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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과학탐구 - 움직이는 지구, 지진은 피할 수 없다면?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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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1, 5.8의 지진은 이후 400회가 넘는 여진을 계속하며 위세를 떨쳤다.
 
한 달이 지나 10월 말에는 경기도 수원에서 규모 2.3의 지진이 발생, 우리나라 어디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렸다.

한반도만이 아니다. 20세기 후반 동안 지진에 대한 연구와 건축물 내진 설계 기술은 놀랍도록 발전했지만 전 지구적인 지진 피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규모 9.1의 2004년 인도양 지진은 대규모 쓰나미를 일으켜 14개국 23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고, 2010년 아이티의 수도 인근에서 일어난 규모 7.0의 지진은 수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1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에 뒤이은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덮쳤다. 지난해 네팔, 올해 이탈리아 내륙 등 지진은 해마다 지구 곳곳을 습격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고 있다.

대체 지진은 왜 일어날까? 확실한 건 지구 위에 살고 있는 한 지진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 뿐이다. 지구는 일종의 퍼즐이다.

유라시아판, 북아메리카판, 남아메리카판, 태평양판, 아프리카판, 인도-호주판, 남극판 등 7개의 커다란 판상(Tectonic Plate)과 그보다 작은 여러 개의 판들로 이뤄져있다. 이 판들은 해저산맥과 해구를 경계로 나뉘어 있다.
 
지진파를 통해 바다 밑의 지각 형태를 관찰할 수 있게 된 뒤에야 우리는 이러한 판의 경계를 그려볼 수 있게 됐다. 판의 경계 지역은 불안정하며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지구라는 퍼즐이 보통의 퍼즐과 다른 점이라면, 퍼즐 판 하나의 두께가 100㎞에 이른다는 점이다.

꿈쩍도 않을 것 같은 이 100㎞ 두께의 단단한 암석층 밑에는 힘을 받으면 움직일 수 있고, 실제로 움직이기도 하는 ‘연약권(Asthenosphere)’이 존재한다. 판들은 고정불변의 상태가 아니다.
 
판의 이동 속도는 대체로 1년에 10센티미터 이내지만 판마다 속도는 제각각이다. 우리는 두께 100㎞의 뗏목 위에서 느린 항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대륙 이동설이 제기된 때는 1915년이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야 인정을 받았다. ‘무엇이 움직이는지’는 이제 겨우 알게 된 상태다. 판의 구조나 이동에 대한 지식은 걸음마 단계다.

대륙들이 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니 지진을 예측한다는 일은 요원하다.

‘리히터’ 규모로 익숙한 지진학자 찰스 리히터는 지진을 예측하기란 “나무판에 무릎을 대고 구부리면서 언제, 어느 부분에서 먼저 갈라질까 예측하려는 상황”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지진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건축물의 내진 설계와 조기경보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진 조기경보는 지진파의 두 종류인 P파와 S파 중 더 큰 피해를 낳는 S파의 속도가 다소 느린 점을 이용한다. 일본에서는 P파 감지 1초 만에 운행 중인 열차의 전원을 자동 차단해 대형 열차사고를 막은 바 있다.

건축물의 내진성이란 지진에 대해 저항력이 있어,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고 버티는 힘을 말한다. 오늘날의 건축물 내진 설계는 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규모 8.3의 지진이 시발점이다.

1,400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지진 이후의 동시다발 화재로 도시의 80%가 폐허가 된 참사에서 벽돌조의 건물은 지진에 취약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외벽만 벽돌로 마감한 경우가 아니라 구조물 자체가 벽돌로 된 ‘연와조’ 건물의 경우 지진에 가장 취약하다.

철근은 휘어지면서 버티지만 벽돌은 쪼개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후 내진 설계는 철골이나 철근 콘크리트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일반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2개의 기둥과 그것을 잇는 아래위의 보로 이루어진 사변형 구조다.

이 구조는 수직 하중에 대해서는 견고하지만, 지진처럼 수평 방향의 힘에 대해서는 충분치 않아서 내진벽이나 경사부재 등으로 지진에 대비한다. 건물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기본이지만, 무조건 강한 게 능사는 아니다.
 
