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2



R&D 인력 관련 문제점

1) R&D 인력의 양적 미스매치

그동안 추진된 과학기술 인력 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현재 첨단·신기술 산업의 인력 수급 격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22년 6월 감사원이 발표한 <인구구조변화 대응 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2030년까지 디지털 분야는 91만 4천여 명, 산업기술 분야는 17만 6천여 명, 환경 바이오 분야는 23만 6천 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공지능(14만 2천 명), 블록체인(40만 2천 명), 이차전지(6만 6천 명), 시스템 반도체(2만 9백 명) 등 범용적으로 활용되는 첨단·신기술 분야에서의 수급격차는 매우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표 1).디지털전환과 녹색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이와 같은 첨단·신기술 분야 인재에 대한 수요는 전 산업에서 급증하고 있어 인력 수급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예컨대, 기존 인터넷 기업 외에도 금융권 등의 다른 산업에서 IT 인재 채용을 확대하고 있으며, 과열되는 인재 확보 경쟁은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인력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한국의 인재규모는 글로벌 수준 대비 매우 작은 것이 현실이다. 2020년 기준 국내 자동차 연구개발인력은 3.7만 명으로 주요 경쟁 국가인 미국(11만 명)과 독일(12.6만 명) 대비 현저히 부족하다. 또한 2019년 말 기준 한국의 AI 논문 저자 수는 전 세계 규모(5.8만 명)의 1.3%인 717명인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이에 반해미국의 AI 논문 저자 수는 2만 6천 명을 상회하는 등 핵심 전문인력의 미국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최고 수준의 AI 연구원 중 과반수가 미국에서 근무 중이며, 이중 3분의 2는 미국이 아닌 다른국가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외국 인재를 효과적으로 유인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전문 이공계 인력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2022년 IM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 유출’ 수준은 전 세계 64개국 중 31번째로심각하며, 특히 대졸 이상 이공계 직종 해외 취업자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효과적인 인재 유지 방안 없이는 이미 심각한 인력 수급 미스매치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2) R&D 인력의 질적 미스매치

인력의 양적 수급 격차뿐만 아니라 기업이 필요한역량을 보유한 R&D 인력이 부족한 질적 미스매치도 발생하고 있다. IT 개발자의 경우 ‘공급은 초급,수요는 고급’인 상황 때문에 개발자 전직을 시도하는 인원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인력난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공계 인력 규모가 이전보다 양적으로는 증가했지만 실제 업무에 투입되기 위한 질적 역량은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특히 AI를 비롯한 첨단·신기술의 근간인 수·과학 등의 기초 역량이 부족하며, 국내 2년제 AI 대학원을 졸업한 개발자가 기업이 필요한 기본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당장 업무를 수행할 전문인력이 필요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에서 능력 있는 개발자를 찾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 속에서 기업들은 해외 인재를 모색할수밖에 없다. 

현지 개발인력을 확보 및 양성하고자 네이버는 베트남의 주요 대학들과 공동 연구 센터를 설립하는 등 유럽과 아시아를 관통하는 글로벌R&D 벨트를 구축하고 있다.인력의 질적 미스매치는 비단 IT 업계만의 문제가아니다. 이차전지 분야에서도 2020년 기준 석박사급 연구·설계 인력이 1천여 명부족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미래자동차 산업의 핵심 R&D 문제 또한 전문인력 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기술 분야의 기업들 또한 인력난을 타개할 방법으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이중 삼성SDI는 미국과 중국, 독일에 R&D 센터를 새롭게 건립할 계획을 발표했다.

3) R&D 인력이 활동할 수 있는 산업 환경 척박

인력의 양적·질적 미스매치를 해소하지 못하고있는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는 R&D 인력이 활약하기 어려운 산업 환경이다. 예컨대 주요국 대비 국내AI 산업 및 시장 규모는 매우 작다. 2019년 기준 미국과 중국은 세계 인공지능 시장을 도합 50% 점유한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4.9%인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2025년까지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이다. 인공지능 기술력 또한 미국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상황이며 한국과의 기술 격차는 앞으로 인공지능이 광범위하게 적용 및 융합되면서 더욱 심화될 것으로 평가된다.시장 규모에 있어 이미 해외 국가 대비 성장하기 불리한 한국의 산업은 혁신조차 어렵게 하는 규제장벽에 직면해 있다. 특히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활용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 및 저작권법의 명확한 법리적 해석이 부재해 해당 기술 개발에 대한 법적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장 초기 단계인 신산업에 대해서도 기존 법령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이러한 입법 움직임은 확장성이 핵심인 신산업의 활성화를 제한하고 관련된 기술 개발 또한 위축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

