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1887년에 경복궁에 전등을 밝힌 이후, 고종황제의 명으로 최초의 전력회사인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고 전차가 서울에서 운행되었고, 동대문에 200kW의 발전설비가 설치되어 거리의 조명등을 밝힌 것을 시작으로, 전기를 효율적으로 멀리 보내는 것이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송전선로 건설과정에서 산림훼손을 비롯한 생태계 파괴, 보상에 따른 지역주민 간, 지역공동체 간 갈등이 야기 되면서, 쾌적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전기 수송로로서 어떠한 혹독한 자연조건에도 견딜 수 있는 LS전선의 가공 송전선 혁신을 소개한다.

 

레드오션에서도 기술혁신을 사업 성공으로

전구를 발명하면서 인류는 밤을 밝힐 수 있게 되었지만, 초기에는 발전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만 전기가 사용되다가 점차 다른 지역으로 송전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가공 송전선이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1892년 이탈리아의 티볼리∼로마 사이의 가공 송전선 건설은 유럽 최초의 상업적 가공 송전선이었는데 송전선은 “황량하고 적막한 땅”이라고 불리는 평원을 가로질러 로마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연결되었다. 당시 티볼리 수력발전소에서 송전 된 전력 손실률은 대략 20%에 달했다고 한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변전소로, 또는 변전소에서 다른 변전소로 전송하는 선로를 송전선로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가공 송전선로’와 ‘지중 송전선로’가 있다. 가공 송전선로는 철탑이나 철근 콘크리트주 등의 지지물을 이용해 공중에 시설한 전선으로 지지물, 전선, 애자, 가공 지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가공 송전선로를 이용하여 송전하고 있다. 지중 송전선로는 전력 케이블을 이용해 지중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선로이며 이 방식은 가공 송전선로에 비해 안전하고 도시 미관이 좋으며, 통신선에 영향을 적게 주지만 설치 방법과 비용이 이슈이기도 하다.

송전선로는 전기의 수송로로서 전기적 성능과 혹독한 자연조건에도 견디는 기계적 성능을 겸비해야 한다. 전선은 가공 송전선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다음 각 조건이 요구된다. 도전율, 기계적 강도, 가공성(유연성), 내구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저렴하고 공사와 보수상 취급이 용이해야 송전선의 전압, 송전용량, 경과지의 자연조건 등을 맞추어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수요에 따라 전력 수요가 늘고 있어, 새로운 송전선로를 확보하거나 송전 전압의 격상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정책에 따른 신재생에너지원 발전 증가로 기존 대비 송전용량을 증대해 전력을 공급해야 하지만, 현재 송전선로 추가건설은 부지 선정 등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그래서 새로운 송전선로를 위한 신규 철탑 공사 등에 비용을 투자하는 대신 기존의 철탑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전선만 교체하여, 저비용으로 단기간에 송전 용량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는 탄소 복합재가 적용된 경량화 송전선 개발이 필요하게 되었다.

가공 송전선은 금속 소재인 알루미늄과 강철로 구성된 알루미늄 강심(ACSR:Aluminium Conductor Steel Reinforced) 선재를 사용하고 있는데, 기술적으로 송전용량 증대가 한계에 도달한 상태다. 그러므로 금속 소재가 아닌 신소재를 활용한 새로운 전력선 개발에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기존 송전선로를 이용하되 전력선만 교체해 송전용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전력선을 개발하게 되었다.

가공 송전선은 송전 시 전선의 저항 정도에 따라 열이 발생하여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서 송전선의 기계적 강도를 유지하는 중심 인장선이 길이 방향으로 늘어나서 처지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이도(sag)라고 한다. 이는 중심 인장선의 전기적 열적 특성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는데, LS전선에서는 기존 중심 인장선에 사용되는 강선이나 탄소강을 대체하여 고강도, 저중량, 저열팽창성을 가지는 탄소 복합재를 적용하고, 전기가 흐르는 외부 알루미늄 부분은 전기전도도가 높은 연알루미늄을 적용하여 송전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전선을 저장, 운반, 설치 시 요구되는 전선의 유연성도 부여하기 위하여 다양한 제조조건으로 경화시킨 탄소 복합재의 물성도 확보하였다.


