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R&D


 


우리는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새로운 지식 탐구와 같은 보편적 가치 추구의 대상에서 벗어나 경제 및 안보의 영역으로 인식되면서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은 첨단기술에 대한 기술력 강화 및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 패권 경쟁의 주요 수단으로 과학기술협력이 자리하면서 주요국은 동맹국(like-minded)과 우려국(country of concern)을 구분하고 첨단기술 확보 및 시장 선점을 위해 우방국 간 소다자 협력체제 등 과학기술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EU의 Horizon Europe은 과학기술협력 플랫폼의 대표적 사례이다. Horizon Europe의 등장 배경은 약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윈스턴 처칠은 1946년 스위스 취리히 회의에서 “유럽도 UN과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유럽 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의 개념과 필요성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이후 1948년 헤이그 회의 등을 통해 유럽 통합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면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등의 공동체가 구성되기 시작하였고, 1967년 이들을 하나로 합친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y)가 만들어졌다. 1991년 EC 정상회담에서 마련된 정치통합과 경제통화 통합 관련 2개 조약(안)이 채택되면서, 1993년 11월 비로소 12개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 탄생했다01

유럽연합(이하 EU)은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기반으로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EU는 유럽을 단일 연구지대(European Research Area, ERA)로 구축하여 EU 회원국 간 중복투자를 피하고 체계적 연구개발 활동 장려 및 재정지원을 위해 ‘프레임워크 프로그램(Framework Programme; 이하 FP)’을 추진하고 있다. 1983년 FP1이 시작된 이후 지속되어 최근 8번째 FP인 Horizon 2020(2014~2020)이 종료되었다. 현재 EU는 제9차 FP로서 약 955억 유로 규모의 역대 최대 연구혁신 프로그램인 Horizon Europe(2021-2027)을 추진하고 있다. Horizon Europe(이하 HE)은 ‘Green, Healthy, Digital and Inclusive Europe’을 목표로 기초연구 및 인력교류 부문(Pillar1), 글로벌 문제해결을 위한 핵심 기술 분야별 연구개발 부문(Pillar2) 및 창업/혁신 지원 부문(Pillar3) 등 3개 Pillar로 구성되어 유럽 내 공동 연구와 연구개발 인력양성 활동 등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 결과, EU의 총연구개발비 규모는 전 세계 R&D 투자 규모의 22%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 논문 수는 전 세계 약 24%를 차지하며 세계 1위이고, 피인용 상위 1% 논문지수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는 등 EU는 연구개발 투자와 활동이 매우 활발한 권역이 되었다. 앞서 언급된 최근 주요국 간의 기술 패권 경쟁은 Horizon Europe에도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쳐 EU는 협력 대상국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27개 회원국 및 15개국 준회원국02과 더불어, EU는 모로코, 캐나다, 일본 등과 준회원국 가입과 관련 협상을 진행하고 있고, 최근 뉴질랜드의 준회원국 가입 결정 등은 EU가 협력 대상을 넓히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EU의 협력 대상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Hozizon Europe 등 기존 FP를 통해 EU와 지속적으로 연구협력 활동을 해왔다. 특히 Horizon 2020에 제3국으로 참여하며03 Pillar1의 마리퀴리 프로그램(Marie Skodowsak-Curie Actions), Pillar2 내 ICT 분야의 과제에 참여하며 논문 및 특허 등 우수한 성과를 도출하였다.  특히 ICT 분야는 한-EU 간 ICT 분야 공동연구 추진에 합의하면서 ICT Work Programme을 통해 Coordinated Call을 추진하며 ETRI, 연세대학교 등 출연연 및 대학이 과제에 참여했다. 

