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기술생활


 


2022년 말, 한 장의 사진으로 국내 여론이 들썩였다. 아랍의 전통 머리 장식인 쿠피야를 둘러쓴 남성이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 총수들을 앉혀두고 한번에 접견하는 사진이었다. 바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내한했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마치 상석에 앉은 듯한 구도 탓인지 한동안 ‘미스터 에브리씽’이라는 빈 살만 왕세자의 별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밈’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현실적인 모빌리티의 쇼케이스, 네옴시티

빈 살만 왕세자의 내한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네옴시티였다. 네옴시티는 빈 살만이 직접 주도하는 대규모 신도시 건설 사업이다. 홍해 북단의 바닷가 황무지에 2030년까지 대규모 복합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계획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시 산유국 스케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500m 높이의 길쭉한 마천루 두 동을 200m 간격으로 마주보게 세워 170km에 이르는 거대한 선형 도시를 건설한다는 ‘더 라인’, 산악지대를 개발해서 동계스포츠까지 가능한 초대형 산악 관광지를 건설한다는 ‘트로제나’, 바다 위에 떠 있는 복합 산업 단지인 ‘옥사곤’ 등 황당하게 느껴질 만큼 엄청난 규모다.



더 라인의 상상도.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가로지르는 선이 바로 160km 길이에 이르는 도시, 더 라인이다. ©Saudi Press Agency

이 중 가장 화제에 오르내리는 프로젝트가 바로 더 라인이다. 롯데월드타워 높이의 마천루를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거리에 이르는 170km의 길이에 빽빽하게 채워 넣는다는 구상은 전 세계 건축가들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더 라인에만 투입되는 비용이 약 1조 달러, 한화로 1,400조 원으로, 실제 건설 비용이 설계비용보다 높게 나오기 마련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2,000조 원은 들법한 초대형 프로젝트인 셈이다.


더 라인의 내부 모습. 양쪽의 벽이 사람들의 생활 공간으로, 500m 높이의 마천루로 이루어진다.
건물 사이의 공간은 녹지 겸 이동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다. ©NEOM


빈 살만 왕세자가 더 라인에 이렇게나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가 있다. 21세기 들어 화석연료의 미래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20세기 내내 나왔던 위기론처럼 고갈 때문이 아니다. 채굴 기술이 발전하면서 채굴 가능한 석유의 양은 오히려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원이 없어서 굶는 일은 적어도 100년 이내에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석유를 포함한 화석연료 전체가 갈 곳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전세계적인 당면 과제로 떠오르면서 선진공업국을 중심으로 석유 사용량을 빠르게 줄이는 추세다. 국제에너지지구(IEA)가 2023년 상반기 발표한 중기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석유 수요는 2030년 정점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생산이 아니라 수요 정점이다. 즉 2030년을 기점으로 석유 사용량은 꾸준히 감소한다는 얘기다. 석유 기반 경제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비상상황이다.



네옴 신도시의 해상산업단지, 옥사곤 상공을 비행중인 비행 택시. ©NEOM

사우디아라비아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빈 살만의 해법이 바로 네옴 프로젝트다. 전문가들은 네옴 프로젝트의 핵심이 더 라인이 아니라 옥사곤이라고 추측한다. 더 라인은 쇼케이스이자 노이즈 마케팅에 가깝고, 실은 더 라인을 통해 끌어들인 관심을 옥사곤으로 유도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를 위한 산업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는 더 라인을 네옴 프로젝트의 간판 이미지로 내세우고 있지만 프로젝트 참여 기업과의 협상에서는 옥사곤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더 라인이 속 빈 강정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분명 공학적으로 무리수가 큰 계획이고 비판도 많이 받기는 하지만, 적어도 ‘빈 살만식 친환경 도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 더 라인은 산유국답지 않은 ‘자동차 없는 교통’을 테마로 미래의 교통 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라인의 내부. 도보 생활을 전제로 했지만 수직이동, 건물 간 이동을 고려하여 엘리베이터나 무빙워크를 보조수단으로 사용한다. ©NEOM

앞서 말했듯 더 라인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마주보고 길게 뻗은 두 동의 마천루다. 두 건물과 그 사이의 200m 폭의 땅이 바로 사람이 생활하는 도시 공간으로, 수평으로 넓게 펼쳐진 전통적인 도시 공간을 좁고 높은 수직적인 구조로 바꿔놓았다. 좁은 면적에 높이 쌓아 올리고 수평 면적을 줄여서 주변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논리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차도가 없다는 것이다. 건물 사이의 공간은 녹지나 연결공간으로 조성하여 공원의 역할을 하고, 주거지와 각종 편의시설은 건물에 몰아넣는다. 건물 공간은 수직, 수평 방향의 엘리베이터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거주자가 걸어서 5분 안에 모든 편의시설에 접근할 수 있다.




