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INTRO


 


과학에서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는 양자기술 

필자는 2~3년 전부터 ‘양자’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닌, 익숙한 용어로 여러 과학기술인에게 다가가기를 희망해 왔다. 우리는 ‘1+1=2’라는 단순한 산수를 엄밀한 정수론에 입각하여 일상생활에서 증명하며 사용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양자를 전공하지 않은 이들은 직관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양자 현상에 대해 ‘왜 그럴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처음부터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에 양자 현상은 자연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새롭고 특별한 현상을 이용하여 기존에 불가능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지식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양자과학기술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양자’ 자체를 연구하는 양자과학연구와 ‘양자 현상’ 을 이용하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양자기술연구가 있다. 대표적으로 ‘중첩’과 ‘얽힘’으로 대표되는 특이한 양자 현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현상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여러 이론을 만들고 기초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양자과학연구이다. 반면에, 여러 매체에 회자되고 있는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싱과 같은 연구들은 양자 현상을 이용하여 우리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응용기술을 개발하는 양자기술연구이다.

최근, 우리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양자’로 다가오기 위한 양자기술연구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아직 여러 논란이 있는 것은 맞지만, 구글과 IBM이 슈퍼컴퓨터보다 빠른 계산을 하는 양자컴퓨팅을 실현했다고 하고, 중국은 양자암호를 중요 통신망에 사용하고 있어서 미국의 전방위적인 도청에 안전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반 대중은 ‘양자’ 기술의 효용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아직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산업의 극초기 단계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양자기술이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변화의 이유는 ‘기술의 잠재적인 파급력’ 때문이다.


 

양자기술은 단순히 기존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닌, 기존에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있다고 인정받고 있다. 양자기술이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큰 위력을 가진 분야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고문이 있었는데, 2018년 5월에 워싱턴포스트지에 미국 남가주 대학, USC 총장이 기고한 글이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현대 사회의 기술 패권은 누가 뭐래도 미국이 가지고 있는데 그 근원적인 힘은 60년대, 70년대 치열하게 전개된 미소 우주기술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때 개발된 수많은 기술이 현재 기술 패권을 지탱하는 핵심 기술들이다.

그런데 향후 30년 후 기술 패권을 좌지우지할 만한 새로운 기술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양자기술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양자기술이 중국에 뒤처지고 있다. 전략적인 투자와 정책을 통해 양자기술 우위를 확보해야만 하는 시점이다. 이 기고문이 담고 있는 의미에 동의해서인지 당시 트럼프 정부에서 민주, 공화 양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음에도 양당 공동 법안으로 양자법이 제정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정부 투자와 정책이 집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식은 비단 미국과 중국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름을 들어봤음 직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양자기술 육성 정책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고, 전략기술로 육성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컨대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기술의 잠재적인 파급력에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적인 관점에서 기술의 파급력과 효용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컴퓨터가 있는 현재 세계를 상상하기 어려웠듯이, 양자기술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여러 국가의 비전 발표 자료와 시장 조사 기관 자료들을 보면 대략적인 예상을 해 볼 순 있다. 현재 연구개발 수준에 비춰볼 때(한 명의 연구자로서 언제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양자기술이 충분히 발전한다면 다음과 같은 장밋빛 전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모든 문제에 대해서는 아닐지라도 기존의 컴퓨터로는 계산이 불가능했던 문제를 양자컴퓨팅이 풀 수 있다. 그런데 그 특정 문제가 단순히 중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고, 암호를 해킹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면 매우 큰 파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새로운 종류의 감염병이 나타났을 때, 이를 치료하기 위한 신약 개발을 양자컴퓨팅을 이용해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통해 경쟁 기업보다 앞서 개발한다면 기업 경쟁력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자 단위의 양자화학 계산이 필요한 신소재 개발 시 양자컴퓨팅을 통해 후보 물질을 더 빠르게 찾아 개발 기간을 단축한다면 사회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양자컴퓨팅의 장점으로 인지하고 있는 최적화 문제를 유통 경로, 교통 관리 부분에 적용한다면 새로운 산업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레이더 기술로는 감지할 수 없었던 스텔스 전투기를 양자 레이더로 검출한다면, 이 또한 국방 안보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고, 양자센서를 이용해서 지금 보다 훨씬 더 정밀한 촬영이 가능한 영상진단장치를 개발한다면 의료 산업에 획기적인 변화를 견인할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응용 분야를 집단 지성을 통해 충분히 만들어 낼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한가지 꼭 언급하고 싶은 점은 기술 자체가 매우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아직까지 실현되려면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여러 기업들에 아직도 기회는 남아 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전 세계 주요국들은 앞다투어 양자기술을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육성하고 있다. 아직 기술적인 면에서 잠재력만 확인되고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중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양자과학연구가 시작된 유럽은 전통적으로 국가 간의 경계가 없는 공동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러다가 약 10여 년 전부터 진행해 오던 공동 연구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지원하면서, 개별 국가별로 별도의 육성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본 현상이 기초원천 연구에서 산업화 연구로 넘어가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기업 경쟁력, 국가 산업 경쟁력, 더 나아가 안보 문제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양자 산업 시장이 열렸을 때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시점에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연구 수준은 기술 선도국가에 비해 매우 낮다. 대략 60~70% 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특히 기초 원천 양자과학연구 수준은 기술 격차가 더 큰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기술 초기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략 양자과학기술 전문가의 수는 300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기초과학 연구에서 산업화 초기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현재 시점은 우리나라가 기술 격차를 빠르게 추격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된다.

산업화로 가기 위해서는 실제로 양자신호를 다룰 수 있는 소자와 시스템 기술이 필수적인데, 우리나라는 양자소자를 만드는 반도체 공정 기술과 양자시스템을 만드는 제조업 기술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양자기술의 주요 응용 분야들이 ICT 기술인데, 우리나라는 ICT 인프라 강국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인력 부분에서도 기존 산업 분야의 전문 엔지니어들이 양자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만 배양할 수 있다면 산업화에 필요한 인력을 빠르게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점 기술을 바탕으로 기술을 빠르게 추격하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기초 원천기술을 꾸준히 연구하고 관련 인력들을 배출한다면 다가오는 양자산업 시대에 기술 주도 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국가의 전체적인 전략안에서 개별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회 발굴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