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기술혁신 성공사례는 기업의 연구책임자 인터뷰를 통해 성공프로젝트를 기술혁신 측면에서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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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욱 연구소장 한화케미칼(주) 중앙연구소

공동 작성_ 이동기 대표(SBP전략경영연구소)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기업은 보통 여러 차례 부침을 겪으면서 변화하고 진화해 나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부터 가지고 있는 우월적 시장 지배력이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늘 시장의 기대보다 한발 앞서 나가며 각고의 노력으로 현재와 미래의 성장동력을 구축해 나간다.

질레트와 다우니, 페브리즈 등 우리 생활에 친숙한 브랜드명으로 잘 알려진 P&G를 예로 들어보자.

3년간 3명의 CEO를 맞을 만큼 험난한 시기를 보내온 P&G는 현재 연간 10억 달러 이상 매출을 일으키는 브랜드를 무려 24개나 가진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오랜 기간 펼쳐온 다양한 혁신활동이 가져온 성과다.

토머스 에디슨의 실험실이 갖고 있던 창의력과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이 갖고 있던 대량생산 속도 및 안정성을 결합시킨 개발 철학 아래 P&G가 추진한 혁신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참고 자료: How P&G Tripled Its Innovation Success Rate, Bruce Brown, Scott Anthony, 2011, HBR).

먼저, 오랜 경영활동에서 획득한 다양한 사업적 지식과 시장 및 고객에 대한 노하우 등 과거의 기반을 유지한 채 성장하는 존속적 변화(Transformational-sustaining)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카테고리 내에서 시장을 세분화하거나 카테고리를 확장하여 그에 따른 시장을 키워 제품의 판매량을 늘려 나가는 방식이다.

두 번째, 신제품·신사업 전개 방향과 방법에 대한 전략적 결정, 그리고 그에 따른 하부 체계를 재구축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 사업의 강화(존속적 변화)와 완전히 새로운 신제품(New-to-the-World)의 개발에 대한 자원 배분(Portfolio)에 대한 결정, 연계된 조직과 기능에 대하여 역량과 역할을 세분화하고 세부 사업이나 제품군별로 필요 기능의 조합을 통하여 재구성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전략적 방향에 따른 단위 활동들이 강력하게 연계될 수 있도록 하고 그에 따른 평가와 검증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CEO, CFO, CTO 등 각 주체별로 혁신과 전략의 평가를 서로 분리해 운영했던 과거와 달리 완전히 통합된 프로세스 내에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신사업의 경우는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개념의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관리와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의 발전 이끈 두 개의 기술

오늘 살펴볼 기술개발 성공사례는 한화케미칼의 ‘메탈로센 하이브리드(Hybrid) 촉매’와 ‘염소화 폴리염화비닐(CPVC, Chlorinated Poly Vinyl Chloride)’개발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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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화케미칼(주)(이하 한화케미칼)이 독자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석유화학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신기술 인증을 획득하며 그동안 고부가 석유화학제품 생산을 위해 투자했던 결실을 이뤄냈다.

그렇다면 이 두 개의 기술은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자.

CPVC는 기존 PVC의 염소 함량을 높여 열·압력·부식에 견디는 성질을 높인 제품으로 소방용·산업용 특수 배관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CPVC를 만드는 기술의 핵심은 염소의 흡수 속도가 빨라지도록 PVC의 Porosity를 높여 CPVC 물성을 향상시키면서도 CPVC의 최종제품인 Pipe 생산성을 유지 내지 증가시키는 것이다.

한화케미칼은 PVC를 구형화하고, Porosity를 증가시키므로써 CPVC 생산성을 30%가량 높였으며, CPVC Pipe 생산성을 경쟁 제품 대비 증가시켰다.

국내 CPVC 공급은 그동안 미국, 일본, 프랑스의 해외 업체 4곳에 전량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화케미칼은 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1990년대 중반 기술 개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2012년 1월 다시 기술 개발에 나섰다.

한화케미칼은 4년간 연구개발 끝에 2015년 말 이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국내 최초, 세계 다섯번째 독자 개발이었다.