네옴 신도시의 간선교통망인 철도망의 구성도. 주거지구인 더 라인 전체를 관통하는 한편,
산업지구인 옥사곤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NEOM

한편 160km에 이르는 길이 방향 이동은 고속철도로 해결한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더 라인의 한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최대 20분만에 주파할 수 있는 고속철도를 지하에 건설하여 간선도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엘리베이터 네트워크가 각 역으로부터 뻗어 나와 지선 역할을 한다. 현재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고속철도 공사에 착수한 상태다. 여기에 더해 점과 점을 직접 잇는 택시형 대중교통은 소형 비행체가 대신하여 복잡한 더 라인 내부의 공간을 빠르게 연결한다. 이 모든 이동 수단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로 움직인다. 산유국임에도 화석연료 사용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실현가능성은 둘째치고 더 라인의 교통 계획만 보면 미래형 모빌리티의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고, 기계보다는 전자기기에 가깝게 운용되어 유지보수를 간편하게 하며, 지능형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복잡한 네트워크를 실시간으로 조율한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더 라인의 교통계획만큼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자동차, 기름 대신 전기를 먹는다

현대자동차는 2022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684만 5천 대를 판매했다. 일본 토요타, 독일 폭스바겐에 이어 세계 3위의 기록이다. 한때 자체 엔진 기술도 없어서 해외 시장에서 싸구려 자동차로 천시받은 과거를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다. 물론 여기에는 각고의 노력이 따랐다. 업계의 조소와 세간의 회의적인 시선에도 꾸준히 자체 엔진 개발을 추진해서 수출하는 데 이르는가 하면, 랠리 대회에서 단골로 포디움에 들 만큼 노하우를 축적하기도 했다. 그런 현대인 만큼 엔진개발센터를 폐지한다고 발표했을 때 충격이 컸다. 사실상 내연기관을 포기하고 전기화에 사활을 걸겠다는 뜻이다.

물론 전기차로의 전환은 현대차만의 용단은 아니다. 현대차가 엔진개발부서 폐지를 발표하기 5개월 전, 유럽연합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를 담은 탄소배출 감축 방안을 발표했다. 2035년까지 EU 경제권 내 내연기관차 생산은 물론, 수입 판매도 금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후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의 일부 주와 일본, 중국도 여기에 동참하여 사실상 세계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에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셈이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있었다.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인 포뮬러1은 내연기관차 업계의 자존심이나 마찬가지였다. 자동차 초창기 국가대항전 형태로 시작된 포뮬러1은 태생이 그러했듯 국가간 기술력 경쟁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자연히 포뮬러1에는 기계공학과 자동차공학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겼으며 내연기관 자동차가 아닌 다른 기술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었다. 경쟁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스포츠의 속성상, 파워스티어링이나 전자장비의 도입 조차 쉽지 않았을 정도였다.



포뮬러E의 차량들. 순수 전기차의 경주라는 콘셉트와 함께 신선한 운영방식으로 예상보다 큰 주목을 받고 있다. ©FIA

그러던 포뮬러가 2011년부터 입장을 바꿨다. 포뮬러 시리즈를 주관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가 전기자동차만으로 진행되는 포뮬러E를 신설한 것이다. 모터스포츠 팬들의 반응은 처음엔 회의적이었다. 심장을 울리는 엔진 소리도 없고, 내연기관에 비하면 느려터진 데다 자동차보다는 무선조종 자동차에 가까운 감성 탓에 기존의 모터스포츠에 비하면 맥빠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대회가 시작되자 포뮬러E는 기존의 모터스포츠와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인기를 얻었다. 배기가스 걱정이 없다 보니 몬테카를로 서킷처럼 도심을 질주하는 스릴을 즐길 기회가 많아졌고 배터리 관리, 부스터 활용과 같은 요소는 내연기관 레이스와는 또 다른 전략적 요소였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포뮬러E 덕분에 모터스포츠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모터스포츠가 기계공학의 정수이던 시절, 포뮬러는 공룡들의 무대였다.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이 아니고서는 포뮬러에 필요한 기술적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없었으며, 비용도 천문학적이었다. 당연히 스폰서 비용도 비쌀 수밖에 없었고 운영으로든, 후원으로든 포뮬러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전기차는 ‘배터리 가격이 절반’이라고 할만큼 배터리를 제외한 기계적 요소가 극히 저렴하다. 모터 기술도 오랜 시간을 거쳐 극도로 상향평준화됐고 전자장비는 커스터마이징 실력이 중요하지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이에 따라 팀 운영 비용이 크게 낮아졌으며 참여 기업도 늘어났다. 포뮬러E에 참여한 닛산의 이사회에서 ‘포뮬러E는 거대한 광고 싸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나는 전자제품을 탄다, 전기차

