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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지식생산성

혁신 아카데미는 혁신의 주요 이론과 개념을 소개하고 실제와 연계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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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현 부교수 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단순히 수사학(Rhetoric)이든 엄연한 실체이든 간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산업계는 물론 사회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증기기관과 전기라는 동력원에 기반한 1, 2차 산업혁명은 단순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한편,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신산업을 창출하는 구실을 해 왔다.

정보통신과 컴퓨터 기술에 기반한 3차 산업혁명 역시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한 산업을 창출하였으며, 생산직과 사무직을 불문하고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불러일으켰다.

4차 산업혁명은 발전속도와 융합의 정도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막대할 것이라는 예측에 기반을 둔다.

핵심 기술은 인공지능, 로봇, 정보통신 등 3차 산업혁명기의 기술들이다.

기존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기계의 노동대체는 숙련기술과 전문지식 보유자에게 더 우호적이었다.

즉, 단순육체노동이 보다 쉽게 기계로 대체되는 한편, 기술과 지식으로 무장한 노동은 오히려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혜택을 보아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이러한 패턴을 뒤집는다.

의사, 변호사, 기자, 교사, 건축가 등의 전문직 지식노동자는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길 위험성이 큰 반면, 미용사, 원예사, 청소부, 수선공 등의 육체노동 직업은 기계에 의한 노동력 대체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01, 02.

모든 지식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은 창의적인 작업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기술전략의 수립, 신제품 아이디어의 도출, 연구개발의 수행과 관리 등은 여전히 기계보다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

기계에 의해 대체될 지식노동도 일거에 대체 되는 것이 아니라 작업단위로 분할돼 인간이 하기엔 지루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던 작업들이 우선적으로 기계에 의해 수행될 것이다.

예를 들어, 변호사의 업무라면 수임사건과 유사한 수많은 판례를 찾고, 읽고, 분석하여 요약하는 것일 테고, 의사라면 보고된 수많은 질병의 증례를 읽고 분석하는 작업일 것이다.

즉, 변호사와 의사라는 직업이 일거에 소멸되어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우선 기계에 의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되는 과업이 기계에게 맡겨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더 현실적이다.

만약에 이와같은 변화가 실제로 도래한다면(이미 이 중 일부는 IBM Watson과 같은 인공지능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살아남는 변호사와 의사는 단순히 판례를 분석하고, 질병과 치료의 증례를 분석하는 것 이상으로 창의적 지식창출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즉, 지식노동자, 지식생산조직이 수행하던 과업 중 보다 더 단순하거나 반복적인 지식노동과 보다 더 창의적이고 가치창출적인 지식노동의 구분이 명확해진다.

지식노동자의 위기를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역설적이게도 조직의 지식생산성의 질과 양을 증진시킬 대책이 더욱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계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난 세기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매년 약 3%, 100년간 약 50배 향상했다03.

제조생산성의 향상은 기본적으로 테일러주의(Taylorism) 사고에 기반한다.

즉, 과업(Task)을 면밀히 관찰하고 작업자들의 동선(動線)을 분석하여 이 중 과업의 목적에 불필요하거나 중복적인 작업요소를 제거하거나, 순서를 바꾸거나, 도구 또는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은 업무프로세스 혁신(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총 품질관리(Total Quality Management), 도요타 생산시스템 등 최근의 생산관리 방식에도 여전히 적용되어 효과를 내고 있다.

단순·반복·육체노동의 생산성 향상에 적용되던 원칙은 지식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목표가 정해져 있고, 작업이 세부 과업단위로 분할 가능할 때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지가(즉, 최소한의 투입만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어떻게 끄집어 낼 것인가가) 성과를 결정한다.

이와 같은 업무 효율성 향상은 지식노동, 특히 4차 산업혁명기 지식노동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반복 가능한 지식작업은 컴퓨터에 의한 대체가 더 효율적이다.

4차 산업혁명기 지식노동자는 비반복적이고, 비정형적인, 독특하고 창의적인 형태의 지식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연구개발 프로세스의 예를 들어보자.

연구개발 프로세스 중에서도 반복적이고 정형적인 작업(예를 들어 다양한 물성을 조합해 새로운 재질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지식노동으로서의 차별적 가치를 잃어갈 것이지만, 창의적 문제해결 원칙을 적용한 작업은 여전히 각광받을 것이다.

연구개발상의 기술적 문제해결 과정은 새로운 기술적 원칙을 발견하거나 기존 기술원칙을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하고 실험하는 과정이다04.

새로운 소재를 개발할 때 기존의 정형을 따르지 않고 다른 학문 분야에서 개발된 원칙을 적용한다든가, 엔지니어들의 루틴 또는 패러다임을 벗어난 공정과 원칙을 실험해 본다든가 하는 것이 그러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기에 필요로 하는 지식생산성은 단순히 단위 시간에 많은 양의 지식을 흡수한다든가 창출한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집단의 창발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기존의 지식창출 경로를 타파하는 실험, 그리고 기존에는 결합될 것 같지 않아 보였던 다양한 지식영역을 재조합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류의 지식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은 무엇일까?