한화케미칼은 ‘차세대 촉매’로 불리는 메탈로센 촉매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개발하였으며, 국내 최초로 기상중합공정에 적용하여 상업화를 성공하였다.

메탈로센 화합물은 고분자를 중합하는데 쓰이는 촉매의 일종으로 고부가 제품에 주로 활용되며, 단일 촉매를 사용하는 기존 방식 대비 강도와 가공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이 기술을 적용할 경우 고온과 고압에서 50년간 사용할 수 있는 PE-RT(난방용 배관) 제품 생산이 가능하며, 타 용도에도 최적 물성을 구현하는 맞춤식 규격 생산이 가능하다.

기술 개발은 2013년 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3년여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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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로센 하이브리드 촉매 및 CPVC 기술 개발 배경과 성공 요인

한화케미칼이 이처럼 신기술 개발에 연이어 성공한 배경은 사업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에 기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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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PE(Polyethylene, 폴리에틸렌)를 중심으로 하는 제품의 상업화 공정과 더불어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이미 차별화된 제품군(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메탈로센 촉매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석유화학산업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PE 시장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또한 1967년 PVC를 국내 최초로 생산한 경험과 더불어 염소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고부가가치의 제품 생산을 위한 전략적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범용 제품이 장기간에 걸쳐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중국이 관련설비에 대한 투자를 확충하면서 시장은 공급 과잉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시장의 수요 또한 고부가 특수(Specialty) 핵심 제품 기반 사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신기술인 염소화 폴리염화비닐(Chlorinated PVC)의 개발은 이러한 시장 경쟁 심화와 새로운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제품이다.

그럼 지금부터 ‘꿈의 촉매’로 불리는 메탈로센 하이브리드 촉매 기술과 고부가 제품인 CPVC 기술 개발 과정과 성공 요인을 살펴보자.


기술개발 성공요인① - 자체 기술력 확보를 위한 도전

자체 기술력에 의한 상업화 추진을 위하여 전사가 끊임없이 도전했다는 점이다.

성공하는 기업, 특히 제조기반의 기업의 경우 존속과 성장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독자적인 기술의 보유 여부에 달려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유망 산업은 몇 개의 글로벌 기업들에 의하여 시장이 좌지우지되는 일이 많다.

그 결과 수익성 높은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4~5개에 불과하다.

그 외의 기업은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는 정도다. 이러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개발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한화케미칼은 시장의 변화 방향을 미리 읽고 향후 발생하게 될 공급과잉에 대응하기 위하여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전환한다는 전략 아래 CPVC(고부가염소화 PVC) 개발과 메탈로센 하이브리드 촉매 기술 개발을 추진하여 성공하였다.

그 과정에서 두세 차례의 프로젝트 실패와 1,000번의 반복적 실험, 10여 차례에 걸친 양산 테스트 등을 수행한 사실은 높이 살만하다.


기술개발 성공요인② - 핵심 기술에 기반한 기술 개발 추진

자사가 보유한 시장 지식과 기존 기술의 개발과정에서 확보한 핵심 기술에 기반하여 기술개발을 추진한 점도 큰 성공요인이다.

기업 간 제품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래서 완성품이 생산될 때까지 연관 기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또한 장치산업의 경우에는 새로운 사업을 위한 생산라인 구축에만 몇 천억 원의 자본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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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사업과 관련된 리스크가 크다.

대부분 석유화학기업은 메탈로센 촉매의 자체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을 수행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화케미칼 역시 이미 차별화된 품질력을 보유하고 있어 메탈로센 촉매 기술의 추가 확보에 대해 다소 소극적 이었다.

그러나 고품질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고객사 제품의 가공성 향상과 고부가화를 위하여 메탈로센 하이브리드 촉매 시스템 개발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핵심기술력이 뒷받침되어 있어 비교적 무난히 성공할 수 있었다.


