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4

 


 


눈 앞으로 다가온 산업 대전환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우리나라 산업의 특징은 기술의 도입과 기술의 흡수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낸 Fast Follower 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생산공정을 효율적으로 향상시켜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시장 개척으로 수출을 확대시킴으로써 세계적인 제조 강국으로 도약해 왔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이루어낸 산업화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공적인 산업화 모델이 되었다. 초기에는 생산이 앞서고 R&D가 뒤따라 오는 ‘규모의 성장’ 시대였다. 이 시기에 우선적으로 규모의 성장을 통해 자력 기술을 확보하고, 확보된 기술의개량과 개선을 통해 차별적 기술의 영역도 일부 확보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기술의 창출과 이를 적용한 새로운 제품의 개발,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의 ‘연결과 융합’이 필요한 시기이다. 철강을 비롯한 전통 제조업은 과거로부터 쌓아온 기술 능력과 데이터를 자산으로 하여 새로운 기술의 창출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직면하였다.

한편 제조업의 경영환경은 생산방식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패러다임 시프트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제조 산업은 지정학적 환경변화와 함께 원료~제조~시장으로 이어지는 Value-Chain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거의 모든 연료와 원료를 수입 해야하는 자원빈국으로서 Supply-Chain 확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최근의 요소수 사태와 같이 일부원료 공급의 붕괴때문에 산업 전반이 위협받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강산업에서 필수적인가스와 같은 에너지원의 가격상승이나 불안정한 수급과 같은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공급망의 확보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에너지 대전환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Green Manufacturing에 대한 요구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책의 변화뿐 아니라 친환경 생산공정으로의 전환과 친환경 제품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탄소중립을 가능하게하는 기술의 상업적 적용이 시급하다. 최근의 에너지원에 대한 세계적인 변화 요구는 에너지 공급면에서의 대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Industry 4.0으로 대표되는 제조 현장의 안전, 자동화 및 지능화를 위한 Digital Transformation도 제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인자가 될 것이다. ICT 기술을 제조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Value-Chain 확보, Green Manufacturing 및 Digital Transformation 가속화 

이와 같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안정적 확보, 탄소중립을 위한 저탄소 친환경 공정으로의 대전환, 그리고 생산공정의 디지털 전환 이라는 환경변화는 제조업의 근본적인 구조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은 지금까지의 산업발전 경로를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이에 따라 과거 우리가 쌓아온 제조설비의 대전환이 필요하고 현재의 석탄, 석유 기반의 에너지원에 대한 혁신적 변화가 요구된다. 변화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탄소중립 경쟁력 확보 실패 시 글로벌 공급망에서 낙오될 위기가 있지만 성공적인 신기술 개발로 글로벌 제조업 강자로서 앞서 나아갈수 있다. 

협업, 전환을 또 다른 기회로 만드는 R&D의 Keyword

Value-Chain, Green & Digital Transformation은 과거의 기술혁신과는 다르게 하나의 R&D 과제로 해결할 수 없고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R&D와 상업적 적용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가능하다. R&D 전 주기에 걸쳐 공급자, 수요자, 정책입안자와 학계, 기술 부문이 협업하여 R&D 전략을 수립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진정성 있는 합의와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 단위공정, 단위제품의 고품질, 저원가 기술로 경쟁력을 확보하는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에도 경쟁력확보가 가능한 ICT~에너지~제조~정책이 연결되는 협업의 R&D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세계 철강업의 R&D 협업 사례

철강업 분야의 글로벌 R&D 협업 사례를 보면, 원료 공급사~에너지 공급사~철강사~학계~정부 간의 활발한 협업이 특징이다. 최근 탈탄소 기조에 맞추어 석탄을 대체하여 CO2 발생이 없는 수소환원철 혁신기술개발이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원을 보유한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벤처까지 아우르는 기업군을 연결한 산학연관연합군 형태로 탄소중립 기술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SSAB(철강), LKAB(원료), VATTENFALL(에너지)이 공동으로 투자하고 스웨덴 정부의 에너지청에서 개발비용을 지원하는 HYBRIT 프로젝트를 2016년부터 진행 중이며, Pilot 공정을 통해 의미 있는 친환경 Green Steel을 생산한 바 있다.

미국은 2021년 11월 5일, 하원에서 ‘인프라 투자및 일자리 법’을 통과시켜 탄소중립과 관련된 기술개발에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 2050년까지 경제전반에 걸쳐 탄소배출 Net-Zero를 달성하기 위해청정에너지, 인프라 계획을 수립, 4년간 2조 달러 규모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녹색성장전략’을 수립하고(2020.12) 전력부문에서의 탈탄소화, 산업·수송·가정 부문에서의 전력화, ESS 도입 확대·비용 절감 방안 등을 중심으로 세제개혁, 규격·표준화 등의 정책을 제시하였다. 이와 관련된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하기 위해 일본최대의 핵심 연구개발기관인 NEDO에 10년 간 2조엔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여 민간기업의 연구 개발및 설비 투자를 지원 할 예정이다.

EU는 「Horizon Europe」을 통해 고급인력 양성 및 첨단연구에 집중함으로써 과학기술 역량 및 산업경쟁력 제고에 주력하고 있으며 혁신기술 발굴, 기업성장 지원, 혁신생태계 조성 지원을 목표로 혁신기업의 성장 지원과 산학연 간의 협력을 촉진하고 있다. 