 

최근까지 미국 C社의 A제품이 복합소재 송전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A제품의 탄소 복합재는 중심에는 탄소섬유, 외층에는 탄소섬유 대비 잘 늘어나는 소재인 유리섬유가 적용된 제품으로 굽힘 특성이 우수하다. 이에 대응하여 LS전선은 기존 미국 제품처럼 유리섬유를 적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구조의 탄소 복합재를 적용하면서 잘 늘어나는 특성인 신율까지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송전 용량을 향상시키고 충분한 굽힘 특성으로 시공성이 좋은 전선을 탄소섬유만으로 구현해 내야 했다.

LS전선의 LSCC는 A제품 대비 유리섬유가 제외된 탄소섬유 단층 구조로, 더 높은 하중을 견딜 수 있으며, 알루미늄 보호층을 적용하여 송전 효율이 향상되며, 전용 금구가 필요한 A제품 대비 LSCC는 기존 가공 송전선에 적용하는 금구와 같은 형태의 금구를 사용하여 시공 성능도 개선되었다.

이후 사업을 전개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해외 전력청들은 대부분 입찰 조건에 A제품의 특정 증용량 가공선이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A제품만 선호하는 분위기가 고착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우수한 제품인데도 진입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지속적으로 부식방지를 위해 적용한 LSCC의 알루미늄 커버와 전력 손실을 줄여 송전량을 두 배 이상 높일 수 있는 우수한 제품임을 설명하여 고객사를 설득하면서 A제품 독점 시장을 극복하고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LS전선이 혁신을 이루어낸 송전선 분야는 이미 상당 부분 사업이 성숙되어 있고, 일반적인 기술혁신만으로는 사업적인 성과까지 연결하기 힘든 레드오션 영역처럼 보인다. 신재생 에너지가 부각이 되고, 국내 정책 변화로 원자력이 다시 주목을 받는 등 외적으로는 사업환경변화가 있지만 IT나 바이오 사업 등의 분야에서처럼 급격한 변화는 없다. 사업환경의 변화가 크지 않다는 것은 사업추진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좋은 면도 있지만, 단지 기술혁신만으로 커다란 사업적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이런 환경 아래서 LS전선이 이루어낸 기술혁신이 어떻게 사업적 성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① 시장 예측과 모니터링에 충실한 목표설정

송전선 사업 특성상 한 번 설치하면 50년 이상을 사용해야 하고, 송전용량을 올리기 위해서 신규 선로를 찾거나 공사를 추가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이다. 용량이 커지는 만큼 공간과 비용이 더 필요하게 되고, 그만큼의 선로 환경을 훼손해야 하며 다양한 민원에 시달려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설치 환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나머지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전선과 같이 이미 상당한 기술들이 성숙된 상태에서 특정 혁신기술만으로 사업 성공 요건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엄청나게 드라마틱하고 불확실한 환경변화가 없는 것은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혁신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사업환경 변화에 대한 예측이나 모니터링을 소홀히 해서 사업을 당장 철수해야 하는 엄청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시장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리더들에 의해 자사의 시장이 잠식당할 우려도 있다.

LS전선에서 시장을 예측하고 모니터링하는 부서는 매월 주기적으로 마케팅 분석 보고서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보고하고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개발본부와도 공유하도록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다. 나아가 매년 하반기(10월)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기술개발본부와 공동작업을 추진하고, CEO 주관 정례적인 보고회 이후에도 지속 보완하여 차년도 R&D 개발계획에까지 반영하고 상호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기술개발에 기반하여 사업성과를 기대하는 대부분의 기업이 수행하는 프로세스와도 달라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인 점검과 사업 결과까지를 점진적으로 이루어 내는 공고한 프로세스가 차별화된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② 기술개발본부와 사업본부의 환상적인 협업, 환경분석에서 전략 공유까지

