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친환경 시대

생명 진화를 프로그래밍하다
화학공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합성생물학


 

자연 vs 인공

감칠맛을 내는 화합물 조미료인 글루탐산나트륨(MSG, Monosodium glutamate)은 식품업계의 ‘절대악’이었다. MSG를 죄악시한 이유야 여럿이지만, 시판되는 MSG가 생명체가 아닌 거대한 화학 공장의 반응용기에서 생성됐다는 것도 가장 큰 이유였다. MSG 그 자체나 마찬가지인 글루탐산이 발효식품이나 버섯, 다시마 같은 식재료에도 풍부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MSG의 사례는 ‘인공 vs 자연’이라는 구도가 얼마나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는지 보여준다.

지금은 어느 정도 오해가 해소되기도 했다만, 많은 사람들이 인공물을 불완전하고 믿기 어려운 것, 자연물을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당장 여러 분야에서 천연물 마케팅이 얼마나 인기를 끄는지 생각해보자. 재료를 동결 건조해서 곱게 갈아낸 천연조미료, 플라스틱보다 훨씬 환경친화적이라는 종이빨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으로부터 얻은 물질은 ‘안전’의 대명사쯤으로 취급된다.

따지고 보면 천연물이 무조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는 선입견은 신화에 가깝다. 화학적 정제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고 천연물을 그대로 쓴 화장품은 알러지 유발물질이 많아 독할 때가 많다. 천연 조미료에는 여러 불순물이 섞여 원하는 맛만 깔끔하게 내기 어렵다. 종이 빨대는 벌목과 분해 과정까지 고려하면 일부 썩는 플라스틱 제품보다 생산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다만 이러한 선입견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자연적인’이라는 말은 ‘생물이 만든’과 거의 같은 의미로 통한다. 대부분의 천연성분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물로부터 얻은 성분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결국 오랜 세월 동안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남은 생물이 생명현상으로 만들어낸 물질인 만큼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하지 않겠냐는 논리다.

천연물이 자연물보다 반드시 안전한 것은 아니다만, 어지간한 인공물보다 효율적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자연에 사는 생물들은 과거 탄생한 생명 중 ‘가장 후손을 잘 남긴’ 개체, 즉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력과 번식력이 높은 개체만 살아남은 결과다. 오랜 세월 진화를 거쳐 쌓여 온 능력이다 보니 자원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더 적은 자원을 소모할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스럽지 않은 인공 조미료’라는 선입견에 못 견딘 나머지 식품회사들이 최신 발효공학을 응용해 미생물로부터 MSG를 생산하자 화학적으로 합성할 때보다 생산단가가 낮아진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생명의 이러한 능력을 조금 더 폭넓게 활용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생명체를 공장으로 활용하는 ‘합성생물학’이다.

 

정교한 기계, 생명

‘합성생물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치 신화에 나오는 ‘키마이라’처럼 다양한 생물이 기괴하게 조합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인공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합성’이라는 단어와 자연 그대로를 상징하는 ‘생물’이라는 단어가 생뚱맞게 조합된 모습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합성이란 기존의 것을 짜맞춰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모습으로 ‘창조’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연에 존재하는 상태에 가깝게, 비슷한 수준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한다는 의미다.

설계라는 말에서 감지할 수 있듯, 합성생물학은 생물을 철저하게 기계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이미 데카르트 시절부터 생명현상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려 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생명에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사체를 조각조각 모아서 하나의 개체를 완성해봐야 흉측하게 기워놓은 살덩어리가 탄생할 뿐, 생명이 창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생물학 역시 탄탄한 기계론의 반석 위에 쌓아올릴 수 있으리라 여겼다. 다만 생물학자들에게는 아직 자신감이 부족했다. 생명현상이 워낙 복잡해서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 탓에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재구성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DNA 발견으로 생명현상을 정보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보였다. DNA에 기록된 정보 하나로부터 단 하나의 효소만 합성되어 하나의 기능만을 나타낸다는, 즉 유전자와 기능 사이에 철저한 대응관계를 가정하는 오페론 가설이 등장하면서 생명에 대한 기계적인 관점이 완성됐다. 유전정보와 조절 메커니즘의 묶음인 오페론은 그 자체로 완결된 구조를 지니며 종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작동한다. 대장균에 있든 코끼리에 있든 사람에게 있든 동일한 정보를 담은 오페론이면 정확하게 동일한 기능을 보여준다.

