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사회의 가장 큰 이슈라면 튀르키예 강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뉴스에 따르면 튀르키예 서부 산맥 지대를 따라 470km에 이르는 단층이 파열되면서 규모 7.8의 강진과 수많은 여진이 발생했다. 튀르키예 정부 당국은 1999년 이후 24년간 6조 원에 달하는 지진세를 징수했으면서도 최악의 지진 피해를 막지 못해 국가를 대혼란에 빠트렸고, 더욱이 지진에 미흡하게 대응하면서 사망자가 4만 명을 넘어서 국민들의 불만과 비판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튀르키예 강진 피해 상황을 접한 많은 국민들이 긴급 구호 물자 기부 캠페인에 참여해 이재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대형 재난 재해가 튀르키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이전보다 재난과 재해 발생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이고, 우리나라 역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고온, 한파, 지진, 폭우, 폭설, 태풍 등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재해가 일상이 되어 가면서, 평소 대비하지 않으면 자신도 얼마든지 이재민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사람들의 의식에 점차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재난과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국민 안전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재난/재해 대비 안전확보 문제는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 피해예방뿐 아니라, 시공 중 작업자 안전사고 방지, 대중 교통수단 사고방지, 산사태 예방,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인파사고 방지 등 그 범위가 매우 넓다. 또 각 재난 유형은 그 발생 원인과 피해 양태가 상이해 재난 대비 전략 역시 크게 달라진다. 이에 본 기획호에서는 논의의 범위를 사회 기반시설물 안전확보 문제로 국한하고자 한다.
사회기반시설물이란 도로, 철도, 항만, 댐, 터널,교량 등 불특정 다수가 경제, 사회, 여가활동을 영위하는데 기반이 되는 시설물을 뜻한다. 경제적 시각에서 보면 인간이 제작해 판매하는 상품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으나, 몇몇 측면에서 자동차, 스마트폰, 식료품 등 다른 상품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다. 첫째, 하나의 제품을 불특정 다수가 함께 사용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제품 제작비와 유지비를 직접 지급하는 주체가 제품의 사용자가 아니다. 보통 사회기반시설물은 사회 구성원이 사용하지만 건설과 유지에 필요한 비용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에서 지급한다.
셋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사회기반시설물은 모두 고유한 상품이고 동일한 가격과 성능의 제품은 없다. 사회기반시설물은 일반상품처럼 동일한 제품의 대량생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넷째, 공급자는 제품 생산 전 설계 단계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대금 일부를 지급받고 제작을 시작한다. 때문에 건설환경, 날씨, 지반 조건, 작업자와 물품 공급 등에 차질이 발생하면 설계 변경이 종종 발생하고, 따라서 건설비와 완공 일자가 변경된다. 또 사회기반시설물은 최소 20~30년 이상 사용해야 하므로 시설물의 안전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별도로 존재한다. 이처럼 사회기반시설물이라는 상품은 (1) 수요자와 비용지급 주체 상이성, (2) 상품가격 및 공급 일자의 불확실성, (3) 별도 관리주체의 존재 필요성이라는 점에서 일반적 상품과는 다른 점이 많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민들의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회기반시설물의 안전을 확보해달라는 요구는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안전 불감증’이란 말이 이제는 사라져가는 분위기다. 안전의식이 성숙되고 그 수준이 향상되고 있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나, 이제는 우리나라에 지어진 사회기반시설물들이 점차 노후화 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때다. 준공 후 30년이 초과된 사회기반설물이 전체의 30%를 넘어서고 있고, 점차 그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고, 이에 따라 사회기반시설물의 안전진단과 유지관리에 드는 비용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안전한 사회기반시설물을 요구하나, 시설물 유지관리 비용을 지급하는 데는 다소 소극적이다. 사람들은 당장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면 선뜻 지갑을 열면서도, 자기 집 콘크리트 벽에 생긴 균열은 비용이 아까워 수리를 주저하지 않는가. 실제로 국가 예산 중 사회기반시설물 유지보수 관련 비용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으나, 이렇게 시장경제 원리에만 의존해 사회기반시설물을 진단, 관리하게 되면 최근 발생한 서울 상도유치원 붕괴와 같은 사고 발생 확률은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기반시설물의 안전진단 및 유지관리에는 정부 주도의 계획과 실행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 입장에서는 사회기반시설 물을 통한 관련 세수 감소와 유지관리 비용 증가의 격차는 반드시 해소해야 할 문제이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기반시설물 유지관리의 효율성을 혁신할 기업주도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사회기반시설물 유지관리 사업은 주로 가격 기반 입찰방식으로 수행되고 있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수행되는 유지관리 과업의 수행 업체 선정 시 일반적으로 낮은 금액을 제시하는 기업이 수주를 하는 방식이다. 물론 최근에는 가격 외에도 기업 경영실적이나 회계 건전성 등을 선정 평가에 반영하나 여전히 새로운 기술을 안전진단, 유지관리분야에 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일례로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드론이나 로봇을 이용한 안전진단은 아직 관련 법체계화가 미흡할 뿐 아니라, 실제 유지관리에 사용하려 해도 비용처리가 절차상 어렵다. 