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신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전문경영인을 역임하고 있는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해외 영업조직에 직원을 내보내야 합니다.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영업을 가르치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영업 잘하는 직원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게 좋을까요?”

그분의 답은 명확했다. 영어 잘하는 직원에게 영업을 가르치는 게 낫다는 거다.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일상 의사소통까지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영업은 초보를 평균 수준으로 만드는 데 시간이 덜 걸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원이 한정된 기업에서 교육 훈련 의사결정의 기준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어디까지나 초보자를 평균 수준으로 만드는 교육일 때 그렇다는 얘기다. 보통의 인재를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만들 때는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최고 전문가와 보통 전문가의 차이

만약 1년 후 회사의 운명이 달린 해외 영업을 준비해야 한다면 의사결정은 달라질 것이다. 최고의 영업사원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영업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가는 아무나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영업을 가르치느냐, 영업 잘하는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느냐는 대중 교육과 맞춤 교육의 이슈다. 대중 교육은 초보자를 평균 수준의 인재로 만드는 교육으로 과락을 면하는 게 목표다. 반면 맞춤 교육은 평균이나 보통 수준의 인재를 최고 수준의 인재로 만드는 것으로, 가르치는 방법도 다양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와 관련해 국내 교육학자들이 최고 수준 전문가와 보통 수준 전문가의 특성을 비교 분석한 논문이 시사점을 준다(오헌석 외, 2009). 연구자들은 국내 30대 기업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가와 보통 수준의 전문가를 추천 받아, 이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최고 전문가들은 ①개인의 목표를 조직의 목표와 일치시키며 일하고, ②새로운 일에 끊임없이 도전해 전문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하며, ③물리적, 정신적으로 한 단계 더 파고 들어가는 ‘한 번 더 법칙’을 실천하고, ④한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인접 분야의 전문성을 익히기 위해 노력한다. 또 ⑤자신의 지식과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구축하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등 업무를 수행할 때 복합적인 접근을 하고, ⑥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 항상 일을 고민하며, ⑦어려운 문제에서도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⑧자신에 대한 믿음이 유달리 강하다는 특성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최고 수준의 전문성은 지식, 경험, 문제해결 역량에 더해 열정, 오너십, 자신감과 같은 감성적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감성적 역량은 다양한 성공체험을 통해 강화되기 때문에 최고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즉 최고 수준의 전문가는 단순한 교육보다 일하는 과정에서 육성된다.


 

인공지능 교육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전문성은 지식, 경험, 그리고 이를 활용한 문제해결 역량으로 구성된다. 지식과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지(Codified Knowledge)와 몸으로 체험해야만 알 수 있는 암묵지(Tacit Knowledge)로 나뉠 수 있다. 저명한 조직 심리학자인 에드먼슨과 동료의 연구에 의하면(Edmondson 외, 2003) 경험과 암묵지에 기반한 스킬은 학습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고, 개인이나 조직에 따라 학습 속도가 천차만별이다. 반면 명문화된 지식인 형식지에 기반한 기술은 학습곡선의 기울기가 가팔라 빠르게 익힐 수 있다. 물론 형식지라고 하더라도 기초지식이나 선행지식이 필요한 분야는 하루아침에 익힐 수 없고, 복잡할수록 초기 투입시간이 많지만 활용가치는 더 크다.

