 데이터를 손보고 입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적합한 알고리즘과 데이터만 있으면 기계가 스스로 학습을 통해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로봇이 꼭 사람일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로봇이 꼭 친숙한 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자동화는 분명 경제적, 산업적으로 강력한 무기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인건비가 오르면서 자동화에 투입할 수 있는 자본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자동화는 엄청나게 값비싼 시스템이라는 점이 문제다. 전통적인 로봇은 사람의 형태와 관계없이 로봇이 수행하는 역할에 부합하는 구조와 형태를 지녔다. 로봇이 생산현장의 주역이 되면서 공장은 로봇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했다.
예컨대, 가장 간단한 형태의 로봇인 로봇청소기를 생각해보자. 로봇청소기는 바닥을 청소하는 데 최적화되어 바퀴로 이동하지만, 제대로 작동하려면 방과 방 사이에 문턱이 없어야 한다. 로봇의 기능적 효율성이 공간적으로는 제약사항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로봇이 임무를 수행하려면 ‘기계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비용이 적잖게 드는 일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공장이나 집과 같은 제한된 공간이 아닌, 도심 거리의 일반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로봇이라면 문제가 더 커진다. 최근 시범적으로 운용된 바 있듯 배달로봇이 거리 곳곳을 지나다니며 음식을 배달한다면?
다이슨이 발표한 로봇청소기. 로봇청소기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최적화된 환경이 필요하다 ⓒ Dyson
인공지능 로봇이 소방 업무에 배치되어 위험한 재해 현장에 투입된다면? 건축 현장의 주요 업무를 로봇으로 대체한다면? 로봇의 활용범위가 넓어질수록 환경을 로봇의 편의에 맞추기는 어려워진다. 로봇이 보편화될수록, 로봇이 환경을 극복해야 한다. 생활 환경은 당연히 사람에게 최적화되어 있으니 범용으로 사용되려면 로봇 역시 사람을 닮아야 한다. 즉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자동화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역설적으로 로봇이 자동화 시스템의 일부가 아니라 사람처럼 자동화시스템과 독립적인 객체로 존재해야 하는 셈이다.
사람을 위한 세상에서 로봇이 살아가는 방법
다시 파이봇으로 돌아가보자. 파이봇은 비행기의 자동항법시스템의 일부가 아니다. 로봇에게 최적화된 별도의 인터페이스가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매뉴얼만 있으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에서 사람 대신 조종을 수행할 수 있다. 매뉴얼을 구할 수 있고 사람이 조종하는 비행기라면 어느 기종에나 파이봇을 적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기계를 다룰 수 있는 로봇만 만들면 현존하는 비행기에 센서와 통신장비를 주렁주렁 달지 않아도 간단하게 자율비행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구상은 정말 이상적이고 원대하다. 그런데, 정말로 로봇 기술이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렀을까? 현대의 인공지능이 불과 몇 년 사이에 휴머노이드의 실효성에 대해 세간의 평가를 바꿀 만큼 충분한 성능을 냈을까?
신호는 긍정적이다. 플로리다에 자리잡은 스타트업인 ‘피겨’는 2023년 5월 7천 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피겨의 최고 기술 책임자인 제리 프랫은 2015년 DARPA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DARPA 로보틱스 챌린지는 복잡한 환경에서 사람의 개입 없이 로봇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임무를 얼마나 수행할 수 있는지 겨루는 대회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대회로, 사람이 투입되기 어려운 재난 상황을 상정하고 문 열기, 카트 운전, 공구 조작 등 다양한 임무를 부여한다.