포뮬러E에서 보듯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과거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기계적 설계와 신뢰성으로 좌우됐다. 자동차 광고는 성능과 안전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여기서 전자장비는 어디까지나 기계를 보조하는 역할만 할 뿐, 자동차의 본질적 요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는 그 자체가 전자기기다. 전기자동차의 구동 계통은 전자적인 방식으로 쉽게 제어될 수 있으며, 데이터를 얻기도 수월하다. 이를 주행에 접목하면 운전자의 안전운전을 돕는 것을 넘어서서 다양한 서비스에 연동되어 IT 서비스 네트워크에 통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포뮬러E의 최신 차량인 3세대 차량. 부스트 모드에서 350kW의 출력을 내며 최고속도는 320km/h에 달한다. 1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빨라졌다. 기아자동차의 신형 전기차인 EV9의 최고 출력이 283kW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3세대 차량의 성능을 짐작할 수 있다. ©FIA

오늘날의 자동차가 ‘움직이는 정보통신기기’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2020년 말 갑작스럽게 발표된 ‘애플카’다. 애플의 유리한 계약조건으로 인해 기존의 자동차 회사들이 협력을 거절하면서 무산되고 말았지만, 애플카 프로젝트는 IT 기업들이 자동차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보여준다.

사실 애플은 2014년부터 자율주행차 개발 프로젝트인 ‘타이탄’을 추진하며 자동차 산업을 준비해 왔다. 애플이 구상한 전기자동차 생태계는 아이폰과 상당히 닮았다. 자동차로 얻은 정보를 단지 자율주행에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IOS에 통합하여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내부와 외부의 온도를 감지해 최적의 실내 상태를 자동으로 유지하거나, 외부 환경에 맞춰 유리의 틴트를 자동으로 바꾼다거나, 차에 탄 상태로 차량을 이용하여 결제를 진행하거나 무선충전 존을 만들어 주차장에 통합한다는 식이다.



테슬라는 커넥티드카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서비스센터에 갈 필요 없이 주행 중 실시간으로 차량의 기능을 보완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TESLA

애플카가 언제 실현될지는 미지수지만 네트워크 생태계에 접목된 자동차라는 개념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테슬라는 이미 주행 중 차량 펌웨어 업그레이드나 주행성능을 위한 패치 등 네트워크에 상시 연결된 자동차 생태계를 유용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개념은 기존의 자동차 회사들도 이어받아서 전자장비를 원격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차량 결함을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도 한다. 차량의 결함이 발견된 경우 이를 리콜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잖아도 정비 요소가 적은 전기자동차인데 번거롭게 신경 쓸 필요 없이 사용자도 모르는 사이에 실시간으로 기능 업데이트나 오류 개선이 이루어지는 식이다. 말 그대로 스마트폰과 비슷한 사용 감각이다.

자동차가 여전히 부담스럽다면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교통수단도 있다. 선진국 대도시의 도심 교통망은 자가용 차량보다 대중교통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중교통은 승용 차량에 비해 수송 인구 대비 도로 점유율이 낮고, 유지비용이 적으며, 에너지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의 ULEZ(Ultra low emission zone) 표지판. 도심 쪽에 주로 설정된 ULEZ의 도로에서는 승용 차량의 이용이 제한된다. ©Shutterstock

마지막 1m까지 간다, 마이크로모빌리티

그러나 대중교통을 확충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대중교통은 고정된 노선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정류장이나 역까지 움직이는 수고를 들여야만 한다. 조금 걷기로 서니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넓은 도시 어딘가에는 이용자가 적어서 대중교통을 배치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외진 곳이나 오르내리기 불편한 고지대도 있기 마련이다. 대중교통망에만 의존한다면 의도치 않게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을 교통시스템에서 배제하게 된다. 결국 대중교통 네트워크에 접근성을 제공할만한, 무언가 새로운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통수단이 바로 마이크로모빌리티다. 마이크로모빌리티란 말 그대로 아주 작은 이동수단이다. 작은 만큼 주로 1인승이며 이동 가능한 거리도 짧지만 좁은 골목길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여차하면 들어올릴 수도 있어 복잡한 도심 환경에 적합하다. 다만 근거리 이동 수단인 만큼 기존 대중교통과의 연계는 필수다.

