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최고의 성과를 SK하이닉스의 기술적, 사업적 접근방법과 관련 부문간 협업의 중심이 되는 로드맵 수립과 운영 사례를 소개한다. 단지 혁신기업들이 활용해온 기술경영(MOT, Management of Technology) 프로세스나 방법론의 하나가 아니라, 혁신기업을 위한 실질적인 실행 도구로서 로드맵을 수립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한국 대표반도체 리더의 ‘업계 최초, 세계 최고’ 성과
지난해 SK하이닉스는 현존 최고 속도의 PC/Client용 DDR5 제품을 개발했다. 업계 최초로 DDR5 6.4Mbps 속도의 32GB UDIMM 개발을 통해 High Speed, Low Power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2018년에는 이전 세대인 DDR4보다 최대 1.8배 빠른 4,800Mbps~5,600Mbps 속도의 16Gb DDR5를 선보였는데, 5,600Mbps는 FHD(Full-HD)급 영화(5GB) 약 9편을 1초에 전달할 수 있는 속도이다. 또한, 동작 전압을 1.2V에서1.1V로 낮춰 전력 소비를 20% 감축하고, 칩 내부에 오류정정회로(ECC, ErrorCorrecting Code)를 내장해 DDR5 채용 시스템의 신뢰성을 20배 이상 높였다.
2021년에는 이전 16Gb 제품 대비 용량을 더욱 확대한 24Gb DDR5 제품을 선보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48GB, 96GB 모듈을 만들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응하기도 했고, 향후 AI, 머신러닝과 같은 빅데이터 처리와 메타버스 구현 등의 고성능 서버에도 활용될 수도 있다. 2022년에는 고용량·고대역폭을 요구하는 서버 플랫폼 안에서 메모리의 용량과 대역폭을 더욱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는 DDR5 기반의 CXL(ComputeExpress Link) 메모리를 개발해 차세대 메모리 솔루션 시장 선점을 가속화하고있다(그림 1).
또한 SK하이닉스는 업계 최고층 238단 4D NAND를 개발하였는데, 4D NAND의 개척자로서 업계 최고의 생산성과 기술력으로 집적도 향상과 생산성극대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NAND 플래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4D NAND는 전하를 도체에 저장하는 기존방식인 Floating Gate를, 전하를 부도체에 저장하는 CTF(Charged Trap Flash)로 바꾸고, 셀 옆에 붙어 있는 주변회로(Peri)을 셀 아래로배치해 공간 효율성을 확보한 PUC(Peri Under Cell)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그림 2).
SK하이닉스는 96단 NAND 플래시부터 CTF(Charge Trap Flash)와 고집적 PUC(Peri Under Cell)기술을 결합한 4D제품을 시장에 선보였는데, 이번의 업계 최고층 238단 NAND는 4세대 4D제품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웨이퍼 당 생산 칩 수를 확보했다. 이로부터 비트 생산성은 이전 세대(176단) 보다 34% 이상 향상돼 차별화된 원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고, 이와 함께 238단의 데이터 전송 속도는 초당 2.4Gb로 이전 세대 대비 50% 빨라졌다. 또, 칩이 데이터를 읽을 때 쓰는 에너지 사용량이 21% 줄어, 전력소모 절감을 통해 ESG측면에서 성과를 냈다고 회사는 보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세계 최초, 최고 속도’ 등의 엄청난 수식어와 DDR 및 NAND 플래시에 대한 소개 안에는 전사적으로 전략을 공유하고, 같이 가는 방향을 수시 점검해온 수고와 협력의 결과이고, 그런 핵심요소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철저한 점검이 있었다. 1등 리더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독선과 편협함 보다는, 전사가 동일하고 중요한 목표를 위해 집중하고, 소재와 장비를 제공하면서 참여하는 협력사들과의 협업도 중요하게 다루어 온 SK하이닉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새해가 되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너무나 중요한 사항이라 주요 보안사항으로 간주하여 공유가 안되는 연례행사로서의 로드맵이 아니라, 전사적 전략을 통합하고 가치를 창출할수 있는 전략운영 주체로서 SK하이닉스의 성공사례를 둘러 보았다(그림 3).
① 혁신기술을 주도하기 위한 ‘내부 시스템’ 운영
보안을 중시하는 반도체 업계의 특성상 많은 부분이 외부에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SK하이닉스에는 상품기획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과정에 SK하이닉스 고유의 ‘내부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기술개발은 연구원이나 연구소 기획이 하고, 제품개발이나 사업화는 그에 해당하는 부서들이 자신들의 형식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 왔지만, ‘기획’이 효과적인 실행으로 이어지려면, 왜 그 제품이나 기술 spec을 목표로 잡았는지, 그 결과를 어떤 고객에게 제공할 것인지, 어느 부서가 제대로 실현해 낼 것인지 정하고 실행해야 하므로, 실제 관여할 인력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반영하고 관련 부문간의 조정도 필요하다.