전선 구성을 위한 핵심 재료인 탄소 복합재용 재질은 기존 복합재 제작 업체들의 기술력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 큰데, 개발 초기에 대부분의 업체들은 탄소 복합재 자체만으로 전선의 신율을 확보하는데 부정적이어서, 복합재의 조성을 정하고 경화조건을 잡아 전선에 적용할 수 있는 주요 포뮬레이션을 확보한 것은 오롯이 끊임없이 업체를 발굴하고 협업을 추진하기 위한 연구원들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탄소 복합재 단독으로 전선을 구성하기로 결정한 후, 아직까지 구현된 적이 없는 복합재의 물성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다수의 복합재 제작 업체들이 협력을 꺼리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우선 복합재의 굽힘 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재료인 탄소섬유와 에폭시 수지의 조성을 다시 정해야 했고, 기대하는 물성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촉매를 써야 할지, 온도나 시간과 같은 경화 조건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LS전선 연구원들이 직접 나서서 조건을 잡아야 했고, 끊임없이 업체를 접촉하여 탄소 복합재 물성을 구현하는데 적합한 해법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런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시장의 요구와 기술적 동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개발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본사 스텝 조직이나 마케팅에서 주기적으로 시장 관련 월간 리포트를 발행하고, 이를 CEO 주관 전사 회의를 거쳐 R&D 과제 수립까지 반영된다는 프로세스는 위에 언급 한 바 있다. 환경분석 관련해서는 통상 시장의 변화나 고객 요구사항에 집중하여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하기에 급급해하는 경우가 많지만(Market driven), 기술이 주도하여 시장까지 연결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Technology push). LS전선의 기술개발본부도 마케팅에서 시장환경분석 동향 보고를 내는 것처럼 동일하게 기술동향분석 결과를 발행하고, 시장환경분석 결과와의 접점을 찾는 사내 프로세스를 운영하면서 하반기 사업계획 수립의 주요한 근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관련 본부들의 ‘실적’으로 보고서를 내는데 그치지 않고, 두 본부의 환경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사업전략과 기술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액션플랜까지 구체화해 나가는 프로세스도 충실하게 지켜나갔다고 한다.

ADL 컨설팅과 윌리엄 밀러 등이 정리한 세대별 R&D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업본부, 마케팅, 기술개발본부 등 전사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연결하여 목표와 전략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각 부서의 이해에 집착하지 않고 전사적 가치 창출(Value Creation)을 위한 협업의 결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3세대 R&D, Roadmap 공동 작성 및 운영).


 

③ 숨쉬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개발 프로세스 활용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케팅, 사업본부, 기술개발본부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하반기가 되면 CEO 주관으로 사업계획을 점검하고, 기술개발본부는 새해를 준비하면서, 사업계획으로부터 세분하고 구체화 과정을 통하여 R&D 과제를 도출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확인된 ‘의미 있는 과제계획’을 수립하는 프로세스는 당연한 것이다. 규모가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술경영 체계를 앞세워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기술혁신을 이루어내면 사업적 성과로 연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해야 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적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하고, 외형만 보기 좋은 전사적 프로세스를 운영하는 데 그치고 있다. 설사 자체적으로 쌓은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만들어 놓은 프로세스를 헐떡이며 따라가기에 힘겨워하는 경우가 많다.

LS전선의 현황을 설명 듣고 조사하면서 여러 번 확인한 키워드는. ‘특별한 것은 없다, 부서들은 각자의 업무를 진행한다’라는 의견이었다. 이미 성숙된 기술에 기반한 사업영역에서 당연히 여겨지는 업무의 흐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항상 주위에 있는 공기로 숨을 쉬듯이, 환경을 분석하고, 모아서 공동으로 리뷰하고, 그 결과를 전략과 개발계획에 반영해나가는 전체 프로세스는 이론과 실제가 이미 한 몸이 되어버린 기술경영체계를 제시하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기술 사업화 체계의 운용

전통적인 산업구조를 지닌 전선 관련 기술개발이라 특별한 ‘혁신사례’는 없다는 겸손한 말씀을 들었지만, 외부의 위협에 흔들림 없이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전단의 위용으로 본 것 같았다. 직접적이고 집요하게 고객 요구사항을 수집하고, 사업본부와 기술개발본부가 일상적인 업무처럼 정보와 전략을 공유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정해진 전사 프로세스에 따라 물 흐르듯이 진행하는 과정은 누가 지켜 서서 안내하지 않아도 성공이 절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한동안 국내 기업들 간에도 ‘유행’하던 6시그마 혁신의 원조인 GEGR(GE중앙연구소)를 방문했을 때의 생각이 났다. 잭 웰치의 뒤를 이어 제프리 이멜트가 새로운 CEO를 맡으면서 GE는 더 이상 6시그마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기획본부의 입장도 그렇다는 답을 들었지만, 별도로 인터뷰한 몇몇 리더급들의 대답은 달랐다. 이제는 전사적으로 6시그마를 하지 않지만, 자신들이 팀원들을 선발할 때는 자신이 말하는 ‘6시그마 관련 용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 같이 일을 한다고 했다. 이미 몸에 배어 있어 별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그 안에서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일을 한다는 뜻이었다. LS전선이 꼭 그랬었다.



 


글. 남태영 대표(SBI Consulting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