이는 유전자가 기계와 마찬가지로 기능적인 모듈로 분리되며,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규명하면 형질 발현 과정을 제어할 수 있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듈화다. 생명현상은 모듈로 이루어지며, 마치 기계처럼 이 모듈은 구조적, 기능적으로 동일하다면 교체도 가능하다. 이를 조금 인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생명은 ‘합리적 설계(rational design)’를 따르므로 논리적인 구성요소로 분해하고 다시 조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한 가지 지식을 더해보자.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거의 모든 생명현상이 일련의 생화학 반응에 의해 나타나고 여기에는 효소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고기를 먹으면 위액에 있는 펩신이 단백질을 일련의 아미노산 사슬인 폴리펩타이드로 쪼개고, 이자액의 트립신이 폴리펩타이드를 두 개나 세 개의 아미노산이 결합한 형태로 쪼개며, 소장의 펩티데이스가 이를 다시 아미노산으로 쪼갠다. 각각의 생화학적 분해 단계마다 서로 다른 효소가 작용하며, 이들 효소의 설계도가 보관된 DNA의 오페론은 분해할 물질이 있을 때 작동하여 필요한 만큼 효소를 합성한다.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어떤 생화학적 반응이든 이런 식으로 반응할 물질이 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유전자가 발현해서 반응 산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결국 생명현상을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오페론이 하나의 효소를 만들고, 이 효소는 특정한 물질을 다른 특정 물질로 바꾼다. 즉, 일정한 조건이 주어질 경우, 조건에 부합하는 무언가가 작동해서 특정한 결과값을 내놓는다. 수학 책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바로 ‘함수’다. 오페론 가설을 확장하면 결국 생명현상을 ‘함수의 연쇄’로 해석할 수 있다. 생명현상에 개입하는 각각의 효소들을 특정 입력값을 출력값에 대응시키는 함수로 이해한다면 생명현상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알고리즘이 된다. 합성생물학의 출발점은 프랑켄슈타인의 아담이 아니라 바로 방대한 함수로 이루어진 알고리즘이다.

진화를 움직이는 프로그래밍 언어

생명현상을 함수와 알고리즘으로 이해하면 생명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 바로 공학이다. 생명공학이라는 말의 역사는 제법 오래됐지만 최근까지 생명’공학’이 제대로 실현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과거의 생명공학은 생명체의 복잡한 회로와 생화학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웠기에 공학에 필수적인 효율성, 즉 충분히 예측하고 제어할 수 있는 수율을 실현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러나 생명현상을 모듈화된 정보의 연쇄로 파악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나치게 거대하고 복잡해서 다루기 힘들었던 공예품인 생명현상이 언제든지 분해 조립이 가능한 간단한 블록들의 결합으로 바뀐다. 블록을 조합하기에 따라 새로운 반응을 유도할 수도 있다. 예컨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에서 포도당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과정인 ‘TCA 회로’는 반응 과정에서 옥살아세트산이 생성된다. 옥살아세트산에 어떤 효소가 작용하느냐에 따라 에너지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세포 내에서 포도당을 다시 합성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스파르트산을 만들기도 한다. 옥살아세트산을 입력값으로 갖는 함수 모듈에 따라 출력물이 달라지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효소 정보를 담은 DNA다. 효소가 생화학반응을 매개하므로 생명현상의 모든 정보는 DNA에 기록된다. 거꾸로 DNA의 정보를 수정하면 인간의 의도대로 생명현상을 재조합할 수 있다. 따라서 유전정보에 따라 반응 메커니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세세하게 규명하면 생명현상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분석 단가가 낮아지면서 ‘생명의 함수’는 점점 정교해졌다. 특히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생명현상의 생화학적 반응을 세세하게 모듈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반응 조건과 유전자, 산출물 정보를 최대한 많이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이를 자동으로 분석해서 잘 다듬어진 모듈로 포장한다. 모듈이 충실하게 갖춰질수록 알고리즘에 따라 모듈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절차는 컴퓨터 공학의 방법론과 완전히 동일하다. 생명현상의 모듈에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이름을 붙여서 명령어처럼 활용하면 실제 메커니즘을 굳이 이해하지 않고도 원하는 물질을 만드는 생명현상을 설계할 수 있다. 이는 전자회로를 검증하거나 설계할 때 사용하는 ‘베릴로그(Verilog)’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베릴로그는 대표적인 하드웨어 프로그래밍 언어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C언어와 비슷한 문법 구조를 지녀서 소프트웨어를 만들듯이 코드를 짜면, 이를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미세 회로로 변환해준다. 사람이 생명현상의 모듈을 명령어 삼아서 원하는 생명현상을 프로그래밍하면 ‘컴파일러’가 그에 상응하는 유전자 염기서열을 산출한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산출된 서열을 지닌 실제 DNA 사슬을 합성하면 이를 박테리아와 같은 생명체에 도입해 설계한 대로 물질을 생산해낸다. 이미 여러 차례의 실험을 통해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유전정보가 생명체 내에서 이상 없이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합성생물학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합성생물학은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의 발전에 힘입어 유전자 설계, 유전자 합성, 실제 테스트, 테스트 결과에 따른 설계 보정으로 순환되는 전 과정이 자동화되어 단시간에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컴퓨터 과학이 그러하듯 합성생물학도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강력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합성생물학은 점점 고도화되어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하듯 생명현상을 마음대로 설계하고 특정한 기능을 지닌 생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38억 년 동안 자연의 특권이었던 진화에 인류가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변 확대가 합성생물학의 관건