피겨의 프로토타입 모델 ⓒ Figure
2015년 프랫이 2위를 차지하던 당시만 해도 대회에 출전한 로봇들은 굼뜨고 서툴렀다.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나마도 더듬거리고 비틀대면서 간신히 이룬 성과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프랫에 따르면 오늘날의 기술 수준이라면 당시 대회에서 코스를 완주하는 데 걸린 시간의 8% 정도면 실수 없이 도전을 완수할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피겨의 CEO인 브렛 애드콕은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오랜 시간에 걸쳐 개선해 온 ‘아틀라스’와 달리, 피겨가 제작하려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자동차 가격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DARPA의 로보틱스 챌린지에 참여한 또 다른 연구자, 오리건 주립대학의 조나단 허스트도 어질리티 로보틱스를 창립해서 휴머노이드로봇 사업에 뛰어들었다. 어질리티의 전략은 피겨와 약간 다르다 사람의 동작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피겨와 달리, 어질리티는 안정적인 자세 제어를 위해 타조와 같은 역관절 다리를 적용했다. 물론 관절의 방향만 다를 뿐, 아무 배려 없이도 사람이 일하는 환경에서 얼마든지 작업 가능한 로봇을 만든다는 점은 동일하다. 어질리티의 시제품 로봇은 2023년 3월 미국에서 열린 산업 박람회에서 선반에서 특정 로트의 짐을 찾아서 컨베이어에 올려놓는 작업을 완전히 자율적으로, 정확히 시연한 바 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선보인 작업용 로봇. 보행 안정성을 위해 역관절을 도입했다 ⓒ Agility Robotics
사람을 닮아가는 로봇, 사람과 교감하는 로봇
2023년 7월 개최된 ‘선을 위한 인공지능(AI for Good)’ 서밋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미래를 한층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회의는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 공동의 선을 위한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DGs)’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급속한 기술 발전으로 인한 디스토피아적인 문제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를 논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는 현재 개발중인 9기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참석했다. 피겨나 어질리티의 로봇처럼 근시일 내에 현역으로 투입될 것 같지도 않고 당장은 딱히 용도가 없어 보이지만, 훨씬 사람을 닮은 로봇이다.
AI for Good 서밋 ⓒ ITU
서밋에 참석한 휴머노이드의 특징은 바로 얼굴과 표정이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표정을 재현하여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끈 바 있는 핸슨 로보틱스의 ‘소피아’나 엔지니어드 아츠의 ‘아메카’가 대표적이다. 둘 다 사람의 얼굴을 정교하게 재현해서 상대방의 말에 따라 적절한 표정을 지음으로써 비언어적인 교감이 가능하다. 사람과는 다른 모흡이지만 뉴라 로보틱스의 ‘4NE-1’은 강력한 AI를 바탕으로 사람의 목소리, 언어, 톤, 감정까지 인식하여 몸동작을 통해 상호작용할 수 있다.
아메카는 사람과 비슷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 Engineered Arts
지금 시점에서 사람과의 감정적인 교감이 ‘기술적 낭만주의’로 보일지도 모른다. 굳이 로봇이 사람과 감정적인 교류를 할 필요가 있을까? 로봇에게 임무를 부여하려면, 굳이 감정을 인식하고 기분을 살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핸슨 로보틱스가 싱귤래리티넷과 함께 개발한 소피아의 두 자매, 그레이스와 데스데모나를 통해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핸슨 로보틱스는 표정을 통해 상대방에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소피아의 기능을 두 가지 분야에 접목했다. 하나는 예술이다. 데스데모나는 ‘록스타 로봇’으로, 연주자가 뻣뻣하지 않게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는 공연을 위해 제작됐다. 그레이스는 데스데모나보다 차분한 모습으로, 노인이나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됐다. 식사 준비, 청소, 복약 알림 등 간병인이 하는 역할을 대부분 수행할 수 있다.
간호용 로봇으로 개발된 그레이스 ⓒ SingularityNET
제네바 대학에서 제작한 ‘나딘’ 역시 그레이스와 목표가 비슷하다. 나딘은 단지 표정을 통해 ‘친절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별 사용자를 모두 기억하고 학습해서 상대방에 따라 다른 상호작용을 선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청소와 같은 일뿐 아니라 감정적인 반응까지 포함한다. 나딘은 실제로 은행과 양로원에서 성공적으로 ‘근무’한 바 있다.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하게 개발된 나딘 ⓒ MIRALab
AI for Good 서밋에서도 인공지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노인과 만성질환 환자를 위한 케어’, 그리고 ‘장애인의 일상을 지원함으로써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의 불평등 감소’라고 강조한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발전해서 사람과 감정적인 교류가 가능해지면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 즉 복지에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넘보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문화예술 분야가 인공지능의 발전에 의해 큰 격변을 맞았듯, 기계가 대신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간병과 복지 분야가 인간형 로봇의 가장 유력한 활동분야로 손꼽힌다는 점은 꽤나 역설적이고 당혹스럽다.
