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무비 바로미터



 

모든 탐험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 사람들은 탐험을 위대한 여정으로 기억한다.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의 대담함, 비록 제국주의의 맹아라는 문제는 있지만 대항해시대를 수놓은 수많은 뱃사람들의 용기와 집념,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을 처음으로 오른 텐징 노르가이와 에드먼드 힐러리의 도전정신, 남극점에 최초로 도달한 아문센의 치밀함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식수에 사용할 소중한 군수품인 식초까지 동원해가며 바위를 부숴 길을 연 한니발의 악전고투나 뱃사람들이 감내해야 했던 처참한 식생활과 가혹한 규율, 새로운 등정 코스를 개척하다 동료를 모두 잃고 간신히 살아 돌아온 텐징 노르가이의 아픔, 당시 유럽의 최빈국 노르웨이 사람으로서 아문센이 국제 사회에서 받은 냉대와 같은 고난의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최초의 드라마

지구에서의 모험조차 이토록 고생스러운데 지구상의 어떤 생물도 도달한 적 없는 우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줌의 정보와 몸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좁 은 기계에만 의지해서 산소호흡기와 방호복 없이는 1분도 살기 어려운 곳에 간 다고 생각해보자. 작은 실수가 생존의 문제로 이어지고 방금 관찰한 현상이 위험 신호인지 아닌지 깨닫기도 어렵다.

문제를 일찍 인지한다 한들 직접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기적인 상황이다. 실제로 우주개발이 시작된 이래 목숨을 잃은 우주비행사만 19명, 우주용 로켓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수백 명의 엔지니어가 목숨을 잃었다. 인명사고는 내지 않았지만 까딱하면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고도 자그마치 40건이다.

하루에도 몇 기씩 아무렇지도 않게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많은 고난과 희생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교과서와 지도,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최초의 자체제작 드라마 소재로 화성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류의 새로운 시 작, 마스(이하 마스)>는 화성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탐사대, ‘다이달로스 팀’과 그 후속 탐사대의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러나 ‘인류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찬 부제와는 달리 드라마는 탐사대의 영광을 좇기보다 그들이 화성이라는 적대적인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온갖 위기를 그려낸다.

다이달로 스팀이 겪은 고난을 보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장편영화, <마션>의 마크 와트니의 좌충우돌은 한가해 보일 정도다. 영광스러운 이야기보다는 혹독한 현실을 부각하려는 마스의 의도는 극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마스에서는 두 가지 시 간대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2016년과 2033년이다. 현재 시점인 2016년은 다큐 멘터리로 구성된다. 화성 개척이 사업 목표인 스페이스엑스의 CEO 일론 머스크를 비롯하여 명작 다큐멘터리에 참여했던 헤이든 천문연구소장 닐 디그레스 타이슨, 영화 마션의 원작 소설가 앤디 위어, 찰스 볼든 NASA 국장 등 우주 프로그램에 깊이 관여한 전문가들이 등장해 화성 유인 탐사의 가능성과 해결할 과제를 설명한다.

2016년의 다큐멘터리 파트는 2033년의 드라마 파트에 과학적 개연성과 객관성을 부여한다. 2033년 이야기는 선장이자 시스템 엔지니어 ‘벤 소여’, 시스템 엔지니어 겸 조종사 ‘승하나’, 지구화학 및 수 문학자 ‘하비에르 델가도’, 생화학자이자 선의 ‘아멜리 뒤랑’, 우주생물 및 지질학자 ‘마르타 카멘’, 기계 엔지니어이자 로봇 기술자 ‘로버트 푸코’ 여섯 명의 탐사 팀이 화성탐사선 ‘다이달로스호’에 탑승한 상태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실제로 화성에서 겪을 수도 있는 일

여섯 명의 탐사팀은 장장 7개월에 걸친 비행을 순조롭게 마치고 화성에 도착한다. 그리고 조용히 진행 되던 드라마의 호흡은 긴박하게 변 한다. 화성에 착륙하려는 도중, 다이달로스호의 컴퓨터는 역추진 로켓에 문제가 있음을 알린다.

화성은 지구보다 대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착륙할 때 낙하산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화성 표면에 가까워질수록 아래쪽 방향으로 로켓을 분사해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여러 역추진로켓 중 하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대로 두면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못해서 우주선이 화성 표면에 충돌하거나 예정 착륙지점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벤 선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기관실로 직접 내려가 응급 수리에 성공하지만 조종석으로 미처 돌아오기도 전에 우주선이 착륙해버려 큰 충격을 받고 만다. 착륙 과정에서의 문제 이후 다이달로스 팀은 마가 끼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온갖 문제에 시달린다.