그러나 합성생물학의 기획이 성공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합성생물학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조건은 ‘질’보다 ‘양’이다. 좋은 부품을 찾으려면 가급적 다양한 후보를 확보해서 테스트해야 한다. 설계한 공정이 효율적인지 검증하려면 ‘시제품’, 즉 설계한 유전정보를 지닌 생명을 만들어서 최대한 많이 운영해봐야 한다. 모두 절대적인 숫자가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합성생물학을 비롯한 바이오 분야가 산업적 측면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점이다. 

합성생물학의 가치는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충분히 알려졌지만 아직 실증은 부족하다. 합성생물학이 경제성을 지닌 산업으로 성장하려면 아직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며, 그 종착지가 산업의 판을 바꿀 혁신인지, 아니면 아이디어는 멋지지만 실현하기는 어려운 신포도일지는 아직 모른다.

양적인 면에서 단연 선두에 있는 미국에서는 벌써부터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합성생물학의 대표주자인 긴코바이오웍스는 2021년 나스닥에 상장하며 기술주의 ‘대어’로 떠올랐다. 주식시장에서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유전자 설계 기업인 자이머젠은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으며 바이오파운드리 업체인 아미리스도 나스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미국 내 합성생물학 및 바이오파운드리 업체는 600개를 넘어섰으며, 투자액만 90억 달러에 달한다. 아직 매출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바이오 분야를 ‘포스트 IT’로 여기는 분위기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미국 외에도 영국, 덴마크, 캐나다가 일찍부터 합성생물학과 바이오파운드리 연구를 추진해 왔다. 특히 영국은 에든버러와 맨체스터 대학을 중심으로 국가 차원의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도 매섭다. 중국은 광저우 선전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는 한편 다수의 스타트업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도 바이오파운드리 예비타당성 조사에 착수하는 등 다소 늦었지만 합성생물학 분야에서 경쟁할 채비를 갖추는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바이오 산업이 급성장하고 경쟁국가의 성과가 두드러지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생명과학 연구계에서는 바이오파운드리가 구축되면 연구개발과 산업화 속도가 5배는 빨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바이오파운드리가 실증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면서 자체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처치 교수는 2015년 ‘진화는 이제 시장에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인간이 개입하는 진화는 바이오산업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은 진화의 속도와 방향이 경제적 논리에 따라 조절되는 시대다. 미래학자 닉 보스트롬(Niklas Boström)이 ‘자연의 지혜’에 (wisdom of nature)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비판한 바 있듯, 그리고 그와 함께 작업한 앤더스 샌드버그(Anders Sandberg) 옥스포드 교수가 ‘진화의 최적성(evolutionary optimality)’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듯 인간은 자연이 만든 진화를 새로운 길로 이끌고 있다.


글/ 김택원
과학칼럼니스트

과학사를 전공하고 동아사이언스의 기자, 편집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동아사이언스의 고경력 과학기자들이 의기투합해 독립한 동아에스앤씨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