사람을 돌보는 로봇을 위한 실험
일본에서는 이미 이러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20년이 넘도록 노인 돌봄 문제를 로봇을 이용해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고령화에 따라 간병이 필요한 사람은 늘어나지만 간병노동에 투입되는 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인력의 절대적인 부족을 기술로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이 유독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에 적극적인 데는 이러한 필요성도 있었다.
일본에서 개발된 돌봄로봇 로베어 ⓒ Sumitomo Riko Company
대표적인 결실이 곰돌이 얼굴의 흰색 로봇이 여성을 품에 안고 있는 사진으로 잘 알려진 로베어다. 2015년 공개된 로베어는 신체 일부가 불편한 환자를 안전하게 들어서 옮기는 로봇으로, 간병로봇의 대표주자로 여겨진다. 로베어가 기대만큼 많이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까지 일본의 일부 요양원에서는 환자를 안아서 옮기는 로봇 ‘허그’, 환자들의 관심을 끌어 안정시키는 용도인 물개 로봇 ‘파로’, 레크리에이션을 지도하는 휴머노이드 ‘페퍼’ 등 다양한 로봇을 사용한다.
환자들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동물을 흉내내는 로봇 파로 ⓒ HORIZONS WWP
일본의 사례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다른 나라에도 좋은 롤모델이다. 영국 정부는 2019년 복지용 로봇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파로와 페퍼의 사례를 언급한 바 있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중국에서도 푸리에 인텔리전스와 같은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휴머노이드 간병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기에는 아직 이르다. 로봇 도입을 서둘렀던 일본에서조차 간병인들은 로봇의 활용도에 대해 회의적인 경우가 많다. 2016년 일본에서 진행된 현장 연구에 따르면 허그는 로봇을 꺼내 작동시키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번거로워서 사용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파로는 평이 좋기는 했지만 환자가 지나치게 애착관계를 형성하곤 하는 바람에 간병인의 관찰과 감독이 꼭 필요했다. 페퍼는 사람처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프로그램을 바꾸거나 다양한 루틴을 섞는 데 한계가 있어 사람들이 지루함을 쉽게 느낀다는 문제가 있었다. 요컨대, 아직까지 현장의 로봇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기에는 기능이 제한적인 셈이다. 실제로 로베어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로 끝났고, 페퍼는 최근 생산이 중단됐다.
돌봄 현장에서는 감정적인 교감을 목적으로 제작된 페퍼를 이용해 레크리에이션을 지도하게 했다 ⓒ ANTOINE DOYEN
흥미로운 점은 로봇을 사용한 결과가 사람들의 기대와는 약간 달랐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돌봄로봇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나섰을 때, 처음의 의도는 간병인의 업무 부담을 줄여서 환자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데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게 하자는 데 있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간병인들은 소통 업무를 로봇에게 맡기고 로봇을 감독하는 데 시간을 더 쓰는 경향이 있었다. 간병인은 여가활동을 고안하고 환자들로부터 직접 피드백받는 대신 페퍼를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환자들과 이야기하고 스킨십할 시간에 파로를 주고 로봇과의 상호작용을 모니터링한다.
이는 로봇에 왜 정서적인 기능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로봇이 널리 사용될수록, 사람들과 직접 교감하고 소통하는 역할은 현장의 1차적인 인력, 즉 로봇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역할은 현장 인력인 로봇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로 바뀌어 갈 가능성이 높고, 대인업무의 전문성도 점점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로봇이 점점 더 그럴듯하고 능숙해질수록, 사람의 역할도 해당 분야 업무의 본연에서 멀어질 것이다.
한편으로 간병로봇의 사례는 왜 AI만큼이나 로봇에 따른 일자리 변화에 대해서고 깊이있는 고찰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AI와 마찬가지로 휴머노이드 로봇도 사람의 일자리 일부는 대체하고, 일부는 새로 창출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로봇이 감정을 얻고 사람과 비슷해질수록 현장에서 사람의 역할은 중요해질까, 사소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