건설 분야에서 특정 업무를 수행하고 비용을 지급받으려면 해당 업무가 국가계약법시행령에 따라 ‘품셈’ 이라는 항목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야 절차상 비용처리가 가능한 이유다. 또 대부분의 안전점검은 인력에 의한 육안 검사나 특수장비를 이용한 검사방식으로 수행되고 있어 매우 노동집약적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젊고 우수한 인력이 이 분야에 뛰어들어 혁신을 일으키고 사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필자는 국내에서 사회기반시설물 유지관리 분야 창업을 통해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러한 엄혹한 현실은 젊은 세대 역시 인지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전국적으로 건설 분야 학과 지망생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이고, 입학 후 타 학과로 전과하거나 반수를 선택해 타 학교로 재입학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다. 필자는 대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사회기반시 설물 유지관리 분야의 우수인력 양성과 배출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사회기반시설물을 보다 안전하게 관리하고 이를 위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려면 이들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믿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1) 유지관리 분야 사업화 모델 강구: 사회기반시설물 분야에서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은 앞서 언급한 사회기반시설물의 특이성에도 많은 부분 기인한다. 그럼에도 사회기반시설물 유지관리 분야는 건설 분야에 비해 좀 더 실제 수요자에게 유익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분야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량에 내장된 센서를 통해 노면의 싱크홀, 포트홀, 노면 결빙 등 결함을 실시간으로 검출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사전 경보나 사고 회피기능을 구현한다면, 이 기술은 동일한 상품에 대량 적용해 다수의 최종수요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 이렇게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화 모델 모색이 매우중요하다.
(2) 사회기반시설물 안전관리 분야 R&D 사업 지속 확대: 2023년 국토교통부 R&D 예산안은 전체 예산 대비 1% 내로, 정부 총예산 대비 R&D 투자 비중인 4.8 %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나마 유지관리분야 예산은 상대적으로 다소 증가하는 추세이나 주로 대형 기획 과제 위주로 추진되고 있어 젊은 사업가,연구자가 과제에 참여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대형과제 기획을 통해 추진되는 사업의 경우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국토안전관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공공기관 위주로 진행되어 일반 기업,특히 스타트업 회사에서 참여는 가능하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소유한 젊은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3) 내수 시장만이 아닌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국제화: 건설 분야 특성상 대부분 사업은 정부 규정에 준하여 수행한다. 앞서 언급한 안전 진단의 경우, 정부 규정에서 지정한 방식에 따라 안전 진단을 수행해야만 작업 완료가 승인된다. 이 때문에 사업화 모델을 구상하더라도 국가별, 지역별로 규정에 맞춰 부분 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사업화 모델로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 아이폰처럼 하나의 제품을 개발해 전 세계에서 일괄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의 규정에 맞춘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 고충이 발생한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예처럼 자율주행차에 장착해 노면 안전성을 진단할 수 있는 센서 모듈을 개발한다면 아이폰처럼 소프트웨어나 인터페이스의 일부 현지화만 거치면 단일 제품을 전 세계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판매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장려하고,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체계의 구축이 절실하다.
(4) 민간 주도의 사업화 장려: 사회기반시설물 건설 분야는 지금까지 정부주도로 진행됐고, 그 정당성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럼에도 유지관리 분야에 적용할 기술 개발 관련 정책 및 사업화모델 창출에 있어서는 기업이 주도적으로 사업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유지관리 분야 규정을 보완, 사회기반시설물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이 실행되어 실제 사업화에 성공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생겨야 우수한 인재들이 이 분야에 진출할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우수 인력이 왜 의과대를 지원하고 있는지, 그 현실적인 원인을 우리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사회기반시설물 유지관리 분야는 유망하다. 사회기반시설물의 노후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노후 시설물 수 또한 급속히 증가하고 있어 관련 분야 시장 규모는 확대될 것이다. 더욱이 인공지능, 로봇기술 개발 등으로 인해 정부 차원에서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사회 전반에 대한 정부 기여도가 확대될 것이고 사회기반시설물의 안전점검과 관리를 위한 세수 확보도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장차 우주개발 사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면 달이나 화성에도 사회기반시설물을 건설할 시대가 오면 건설 분야 호황이 올 수 있다. 앞으로 이런 것들이 실제로 이뤄지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사회기반 시설물을 유지관리하듯 건강도 잘 관리해서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