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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지축을 흔들며 힘차게 우주로 날아오른 한국형 발사체 ‘KSLV-Ⅱ’의 감동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일명 누리호로 불리는 한국형 발사체가 목표 궤도에 안착하면서 한국도 독자 개발한 발사체를 이용해 위성을 쏘아 올린 7번째 국가로 부상했다.
한국이 독자 개발한 발사체를 이용해 위성을 쏘아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위성을 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발사체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누리호 2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국의 우주 수송 능력 확보라는 과제를 달성했다.



대통령실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추석 명절 직전 2023년 정부 예산안에 누리호·다누리호 개발 기여자들에게 42억4,000만 원의 특별성과급을 책정했다. 특별성과급은 누리호와 다누리호 개발에 기여한 기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집행될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행정원칙”이라며 “성과가 있으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우주 연구개발 30년 만에 우주 수송, 위성 운용 능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면서 한국도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에 참전하게 됐다. 뉴 스페이스란 민간 기업이 주도적으로 우주를 개발하는 추세를 지칭하는 용어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우주산업의 특성상 국가 주도로 이뤄지던 과거의 추세와 대별하기 위해 생겨난 용어다.누리호 발사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민간 우주 시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위성 등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발사체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사체 기술 개발에 전력하는 동안 우주 강국은 서서히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고 있었다. 미국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는 벌써 7년 전에 2단 로켓인 '팰컨9'의 1단 발사체를 지상에 재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로부터 5년 후에는 아마존 창업자로 유명한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우주탐사기업 블루 오리진이 1단 로켓 ‘뉴 셰퍼드’ 발사체 회수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찌감치 발사체 기술 개발을 확보한 기업들은 민간 우주여행에 도전하며 뉴 스페이스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영국 우주탐사기업 버진 갤럭틱은 사상 최초로 관광 목적의 우주 방문에 성공했다. 버진 갤럭틱이 개발한 유인 우주선이 16km 상공에서 분리된 뒤 고도 약 86km에서 비행하는 데 성공하면서다. 다음엔 블루 오리진이 우주에 도달했다.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를 비롯한 4명의 승객을 태운 블루 오리진은 뉴셰퍼드를 타고 고도 106㎞까지 상승한 뒤 3분가량 우주 공간에 머물렀다 지상으로 귀환했다.
당시 블루 오리진은 버진 갤럭틱이 아니라 블루 오리진이야말로 최초로 우주 관광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버진 갤럭틱이 카르만 라인(고도 100㎞)을 넘어서지 않아서다. 카르만 라인은 양력이 사라지는 지구의 끝단이다. 국제항공연맹(FAI)은 카르만 라인을 넘어서야 우주라고 정의한다.
다음엔 스페이스X의 우주선 크루 드래곤이 우주로 향했다. 스페이스X가 개발한 우주발사체 팰컨9를 타고 우주로 날아간 크루 드래곤은 고도 575km에서 시속 2만 7,360km로 3일간 우주에서 머물렀다.

스페이스X는 블루 오리진이나 버진 갤럭틱이 아니라, 스페이스X가 진짜 우주 관광에 성공한 최초의 비행선이라는 입장이다. 우주에서 지구의 관성·중력을 활용해 원·타원 궤적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궤도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우주선이라서다. 이에 비해 블루 오리진과 버진 갤럭틱은 궤도비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의 우주 기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며 뉴 스페이스를 개척하는 동안 한국은 다소 뒷전이었다.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천문학적인 발사 비용이다. 발사할 때마다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누리호 개발로 한국도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정부는 누리호 초기 단계부터 산·연 공동설계센터를 구축해 민간 기업의 기술 역량 축적을 지원해왔다. 분야별로 보면 연소기는 비츠로넥스텍, 터보펌프는 에스엔에이치가 개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엔진 총조립을 맡았고, 동체는 한국화이바·테크항공·에스앤케이항공, 고압탱크는 이노컴이 제작하는 등 민간 기업이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각종 전자장치도 마찬가지다. 넵코어스가 위성항법수신기, 단암시스템즈가 전자탑재 시스템, 스페이스솔루션이 구동장치 시스템을 개발했다. 


