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NDC(nationally determined commitment) 목표는 40% 감축이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연간 약 7억 톤 규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억 톤 수준까지 급격히 줄여야 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들이 대부분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 2050년 완전한 탄소중립의 결의에 함께 하고 있다. 이 같은 전례 없는 범 지구적 공동행동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안에 지구 온도 상승폭을 인류와 생태계 보전의 마지노선인 1.5℃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국제사회의 목표가 실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내년 3월 최종승인을 앞둔 제 6 차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종합보고서는 현재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09℃ 상승했으며, 당초 2052년으로 예상했던 1.5℃ 기온 상승 도달 시점이 2040년으로 10년 더 빨라질 것이라 내다봤다. 동시에 현재의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더 늘리지 않으면 서기 2100년경 지구 온도가 3.2℃까지 상승할 것이라 예측했다.

지구 평균온도가 1.5℃ 정도 오르는 게 뭐 그리 큰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체를 예로 들면 그 심각성이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우리 몸의 평균 체온은 36.5℃이다. 여기서 감기나 독감으로 1℃만 올라도 얼마나 컨디션이 저하되는지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지구 전체의 온도 상승은 체온이 오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변화를 낳게 된다. 앞서 언급한 제6차 IPCC 보고서가 전하는 평균 온도 1.5℃ 상승 이후의 지구는 전례 없는 기상이변의 증가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60%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돼 자취를 감추며, 이미 진행 중인 빙하 유실·해수면 상승·심해 산성화의 가속화로 연중 한 번 이상 북극 빙하가 거의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 세상이다.

 

같은 수치라 더 대담하고 도전적인 목표, 온실가스 감축 테스트베드로 부상한 한국

대한민국의 NDC와 탄소중립 목표는 같은 수준의 목표를 제시한 선진국들보다 더 도전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선진국들의 경우 지속적인 제조업 비중의 감소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이미 정점을 찍었거나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제조업 비중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해왔다. 따라서 같은 수치의 목표라도 이미 점진적인 하락세에 접어든 선진국들보다 더 강력하고 대담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많은 국가들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비중이 높지 않은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정책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한층 더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온실가스 감축의 해법을 제시하는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견 제로섬 게임 같은 온실가스 감축과 지속가능 발전의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설계해야 할까? 현재 전 세계의 탄소중립 목표는 기존의 평면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만으로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국제사회를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십은 상반된 시대적 요구인 ‘친환경’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탄소중립 혁신기술의 주도권 다툼을 통해 옥석을 가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향후 전 세계적으로 소요될 약 10조 달러의 탄소중립 비용을 기반으로 거대한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것이며, 이를 통해 탄소중립 혁신기술 중심의 유니콘 기업이 대거 새롭게 등장하게 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미래전망과 보유자산 기반으로 독자화·선도모델 구축에 힘써야

이 같은 미래 세계 전망과 현재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산업·기술적 자산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이 2050 탄소중립과 세계 선도국가 진입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지를 4가지 관점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사이클 전반을 정확하게 계측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 구축과 함께 독자적인 표준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현재 제품생산 시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표시하는 탄소발자국의 경우 ISO14067 표준을 기준으로 정량화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 중심으로 설계된 데이터와 표준은 한국 산업계의 자체적인 공정개선 노력 등을 반영하는 데 불리한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국내의 이산화탄소 발생량과 소모량, 증가분과 감축분 등의 측정을 국내 현장 상황에 맞춰 보다 정밀화·최적화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이의 객관적인 이론적·실험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자 방법론 구축과 표준 정립의 필요성에 대해 국제사회의 설득과 동의를 구해야 한다. 최근 농촌진흥청이 국내 각 농작물 별로 탄소계수를 자체 구축하고 있는 움직임도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

둘째, 탄소중립 디지털 플랫폼 구축을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전력, 에너지, 교통, 통신 등 우리나라의 주요 국가 기간망 대부분이 정부가 주도한 구축사업을 마중물로 민간의 참여가 활발해지며 빠르게 완성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국내 전반의 탄소 발생 및 감축 정보 공유는 기업 간 원활한 탄소거래와 저탄소 공정기술의 벤치마킹 등 민·관·학·연 전반의 능동적인 대응과 협업을 촉진할 수 있다. 현재 정부 지원 아래 대규모 시범사업과 실증사업들이 다수 진행되고 있지만 당초 기대한 만큼의 실질적인 파급효과가 부족한 이유도 정보 공유 플랫폼의 부재 때문이라 판단된다.

셋째, 우리나라가 혁신적인 탄소중립 기술의 글로벌 샌드박스가 되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탄소중립 기술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지만 상용화는 원천기술이라는 부분적인 그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스케일업과 실증, 양산과 법·제도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UN공업개발기구의 세계 공업 지수 5위에 올라 있는 국가로 화학 산업을 비롯한 조선·기계·철강·전자·자동차 등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파일럿 시스템 및 양산 기반을 갖고 있다. 동시에 실제 제품제조 공정상의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많은 나라이고, 국토 면적 대비 제조업의 밀도가 높아 신기술의 성공 여부도 빠르게 확인할 수도 있다. 가히 이산화탄소의 포집과 저장, 운송과 활용 등 탄소중립 신기술 전반에 걸쳐 빠른 실용화에 최적화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해외의 많은 스타트업이 한국의 탄소배출 제조기업들과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적극적인 규제 완화와 세제·금융지원 등을 통해 관련 자본과 인재가 우리나라로 더욱 집중될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

넷째, 인재양성이 중요하다. 탄소중립은 새로운 사회, 새로운 기술, 학문적으로도 새로운 지식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 같은 대대적인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새로운 협업 모델 발굴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연구소가 세계적인 인재들을 배출해온 것처럼, 탄소중립이란 새로운 영역 또한 새로운 세계 최고의 연구소와 이곳에 소속된 인재들이 이끌어갈 게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은 현재 각 연구 기관별로 각각의 필요와 특성에 맞춰 파편화되고 있는 탄소중립 연구개발과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보다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통합, 재편성해 다른 나라들보다 한 발 앞서 세계 최고의 탄소중립 전략연구소를 출범시킬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하다. 이는 앞서 우리나라가 경험하고 있는 AI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인력 미스매치와 경직성 등을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선도 모델로서도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