기술개발 성공요인③ - 연구 자료의 축적과 재활용

과거 연구 자료의 축적과 재활용에 적극적이었다는 점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업은 연구 개발부터 사업화의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 경쟁이 사업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만일 시행착오에 의한 시장 진입 시점(Time-to-market)이 지연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과거의 지식이나 노하우를 분석하거나 내재화하여 현재의 사업이나 기술에 응용하는 것에 매우 둔감하다.

그러나 과거의 연구개발활동 과정에서 확보된 다양한 결과물들은 전혀 다른 제품이나 애플리케이션 개발에도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새로운 아이디어 또는 실패한 제품의 개발을 다시 추진할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기술개발 성공요인④ - 경영층 및 기능조직 간의 든든한 지원과 신뢰

경영층 및 기능조직 간의 강한 믿음과 절대적 지원 또한 주효했다.

한화케미칼에서는 메탈로센 하이브리드 촉매 개발에서 파일럿 이후 10여 차례에 걸친 양산 테스트에서 거듭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는 단지 한 번의 실험의 실패 그 이상으로 치명적이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의 생산 차질과 설비 정비 등 관련 사항까지 고려하면 1번의 실패마다 매출 및 기회 비용까지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CPVC의 경우는 자체 기술개발을 기반으로 대규모의 공장 건설 투자를 결정한 점이 눈에 띈다.

자체 기술력 확보가 향후 석유화학업계에서 차지하게 될 위상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화케미칼은 그동안의 성공체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차세대 성장 동력의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KAIST와 미래기술 연구소를 설립하여 공동연구를 통해 바이오 화학을 포함한 유화 분야의 신사업 영역에 대한 기회를 탐색하고 있다.

또한, Specialty 제품 개발 및 유화 분야의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 서울대와 신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연구기관들과의 협력 활동을 하고 있다.


시사점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초창기에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플랜트가 설계 된 까닭에 오래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술력은 아직 미흡한 상태다.

그래서인지 자체 기술력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그에 따른 공장 건설 등을 추진하는 사례가 흔치 않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 개발에 성공한 한화케미칼의 연구개발 활동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첫째, 기업의 존속을 위해 기존의 핵심 사업에 집중하면서도 미래를 위한 변화 방안을 늘 강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화케미칼은 기존 사업 내에서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술적 장벽이 높은 시장에 진출하고자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제품의 고부가화를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사업화에 성공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확보하였다.

두 번째, R&D 활동은 근본적으로 신제품 개발과 신사업 추진을 통한 매출 확보와 수익 창출이 중요하다는 것에 이견이 없지만, 기존의 ROI(Return On Investment)를 넘어선 소위 ‘Beyond ROI’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사업, 신제품 개발을 추진하면서 재무적 관점에서의 수익성에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 신제품 개발 자체가 진행되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면 자칫 더 큰 미래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한화케미칼은 시행착오를 거듭할 때마다 재무적 손실과 기회손실 비용이 발생했다.

보통의 경영자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수익성은 낮지만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한 기술도입 방식을 제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수치 이상의 가치를 생각하며 끊임없는 도전과 시행착오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신제품 및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가지고 그에 맞는 새로운 지식 관리체계를 갖ASR춰야 한다.

또한 그 체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 정해진 순서나 품질, 수량은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해당 기업이 추구하는 전략적 방향 아래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식이 축적되어 기술력은 향상되고 신시장에 대한 적응력 또한 빨라진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네 번째, 조직 기능은 서로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통합적이고 혁신적인 관점에서는 견제와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간혹 연구부문과 사업부문 간 갈등과 불신이 쌓일 경우 신제품 개발은커녕 성과 또한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한화케미칼은 달랐다.

양산라인에서의 테스트 과정에서 한 번의 실패가 생산의 차질과 매출 손실, 기회비용 발생으로 이어졌음에도 자체 기술력 확보를 위한 지원을 결코 아끼지 않았다.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연이은 실패에 미안한 마음을 가진 연구자가 경영자와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기라도 하면 ‘이제 다섯 번 실패 했을 뿐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어?

실패의 원인을 파악해 다음에는 개선된 신제품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되지’라는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경영층은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도 꼭 기억해 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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