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퀀텀 점프’와 물리학의 ‘퀀텀 점프’ 수사학과 역사의 사이에서
흔히 ‘퀀텀 점프’는 기업이 일정한 계기에 따라 단계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사업은 꾸준하게 성장하기보다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포착했을 때 급격히 성장하며, 이러한 기회는 결코 기존 사업에 안주해서는 잡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기업은 늘 혁신을 지향해야 하며,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판을 짜는, 파괴적인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퀀텀 점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현실의 장벽을 극복하고 도약하는 것을 말한다. ©shutterstock
이러한 표현은 수사적으로는 꽤 매력적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퀀텀 점프의 의미와 어느 정도 상응하기도 하고 나름의 유용한 교훈도 있다. 그러나 정작 속살을 들여다보면 당혹스럽기도 하다. 대체 퀀텀 점프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이고, 퀀텀 점프를 이루는 동안 기업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경영자와 회사원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퀀텀 점프라는 단어가 전하는 인상과 교훈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에 퀀텀 점프가 필요하다면 대체 ‘어떻게 이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다. 기업의 여러 환경이나 전략, 사업군, 현재 기술 수준에 따라 워낙 달라지는 문제라서 뭐라 답하기 당혹스러운 질문이다. 어쩌면 퀀텀 점프가 대체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했는지 짚어봄으로써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에는 빈틈이 없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기간은 물리학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고전물리학의 견고한 이론체계에 틈이 생겼고, 이러한 빈틈까지 매끄럽게 설명하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물리학,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흔히 물리학이라는 큰 분류 안에 양자역학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양자역학은 현대 물리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연속과 불연속의 개념. 고전적인 물리학에서 자연은 연속적이다. 단지 직관적으로 그러할뿐 아니라 수학적으로도 연속함수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밝혀낸 자연은 불연속적이다. ©삼성디스플레이
당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양자’였다. 고전적인 물리학 체계에서 자연은 ‘매끄럽게’ 여겨졌다.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해 ‘왜’를 추적하는 학문이다. 즉, 관찰된 현상의 원인을 탐구한다. 따라서 과학의 이론체계는 원인과 결과의 연속, 인과율의 연쇄일 수밖에 없다.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으므로 이러한 연쇄에는 빈틈이 없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잘 알려진 ‘제논의 역설’은 이러한 관념이 빚은 역설이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으려면 뛰어가는 경로 위의 무한한 점을 모두 지나쳐야 한다. 아킬레우스는 한 장소에서 사라졌다가 다른 장소에 갑자기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물론 이는 제논이 헤라클레이토스를 논박하고자 ‘변화란 없다’는 의미로 고안한 역설이기도 하고 무한등비급수로 간단하게 논파할 수 있지만, 제논의 역설이 나름의 설득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유럽인들의 ‘매끄러운’ 자연관을 확인할 수 있다.
‘인과율이 지배하는 우주’라는 빈틈없는 자연관은 19세기에 이르도록 유럽인들의 사상을 지배했다. 아무것도 없는 진공에 대한 거부감, 인과에 따라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뉴턴 역학의 시간관, 세상을 함수와 숫자로 이해하려 한 라플라스 시대의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모두 세계의 인과관계에는 빈틈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19세기 동안 원자론의 재발견이 이루어지면서 세상이 송두리째 변했다. 시작은 열역학이었다. 클라우지우스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온도에 따른 기체의 성질을 이해하고자 기체분자운동론을 통해 원자 개념을 도입했다. 이후 루트비히 볼츠만은 원자론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고전적인 통계역학을 완성했지만, 이러한 성과는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19세기의 물리학자들은 맥스웰이 정립한 전자기학의 영향을 받아 물리 현상을 연속적인 파동과 장으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원자는 기껏해야 가끔 쓸모 있는 가설 취급 정도였다. 어느 수준이었느냐면 볼츠만이 에른스트 마흐를 비롯한 동료 물리학자들로부터 조롱에 가까울 정도로 공격적인 논박을 끊임없이 당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였다. 그러나 물리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부르는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브라운 운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해내면서 원자가 물리학 체계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브라운 운동은 물 위에 띄운 작은 물질이 외부에서 간섭이 없어도 예측 불가능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현상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원자가 존재해야만 브라운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어 같은 해에 아인슈타인은 광양자설을 발표해 빛이 입자라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입자 개념이 물리학계의 주류에 분명하게 자리 잡았다.
