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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주말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건은 한국인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애도 기간이 지난 지금, 여러 전문가와 언론은 그때 이태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저마다 의견을 내놓고 있다. 원인과 관련된 여러 쟁점 중 하나가 '사고의 징후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간과한 것은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누구에게 책임이 있나’라는 책임 공방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그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정말 대형 참사의 징후라고 예견할 수 있을까?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 중 어떤 것이 대형 재해와 연관될까? 과연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재해에 대해 책임을 특정할 수 있을까? 애초에 대형 참사를 미리 예견하고 막는 방법이 있을까?
사소한 부주의가 큰 사고를 만든다
71년 전에도 이 문제로 고심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미국의 트래블러스라는 보험사에 근무하던 윌리엄 하인리히다. 위험관리부서에서 근무하던 그의 업무는 가입자의 사고를 예방해서 보험사의 손해율을 낮추는 것이었다. 보험사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비하는 금융 제도다. 따라서 보험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의 손해액을 미리 예측하여 이를 바탕으로 보험료를 책정해야 한다. 따라서 보험사는 사고가 적게 일어날수록 이득이고, 결국 큰 사고를 예방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마련이다.
하인리히가 제시한 비율. 그는 재해의 원인으로 인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하인리히는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이 문제에 수학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회사에 접수된 수많은 사고자료를 검토해서 1:29:300이라는 통계 법칙을 발견했다. 한 건의 큰 상해사고가 발생하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29건의 작은 상해 사고가 발생하고, 상해를 입을 뻔한 300건의 무재해 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1931년 <과학적 접근(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표한 이래 다양한 영역에서 관심을 끌었다. 메시지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큰 사고의 전조 현상으로 다수의 가벼운 사고가 일어난다. 그리고 가벼운 사고의 전조 현상으로 그보다 작은 사고가 더 많이 일어난다. 뒤집어 생각하면 별 피해 없이 지나갔다고 간과한 작은 사고들이 쌓이면 결국은 큰 사고가 언젠가는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하인리히 법칙은 작은 사고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큰 사고는 작은 사고가 누적된 결과다. 따라서 작은 사고라고 큰 사고의 징후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관리에 나서야 한다. 이를 간과하면 결국에는 사람의 생명이 위협받는 사고로 이어진다. 예컨대 공장에서 부주의로 인한 작은 오류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를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에는 그러한 부주의로 인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인리히는 보험사 직원답게 통계적인 현상만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고 과정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재해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위험한 행동과 상태’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행동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거나 위험한 장소에 부주의하게 접근하는 등 사고 가능성이 높은 개인의 행동을, 위험한 상태는 작업 환경이나 설비, 위험한 작업 절차 등 물리적 환경이나 제도를 말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인적 요소와 물리적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하인리히는 여러 요인이 단계적으로 영향을 줘서 마치 도미노처럼 재해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단선적인 구조는 하인리히 법칙의 강점인 동시에 한계였다. ©Herbert William Heinrich, from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 (1931)
하인리히는 재해의 88% 정도가 인적 요인으로, 10%가 물리적 요인으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나머지 2%는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발생한다. 하인리히의 분석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반복되는 사고와 재해의 주요 원인은 결국 사람에 있다고 보았다. 선천적, 후천적으로 습관화된 사람들의 성향이나 제도, 문화가 개인이 일으키는 오류로 나타나고, 이러한 오류가 사고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인리히의 발표 이후 비슷한 실증적 연구가 이어졌다. 1931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산업재해를 부석한 결과 전체 사고의 76%가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발생했으며,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사례까지 더하면 전체 사고의 95%가 행동에 기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인리히의 이론은 곧 산업 현장에 수용되어 작업자가 안전한 행동을 하도록 규범화하고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춘 ‘행동 기반 안전관리’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개인에서 시스템으로, 버드가 확장한 하인리히 법칙
하인리히의 이론은 직관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메시지도 강렬했다. 사람들의 행동을 관리하고 유도하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노동환경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당시의 시선으로 보면 더 그랬다. 결국 사고의 원인은 작업자의 행동이다. 고융주에게는 부분적인 책임만 있을 뿐이다.
무언가 이상해 보인다면 맞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하인리히의 법칙은 지나치게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 그것도 현장의 말단 인력의 책임으로 돌린다. 이러한 결론이 나온 이유는 하인리히가 드러난 현상의 통계적 숫자만을 확인했을 뿐, 그 이면의 인과관계까지 파고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왜 사람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는지, 안전 수칙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곤 하는지 이해해야 했다.
현대적인 안전관리 이론을 완성한 사람은 프랭크 버드와 로버트 로프터스였다. 두 사람은 하인리히 법칙을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해서 1976년 새로운 법칙을 내놓는다. 버드는 하인리히의 1:29:300이라는 비율 대신 1:10:30:600이라는 비율을 제시했다. 비율의 네 숫자는 각각 재해, 작은 사고, 무재해 사고, 그리고 아무 피해가 없는 ‘아차 사고’에 해당한다.
버드가 수정한 하인리히 법칙의 개요. 600건의 ‘아차 사고’는 주로 관리 감독의 부재를 나타낸다.
겉보기에는 버드가 하인리히의 이론에 단지 아차 사고라는 세부 분류를 추가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버드는 위험한 행동이나 환경과 같은 직접적인 요인은 경영과 관리 부족으로 나타난다고 보았고, 이로 인한 단순 실수를 아차 사고라는 분류군으로 추가했다. 즉 사고의 원인을 사람에 한정하지 않고 시스템적인 영역까지 확장한 것이다. 이에 더해 이러한 시스템적 요인으로 나타나는 사고의 원인을 사람, 기계, 정보와 환경, 관리(Men, Machine, Media, Management)로 구분했다.