1997년 이탈리아 아시시 지방에서 발생한 강진에서 건물 내구력 강화를 위해 설치한 철근 콘크리트 무게 때문에 문화재가 붕괴됐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철근 콘크리트로 벽을 단단하게 지은 건물은 지진을 겪으면 금이 가거나 파괴되어 나중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현대의 건축물은 내부에 가스, 전기, 수도 등의 시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가능한 건축물이 손상되지 않으면서 지진을 견딜 수 있는 구조에 관심이 모아진다.

건물이 지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내진 공법으로 면진, 제진 공법이 있다. 면진 공법은 건물이 지면에 닿는 부분을 최소화해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건물의 기초와 본체 사이에 슬라이딩되는 구형의 베어링이나 납과 고무가 적층된 면진 장치를 삽입해 지진시 지진파 에너지를 흡수해 건물의 진동을 억제한다.

제진 공법은 지진파를 감지하면 건물에 부착된 무거운 물체를 이용해 진동을 없앨 수 있는 방향으로 건물을 움직이도록 힘을 걸어 지진의 충격을 상쇄한다.

이보다 소극적인 제진으로 바닥과 천정에 주어지는 충격을 건물의 기둥과 벽 내부로 흡수시켜 지진파를 분산, 흡수하는 방법이 있다.

감쇠 장치(댐퍼 Damper)를 넣어 진동을 제어하는 방법이다. 건물이 어느 정도 흔들리지만 파손을 막을 수 있다. 지진으로 손상을 입은 경우에는 감쇠장치만 교환하면 되기 때문에 유용하다.

내진 설계는 현대 건축의 전유물이 아니다. 현재 이란 남부 지역인 고대 페르시아의 도시 파사르가대(Pasargadae)에서는 기원전 6세기경 진도 7의 지진을 견딜 수 있는 건축물이 지어졌다.
 
또 잉카 문명에서 모르타르(Mortar, 시멘트와 모래를 물로 섞은 반죽) 없이 돌의 모양을 맞추는 방법으로 쌓아올린 자연석 돌담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애슐라(Ashlar), 마야 문명이 10~12세기에 건축한 24m 높이의 피라미드 엘 가스틸로 등도 지진에 강한 건축 방법을 사용했다.

한반도에서 지반이 가장 불안정한 곳 중 하나인 경주 불국사 역시 지진을 고려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경주 일대는 이미 신라시대 지진 피해가 기록된 지역이다. 불국사는 울퉁불퉁한 자연석 화강암 위에 인공석을 딱 맞게 깎아 맞물려 얹는 ‘그렝이 기법’을 사용했다.
 
이런 방식은 지진 때 좌우 흔들림을 잘 견디고, 석재 사이에 있는 틈이 지진 에너지를 분산, 흡수한다.

석축 안쪽에 쌓은 석재가 흔들리지 않게 석축에 규칙적으로 박아 넣은 1.8미터 길이의 ‘동틀돌’도 내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불국사의 이러한 내진 설계는 목조 건축에서 사용되는 ‘짜맞춤’ 방식을 화강암으로 응용한 것이다.

지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철근의 힘처럼 일정한 강도도 필요하고, 목재처럼 흔들림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현대의 내진 설계는 건축 재료와 규모에 따른 적절한 내진 방법의 선택, 첨단 재료의 개발 외에도 전통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등 다각도로 안전을 위해 경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진 설계가 만능은 아니다. 고베 지진처럼 상하 진동에 의한 지진은 현대 건축 공법으로 대비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내진 설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은 지반의 특성을 조사하고 검토하는 일이다. 1985년 멕시코시티에서 일어난 지진의 경우 지진 규모도 8.1로 컸지만 매립지에 세워져 지반이 약했던 탓에 피해가 커졌다.

2011년 동일본 지진 때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역시 내진 설계는 규정대로 되어 있었지만 쓰나미가 집결한 해안선 곶에 위치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1988년에 들어서야 내진 설계를 도입했다. 2015년 개정을 통해 3층 이상, 또는 500㎡ 이상인 모든 건축물에 대해 내진 설계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건물 중 6.5%만이 내진 설계가 반영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설계상의 수치이니 실제로는 더 열악할지 모른다. 영화 ‘터널’의 설정처럼, 설계도대로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부실시공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댐이나 핵발전소 등 상상 불가할 피해를 낳을 기간 시설의 내진 설계는 과연 믿을 만할까? 경주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고, 국내외 지진학자들의 경고는 섬뜩하다. 모두가 살아남기 원한다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