R&D 강국이 산업강국으로 이어지는 성공 요인

우리나라 R&D는 총 규모에서 미국, 중국, 일본,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이며, GDP 대비 투입 비율은 독일(0.98%), 핀란드(0.84%), 일본(0.77%)보다 높은 1.04%로 전체 OECD 국가 중에서 1위이다. 그럼에도 아직 R&D투자 대비 성과는 미흡하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R&D 결과가 성공적인 상업화로 이어지는 변화를 담보하는 전략수립과 실행이 중요하다. 기술이 국가를 바꿀 수는 없으나 기술 없이는 대전환 시기에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고 국가산업 발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치열한 글로벌 생존경쟁 시대에 자국 산업을 살리기 위한 국가적 지원이 강화되고 있다. 

철강산업을 예를 들면 중국의 12.5 규획(철강산업고도화 및 부양 정책), 호주의 Steel Transformation Plan을 비롯해 미국Trump 정부의 25% 철강관세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세계 철강업 주도권 다툼에는 R&D 정책과 기술개발을 통한 제조혁신이 주요한 위치를 자치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글로벌 경쟁과 대전환의 파도를 헤쳐갈 수 있는 R&D 전략수립을 위해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인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1) 최종 제품, 상업화 완성형 R&D 강화

R&D 기술개발의 최종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대규모 자금 투입이 필요한 신산업 등 고위험 분야일 수록 기업의 수요연계를 통해 상업화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R&D 과제 기획단계부터 시장 중심의 수요 연계형 R&D 기획을 강화하고 기업이 직접 제안한 비즈니스모델과 연계가 바람직하다. 과제, 원천기술 (대학/연구소주관)과 후속 상용화 기술(기업 주관)을 단계적으로 묶는 노력이 필요하고, 수요~공급기업이 공동 제안한 최종 제품 중심의 협업, 통합형 과제를 기획해야 한다.

이를 위한 요건으로 기업 필요와 수요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과거 국가 R&D의 경우 기업의 관심이 적고 상업화에 대한 의지가 낮아 R&D의 시작만 강조되고 최종 성과에 대한 집중도가 낮았다. R&D 수행의 최종 종합자(integrator) 역할을 하는 기업 역시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술의 크기 별로 대기업, 중견, 중소기업, 벤처 등의 기술개발 니즈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일례로 과거 탄소중립 R&D 기획 단계를 보면 기술정책 관련 위원회 구성에 기술개발과 관련성이 높은 산업계의 참여 비중이 가장 낮아 산업계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2) R형 기초기술, D형 Scale-Up & Speed-Up 기술의 연계와 협업 강화

최근의 시장과 기술은 글로벌 규모의 기업의 경쟁력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단순한 기술개발로 그치지 않고 경제성을 확보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좀 더 촘촘한 R형 과제(혁신을 일으키는 기초기술)와 D형 과제(상업적 경제성 확보를 위한 산업기술)의 기획이 요구된다. 불확실성이 많은 R형 과제는 다양한 도전적 기술개발을 유도하고 상업화를 지향하는 D형 과제는대형 투자형 과제로 기획해야 한다. 기술개발 초기R형 과제를 통해 상업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 경우 Scale-Up과 Speed-Up 이라는 상업화 과정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로 연계되어야 한다. 

실험실 수준에서 경제성 있는 생산 규모로 전환을위한 Scale-Up 기술, 충분한 시장의 요구에 대응할수 있는 속도로 제품을 생산해 내는 Speed-Up 기술이 대표적이다. 지난 6월 발사된 누리호는 1톤 이상의 페이로드를 우주궤도에 올릴 수 있는 발사체 기술이 확보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이 때 누리호를 D형 과제라고 한다면 이전 단계의 과제들은 R형 과제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 과제들이 연계된 기술개발의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업에서도 이와 같이 Lab~Pilot~Demo (Commercialization)단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과제의 기획이 필요하다. 특히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기술은 그 상업화 기술개발 단계에서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큰 비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산업의 가치사슬도 확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민관 및 Value-Chain 상의 기업들의 참여와 협업이 필수적이다. 과거 선진국 기술의 추격개발에서 글로벌 선도기술을 이끌어야 하는 현재는 국가 R&D와 기업군, 기업간 밀접한 연결과 협업(Connect & Collaboration) 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3) 선택과 집중, 그리고 속도감 있는 R&D 관리

빠른 환경 변화와 시장의 변화에 맞춘 신속한 기술개발 체제가 필요하며 기술개발 속도 개념을 R&D전략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투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선택과 집중의 R&D 과제 발굴과 진행 관리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R&D 사업관리 전 주기에 걸쳐 있는 불합리한 평가와 규제를 변화시키고 기술의 발전과정에 따른 유연한 제도 적용이 필요하다. 과제 기획단계에서 결정된 기술개발 목표나 방법 등을바꾸기 힘든 상황에서는 기술개발 과정 중 발생하는역동적 변화를 담아 낼 수 없다. 속도가 늦어 지거나 문서에만 충실한 과제 수행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기술발전 주기가 짧아지고 다양한 기술 융·복합이 발생하는 치열한 기술개발 환경 속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절차에 보통 1~2년이 소요된다면 글로벌 기술경쟁에서 앞서 갈 수 없다. 보다 민첩한 의사결정 체제와 타당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맺음말

현재 우리는 산업과 기술의 복잡성, 변화의 속도가 증가되고 제조업이 처한 환경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단순한 생산성과 효율증대형기술에서 친환경 저탄소 공정과 제품 개발체제로의변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 변혁은 어느 순간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치밀한R&D 기획, 속도감 있는 추진과 기업군, 기업간, 민관의 협업으로 가능하다. 기술개발 주체의 진정성 있는 참여와 협업, 그리고 유연한 R&D 관리와 운영으로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미래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R&D 생태계가 만들어 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