아차 사고(Near miss)란 인명이나 재산피해가 발생할 뻔한 사고를 말한다. 운전으로 치면 교차로에서 신호위반한 차와 충돌할 뻔한 것을 간발의 차로 비켜난 것에 해당한다. 이는 실제 사고가 아니지만 사고, 나아가서는 재해의 징후가 될 수 있다. ©Shutterstock
버드가 개선한 하인리히 이론은 왜 재해를 개인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없는지 보여준다. 재해의 원인은 작업자의 인적 오류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업주의 통제관리 실패에도 원인이 있다. 이를 국가 단위로 확장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대해 행정 절차나 제도가 미비한 상황으로 빗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재해를 방지하려면 단지 사람들을 교육하고 개인이 조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환경을 더 안전하게 바꾸고 관련 매뉴얼과 절차 등을 체계화하며 지속적으로 위험을 모니터링하는 전문적인 안전관리가 필요하다.
사후 해석의 한계, 그러나 여전히 유의미한 이론
하인리히와 버드의 법칙은 체계적인 안전관리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에 기반한 안전관리가 여러 사업장에 확산되면서 조금씩 어긋나는 사례도 늘어났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치명적인 사고에 비례하여 치명적이지 않은 사고도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1990년 미국 항공업계와 핀란드의 건설업계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치명적 사고와 사소한 사고가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소한 사고가 적을수록 치명적인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많을수록 덜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의 원인은 하인리히 법칙이 ‘보고된 사고’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보험사에 접수된 사고만을 다루므로 애초에 접수하지 않은 사고는 집계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소한 사고일수록, 외부에서는 알기 어려운 사고일수록 보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도 모를 일은 은폐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성이라서? 당연히 아니다. 이러한 보고 누락이나 은폐는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항공이나 건설업의 특성을 생각해보자. 둘 다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사고 소식은 기업에 대한 신뢰도와 매출,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악재다. 따라서 조직문화 자체가 사소한 사고는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해결하곤 한다. 사소한 사고 상당수는 실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공개됐을 때 파장이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든 직장에서든 ‘무사고 00일’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겪어 본 사람들은 무사고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무사고 운동이 실질적인 효과는 없지만 불필요한 잡음을 줄이는 데 유용하다는 점도.
이는 업종이나 분야에 따라서 하인리히 삼각형의 구조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08년 발표된 네덜란드의 산업재해 분석은 리스크의 종류에 따라 치명적 사고, 사소한 사고, 무재해 사고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의료계를 대상으로 한 2008년의 연구에서는 아예 사고 종류별로 특정한 비율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하인리히 법칙이 제시하는 사소한 사고와 중대 재해의 인과관계가 부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에너지 기업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이 ‘딥워터 호라이즌호 사건’을 분석한 사례를 보자. 딥워터 호라이즌호 사고는 2010년 4월 20일 멕시코만의 BP 소유 원유 시추선이 폭발한 사고다. 이 사건으로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원유가 계속 유출되면서 심각한 환경 재앙이 일어났다. BP의 조사단은 이 사고의 원인이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기계적 결함, 현장 인력의 오판, 시추시설의 설계 오류, 불완전한 작업 절차와 같은 문제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한 결과로 판단했다.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화재를 진압하는 장면. 딥워터 호라이즌호 사고처럼 큰 재해의 원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요일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 재해를 예방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VOA
하인리히 법칙은 사고의 원인을 특정한 몇 가지 요소에서 찾으며, 때로는 단일한 요소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BP의 조사단이 확인했듯, 재해의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하인리히 법칙이 ‘블랙 스완’일 수도 있다. 블랙 스완이란 말 그대로 ‘모든 백조는 희다’는 명제를 단번에 부숴버리는 검은색 백조를 말한다. 검은 백조가 나타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검정 백조의 존재조차 예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날 검은 백조가 발견되어 기존의 지식이 한차례 무너지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검은 백조가 왜 존재하는지 찾아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조사가 반복되면서 검은 백조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는 편향이 생기며, 결국에는 검은 백조는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증유의 재해 역시 마찬가지 속성이 있다. 우리는 미래에 다가올 재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재해 이전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재해가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는 전조현상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똑 같은 사건이라도 언제 일어나느냐에 따라 일상적인 해프닝이 되기도 하고, 대형 재해의 불길한 전조가 되기도 한다. 결국 사후 해석인 셈이다. 따라서 지금 겪는 사건이 미래의 재해인지 아닌지, 조용히 지나가는 편이 나을지 심각하게 여기고 대처하는 편이 나을지 확신하기란 불가능하다. 단지 가능성만을 저울질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재해를 예방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재해는 계속되지만 그 빈도는 과거에 비해 분명하게 줄어들었다. 개별 사건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일정한 경향성은 분명하게 예상할 수 있다. 하인리히 법칙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해서, 사건의 원인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의미하지는 않다. 재해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며 안전 조치가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아닌지는 재해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러나 하인리히와 버드 이후 산업재해는 분명하게 줄어들었다. 오류가 있든 없든 하인리히 법칙에 기반을 둔 각종 제도와 개선책에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대재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일수록, 우리는 하인리히 법칙에서 말하는 개인의 책임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중대한 재해를 줄이기 위해 법칙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론의 가치는 사후 해석이 아니라 예방과 예측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