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R&D



 

최근 메타가 2004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세부 내용을 보면 채용을 동결하고, 인력을 재조정하며, 저성과자는 퇴사시키되 후임자를 뽑지 않고, 성장하고 있는 사업부를 포함하여 모든 부서의 예산을 10% 이상 줄인다는 것이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인원 감축에 나섰으며, 기존 사업을 면밀히 분석하여 재조정하고, 추진 중인 신규사업은 진행 속도를 조절하며, 신규 인력 채용은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인력구조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과 수익성 개선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있어서도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마존은 물류창고를 줄이고, 구글은 픽셀북 차기 제품 개발을 중단하고, 메타는 스마트워치 사업을 전격적으로 접기로 했다. 스냅은 출시 4개월 만에 셀카 드론 사업을 철수하기도 했다. 이러한 빅테크기업들의 전례 없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경제위기 속에서 사실상 플랫폼 대기업의 고속 성장시대 종식을 의미한다.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메타의 주가는 60% 이상 하락했으며, 아울러 애플 -21%, 마이크로소프트 -30%, 구글 -34%, 아마존 -31%를 기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고 주식 시장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었다. 미디어는 매일같이 유니콘기업의 탄생과 데카콘, 헥토콘기업들의 치솟는 기업가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개발자들의 연봉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스톡옵션과 주식투자로 인한 성공신화가 여기 저기서 들려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영원할 것 같았던 분위기는 최근에 급격히 달라졌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시행한 금융완화 정책은 전례 없는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으로 되돌아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식량 가격을 끌어올렸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미국이 단행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과 고강도 긴축정책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나라의 경기침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주가는 연초 대비 60% 이상 하락하며 30% 떨어진 코스피보다도 훨씬 더 많이 떨어졌다. 유니콘 특례상장 1호로 기대를 모았던 쏘카는 몸값을 대폭 낮추면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공모가 밑으로 40% 이상 하락했다.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도 고평가 됐다는 우려가 빠르게 퍼졌다. 투자 열기는 식어버리고 벤처캐피털은 돈줄을 죄기 시작했고,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스타트업 생태계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힘의 균형이 확실하게 투자자 쪽으로 넘어갔으며, 이로 인해 펀딩은 힘들고 기업가치는 앞으로도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7월 말까지 글로벌 M&A 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30% 감소한 2조4,000억 달러이다. CB인사이트의 자료에 의하면 올 상반기 글로벌 벤처 투자 금액은 2,501억 달러로 작년의 40% 수준이다.

전 세계 테크기업 투자 시장을 분석해보면 미국과 아시아가 유럽에 비해 훨씬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한편 캐나다와 아프리카는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럽도 본격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향후 전망은 매우 부정적이다. 또한 초기 투자에 비해 상장을 앞둔 후기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별로는 핀테크 분야가 크게 영향을 받고 있으며, 디지털 헬스 분야는 아직도 활발하게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테크기업의 상장은 줄줄이 연기하거나 취소됐다. 미국의 IPO 시장은 6년 만에 최저 수준이며 M&A시장도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시장 상황을 반영하여 기업가치를 대폭 낮추고 IPO가 불발될 것에 대비해서 투자계약서의 내용을 훨씬 촘촘하게 쓰기 시작했다.


 

기업들도 비즈니스모델이 원래 계획한대로 작동하지 않아 위기에 처하면 빠르게 플랜 B로 전환하는 피벗을 한다. 회사가 비즈니스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비용을 줄이며 이익을 늘려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비즈니스 전략을 변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심차게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에게 외면을 받은 경우가 많다. 이때 재빠르게 방향 전환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를 일컬어 '피벗(Pivot)'이라고 한다. 농구 경기에서 유래한 용어로, 한 발은 땅에 붙인 상태에서 다른 발로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며 기회를 포착하는 것을 뜻한다. 즉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비즈니스모델의 혁신을 이루는 것이다.

피벗은 ‘린Lean스타트업 (빠르게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최소기능제품MVP으로 만들어 출시하고 고객의 반응을 본 뒤 제품을 개선하여 다시 시장에 제품을 내는 전략)’에서 주로 사용되며 ‘제품, 전략, 성장 엔진을 구조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전과는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경쟁사와 시장의 구체적인 반응에 대한 축적된 데이터에 근거하여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테크기업 중 상당수가 초기 비즈니스모델로 고전을 거듭하다가 사업방향을 180도 전환하여 성공한 경우가 많다.

아마존은 창립 초기 ‘세상의 모든 것을 파는 전자상거래 회사(The Everything store)’를 표방했다. 온라인 서점 웹사이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물품을 싸고 신속하게 제공하는 데 조직의 역량을 집중했다. 그러나 적자가 심해지자 회사 존립과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회의가 시장에서 흘러나왔다. 온라인 서점에서 출발한 아마존은 피벗을 통해 전자상거래, 물류,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우주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최근에는 헬스케어 산업으로 비즈니스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

유튜브는 원래 비즈니스모델은 비디오 기반의 데이트 서비스였다. 사용자들이 자신의 이상형을 설명하는 짧은 비디오를 업로드 하고 이를 기반으로 매칭이 되는 서비스였는데 별다른 반응을 끌지 못했다. 대신,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로 방향을 바꾸어 성공하였는데, 첫 번째 동영상이 업로드 된 지 1년 만에 구글이 16억 달러에 인수했다.

트위터는 피벗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트위터는 초기에 오데오(Odeo)라는 팟캐스트 공유 서비스로 시작했는데, 같은 해 애플이 아이튠즈에 팟캐스트 플랫폼을 도입하면서 애플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다 내놓은 것이 트위터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례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닌텐도의 게임 콘솔을 알고 있거나 소유하거나 플레이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닌텐도는 원래 일본에서 가장 큰 놀이용 카드 판매 회사였다.

2조 5,000억 원 기업가치의 유니콘기업 직방은 모바일 부동산 플랫폼의 선두주자지만 이 역시 피벗의 결과이다. 초기 서비스는 사용자가 물건을 살 때 결제를 도와주는 플랫폼이었지만 구매를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결제도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서비스를 종료하였다. 이후 실패를 딛고 피벗을 하여 직방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비즈니스모델이나 서비스를 바꾼다는 것은 지금까지 투자하고 노력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피벗은 모든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그리고 실패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비즈니스모델이 성공적이지 않다면, 신중하게 피벗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엄청난 돈과 자원을 투자해도 별 진전이 없거나, 경쟁이 너무 치열하거나, 회사의 성장이 멈췄을 때 피벗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고객이 회사의 전체가 아닌 일부 기능이나 서비스에만 관심을 보일 때, 예상한대로 시장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때, 그리고 시장상황이 갑자기 바뀌면 비즈니스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환경에서 단지 채용을 중단하고, 있던 직원들을 내보내고, 신규사업을 중단하는 방어적 버티기는 의미가 없다. 아마존,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은 유력 경제학자들의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업 규모나 업계를 불문하고 글로벌 기업들은 불확실한 외부 환경속 성장과 생존을 위한 선제적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위기 상황을 좋은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도 펴고 있다.

언제나 위기는 있고 어디에서나 기회는 함께 존재한다. 미래의 성공을 위한 피벗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