마이크로모빌리티의 전성기는 2018년이었다. 중국의 오포와 모바이크가 가능성을 타진한 공유 자전거 플랫폼 사업은 미국으로 건너가 라임, 버드와 같은 전동스쿠터 공유 기업을 탄생시켰다. 차량호출서비스의 절대강자인 우버는 전동스쿠터와 같은 마이크로모빌리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하고 라임에 거액을 투자하는 한편, 전기자전거 공유 기업인 점프바이크를 2억 달러에 인수했다. 마이크로모빌리티 시장이 막 형성되던 시기인 당시로서는 제법 과감한 도박이었다.



우버가 인수한 점프바이크. 전기자전거 대여 서비스로 우버와 통합하여 사용할 수 있다. ©Uber

우버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점프바이크 통합 후 우버가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차량 호출과 전기자전거 서비스를 통합했더니 서비스 사용량이 총 15%나 증가했다. 단순히 사용자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우버 이용자들은 맑은 날 낮에는 바이크를, 출퇴근 시간대나 비 오는 날에는 차량을 호출하는 식으로 두 가지 서비스를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했다. 이는 다양한 모빌리티를 하나의 서비스로 통합할수록 사용자가 다양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8년 우버가 분석한 사용 패턴. 점프바이크와 우버를 주로 사용하는 시간대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Uber

마이크로모빌리티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엿본 업계는 곧 이를 확장하여 차량 공유, 차량 호출, 렌터카, 택시, 자전거 대여, 전동스쿠터 대여, 철도, 비행기, 주차, 숙박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이동’과 관련된 서비스라면 무엇이건 통합해서 이용할 수 있는 ‘멀티모달 플랫폼’을 고안했다.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의 탄생이다.



윔의 서비스 화면. ©MaaS Global

핀란드의 마스글로벌이 마이크로모빌리티 열풍에 한 발 앞서 길을 개척했다. 마스글로벌은 모든 교통수단을 하나의 앱으로 통합하여 해결하는 서비스 플랫폼인 ‘윔(Whim)’을 2016년 출시했다. 윔은 ‘운송 분야의 넷플릭스’라는 모토 하에 다양한 교통수단을 구독 형식으로 이용하는 플랫폼이다. 윔은 출발지와 목적지만 설정하면 트램과 버스는 물론, 택시, 렌터카, 마이크로모빌리티 등 모든 교통서비스를 조합하여 최적의 경로를 제안한다. 무엇보다 월 정액제로 여러 교통서비스를 무제한 이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e카고의 일반적인 형태. 다양한 모습으로 개조된 전기바이크로 중간 규모의 화물을 근거리 배송한다. 한국으로 치면 짐칸이 딸린 퀵서비스 오토바이 형태다. ©Schaeffler

마이크로모빌리티가 개인사용자만을 상대하지는 않는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자전거를 이용한 소규모 배송 서비스도 확산되고 있다. 바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풍경인 퀵서비스 오토바이의 전기판인 ‘e카고’다. e카고는 근거리에서 중간 크기의 화물을 운송하는 데 최적화된 마이크로모빌리티다. 커다란 짐칸이 달린 전기자전거 형태로, 전기차 대비 중량은 1/31, 에너지 소비량은 16/1에 불과해 친환경 배송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유럽에서는 e카고가 빠르게 확산되어 2018년부터 매년 40%를 넘는 성장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날아서도 간다, UAM

도심 모빌리티의 해법은 땅에만 있지 않다. 하늘 역시 새로운 모빌리티의 배경이다. 도시화가 충분히 진행된 대도시의 중심가는 늘 포화상태다. 아무리 대중교통 중심으로 설계하고 마이크로모빌리티를 동원한다고 한들, 붐비는 도로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늘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다. UAM은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며 4~5명 정도를 태우고 자율비행하는 소형 비행체다. 네옴시티에서 제시한 비행 택시도 바로 UAM이다.