지난 2018년 12월 EU는 한국에 HE 준회원국 가입을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HE 준회원국 가입과 관련하여 연구 현장 의견수렴 및 관계부처 논의 등을 통해 준회원국 가입의 타당성과 기대효과 등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EU 측에 준회원국 가입의향서(LoI)를 전달하며 공식 논의를 개시하였고, 지난 5월 한-EU 정상회담에서 EU와의 첨단기술 협력 촉진을 위해 HE 준회원국으로 참여하도록 실무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협상 단계에 진입했다. 한국의 HE 준회원국 가입은 우리에게 정책, 경제, 과학기술 3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첫 번째는 정책적 측면에서 EU와 한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상생 협력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은 EU의 전략적 동반자 10개국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04. 한-EU 정상회의 및 과기공동위 등 정부 간 협력과 더불어 준회원국 가입을 통한 양국 간 연구개발 협력을 통해 한국과 EU가 함께 국제사회 내 기술 패권 경쟁 대응이라는 정책적 지향점을 공유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EU와의 과학기술협력은 민간 산업 협력으로 확대될 것이다. EU는 세계 최대 단일 경제권역으로 거대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고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선도기업이 다수 존재한다05. 한-EU 교역 규모도 경제침체에도 불구하고 1,100억 유로(2021년)를 기록하며 한국 전체 무역의 약 10%를 차지했다. 특히 EU의 「신산업전략 개편안(New Industrial Policy Update)(2021.5)」은 글로벌 산업구조 및 공급망 재편에서의 EU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국제협력 및 시장 수요 증가가 전망되고 있다.

또한 HE는 유럽혁신위원회(EIC)를 통해 신시장 창출형 혁신기술 개발 및 혁신기술을 보유한 기업 지원을 제공을 강조하고 있어, 한국 기업의 참여를 통한 R&D 국제화 및 재정지원 등 글로벌 경쟁력 확보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세 번째로 HE 준회원국 가입을 통해 과학기술협력 채널을 다각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국제공동·위탁연구 현황을 살펴보면 미국이 약 44%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EU의 연구개발 규모 및 기술 수준에 비해 EU와의 국제공동연구 활동은 미진한 상황이다. HE 준회원국 가입은 EU와의 전략적 과학기술협력을 확대하고 강화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EU 내 우수 연구기관과 연구자와의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첨단 연구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EU 회원국뿐만 아니라 준회원국 및 제3국과의 다양한 과학기술협력 기회를 확보하여 우수한 연구성과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과학기술 역량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HE 준회원국 가입을 위한 이슈와 도전도 남아 있다. 먼저 준회원국 가입을 위한 분담금 규모, 가입 범위, 상호성 이슈, 행정체계 등 여전히 고민해야 할 이슈가 존재한다. 이는 한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본격 협상 단계에 진입 전에 주요 쟁점에 대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HE 준회원국 가입 이후 국내 참여 활성화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도전이다. 준회원국 가입은 단순히 가입 자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제공동연구 등 연구자와 민간의 실질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Horizon 2020 참여 현황에서 한국은 대부분 대학과 출연연을 중심으로 참여하고 민간기업의 참여는 전체의 0.9%로 매우 저조했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HE가 혁신기업에 대한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적확한 정보 제공 등을 통해 민간의 참여를 더욱 격려하고 지원하여 민간기업의 R&D 국제화 및 시장 진출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최근 EU는 한국을 혁신성과와 연구개발 분야의 핵심 파트너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에 Horizon Europe 준회원국 가입은 제3국으로서의 참여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에게 혁신기술 분야에서의 연구협력 기회를 제공함과 더불어 유럽 내 새로운 시장을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01 현재 유럽연합(EU)은 27개국으로 오스트리아, 벨기에,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체코,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헝가리, 아일랜드, 이탈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몰타,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스웨덴으로 구성
02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튀르키예,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알바니아, 조지아, 이스라엘, 몰도바, 아르메니아, 우크라이나, 튀니지, 페로제도(2022.4 기준)
03 Horizon Europe 참여 지위는 회원국, 준회원국(Associated Country) 및 제3국으로 구분되며 한국은 제3국의 지위로 Horizon 2020과 Horizon Europe에 참여
04 EU는 전략적 동반자 국가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남아공 그리고 한국을 선정
05 Fortune Global 500대 기업 중 138개 사(28%), 히든 챔피언 기업 1,948개사(72.5%)가 유럽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