한동안 로드맵은 미래 제품이나 기술을 예측하는 전문가들만의 도구로 여겨져 왔지만, 이제는 기획부서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사 전략으로서 관련 부문이 작성과 운영에 같이 관여하는 3세대 R&D의 대표적인 방법론이다. 특별한 조건이나 방법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경쟁사, 협력들이 목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Know-why), 그런 정보에 근거한다면 어느 수준으로 목표성능을 설정할 것인지(Know-what),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어떻게 확보하고 어떤 활동들을 수행해야 하는지(Know-how) 등을 같이 고민하고 종합적인 내용을계획해야 발이 땅에 닿는 기획도 가능하고 결과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SK하이닉스에는 상품기획이나 마케팅이 적절한 정보를 주어야만 혁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목표를 세울 수 있고 성과도 낼 수 있다며 가만히 있는 연구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업개발에서도, 연구소가 혁신기술을 먼저 내어 놓아야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뒷짐 지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사 전략을 포괄하는 Roadmap 운영체계에 해당하는 SK하이닉 스 고유의 ‘내부 시스템’에 전사의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서 실질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그림 4).
② 제품~기술전략 공유, 고객과 시장에 필요한 제품 적기 공급
반도체 공정 난이도 증가에 따른 CapEX도 증가하고, 그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적기에 신기술/신재료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고객과 시장에 필요한 제품을 적기에 제공하며, 수익성과 양산성을 겸비한 Robust 한 제품 개발이 SK하이닉스의 신제품과 신기술기획의 중요사안으로다뤄지고 있다. 특히 수요자의 Spec 만족을 위한 까다로운 요구와 Time To Market 달성이 기술의 사업화에 가장 어려운 점이므로 기술 난이도 극복 방법과 어려움이 있고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예측력도 수반되어야 한다.
SK하이닉스 고유의 ‘내부 시스템’은 이러한 시장환경은 물론 기술, 경쟁, 정책 등 다각적인 환경인자들을 분석하여 반영하고 있고, 상품기획, 연구소,사업개발 등 해당 부문을 담당하는 참여자에 의해 제공되고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객과 시장에 필요한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혁신적이고 첨단의 영역을 다루는 반도체 기술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수년 전 디스플레이 개발과 사업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 있어서, 최고의 화질, 색재현성, 콘트라스트 등의 극단의 기술적 성능을 추구하는데서 벗어나서, 옷으로 입거나 곡면의매체에 씌울 수 있도록 접히거나 구부러지는데 필요한 성능이나 극한 온도변화나 밝고 어두운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성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고, 기술과 제품개발 방향도 화질만 좋게 하려는 기존의 개발 방향에서 벗어나 새롭게 요구되는 다양한 성능도 감안한 개발전략 수립 사례가 있었다. 반도체 영역에서도 다각적인 방향으로 전략목표를 고민하고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현재 기술전문가들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이 필요하고, 그 방법의 하나가 SK하이닉스에서처럼 전사의 관련 부문의 참여가 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그림 5).
③ 협력중인 소재와 부품사까지를 아우르는 전략
여러 개의 계열사로 이루어진 대기업들을 보면, 그룹 내 소재나 부품회사를 시스터 컴퍼니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각사의 이해관계를 따져야 할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같은 울타리에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TV, 자동차 등에 소요되는 소재나 부품을 해당 그룹 내에서 완제품 회사에 납품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갑의 위치인 완제품 회사는 자사의 사업방향이나 정보를 시스터 컴퍼니들과 공유하는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어떤 커넥션을 바라는 것은 아니더라도, 효과적인 협업을 이루기 위해 적정 수준에서 사업전략이나 기술개발 방향 정도는 서로 알고 지내도 실행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데, 수요자 및 협력사(장비)와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기대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SK하이닉스의 ‘내부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는 로드맵을 운영하는데는 우선 사내에서 부문간 벽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연구부문은 사업과 시장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 하고, 마케팅 부문은 기술을 모른다고 한다. 급박한 시장상황에 대응하고 있으니 장기적인 정보는 요구하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사업 부문은 고객이나 고객사의 요구를 맞추는데 기술적인 해법은 검토하기 버겁다는 등 모두가진 정보가 부족하니 타부서에 요청하면서도, 긴급한 현업에 치이다 보니 타부문의 주요 정보를 모으고 계획으로 실행하는데 부족함이 많다. 회사의 벽을 넘어 시스터 컴퍼니들에 관심을 갖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SK하이닉스는 각 부문의 조각 정보들을 한 곳에 모으고, 공유하고, 그에 근거하여 일하며(Buildtogether), 혹시 모아서 정리한 것이 틀리면 같이 조정해서(Correct together)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SK하이닉스의 ‘내부 시스템’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전사가 참여하여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그림 6).
확고부동한 반도체 혁신의 리더로서 자리매김
한국기업들의 반도체 기술은 독보적이기도 하고 다소 독선적이란 이미지를 보여주어 왔고, 같은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저들은 조금 거만한 건 아닐까 하기도 한다. 후발기업들의 엄청난 추격을 떨쳐내기 위해 치열하게 집중하는 과정이므로, ‘우리가 제시하면 그것이 기준이 되니, 완성품 제작에 잘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라’는 자긍심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부서간 서로 협력하고 전략을 공유하는데 인색한 것들도 이해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내부 시스템’ 운영은 회사 내한방향화는 물론 자사의 제품을 가져가는 고객사나 협업중인 소재, 부품, 장비 회사들까지 아우르는 협업 현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건 그냥 잘 나가는 기업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닐까 한다. 모쪼록 전사적 전략을 통합하고, 시장통합을 통한 가치 창출형 기술개발은 물론, 혁신의 리더로서 함께하는 멋진 SK하이닉스의 성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