‘자연’스럽지 않아서 납득하기 어려운 불연속성
물리학자들이 입자를 그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입자를 인정하면 불연속성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을 직육면체 수조에 담는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규격의 수조를 빈 공간 없이 물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이 한변이 1cm인 정육면체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이상한 물은 절대 쪼개지지도 않는다. 이 물을 수조에 빈틈 없이 채우려면 수조의 가로와 세로는 반드시 1cm 단위의 길이를 지녀야 한다. 흔들릴 때 출렁거리고 소금도 녹일 수 있고 마실 수도 있는 물이지만 한 변이라도 1cm보다 작은 수조에는 물을 담을 수 없다. 방금 든 예시가 어이없는 상상처럼 느껴지듯, 당시 과학자들의 당혹감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전자기 분야에서도 유사한 골칫거리가 나타났다.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색상만으로 온도를 추정하는 연구가 활발했다. 뜨겁게 달군 쇳물의 빛깔만으로 제철에 적당한 온도인지 측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구스타프 키르히호프는 달궈진 쇠처럼 주변으로 열을 방출하는 물체가 내놓는 에너지는 이상적인 조건에서 방출되는 빛의 파장과 물체의 온도, 두 가지 요인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수학적인 관계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막스 플랑크는 물체에서 방출되는 에너지가 일정한 양의 정수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물체의 온도가 연속적으로 서서히 오르지 않고 2도씩 건너뛰어서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에너지가 일정한 단위로 덩어리져 있음을, 즉 일정한 양을 지닌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이로부터 플랑크는 1900년 12월 베를린에서 ‘양자’ 가설을 발표했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에 의해 세계가 일정한 양을 지닌 입자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정작 그 결과는 발표한 과학자들 자신도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인과의 연쇄를 전제한 인식론적인 수준에서도, 고전역학이든 파동역학이든 핵심적인 관계식은 대부분 연속함수로 표현되는 수학적인 관점에서도 그랬다. 세상은 매끄러운 경사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계단이었던 것이다.
양자역학 탄생의 주역들. 왼쪽부터 발터 네른스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로버트 앤드류스 밀리컨, 막스 폰 라우에.
1931년 11월 12일 폰 라우에의 자택에서 저녁식사 후 촬영한 사진이다. 이들은 양자역학의 기초를 닦았지만 정작 양자역학의 세계관은 거부했다.
물꼬가 한 번 터지자 이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설명됐다. 그중 하나가 선스펙트럼이다. 스펙트럼은 빛을 프리즘에 굴절시켰을 때 나타나는 색의 띠를 말한다. 태양의 백색광 스펙트럼은 빨강부터 보라까지 색이 연속적으로 나타나지만 특정한 원소를 태운 스펙트럼에서는 얇은 선만 나타난다. 1850년대에 키르히호프는 선으로 나타나는 스펙트럼이 원소마다 모두 다르며, 선스펙트럼만으로 원소를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선스펙트럼이 왜 나타나는지, 수학적인 관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이후 요한 발머와 요하네스 뤼드베리가 자연수의 간결한 조합으로 수소의 선스펙트럼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선스펙트럼이 자연수의 조합을 따르는지는 모르는 채였다.
선스펙트럼 식은 원자모형을 연구하던 닐스 보어에게 결정적인 영감을 줬다. 보어는 발머의 식을 접하는 순간, 그가 고민하던 모든 것이 분명해졌음을 깨달았다. 당시의 최신 이론이던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은 원자핵 주위의 전자가 어떻게 안정된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러더퍼드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행성처럼 회전하는 모형을 제안했는데, 이에 따르면 전자는 순식간에 에너지를 잃고 원자핵으로 떨어져야 했다. 원운동을 하는 전자는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따라 에너지를 방출해야 하고, 원운동하는 물체가 에너지를 잃으면 회전반경이 점점 줄어들면서 추락해버리기 때문이다.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인공위성이 속도를 잃으면 추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어는 러더퍼드 모형의 이러한 결함이 에너지가 연속적이라는 가정 때문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만약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도입한다면 전자가 일정한 에너지만 지녀서 안정된 궤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전자의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일정한 양의 에너지의 정수배만큼만 지닐 수 있는, ‘양자’라는 가정이다. 발머의 수소 스펙트럼 식은 자연식으로만 표현되어 불연속적인 값을 나타내는데, 이는 전자가 양자라는 강력한 실험적 증거였다.
