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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왜 뛰어난 리더들이 없을까

 

2020년 영국은 코로나19로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국가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세계 최고의 공공보건시스템으로 인정받던 영국 국민보건서비스 NHS는 코로나19의 빠른 확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냈다. 문제는 바로 NHS의 조직문화였다. NHS는 우리나라 대기업과 상당히 유사한 위계적 조직구조를 갖고 있다. 의사결정의 정점에 경영진이 있고,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는 각 단계를 거쳐 승인을 받는 구조다. 이런 의사결정 시스템은 위기상황에서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NHS는 더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현장의 직원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파격적인 혁신을 단행했다. 현장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모든 부서의 직원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머리를 맞대어 논의하고 협력하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실행해 나갔다. 그러자 과거 6개월~1년이 걸리던 일들이 단 며칠, 혹은 몇 주 안에 해결되기 시작했다.

 

집단지성을 설계하고 조정하는 리더십의 시대

영국의 경영사상가 헨리 스튜어트의 <해피 매니페스토(Happy Manifesto)>에 소개된 이 스토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NHS의 경영혁신을 주도한 사람은 NHS 산하 BHRUH 트러스트의 CEO 토니 체임버스다. 그가 밝힌 혁신의 성공비결은 ‘직원들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무엇이 필요한지만 묻고 지원하는’ 리더십의 변화였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을 ‘시스템 혁명’으로 정의하고 세계의 리더들에게 수평적인 시각에서 시스템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스템 리더십’으로 변화할 것을 당부했다.

세상의 패러다임은 이미 변화를 시작했다. 조직의 상징이던 피라미드 형태의 수직적 구조는 퇴물이 되어가고 있다. 강력한 권한의 소수 리더에 의존한 결정이 아닌, 다수의 의견이 시스템을 통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국가도, 기업도 집단지성의 플랫폼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15년간 풀 수 없었던 효소의 구조를 밝히는 문제를 과학자들과 시민들이 게임을 통해 합동으로 연구한 끝에 3주일 만에 해답을 내놓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백과사전을 펴내는 일을 수백만 명이 10년 안에 끝냈다. 컴퓨터로 연결된 사람들이 이런 목표를 몇시간, 며칠, 몇 년 안에 달성할 수 있다.”

미국 MIT 집단지성센터 CCI가 집필하고 있는 <집단지성 핸드북(The MIT Collective Intelligence Handbook), 가제>의 첫 장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집단지성은 최근 새로 등장한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전 세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다. 집단지성을 설계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새로운 문명의 생존자를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개인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시공간의 제약 없이 빠르게 상호작용하는 세상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갖춘 개인과 소수의 문제 해결능력은 거대한 집단의 아이디어와 협력의 힘을 절대로 당할 수 없다. 따라서 주요 의사결정자로서 권력을 행사했던 리더들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바로 의사결정의 독점적 권한을 내려놓고, 다수 구성원의 집단지성의 조직의 역량으로 최대한 발현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 하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설계와 조정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특히 시스템의 설계자로서 리더의 자기인식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인식이 되지 않는 리더들은 인지편향에 휘둘리는 의사결정과 경청하지 못하는 의사소통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결정이 편향된 직관과 외부의 관점을 무시하는 과신에 의한 비합리적 판단의 결과일 가능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리더는 많지 않다.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조직의 리더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성공의 경험을 축적하고, 집단에서는 언제나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이들도 비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그런데 잘못된 의사결정들을 되짚어 분석해보면 대부분 스스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인지편향과 과신이라는 숨은 조정자를 찾게 된다. 인지편향은 무의식의 작용으로서 누구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리더의 인지 편향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고, 타인보다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다수의 사람을 대리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력과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은 국가의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잘 나가던 기업의 문을 닫게 하거나 회복하기 어려운 재해를 조래하는 등 막대한 폐해로 나타나며, 그 결과의 비용은 불행히도 모두의 몫이 된다.

지금을 위기의 시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의 세상을 뉴노멀 (New Normal)이라고 얘기하지만, 과연 이후에 정상 (Normal)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는 세상이 가능할까? 언제든 수시로 닥쳐올 ‘비정상’, 즉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어버렸다. 진폭이 크고 속도가 빠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국가와 기업 등 모든 조직의 필수 역량으로 언급되는 이유다. 조직의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은 리더의 책무이며, 이는 리더 자신의 본질적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인간의 의사결정이 많은 경우 인지편향에 휘둘린 판단의 결과임을 증명해낸 행동경제학은 리더의 자기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따라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자기인식이다.

미래를 바꿀 혁신가이자 뛰어난 경영자인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2020년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다’고 솔직히 토로했다. 그는 ‘리더가 가장 잘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리더의 자존심보다 회사가 ‘덜 잘못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더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직원들이 리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리더가 직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일론 머스크의 단언에서 리더십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리더십 이론의 과잉 시대다. 새로운 리더십을 찾는 수요가 그만큼 많은 현실의 방증이다. 하지만 성공하는 리더십의 정답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리더십은 결과가 아니다. 변화를 읽고, 위기에 대응하고, 실패로부터 회복하는 기본 역량을 바탕으로 조직에 영감을 불어넣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서점가에는 늘 ‘리더는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넘친다. 개념의 정의도 많고 트렌드에 따라 뜨고 지는 리더십의 유형도 다양하다. 실제로 유행하는 리더십의 유형에 부화뇌동하는 경영자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유형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일찌감치 ‘모든 환경에 들어맞는 리더십 역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직을 완벽하게 이끌어갈 만능의 리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과 비즈니스의 성숙 단계, 직무 특성 등 요구되는 역할에 따라 그에 맞는 최적의 리더십이 있다는 얘기다. 다만 행동경제학은 어떤 유형의 리더이든 하나의 자질만큼은 공통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로 ‘인간을 이해하는 역량’이다.

서로 다른 개인의 차별성을 통합하는 역량이 국가와 사회,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조직의 문화에서 집단의 갈등을 부담하며 소통의 길을 여는 역할이 바로 리더의 몫이고, 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속도와 안정, 도전과 신중, 분권화와 통합, 개인과 집단 등 공존이 어려운 양극단의 세상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존재가 바로 리더다.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의 신경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승자효과 (The Winner Effect)>에서 모든 사람들은 권력을 갈망하며, ‘리더의 뇌가 권력에 취하면 사나운 개가 된다’는 말로 권력의 오남용을 경고했다.

리더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발생하는지 꼼꼼하게 지적하는 실험과 사례들을 읽다 보면, 간간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착각과 오해들을 직시하고, 인지편향에 지배당한 직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있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통계학자이자 의사인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우리가 편견과 거짓으로 가득한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살고 있으 며, 직관의 판단에 의존할 때 왜곡된 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한다. 팩트에 기반한 합리적 사고를 위해서는 통계적 관점으로 편협한 인식과 고정관념을 의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변화하는 세상과 정보에 대한 끊임없는 학습과 인간에 대한 탐구다. 더 나은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려면 성공한 리더를 벤치마킹할 것이 아니라, 먼저 ‘인간으로서 자신을 깨닫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글/유효상 교수
숭실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박사 출신으로 차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장, 동국대학교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숭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로는 혁신전략, 비즈니스 모델, 유니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