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반도체 패키징은 Wire Bonding에서 Flip Chip 방식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더 많은 용량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고성능 반도체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Flip Chip 방식에서 기판과 패키지를 연결하는 단자 역할을 하는 물질이 하나의 공정으로 동시에 한 종류 이상의 솔더볼을 부착할 수 있도록 하여 반도체 공정의 혁신을 이루어낸 반도체 패키징 영역의 강소기업인 ㈜에스에스피(이하 에스에스피)의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축적된 기술력과 지속적인 고객과의 협업이 차별화

반도체는 둥근 웨이퍼를 잘라 검은색 네모난 포장 재질 안에 밀봉하는데, 웨이퍼를 각각의 기능 회로가 구현된 다이(Die) 별로 썰어낸 다음 다른 칩이나 부품들과 연결할 수 있도록 기판과 결합한 후 포장 재질로 감싸면 최종적으로 반도체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는 ‘패키징’ 공정이 있다. 다양한 반도체 패키징 과정에 쓰이는 소재 중에 솔더볼(Solder Ball)은 수요도 점점 커지고 중요해지고 있다.


 

패키징은 외부의 충격과 습기로부터 칩을 보호하기 위한 공정으로, 1세대는 칩과 패드를 금속선으로 연결하는 리드프레임에 기반한 와이어본딩(Wirebonding) 방식이 주를 이뤘다. 보호와 연결과 같은 기본 기능에 충실했던 1세대를 지나 점점 집적화된 패키징이 요구됐다. 2세대는 PCB에 기반한 와이어본딩 방식인 FBGA, MCP와 같은 기술이 등장했다. 점점 더 작은 패키지를 추구하게 되면서 금속 와이어의 부피가 문제 됨에 따라, 3세대는 돌기인 범프(Bump) 방식의 연결로 전환하게 된다. 솔더볼과 범프 방식이 등장하면서, I/O 단자 수가 많이 늘게 됐고 부품 소형화, 공정 미세화 등으로 플립칩(Flipchip), SIP, WLCSP와 같은 방식이 개발됐다. 이는 주로 스마트폰에 많이 활용됐으며, 현재 국내 패키징 업체들의 주 보유 기술도 3세대 패키징 기술이다. 4세대는 패키지 단계에서 여러 개의 칩을 통합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더 작아진 면적에 더 많은 칩을 집적하기 위해 적층 기술이 등장했고, 칩을 비롯한 부품들이 통합된 모듈형 패키지도 등장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존의 방식은 내부 연결은 와이어, 외부 연결은 리드프레임으로 삽입 실장하는 방식이었고, 지금은 내부는 범프, 외부는 솔더볼로 표면 실장을 하는 방식(대표적으로 BGA, Ball Grid Array)으로 변한 것이다.


 

볼을 물리적으로 붙이기 위한 장비로, 기존 솔더볼 마운트는 볼 한 종을 붙이는 것인데, 집적화되다 보니까 여러 종류를 한꺼번에 붙인다. 순서대로 장비를 여러 개로 나누어 하다 보니 장비를 많이 쓰는 불편이 있어서 동시에 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게 되었다.

에스에스피의 DH-1은 두 개의 헤드가 들어가는데, 이종 볼을 붙일 수 있고, 같은 볼을 나누어 붙일 수도 있어서 생산성이 향상된다. 고객에게 제공되는 가치는 공정상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다종의 볼에 대한 편의성을 제공할 수 있다.

최근 미세한 피치가 요구되고 난이도가 올라가고 있으며, 핀의 개수도 증가하므로, 가공성도 높아져야 한다. DH-1은 ball tool에서 볼을 떨어뜨리는 방식인데, 볼의 개수만큼 실제 정해진 위치에 놓는 방식이라 정확도가 좋다. 또한 다수의 작은 볼과 미세 피치를 다루는 데 강점이 있다. 에스에스피는 ‘96년도부터 25년 이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수시로 고객을 대응하면서 기술을 개발하다 보니 경험치가 축적되어서 어떤 요구가 있더라도 대응하기 위한 순발력이 커졌다. 게다가 경쟁사들은 메모리 위주로 했는데 비해 에스에스피는 메모리 패키지보다 주로 비메모리 패키지에 집중을 해왔다. 메모리 패키지는 특성상 정형화되어 있는 반면 에스에스피의 비메모리는 자체가 주문 제작이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올 수 있었다.


 

BPS(Ball Placement Solder) 방식의 하나인 핀트렌스퍼 방식은 pick-up tool을 이용해서 각각의 솔더볼을 기판표면으로 옮겨 놓는 방식인데, 과거에는 수율이 좋지 않았지만, 초음파 진동을 이용하여 일정한 높이로 부양시키는 기술을 통해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다. 가능한 볼사이즈는 0.1~0.5mm로, 솔더볼을 로딩할 때 얼라인먼트를 정확하게 맞추어야 한다.