현행 R&D 조세지원 제도 또한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R&D 관련 기본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대상 2%에 불과하며, 이는 G5국가 평균19%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예외적으로, 정부가 지정한 신성장·원천기술 및 국가전략기술에 한하여 20-40% 수준의 세액공제율이 적용되지만 분류가 되지 않은 개발 초기 단계의 최첨단 기술의 경우 이러한 세제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R&D 인력 관련 제안

R&D 인력의 양적·질적 미스매치를 해소하고 인재가 활약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R&D 인력 확충이 시급한 만큼 해외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이미 세계 1위의 AI 인력 규모를 보유한 미국은 보다 더 많은 외국 인재를 유인하고자 취업 비자 발급 기준을 완화하였다. 중국 또한 공격적인 해외 인재 유치 전략의 방안으로 영구거류증 발급을 확대하고 세액공제 및 자녀교육비 지원 등의 혜택을 적극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우수 인재에 대한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1990년대 이후로 유의미한 변화 없이 운영된 취업비자 체계를 개선하고 외국 못지않은 인센티브 확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추가적인 두뇌 유출을 방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전문연구요원 대체 복무 제도에 대한 전향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2019년 정부는 석사급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2025년까지 1,500명에서 1,200명 규모로 축소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8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공계 대학원생 1,565명 중 80%가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우수인력의 국내 박사과정 진학 및 연구직 유지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으며 49%는 이러한 제도가 폐지될 경우 해외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효과적인 인재유지 방안으로 평가된 전문연구요원 제도 축소 방침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산업 변화를 반영한 유연한 인력 양성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첨단 디지털 분야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학은 현행법상 정부 인가 없이는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확대할 수 없다. 

학과 정원 규제로 인해 서울대와 고려대의 컴퓨터공학과 증원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각각 15명에불과한 반면, 미국 스탠포드대는 동기간 내에 컴퓨터공학과 전공자 정원을 140여 명에서 740여 명으로 대폭 확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디지털 인재100만 명 양성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방안’ 자체는 고무적인 소식이지만, 특정산업이 부상할 때마다 계약학과를 신설하거나 특정학과 정원 제한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등의 단발적인 정책보다 대학 차원에서 탄력적으로 학과를 운영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또한 인력의 질적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수학과 기초과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물리·화학·생물 등의 기초과학과 수학이 초중고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학 입학 시 인문계 전공자도 최소 1개의 수학 및 기초과학 상급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과 일본, 영국은 대학 입학시험에서 인공지능 개발의 근간인 기하, 미적분, 통계 등에 대한 출제 범위를 확대하여 기초 역량 함양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한국교육부는 2022년 수능 과목 중 과학을 자유선택제로 변경하고 수학 출제 범위 또한 축소하는 등 해외주요 국가와는 상반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인력의 질적 역량 제고를 위해 주요 첨단·신기술의 근간이 되는 기초과학·수학 교육을 강화하는 전략을 검토할 때다. 마지막으로, R&D 인력이 활약할 수 있도록 주 고용처인 기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연구개발에 대한 규제 장벽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국내 인공지능 분야의 핵심 기술인 한국어 기반 초거대 AI 모델을 연구개발하기 위해 필수적인 학습용 데이터 활용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과 저작권법의 명확한 해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일본, 독일, 영국 등 주요국에서 논의 중인 데이터마이닝에 대한 저작권법 침해 면책 방안을 도입하거나 가명 정보 활용도를 높이는 최신 비식별화 방법론을 개인정보보호법상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또한, 나날이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는 빠른 혁신 속도를 고려했을 때, 정부가지정한 신성장·원천·국가전략 기술 항목에 한하여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금지된 항목 외에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R&D 조세지원 제도를 개편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규제 장벽을 해소하고 기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R&D 인재가 활약할 토양을단단히 다지고, R&D 인재의 활발한 활동이 또다시 산업 성장과 국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