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R&D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은 오랫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의미 있는 패턴을 발견했다. 이들은 평균 400여 개 스타트업을 냉철하게 심사한 후 1개 회사에 투자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신중함이 무색하게도 투자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 대략 10개의 회사에 투자하면 그중 5개는 파산하고, 4개는 좀비 기업이 된다. 그리고 단 하나의 회사가 매우 성공적으로 엑시트한다. 이런 반복적 패턴을 ‘5:4:1의 법칙’이라고 한다. 한 개의 투자가 나머지 투자의 실패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수익을 내는, 이른바 ‘대박’ 게임을 하는 것이다. 결국 400개 스타트업 중에서 1개의 회사만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렇다면 비즈니스모델이나 아이디어만 갖고 무일푼으로 차고에서 만들어진 스타트업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빅테크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리드 호프먼 등이 ‘디지털 지능’ 개발을 목표로 2015년 설립한 비영리 회사인 Open AI가 내놓은 ChatGPT가 두 달 만에 1억 명 이상의 월 활성사용자(MAU)를 끌어 모으며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MAU 1억명 돌파까지 틱톡은 9개월, 인스타그램은 2년 반 걸린 데 비해 엄청난 속도다. 이에 검색엔진의 최강자인 구글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가운데, 오픈AI와 협업을 발표한 버즈피드의 주가는 하루에 무려 120%나 치솟았고, 엔비디아는 챗GPT 열풍의 최고 수혜주로 떠오르고, 마이크로 소프트는 오픈AI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대규모 자금을 확보한 오픈AI는 짧은 기간에 16개 기업에 투자했으며, 계속해서 대부분의 자금을 유망 스타트업들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데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역시 성공한 모든 플랫폼 기업들이 그랬듯이 내부의 혁신, 개발 역량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외부 유망 기업을 매우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오픈AI는 지난해 벤처캐피털(VC) ‘오픈AI 스타트업 펀드’를 설립하여 주로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반도체, 로봇,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불리는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AI데이터를 활용해 제조 공정을 자동화하는 ‘킨드레드 AI(Kindred AI)’, 자연어 처리 스타트업 ‘프라이머(Primer)’, 로봇 조작용 ‘유니버설(만능) AI’ 개발사 ‘코베리언트(Covariant)’, 혈액 생체검사기를 통해 전염병을 진단하는 ‘카리우스(Karius)’, AI 운전보조솔루션 개발업체 ‘나우토'(Nauto)’, 채점 시간을 단축하고 교수 학습 과정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SW) ‘그레이드스코프(Gradescope)’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신경과학 테크기업 ‘뉴럴링크(Neuralink)’, 초거대 AI연구를 오픈 소스화하고 윤리적인 연구에 주력하는 비영리단체 ‘일루서AI(EleutherAI)’에도 투자했다.
오늘 날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아마존, 애플, 메타와 구글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일단 독자적인 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고, 수십 년 동안 수백 개의 스타트업, 서브 플랫폼 기업을 인수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전략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빅테크는 먼저 기본적인 비즈니스모델 을 완성하고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면서 자체적인 기술개발보다는 좋은 스타트업들을 발굴하여 지속적으로 인수하여 붙이는 add-on전략을 활용하는데 기존 비즈니스와 관련 있는 기업은 물론이고 새로운 분야도 적극적으로 M&A한다. 빅테크 기업을 분석해보면 현재 사업보다 미래 유망 분야에 훨씬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인재나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빠르게 인수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성장전략인 것이다. 공간이나 물리적 제약 없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무한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디지털 플랫폼 산업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는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등 핵심기술 선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하다. 유망기술이나 우수인력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먼저 확보하려면 회사내부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외부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끊임없이 수많은 회사를 인수하는 add-on전략은 모기업에 완전히 흡수시키는 tuck-in 인수와 독자적으로도 사업 전개가 가능하여 인수는 하지만 모기업과는 별도로 운영하는 bolt-on방식이 있다. tuck-in은 일반적으로 인프라가 거의 없으며 향후 성장가능성이 적고 독자적으로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소규모 스타트업이 대상이 되고 bolt-on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수백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의 스타트업이 대상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니콘기업도 인수하기도 하는데 빅테크가 지금까지 사들인 유니콘이 40개 정도나 된다.
글로벌 빅테크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종 빅테크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M&A를 통해 성장해 왔다. 네이버는 지속적으로 유망 기업을 투자하고 인수하여 덩치를 키우고 성장을 한 뒤에 물적분할을 하고, 다시 네이버와 NHN을 인적분할하여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C2C 플랫폼 포시마크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카카오도 다음과 합병하여 규모를 키우고 수많은 스타트업을 인수하여 기업가치를 높이고 여러 회사로 나눠 주식시장을 통해 전체 기업가치를 높여왔다. 이를 바탕으로 콘텐츠, 게임, 모빌리티 서비스 해외 매출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비욘드 코리아’ 전략을 펴고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빅테크도 에드온 전략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상대적으로 기업가치가 낮은 스타트업을 연속적으로 인수하여 규모의 경제와 시너지를 창출하여, 짧은 시간에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속도와 효율성에 강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니콘기업을 포함해 수 십, 수 백 개의 유망 스타트업을 인수할 수 있는 자금과 역량이 있어야 비로소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되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빅테크는 스타트업에게는 가장 중요한 엑시트 시장이 되는 것이다. 빅테크는 스타트업과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재차 불거진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 플랫폼 대상 M&A 심사기준 강화가 스타트업생태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다른 회사를 사던가 아니면 내가 회사를 팔고 떠나야 한다. 이것이 플랫폼 생태계의 게임의 법칙이다. 혁신 생태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Always in Be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