에스에스피는 듀얼 헤드 이종 볼 작업을 최초 확보하였다. 기술의 핵심은, 첫째 진동에 의한 위치 정밀도와 툴 제작 공차를 관리하는 위치 정밀도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올려놓았을 때 픽업 툴 자체의 기공 위치와 가공성이 차별화 포인트다. 최고 수준의 정밀도나 듀얼 볼 취급은 고객사와 수시 접촉하면서 맞추어가야 해서 고객 입장에서는 전략적 파트너가 아닌 경쟁사로 공급선을 바꾸는 위험 부담을 갖지 않을 것이므로 에스에스피가 상당 기간 기술적 차별성을 유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① 철저한 고객과 시장 분석에 기반한 사업 주도

어떤 시장에 진입해서 어떤 제품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향후 고객사가 어떤 제품을 필요로 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에스에스피는 제조장비를 팔지만, 고객사의 공정에 쓰이는 툴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어떤 공정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생각하고 기획한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고객의 상황을 잘 알려주지 않지만, 25년 거래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장비 판매 후에도 향후 고객의 필요에집중한다. 고객의 요구를 파악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는 없지만, 직간접적으로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 고객의 다음 단계에 어떤 것을 할 것인지를 예측하고 먼저 준비해서 접근하며, 시장 분석, 문헌조사 등을 통해 고객들의 소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방향을 잡는다. 고객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 마케팅 기능을 담당하는 부문과 기술개발을 담당하는 부문이 각자 역할을 하고 있다. 반도체 관련 고객들은 공정을 중시한다. 장비만 알고 있으면 대화가 곤란하므로 그들의 공정을 이해하고, 고객이 중요시 하는 품질기준과 제조에서 필요한 지표 등 전반적인 고민을 통해 고객의 소리 이면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② Roadmap, 기술 확보 및 협력 전략의 균형 잡기

에스에스피는 제조 관점에서 보면 분업화가 잘 되어 있다. 일찍부터 사업을 시작해서 장비에 대한 설계, 프로그램 조립 등의 전 과정을 주도해왔지만, 핵심이 되는 설계기술과 툴 제작에 집중하는 반면, 장비 조립은 아웃소싱했다. 사업 전반을 감당해야 빈번한 요구 변화에 대응할 수는 있겠지만, 외부 업체와 협업을 통해서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요구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선택했다. 하이엔드에 집중하고 난이도 낮은 것은 외부에 의뢰할 수 있는 것은 탄탄한 로드맵 수립과 전사로 공유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에스에스피는 설계기술 및 툴과 장비 제조 부분에 대한 두 가지 로드맵을 운영하고 있다. 상하반기 구분하여 운영하는데, 상반기는 점검을 하고, 하반기에는 최종적인 것을 정한다. 기술로드맵은 연구소, 영업은 마케팅 기능을 담당하는데, 장비-기술개발이 엮여 있어서 기술은 연구소, 제조 운영에 대한 것은 제조팀에서 각각 담당하고 있지만, 분기별로 관련 회의를 통해 계획들을 점검하고, 협업 방안을 수시로 논의한다. 관련 인력이 100명이 안 되다 보니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조직 규모에 좌우되기보다는 얼마나 지속적으로 노력하는가가 핵심일 것이다. 사내에는 주기적인 공유와 협업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공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기술 쪽에서 주관하고 자주 만나다 보니 수시 협의가 가능하다. 덕분에 내부에 쌓아 온 노하우를 잘 공유하고 있다.

ADL consulting과 윌리엄 밀러 등이 정의한 세대별 R&D에서 로드맵은 관련 부문이 전략을 연계하는 3세대 R&D의 대표적인 키워드이다. 또한 4세대에서는 R&D 부문이 사업 성공까지의 역할을 맡아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R&BD(R&D with Biz.)가 제안되었는데, 에스에스피는 현장에서 제대로 된 3, 4세대 R&D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③ Strategy Alignment - 사업전략과 기술전략의 공유

에스에스피는 로드맵을 기반으로 하여 사업 및 기술전략을 사내에서 공유하고 연계한 것은 물론, 고객사와도 한 방향으로 연결함으로써 시너지를 얻어 내기도 한다. 장비 업체인 에스에스피로서는 자신들의 전략이 사업 성과까지 이어지려면 고객의 전략과 연계가 필요하다. 반도체 사업의 특성상 고객사들은 에스에스피에게 기술전략을 공유하지 않는 폐쇄성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실무진으로부터 제안된 신제품 신기술 기획(bottom up) 채택률이 40%에 달한다. 기술을 위한 기술이나 제품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 현업에서 접촉하는 실제적인 고객의 소리를 가져와야 한다. 실무자의 제안을 상당 부분 수용할 수 있는 까닭은 전사가 공유한 로드맵에 기반하여 전략 방향을 맞추고, 각 부문이 수시로 관련 영역의 정보를 수집,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결정권자들이 실무자의 제안이 적합한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사업 성공에 대한 신뢰성도 높이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고객과 시장의 흐름을 같이 숙지하고 있고, 실무자와 경영진이 전략을 공유하고 있어서 크로스 체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략 공유와 신규 제안에 대한 공동의 점검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전사 시스템으로 자체 개발한 ERP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한다. 각자가 접한 상황을 공유하여 전달해주고 있고, 수시 업데이트되는 정보는 상당 부분 최적화되어 있으며, 프로젝트들에 대한 현황이 파악되고 있다. 안정화되는데 3년이 소요되기는 했지만, 오프라인으로 수시 공유해온 조직문화가 신규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회사 규모가 크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는 겸손한 의견도 있었지만 지속적인 노력과 격려, 그리고 주기적인 시스템 보완의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전략 공유에서 확장한 4세대 R&D 실현

핵심기술 선점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차별화 방안을 모색하는 강소기업이 한국에서도 활약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충분한 기간 경쟁사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전사 전략을 공유하고 고객과도 한 방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계 시장을 리드하는 대기업의 관계사들 사이에도 세트(완성품)사와 부품사 간의 협력이 쉽게 이어지거나 유지되지는 않는데, 반도체 업계에서 전략을 공유하고 협력을 이어가는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의 활약을 볼 수 있었다. 불확실성이 더 커지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도 독보적 기술력으로 반도체 산업의 일익을 크게 감당하길 기대해 본다.




글. 남태영 대표(SBI Consulting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