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4


 


시니어 산업의 태동기

2025년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가 넘어가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7%인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기까지 한국은 불과 25년이 걸렸다. 프랑스 173년, 미국 88년, 독일은 77년이 걸렸으며 심지어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고 익히 알고 있는 일본조차 35년이 걸렸으니 유례없는 속도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잘 늙어갈 수 있는 웰에이징(Wellaging)에 대한 고민이 깊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에 시니어 산업은 큰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이미 특정 분야는 꽤나 몸집을 키운 스타트업들과 레거시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앱(App)’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고령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IT 비즈니스는 고사하고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 복지의 개념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서비스’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었다. 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배경에는 크게 3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노인장기요양보험 활성화와 부모 돌봄 책임 주체의 사회적 인식 전환. 둘째, 고소득 고학력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액티브시니어’들의 웰에이징에 대한 욕구 증가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변화. 셋째,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의 조성을 꼽을 수 있다.

노인 돌봄 서비스의 성장세

현재 시니어 산업 내 서비스는 대상에 따라 ‘부모 돌봄 서비스’와 ‘액티브시니어 스스로를 위한 서비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결국 50대와 60대에 해당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러한 서비스들의 구매 주체인 것인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현 주류 세대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55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1·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구수는 무려 1,700만 명이며 이들은 과거 고령자와 달리 고학력자와 고소득자의 비중이 높다. 70대 이상의 현 후기 고령자들의 경우 70%가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기초연금 수급자로 노인의 4고(빈곤, 질병, 외로움, 무료함) 중 ‘빈곤’이 절대적인 이슈였다면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시니어는 명백히 다른 코호트(Cohort)적 특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 세대는 부모 부양에 대한 인식부터 과거와는 다르다. 2022년 발표된 제17차 한국복지 패널 조사에 따르면 ‘부모 부양의 책임은 자식에게 있다’라는 의견에 응답자의 3.12%만이 ‘매우 동의한다’, 18.27%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는 2007년 매우 동의 12.7%, 동의 39.9%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즉, 과거에는 부모를 직접 부양하지 않는 것이 불효였다면, 현 사회는 주변인들과 부모를 어디에 어떻게 모실지 교류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발맞춰 2007년 등장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현재 65세 이상 인구 중 10%가 등급을 받아 관련 수혜를 받고 있을 만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스타트업들은 기존 영세하게 운영되고 있었던 노인장기요양보험 시장에서의 기회를 포착했다. 이제는 거리에서 돌봄 관련 기관과 시설을 쉽게 볼 수 있다. 2022년 전국의 유치원 수는 8,500여 개인 반면, 방문요양 제공 기관의 경우 1만 6천여 곳, 주야간보호 센터는 4,800여 곳에 달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활성화 정책 기조에 따라 재가복지설이 개인사업자 형태로 우후죽순 생겨난 탓이다. 그러나 10조에 달하는 시장규모에 비해 산업을 리딩하는 브랜드가 부재하자, 몇몇 스타트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자본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다.

현재 100억~300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산업 내 주요 스타트업이 뛰어든 ‘돌봄 시장’은 크게 ‘공급자 중심 서비스’와 ‘소비자 중심 서비스’로 구분된다. 대표적으로 ‘시설의 운영 효율성 제고를 위한 행정 업무 자동화 솔루션’, ‘요양보호사 구인구직 플랫폼’, ‘방문요양 및 주야간보호센터 프랜차이즈 가맹 서비스’가 전자에 해당하며, ‘요양보호사 및 간병인 매칭 서비스’, ‘시설 정보 및 복지 용구 정보 제공 플랫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밖에 병원 및 외출 동행 서비스 등이 소비자들의 돌봄 부담 완화를 위해 생겨났다.