원자 모형의 발전사. 보어의 원자 모델(왼쪽에서 네 번째)는 러더퍼드의 모델(왼쪽에서 세 번째)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양자 개념을 도입했다. 보어의 궤도 모델은 이후 확률함수에 기반한 전자구름 모델(왼쪽에서 다섯 번째)로 발전했다. ©shutterstock
러더퍼드와 보어 모형의 차이를 쉽게 비유하자면 가운데 원자핵이 있는 원판에 전자가 굴러다니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원판은 마치 개미지옥의 집처럼 가운데 방향으로 아주 완만하게 경사져 있어서 원판 위 어딘가에 구슬을 두면 가운데의 원자핵으로 서서히 굴러간다. 만약 구슬을 원둘레 방향으로 굴리면, 마찰과 저항을 무시할 경우 구슬의 원심력으로 인해 가운데로부터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진 상태로 중심 주위를 회전한다. 그러다 어떠한 이유로든 구슬이 속도를 잃으면 중심으로 점점 가까워지다가 결국은 굴러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모형이 바로 러더퍼드 모형이다. 보어의 모델은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마다 원 모양으로 홈을 파서 구슬이 굴러떨어지지 않게 한 것이다. 구슬은 에너지를 잃고 원자핵에 가까워지거나 에너지를 받아서 더 멀어질 수 있겠지만, 언제나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멈춰서서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홈에서 벗어날 만큼의 에너지를 가하지 않는 이상 구슬이 있는 궤도는 바뀌지 않는다.
상식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연 양자역학
보어의 설명은 아주 깔끔했고 수학적으로 딱딱 들어맞았지만 양자 이론이 그러했듯 당대의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는 무척 어려웠다. 보어의 핵심 가정은 전자가 특정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자가 왜 특정한 궤도에 있어야만 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전자가 궤도상에서 회전하는데도 에너지를 잃지 않고 궤도를 유지한다는 가정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명백하게 위배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당혹스러웠던 점은 보어 모형에서 전자가 중간 과정 없이 궤도와 궤도 사이를 말 그대로 ‘도약’한다는 것이다. 위에서는 이해하기 쉽도록 홈이 파인 원판에 빗대어 설명했지만 사실 정확한 비유는 결코 아니다. 보어 모형에서 홈 안에 있던 전자가 에너지를 받으면 힘겹게 언덕을 기어오르다가 홈과 홈 사이의 산을 넘어서면 다음 홈으로 굴러떨어지는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에너지가 홈 사이의 산을 넘어서기에 부족한 동안에는 전자가 미동도 없이 제 궤도에 머물다가, 에너지가 산을 넘을 만큼이 되는 순간 갑자기 다음 궤도에서 나타난다. 중간 과정 없이 말 그대로 한 궤도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다음 궤도에서 나타나는 셈이다. 궤도와 궤도 사이에는 전자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전혀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보어가 고안한 모델과 수식은 선스펙트럼부터 광전효과, 흑체복사까지 당대에 난제로 취급되던 현상들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설명했다.
양자역학이 20세기 초반 내내 물리학계에서 논쟁거리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오해하듯 물리학자들은 양자 가설에 기반을 둔 새로운 물리학의 수학적 표현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이러한 표현이 자연현상을 훌륭하게 설명한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나 그 가정은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실험적으로 어떻게 입증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사변적이라며 판단을 유보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과학자들을 더 당혹스럽게 했던 점은 그러한 도약이 예측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전자의 상태를 표현한 방정식에 따르면 전자의 위치는 확률적으로만 계산된다. 즉 에너지를 받은 전자가 다른 궤도로 도약할지 아닐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물리학이라면 주사위 놀이하고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요컨대, 양자역학을 거부한 과학자들은 어렵기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직관과 너무나도 어긋나기에 이해하지 않은 셈이다.
물론 현재 양자역학은 수학적으로 정교해지고 실험적으로도 수없이 증명되어 견고한 이론체계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트랜지스터, 집적회로, 초전도체 등 현대 산업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양자도약의 ‘징후’를 발견해서 상당한 정확도로 양자도약을 예측할 수도 있으며, 덕분에 양자컴퓨터도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자가 마치 순간이동하듯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도약하는 모습은 상식적인 직관과 너무나도 벗어나 있어서 얼른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경영학에서 ‘퀀텀 점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주의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자가 일정한 ‘문턱값’을 넘는 에너지를 받으면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이동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은 묘사할 수 없듯, 경영에서 퀀텀 점프라고 하면 무언가 혁신적인 변화로 인해 갑작스런 도약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 도약 과정이 어떠했는가는 설명하기가 무척 곤란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리학에서의 양자도약은 그 중간 과정을 알 수 없다가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기업이 성장했는데 중간 과정이 아예 없다면 이건 경영이 아니라 비리다.
양자도약의 사전적인 의미만 보고 레토릭으로 소비하기보다는 양자도약을 발견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더 큰 시사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과학자들은 기존의 상식과 인식에 배치되는 증거를 앞두고 기존 상식을 고수하기보다는 분명한 증거를 택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논란도 많았고 끝까지 새로운 설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과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자 커뮤니티라는 집단 자체는 아무리 황당하고 당혹스러워 보이는 설명이라도 충분한 논의를 통해 수용하고 발전시켰다. 그 결과가 20세기 이후를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로 바꾸어 놓은 양자역학이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퀀텀 점프는 양자역학의 성립 과정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