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기술사업화, 벤처창업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이들을 육성하고 발전시키고자 법제 마련과 함께 정부 부처별로 다양한 지원제 도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벤처기업의 성지인 미국은 여전히 전 세계의 아이디어, 기술, 자본을 결합하여 벤처생태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이를통해 국가 경쟁력을 견고히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또한 기술개발, 창업, 기술이전을 통해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고, 핀란드는 노키아 충격 이후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여 통신장비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거대한 내수 잠재력을 기반으로 세계 각국의 기술과 투자를 유치하여 주장(株江)델타단지, 창장(長江)델타단지 등을 집중 육성하였으며, 부족한 경험과 기술은 물량과 보조금을 활용한 압축성장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본뜬 첨단하이테크 산업 단지를 조성하여 바이두와 같은 글로벌기업을 육성 하는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미국을 뛰어 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 분위기와는 달리 벤처투자에 대한 내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부 IT, 바이오 분야를 빼면 벤처창업의 성공 스토리를 찾아보기가 어렵고, 그나마 창업초기 성장을 위한 투자유치 과정을 지나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기업이 다반사이다.
과연 왜 그럴까?
원천기술 부재, 운영자금 부족, 전문인력 확보 어려움 등 이유는 많겠지만 핵심 원인은 시제품 이후 본격 사업화 준비 과정인 인큐베이팅과 스케일업에 대한 검토와 준비를 간과하거나 소홀히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사업화에 종사하는 분들은 누구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알고는 있는데, 이 죽음의 계곡은 사업화 과정에서 단순한 시간의 경과가 아니고, 인큐베이팅과 스케일업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는 꼭 넘어야 하는 높은 산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에 잘할 수 있는 주체를 선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즉 사업화를 위한 기술 특징이나 기술완성수준(TRL, Technology Readness Level)을 고려하여 개발자가 직접 창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전문기업에 기술을 이전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주로 기술이전이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창업지원 제도 로 개발자가 직접 창업을 해서 사업화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개발자는 스케일업 경험이 부족하고, 기술을 이전 받을 기업은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품질향상과 대량생산이 어려워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양쪽의 단점을 보완하여 조기에 제품성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프로세스가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은 우리나라 최초의 산학연(POSCO-POSTECH-RIST) 협력시스템의 한 축으로 1987년에 설립하여, POSTECH은 기초 연구, RIST는 실용화 연구, POSCO는 현장 적용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연구결과 실용화의 성공 모델로 자리잡게 되었다. 설립 초기에는 주로 제철소 현장지원 연구가 많았지만 점차 비철 소재, 환경에너지, 설비엔지니어링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였으며, 최근에는 이차전지소재, 수소 분야에 집중 투자하여 많은 연구성과를 도출하고 있다. 2007년 정부의 벤처기업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2007.4.11)’이 제정되어 비영리 연구기관도 주식 회사를 직접 설립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RIST는 2007년 12월에 중소벤처기업부의 신기술창업전문회사 1호인 ‘㈜리스텍비즈’를 설립하였으며, RIST 보유기술을 이전시켜 자회사에서 기술사업화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의 핵심사항은 RIST의 기술개발자가 창업한 회사나 기술을 이전받은 자회사에 겸직 또는 파견을 나가서 사업화에 참여함으로써, 기술의 브리지 역할 및 사업화 과정의 기술적 문제를 직접 해 결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즉 RIST는 자회사에 기술이전과 함께 개발자가 자회사에 겸직 또는 파견을 제도적으로 허용하였으며, 본인의 기술을 사업화하는데 참여가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제도 변경으로 개발자가 창업할 경우에 갖는 노무·회계관리, 투자자금확보 등 경영관리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오직 기술 사업화 성공의 열쇠인 인큐베이팅과 스케일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자회사가 보유한 기술 사업 노하우와 인력 활용도 가능하게 되어 사업화의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리스텍비즈 1호 사업은 제철소, 정유공장에서 발생되는 니켈(Ni)이 함유된 폐기물에서 스테인레스 스틸을 만드는 핵심 원료인 페로니켈(FeNi)을 추 출하여 제철소에 공급하였는데, 스케일업설비의 시행착오, 중국 경제발전에 따른 원료가격 급상승 등에 따라 사업 런칭 5년만에 사업을 중단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30억 원 이상을 투자한 공장과 설비는 유사 분야 연구개발에 재활용하여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게 되었다. 2호 사업은 제철소 등에서 발생되는 아연(Zn)이 포함된 폐기물에서 고순도 산화아연(ZnO)을 생산하여 고무, 타이어, 세라믹 등 국내외 기업에 필수 원료로 공급하는 것으로, 2010년 사업을 런칭하자 마자 곧바로 설비, 품질 등 여러 문제로 죽음의 계곡 (Death Valley)을 겪었으나, 3년만에 이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습식산화아연 사업화를 성공시켜, 현재까지 연 100억 원 이상의 매출과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2018년에 M&A를 통한 주식매각 수익으로 RIST의 안정적인 경영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사업의 성공요인에는 수율 향상, 판매망 확보 등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1호 사업의 유사 공정인 스케일업, 엔지니어링 기술을 2호 사업에 조기 적용함으로써 공정실패축소, 원가절감이 가능하 였으며, 또한 기술개발자와 1호 사업운영자가 공동으로 나노산화아연 등 고부가가치 신규 제품화를 적기에 출시한 것이 주요 요인이 되었다.
아울러 RIST는 기술사업화를 지속 수행하기 위하여 1호 자회사 매각 이전인 2017년 12월에 2호 자회사인 ㈜리스트벤처를 설립하여 운영 중이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NOx를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저온촉매(SCR, 선택적 환원), 건물 외벽에 설치하여 전기도 생산하면서 심미성도 높일 수 있는 건물 일체형 컬러태양광판넬(BIPV) 등의 다양한 아이템을 사업화하고 있으며, ’20년에 80억 원 매출을 달성하였으며, ’23년에는 100억 원 이상이 기대된다. 또한 2019년에는 포항강소연구개발특구 연구소 기업 2호로 등록하고 유망 벤처회사에 지분을 투자 하는 지주회사 역할도 수행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서울공대 교수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축척의 시간’에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50년간 유일한 성공사례이지만, 최근에 여러 산업분야에서 위험이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의 성공 요인은 선진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지속적인 혁신의 결과이지만, 최근에는 국가 지원정책과 대기업 투자방향이 4차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 집중되면서 제조업의 설계, 엔지니어링 기술이 축적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장되는 것이 위험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RIST는 POSTECH 등 대학의 기초, 원천기술을 활용하여 Scale Up R&BD을 위한 대학-RIST 공동으로 오픈랩(Open Lab) 연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구단에서 직접 시제품(베타버전)을 만들어 고객 의 VOC를 듣고, 신속하게 제품화에 적용하여 창업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또한 창업한 기업이 조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RIST내에 제조 인큐베이팅센터도 운영 중이다.
’22년에는 상업생산규모 테스트가 가능한 Pilot Plant 8개동 중에서 1개동에 2개사 벤처기업을 입주시켜, 상업화 스케일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3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지자체, 포스코그룹의 지원을 받아 전용센터 구축 및 10개사 이상의 벤처기업을 입주시켜, Scale Up R&BD와 제조 인큐베이팅을 수행함으로써 벤처기업이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적극 협력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