산업이 성장하며 겪는 성장통

산업이 고도화 되며 과도기적 단계에서 발생하는 양면성은 뚜렷하다. 소비자들의 심리적 돌봄 부담이 점차 줄고 있다. 경쟁을 바탕으로 더욱 좋은 시설을 갖춘 곳들이 많아지고 있고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 역시 넓어지고 있으며, 이들 시설에 대한 정보 역시 투명해지고 있다.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발품을 팔아 좋은 요양보호사와 데이케어센터를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반면, 그간 영세하게 운영되었던 시설은 자본을 앞세운 대형 기업들과의 경쟁이 부담스럽다. 여전히 돌봄 시장이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더라도, 화려한 시설의 규모와 인상되는 요양보호사들의 시급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시장에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그간 노인장기요양보험 시장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영세시설들과 과거 정부 정책 기조를 감안하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역시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정부와 지자체가 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민간 기업을 보호할 필요성도 있다. 현재 시니어 산업은 사회서비스의 개념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산업 특성상 관의 복지 정책과 민간서비스의 성격이 겹치는 경우가 생기는데, 대표적으로 병원 동행 서비스가 그렇다. 한 기업은 수년간 ‘병원동행’ 서비스를 시간당 15,000원에 제공하며 시장을 개척해 왔으나 최근 서울시에서 시간당 5,000원이라는 가격으로 서비스를 내놓으며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양질의 서비스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사회서비스와 민간서비스가 명확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 관의 경우 사회 소외계층을 위주로 공공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민간 기업은 다양한 계층의 니즈를 맞출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 판단된다.

이제는 나를 위한 소비의 시대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서비스 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웰에이징을 위한 ‘나를 위한 소비’에 있어 현 액티브시니어들이 시대의 변화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펜데믹 기간 동안 50대 60대를 중심으로 디지털기기활용 역량이 급성장하였다. 유튜브 사용 시간 분포의 경우 50대(25.4%)가 이미 20대(23.3%)를 뛰어넘었으며 온라인 카드 결제액 증가율과 OTT 결제금액 증가율에 있어서도 50대와 60대가 전 연령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시니어들이 겪고 있는 무료함과 불안감을 디지털 콘텐츠로서 풀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설문에서는 5060 신중년이 가장 쓰고 싶은 앱으로 ‘책과 잡지 등 콘텐츠 구독 앱’ 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러한 디지털 시프트(Digital Shift)의 노력이 웰에이징을 위해 기업들이 IT 기술로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처럼 패션, 푸드, 여가 등 라이프스타일에 있어 액티브시니어가 갖고 있는 코호트적 특성과 취향을 잘 반영한 서비스에 기회가 있다. 최근에는 시니어 여성을 위한 패션 플랫폼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사례가 있다.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은 2030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나 이미 온라인 커머스 서비스에 익숙해진 시니어들에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앱 상에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시니어 산업에서 ‘에이징 테크’는 거창한 혁신의 관점에서 ‘발명’이라기보다는 사업의 본질이 그러하듯, ‘발견’에서 비롯된다.

노후가 기대되는 사회

우리보다 앞서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은 베이비부머 세대에 해당하는 ‘단카이 세대’를 타깃한 서비스가 크게 성공한 바 있다. 시니어 여행사인 ‘클럽 투어리즘’의 경우 연 매출 1조 6,000억 규모이며 4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에는 오프라인 간행물을 우편으로 배포하였으나,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한 상품 판매와 홍보가 활발하다. 한편 미국에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PAPA’가 있다. 창업주의 할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을 SNS상에 올렸다가 지역 사회의 대학생들의 문의가 많아지자 돌봄 매칭 플랫폼을 출시해 지금은 헬스케어 분야까지 진출했다. 이처럼 시니어가 직면한 문제는 유니버셜한 문제이다. 다만, 사회상과 정서가 상이하기 때문에 기업은 이런 정서를 반영하여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에 진입하며 과거 ‘노인’이라 불리던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과 다르다. 현 액티브시니어에게 노인이라는 표현이 어색한 이유다. 제도적으로는 국민연금을 수령하고 의식적으로는 여전히 도전적이고 젊게 살고 싶다. 돌봄관련 서비스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부양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있고 액티브시니어들은 즉 젊게 살기 위한 서비스들을 찾고 있다.




달라진 우리 사회의 주류세대들에 맞춰 산업도 태동기를 맞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산업이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민간과 관이 서로 시너지를 내며 다양한 계층의 니즈에 맞는 서비스가 개발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 ‘복지’와 ‘비즈니스’는 서비스 제공 주체가 다를 뿐, 본질은 같다. 공급자의 이해관계 중심이 아닌, 수혜자 혹은 고객 입장의 관점이 우선된다면 노년이 즐거운 사회로 성큼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