그럼 인공지능 교육은 어떠한가? 기업에 따라 인공지능 교육을 두 가지 상반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을 특정 전문가 집단만이 할 수 있는 고급 기술로 보고, 인공지능 인재는 쉽게 육성할 수 없다고 여긴다. 이런 쪽에서는 인공지능 전문가, 또는 데이터 과학자의 요건이 세 가지 역량으로 구성된다는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통계적 지식, 프로그래밍 등 IT 스킬, 비즈니스 도메인 지식 등이 그것이다. 즉 인공지능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수학, 통계학, 코딩 교육처럼 쌓아야 하는 선행지식이 너무 많아서 인공지능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기업은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면 해당 인재를 외부에서 채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다른 관점을 가진 쪽에서는 비즈니스에서 활용되는 인공지능 기술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고 여긴다.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초보자를 보통 수준의 담당자로 육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초보자를 기본 역량을 지닌 영업사원으로 키워내는 것은 매우 정형화된 교육으로 가능하다. 상담이론에 기반해서 고객의 문제를 극대화하여 니즈를 만들어내고, 이를 판매와 연결하는 대화 매뉴얼을 배우면, 영업 현장에서 기본은 할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대표로 있는 알고리즘랩스는 기업에 인공지능 솔루션을 개발하여 보급하지만, 동시에 인공지능 활용 교육도 제공하고 있다. 고객사에서 AI를 도입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담당자가 인공지능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인공지능 관점에서 비즈니스의 문제를 정의하고, 인공지능 모델에 적합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가공하고, 알고리즘을 선택하여 학습하고, 모델을 평가하는 일련의 인공지능 모델링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 수업으로 머신 러닝 방법론, 알고리즘 종류와 의미, 툴 활용법 등을 배우지만 코딩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70여 개 대기업에서 수천 명의 임직원이 이 교육을 이수하고 인공지능을 현업에서 사용하고 있다.


 

인공지능 선도기업은 AI 인재를 육성해

국가적 차원에서 인공지능 교육은 초보자를 기초소양을 지닌 담당자로 키우는 대중 교육도 필요하고,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전문가를 양성하는 맞춤 교육도 필요하다. 그런데 인공지능 인재가 태부족인 상황에서, 인공지능 도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기업은 대중 교육을 통해 인공지능 기술을 비즈니스에 빨리 활용하는 게 낫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조사를 소개한다.

2018년 MIT에서 발행하는 경영잡지, Sloan Business Review가 딜로이트 컨설팅과 함께 디지털 기술의 도입 현황에 대해 조사했다. 전 세계 123개국, 28개 산업에 있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 관리자, 전문가 4,300명에게 AI 등 디지털 기술 도입에 대한 방대한 설문을 실시했다. 디지털 전환이나 인공지능 기술 도입과 관련해서 각자 회사가 어떠한 상황인지를 진단하는 여러 질문을 했다. 설문 결과에 따라 이들이 속해있는 기업을 디지털 선도기업, 보통 기업, 느림보 기업으로 나눴다. 이 중 인공지능 교육에 관한 현실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 문항은 인공지능 전문가 등 디지털 인재를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본 것이다. 디지털 기술에 뒤처진 기업은 인공지능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보다 채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하고 있는 선도기업은 인공지능 전문가를 채용해야 한다고도 답했지만, 디지털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답변이 더 많았다.

즉, 인공지능 기술을 잘 활용하는 기업은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쉽게 접근한다. 자동차를 직접 연구개발하여 만드는 것과 잘 만들어진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익히는 시간이나 난이도 측면에서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비즈니스에서 활용하는 인공지능 기술이란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면에 가까워지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운전을 배우고 실제 실생활에 접목하듯, 인공지능 활용 전문가를 쉽게 교육해서 양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인공지능 기술을 접하지 못했던 기업은 인공지능의 활용 관점이 아닌 연구개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도입하기 위해서 인공지능 전문가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글 브레인 담당자이자, 코세라 설립자로 인공지능 세계 최고의 석학인 앤드류 응(Andrew Ng) 교수는 이제는 모델 중심의 인공지능에서 데이터 중심의 인공지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모델 개선보다는 정밀한 데이터 구축을 통해 인공지능 성능을 올려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당연히 인공지능에 대한 학문적 연구보다는 현업의 활용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즉 어디서나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인공지능 대중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인공지능은 대중 교육을 해야 한다. 대중 교육으로 인공지능 인재를 키워놓고 인공지능을 활용하다 보면 최고 수준의 인재가 가려질 수 있다. 그런 인재는 또 특수 교육으로 지속 육성하면 된다. 당장은 인공지능 대중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