 

심지어 발사대까지 전부 한국 기술로 만들었다. 누리호는 아파트 17층(47.2m) 높이인데다, 3,500℃까지 연소해 추력을 얻기 때문에 이를 견딜 발사대가 필요하다. 현대중공업·한양이엔지 등이 설비를 구축하고, 영만종합건설 등이 토목을 맡아 발사대 건립 전 과정을 국산화했다. 이번 누리호 발사 성공을 계기로 한국의 뉴 스페이스 시대를 이끌 수 있는 기업으로는 한화그룹과 한국항공우주(KAI)가 꼽힌다.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 쎄트렉아이가 참여해 그룹 내 우주 사업을 총괄하는 ‘스페이스허브’를 출범하기도 했다.
스페이스허브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함께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인 ‘위성 간 통신 기술’(ISL)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 또 별도로 서울대 등 13개 대학과 ‘재사용 무인 우주비행체’ 기술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이 밖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누리호 발사체 기술, 한화시스템과 쎄트렉아이의 위성 기술을 중심으로 한화그룹은 우주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향후 5년간 방산·우주항공 분야에 투입한다고 발표한 금액은 2조6,000억 원에 달한다.



KAI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 전환에 따른 정부의 우주 개발계획에 발맞춰 초소형 위성에서 중·대형위성, 발사체까지 우주 제조 분야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 누리호 발사 과정에서도 조립 설계 단계부터 시작해 공장 설계와 1단 연료탱크 개발, 산화제 탱크 개발과 발사체 총조립을 도맡았다.
KAI는 최근 KAIST와 손잡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우주기술 고도화와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위성이 전송하는 사진을 저해상도에서 고해상도로 변환하는 초해상화기술을 비롯해 우주산업 고도화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연구 중이다. KAIST와의 협력을 통해 KAI는 빅데이터 기반의 3차원 화면 전환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기술을 접목한 고부가가치 위성서비스 사업을 본격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이처럼 한국 민간 기업이 우주산업에 뛰어든 건 정부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중심으로 한국 민간 기업도 우주산업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사전에설계했기 때문이다. 누리호 체계 총조립과 엔진 조립, 각종 구성품 제작 등 기술 협력을 통해서다. 정부는 나아가 점진적으로 기업 역할을 확대해 향후 발사 서비스 주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누리호 발사가 뉴 스페이스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상황에 기인하고 있다.



누리호 발사 성공은 뉴 스페이스 시대라는 새로운 서막의 시작이다. 정부는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을 통해 민간 기업의 발사체 역량 확보와 기술 이전을 추진 중이다. 누리호는 2024년, 2026년, 2027년 등 앞으로 4차례 추가 발사가 예정되어 있다. 반복적으로 발사를 수행하는 동안 민간 기업의 기술 이전도 계속 병행된다. 정부는 총 6,800억 원 가량을 투입해 2027년까지 발사체의 전체 주기 관련 기술력을 갖춘 우주 종합 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2024년까지 민간 기업 소형발사체 개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액체연료보다 무게 당 추력은 적지만, 구조나 발사장 설비가 상대적으로 간단한 고체연료를 사용해서 인공위성·탐사선 등을 우주로 올려보내는 로켓을 민간이 쏘아올릴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이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내 발사장 등 기반 시설도 구축해, 민간 기업이 소형발사체를 개발하면 이를 발사할 수 있는 기반 시설 역시 제공할 계획이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정책연구2팀장은 “국내 우주산업 종사자들은 수요부족, 고급인력 부족, 정부 관심·지원 부족 등이 뉴 스페이스 시대를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우주산업과 관련해 정부의 규제와 제도가 부족하거나 과잉되지 않도록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