구글의 조직관리에서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업무 시간의 20%를 자유로운 창발과제에 할애하도록 하는 것, 최고경영진이 참여하는 금요자유토론(Town Hall Meeting)은 잘 알려져 있다.

구글은 또한 “7의 법칙”을 거꾸로 적용한다.

효과적 감독과 관리를 위해 부하직원을 7명 이하로 유지하라는 경영학 금언을 역으로 이용해 관리자 당 7명 이상의 부하직원을 두게끔 하여 오히려 감독과 관리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월급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의 말(HiPPO, Highest Paid Person’s Opinion)을 듣지 말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지식의 원천은 “개인”일 수밖에 없음을 잘 이해한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견이 조직차원에서 취합될 때 새로운 창의적 지식이 발현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10배 생각하기(Think 10X)’를 통해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근원부터 뜯어고치는 급진적 혁신문화를 독려한다05.

지식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지식노동자 스스로 과업을 정의하도록 하여야 한다.

단순반복 노동은 주어진 과업을 ‘어떻게 잘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지식노동은 ‘과업이 무엇이냐’를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03, 06.

경영컨설턴트는 타 회사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수임회사에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는다.

우선 수임회사의 문제를 파악하여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문제를 이해하고 정의하기 위해서는 학습과 지속적 혁신이 필요조건이다.

구글의 자유과제를 위한 20% 시간할애라든가, “7의 법칙” 등은 직원들 스스로 과업을 정의하게 하기 위한 조직 관리 수단이다.
 
Netflix 또한 통제보다는 상황조성(Context)이라는 조직문화를 유지하고 있다07.

상사가 과업을 정의하여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원 각자가 회사와 팀의 사정을 이해하여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할 역량을 개발함으로써 혁신을 창출하라는 것이 취지이다.

두 번째로, 지식노동 생산성에 있어 품질 개념이 양이나 효율성(투입 대비 산출) 개념보다 우선되어야 한다03.

구글의 ‘Think 10X’ 모토가 드러내듯 경쟁적 차별성이 없는 아이디어 수십 개보다 경쟁사가 생각지 못했던 대박 아이디어 하나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이다.

Tesla Motor의 창업자 Elon Musk가 민간 로켓으로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목표도 처음에는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지식노동의 성과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명확한 추진목표의 설정이 필요하다.

기업의 지식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구체적인 목표로 전환시켜야 한다.

일본의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스즈키는 “1cc당 1,000엔”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여 불필요한 부품 제거와 재개발을 추진하는 동력으로 삼는다08.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등 대기업은 종종 “올해가 위기다”라는 말을 한다.

위기 극복이라는 인위적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혁신의 동력을 구하는 방식이다09, 10.

마지막으로 지식노동자는 그 자체로 기업의 자산이자 생산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03, 06.

단순반복 노동자는 기계부품과 같이 대체 가능한 비용으로 인식되는 것(숙련, 경험효과 등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에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관리개념이 아닌 “전략적” 인적자원관리가 조직의 지식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핵심 경영수단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Netflix의 경우 훌륭한 회사는 존경받는 동료와 팀으로 이루어진 회사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훌륭한 동료가 훌륭한 인재를 키운다는 관점에서 채용과 인적자원관리를 진행한다07.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지식노동의 개념과 중요성은 이미 알려진 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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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지식노동의 위기와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는 이때, 각 기업의 조직관리가 지식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제대로 정렬되었는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01 Susskind, R. & Susskind, D. The future of the professions: How technology will transform the work of human experts.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015)

02 Brynjolfsson, E. & McAfee, A. The second machine age: work, progress, and rosperity in a time of brilliant technologies. (WW Norton & Company, 2014)

03 Drucker, P. F. Knowledge-worker productivity: The biggest challenge. California management review41, 79-94 (1999)

04 Arthur, W. B. The structure of invention. Research Policy36, 274-287 (2007)

05 Schmidt, E. & Rosenberg, J. How Google Works. (Grand Central Publishing, 2014)

06 Ramírez, Y. W. & Nembhard, D. A. Measuring knowledge worker productivity: A taxonomy. Journal of Intellectual Capital5, 602-628, doi:doi:10.1108/14691930410567040 (2004)

07 Hastings, R. Netflix Culture: Freedom & Responsibility. (2011)

08 Nonaka, I. & Toyama, R. The theory of the knowledge-creating firm: subjectivity, objectivity and synthesis. Industrial and Corporate Change14, 419-436, doi:10.1093/icc/dth058 (2005)

09 Kim, L. Crisis Construction and Organizational Learning: Capability Building in Catching-up at Hyundai Motor. Organization Science9, 506-521, doi:10.2307/2640276 (1998)

10 Nonaka, I. A Dynamic Theory of Organizational Knowledge Creation. Organization Science5, 14-37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