UAM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드론의 확장판으로, 고정익 없이 로터만으로 움직이는 비행체다. 독일의 볼로시티와 중국의 216F가 대표적인 모델로, 다소 느리지만 이착륙에 필요한 공간이 작고 정지 비행도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오스프리’처럼 날개를 기울일 수 있는 프로펠러기인 ‘틸트로터’ 방식이다. 미국의 S4나 영국의 VA-X4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드론 형식에 비해 방향전환에 제약이 있지만 훨씬 빠르고 항속거리가 길다.



독일에서 개발된 볼로시티. 전형적인 드론 형태다. ©Volocopter


미국의 S4. 틸트로터 방식으로 회전익기와 고정익기의 장점을 조합했다. ©Joby Aviation

스타트업 항공사들이 주로 활약하던 UAM 업계는 최근 큰 변화를 겪고 있다. UAM의 개념이 단거리 개인용 모빌리티로 분명하게 정의되면서 완성차 업계가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도심형 모빌리티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UAM은 한번에 먼 곳까지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실어나르기보다 소수 인원이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 특화됐다. 개념상 승용차에 가까운 셈이다. 그래서 미국의 제너럴모터스, 독일의 다임러와 포르쉐, 일본 도요타를 비롯한 완성차 기업들이 UAM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가 2020년 CES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의 일환으로 UAM의 콘셉트를 선보인 이래,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CES에서 공개한 UAM의 콘셉트 모델, S-A1 ©현대자동차

 

아직은 미숙한 시장, 소비자의 경험과 타협점을 찾아야

모빌리티의 미래는 분명 가까운 미래로 다가왔다. 미래형 도심 모빌리티 중 UAM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 상용화된 서비스다. 그러나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의 모빌리티인 만큼, 아직은 실험 단계라고 봐야 한다. 해결할 문제가 많기도 하고, 당장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자리잡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점점 공고해지는 전기차 시장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점점 전기차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커넥티드 전기차 특유의 확장성, 제조사의 서버와 연결하여 기능을 제한하거나 업그레이드하는 구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벤츠와 BMW가 소비자와 언론 모두에게서 빈축을 산 이유도 전기자동차 특유의 커넥티드 서비스였다. 벤츠가 후륜 조향과 가속 성능 향상 옵션을, BMW는 통풍 시트와 카플레이를 구독형 옵션으로 제공했다. 차를 사고도 1년에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특정 기능을 풀어준 것이다. 이러한 사업모델은 차에 대한 소비자의 경험과 크게 상충되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자동차 전체를 소유한다는 뜻이었다. 자동차는 차를 구매한 고객의 온전한 재산이자, 구매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제한적인 접근이 가능했다. 그러나 늘 온라인 네트워크에 연결된 상태인 커넥티드카가 일반화 되자, 기업의 통제권이 강해지는 한편으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고객도 늘어난다. 자신이 구입한 제품의 일부 기능이 처음에는 잠겨 있다가 구독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고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마이크로모빌리티에서는 산업 자체가 문제다. 한때 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마이크로모빌리티 업체들은 하나 둘 시장에서 밀려나는 분위기다. 외출이 제한된 코로나19의 분위기 탓도 있었다지만, 화려하게 데뷔했던 윔은 최근 경영 부진을 겪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라임과 버드도 마찬가지다. 2022년 9월 버드의 신임 CEO로 부임한 셰인 토르키아나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직원의 23%를 해고하며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였지만 버드의 경영은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뭘까? 이는 윔과 버드의 성공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인 기업은 확실한 수익이 확보된 후 신규 사업에 진출하기 마련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인 이상, 지속적인 수익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윔과 버드 모두 ‘블리츠스케일링’ 전략을 구사했다. 새로운 형태의 사업이라 불확실성이 큰 만큼, 조기에 충분한 투자를 확보해서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 시장을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블리츠스케일링은 기술 스타트업의 확실한 성공 전략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수익구조를 만들 여유가 없다는 약점이 있다. 스케일업하는 기간은 낮은 수익성을 규모의 성장으로 보완하며 투자자를 안심시키는 단계라 일종의 ‘유예기간’에 가까운데, 이 시간 동안 확실한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하면 성장이 둔화되는 시점에서 경영난을 겪기 마련이다.

여러 난항이 있지만 게임 시장이 이미 DLC에 익숙해졌듯, 새로운 모빌리티에도 시장과 소비자는 적응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데이터가 축적되고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진정한 의미에서 개인화된 모빌리티 서비스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목적지만 정해주면 알아서 최적의 자율주행 교통수단을 연계해주는 세상이라면 정말 신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