부상당한 벤을 치료하려면 베이스캠프에 도달해야 하지만 역추진 로켓 고장으로 착륙 위치가 틀어진 탓에 베이스캠프까지는 75km나 가야 한다. 이동 수단은 로버뿐. 그나마도 최고속력이 시속 10km에 불과해 베이스캠프까지는 7시간 30분 이나 걸린다. 설상가상으로 팀원 전체와 짐을 싣고 가느라 원래 2인승으로 설계된 로버는 얼마 가지도 못해 고장 나고 만다. 다이달로스 팀은 다섯명이 산더미 같은 짐과 부 상자 한 명을 끌고 15km가 넘는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지구의 0.75% 에 불과한 대기, 밤이면 영하 70도 까지 떨어지는 기온과 같은 화성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주복에 전력이 남아있는 동안 베이 스캠프에 도달해야 하지만 화성의 바위투성이 황무지를 거추장스러운 우주복을 입은 채 걸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느덧 해는 져서 기온은 뚝뚝 떨어지고 우주복의 전력이 바닥나 체온 유지 기능도 멈췄다.

이제는 이산화탄소도 제대로 정화되지 않아 호흡도 곤란해진 상황에 부상자의 생명도 점점 꺼져간다. 드라마는 총 6화 중 2화 분량을 화성에서의 첫 날에 할애해서 다이달로스 팀이 생전 처음 겪는 환경에서 악전고투하는 모습을 세밀화를 그리듯 묘사한다. 중간중간 벤 선장의 플래시백을 보여주며 감상에 젖는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객관적인 시선이다.

여기에 2016년 의 다큐멘터리 파트가 더해지면서 다이달로스 팀의 고난이 인류가 화성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일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실만을 훑는 듯한 다큐멘터리적 감성이 오히려 화성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놓인 다이달로스 팀의 막막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드 SF의 새로운 시도

3화까지 마스는 화성의 자연 환경과 화성 최초의 인류 사이의 투쟁이라는 분위기를 유지하다 4화부터 분위기가 살짝 변한다. 다이달로스 팀은 모두가 임무 취소를 고려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어이 거대한 얼음덩이가 매장된 곳을 찾아 반영구적인 거주지를 설치한다.

‘올림푸스 타운’이라고 이름 붙인 안식처가 자리잡은 이후 15년 동안 후속 탐사팀이 속속 도착하며 화성 테라포밍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15년 동안 다이달로스 팀은 화성의 최고참으로 남아 후속팀과 여러가지 갈등을 빚는다.

드라마는 시즌 1의 4화부터 사람간의 갈등을 묘사하며 먼저 길을 개척한 사람들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준다. 마스는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에 훨씬 가깝다. 다큐멘터리 파트인 2016년의 이야기가 극의 절반을 차지하는 데다 2033년을 다루는 드라마 파트의 시선도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한 시선을 유지한다. 어쩌면 사람에 따라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늘 하던 대로 만든 가상 다큐멘터리에 드라마라는 이름을 붙인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이러한 인상 때문인지 마스는 로튼토 마토 61%, 메타크리틱 리뷰 59점으로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 다. 국내에서도 그 흔한 영화 리뷰 조차 찾기 어렵다. 공들인 만듦새에 비해면 다소 실망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SF 팬들에게 마스는 큰 선물 이다. 마스는 대단한 상상력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극중 묘사된 내용은 우주계획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 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마스는 실제 화성탐사를 옆에서 지켜보듯 탄탄한 과학적 개연성을 바탕으로 설득력 높게 묘사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스는 드라마 보다 현재 알려진 화성탐사 계획에 기반을 둔 시뮬레이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마스는 다른 어느 드라마보다도 현실적이고 진지한 작품으로 완성됐다. 소재와 표현 방식이 절묘하게 결합된 덕분이다. 마션과 비교하며 보는 것도 또 다른재미다.

두 작품 모두 NASA의 유인 화성탐사 계획을 참고하여 제작된 하드 SF 작품이다. 두 작품에 공통 적으로 등장하는 화성 로버, 선외활 동복, 태양광과 원자력을 조합한 발 전방식, 지각 속 얼음으로부터 얻는 물 등이 모두 현재의 화성탐사계획에 설명된 대로다. 마션이 3차 탐사 대의 이야기니, 마스의 시즌 1은 마션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셈이다. 한국계 미국인이 주역으로 나온다는 점도 우리에게는 흥미로운 요소다.

3화부터 다이달로스 팀을 이끄는 승하나는 지상요원인 승준과 쌍 둥이 자매다. 하나는 선장 대행이자 지휘관으로서 악조건에서도 다이달로스 팀을 이끌며 화성 첫 거주지 를 세우는 데 성공하고, 기지가 건 설된 4화부터는 화성의 책임자 역할을 한다.

하나와 준의 이야기는 한 화짜리 프리퀄로 따로 제작될 만큼 비중 있게 다뤄진다. 원래는 중국계 미국인이었지만 한국계 미국 인인 김지혜가 캐스팅되면서 설정 이 한국계로 바뀌었다고 한다. 발표된 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마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SF 시리즈다. 각국의 우주계획을 종합하면 2050 년 이전에 인류가 화성을 밟을 가능성이 높은데, 마스는 그 현장을 미리 보여준다.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시즌 1을,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시즌 2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