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 - (주)대경산업 이규대 회장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그리고 향후계획 등을 알아봅니다.


지속적인 기술혁신으로 헬스케어업계를 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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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이라면 한번쯤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꾼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알고 경험했듯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어쩌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가슴속 한켠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들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내달리고 싶어진다.

이처럼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을 일깨우고 이루게 해주는 한 경영인이 있다. 작은 유통회사에서 시작해 이제는 최첨단 헬스케어 체어로봇분야의 최강자를 꿈꾸는 대경산업 이규대 회장의 성공스토리와 비전을 소개한다.


공동작성_ 강석철 교수(한국기술교육대)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이종민 과장(산기협)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대경산업은 강원도 원주시 동화산업단지내에 위치한 헬스케어 로봇 전문R&D제조업체다.

자그마한 유통기업으로 시작한 대경산업은 2004년 헬스케어시장에 진출해 프리미엄 안마의자, 체어봇, 요화학 분석기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불과 10년만에 국내 헬스케어 업계를 이끄는 선두기업으로 입지를 다졌다.

본격적인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안마기기 등 헬스케어 제품에 대한 인기가 급증하는 가운데 작년 9월 제14회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으며 시장성과 기술력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는 강소기업이다.

대경산업의 최고경영자인 동시에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수석부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규대 회장과의 만남에서 그가 계속해서 강조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끝까지 살아남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주변에서 도산한 기업들을 참 많이 봐왔습니다. 그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픈데 그걸 보면서 늘 다짐합니다. ‘끝까지 살아남자. 어떡하든 살아남아서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 되자’라고요.”그의 비장한 각오에서 그동안의 고충과 시련을 느낄 수 있다.

원대한 꿈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쳐 사라지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계속 듣자하니 한 기업의 수장이기 전에 그의 인생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경상북도 풍기에서 태어난 이규대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가세가 기울면서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지속했다고 한다.

“선생님들의 보살핌으로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녔어요. 하지만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 중학교 때까지 구두닦이나 식당일 같은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2학년이 되면서 가정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잠시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언제나 아낌없는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던 선생님의 눈물어린 호소에도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했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이 모두 대학을 갈 때 특전사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가난 때문에 당장 대학에 갈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4년 6개월의 장기복무를 마친 그는 군에서 모은 돈을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했고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대학에 입학해 마케팅을 공부한 후 본격적인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 자기사업에 대한 꿈을 간직한 그는 4곳의 사업체를 옮겨다니며 부지런히 일을 배웠다고 한다.

“내 사업을 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일을 빨리 배우기 위해 여러 회사를 옮겨다니며 일했죠. 그때는 정말 밤낮없이 일만 했던 것 같아요.”

불철주야 업무에 매달리다보니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 또한 빠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이사 직함을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마친 그가 본격적인 자기사업에 뛰어든 것은 서른네살되던 1991년 11월. 단돈 30만원을 밑천으로 배추장사를 시작했다.

시작은 비록 초라했지만 특유의 영업력을 무기로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며 1996년 5월 마침내 ‘대경통상’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의류명품을 포함한 정수기, 헬스케어기기 등 돈이 된다 싶은 제품은 가리지 않고 유통시키며 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재정관리도 엉망인 데다 IMF가 겹치면서 큰 손실을 입기도 했죠.” 그 시련의 시기에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 평생의 업이 된 안마의자였다.

1997년 우연히 일본의 자동안마의자를 소개받아 국내시장에 선보였던 그는 1990년대 후반 안마의자와 공기청정기, 정수기 등을 백화점과 온라인 유통채널 등을 통해 본격 판매해 대성공을 이뤘다.

“1년에 한두개 상품은 히트를 시켰으니 그야말로 대박이었죠. 하지만 내가 만든 제품이 아닌 다른 회사가 만든 제품을 갖고 사업을 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더라고요. 전동안마시장이 커지고 안정적으로 성장하니까 일본기업과 수입업체가 자신들이 직접 판매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수순인데 힘들게 개척한 시장을 무력하게 빼앗기는 상황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판매할 제품은 내가 직접 생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회장은 2001년 대경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한 후 기술인력을 채용하고 장비를 구입하면서 전동안마의자 생산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2003년에는 부도난 공장을 인수해 본격적인 제조에 돌입한 결과 같은 해 12월 드디어 대경산업의 이름으로 제조한 첫 제품이 출시되었다. 결과는 역시 대성공이었다.

'Medical Dream’이란 자체브랜드의 첫 제품인 '메디컬체어 MD-777’은 빠르게 시장에 유입되며 국내시장을 선점해 나갔다.


예측하지 못한 시련, 신뢰로 이뤄낸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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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이규대 회장은 남다른 열정과 도전으로 유통사업에서 승승장구했으나 제품제조 및 공급사의 횡포 등 여러 난관에 봉착하면서 혁신적인 제품개발만이 기업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제품개발과 제조를 위해 공장을 설립했지만 안마의자 개발과 생산 경험을 가진 인력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개발인력의 부재로 당시 일부 대학에 연구용역을 맡겼으나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고 7~8억원의 큰손해를 본 경험도 있어 결국 이 회장은 대경산업 스스로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조직신설에 착수했다.

“어려운 경영여건이었지만 중소기업으로서 결코 쉽지않았던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핵심인력 영입을 위해 38세의 연구책임자에게 연봉 1억원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지요.” 당시 그의 통큰 결단을 통해 2006년 6~7명의 연구인력을 중심으로 기업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대한민국 1등 브랜드를 만들어 내리라는 기대와 꿈도 잠시.
 
절호의 기회와 시련의 시기가 동시에 찾아왔다.

연구소 설립 직후인 2006년 12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10대 성장동력산업 중 하나인 ‘사용자 생체인식을 활용한 헬스케어 로봇안마기(체어봇; Chair+Robot)’ 과제에 대한 산학연 연구개발사업에 대경산업이 기업측 사업자로 선정되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서울대, 건양대 등과 공동개발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개발착수 후 1년쯤 지난 2008년 4월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 닥쳐왔다. 전사적인 차원에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프로젝트의 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려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인지하고 핵심기술과 관련 자료의 유출을 방지하기는 하였지만 회사의 성장이 몇년전으로 뒷걸음치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법적인 문제해결에 무려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결국 매출이 급감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당시 사건을 회고하며 물질적인 손실 못지않게 심리적인 상처가 매우 커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웠다고 전했다.

큰 배신감과 좌절감에 수차례 자살의 유혹을 느낄만큼 극심한 정신적인 피해를 겪었지만, 비가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처럼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이후 이 회장은 경영자로서 회사를 지켜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충격이 정말 컸습니다. 금전적인 것보다는 신뢰에 대한 배신감과 그동안의 허송세월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국가적 사명감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기업주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결국 긴 법정투쟁 끝에 1, 2심에서 무죄를 받은 데 이어 2011년 10월 대법원 최종심에서도 결백함을 인정받았어요.”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그 어렵고 긴 고난의 시간을 견디는 동안 국책과제로 수행중인 헬스케어 로봇안마기 개발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이 돌아온다.

“국민의 혈세로 지원하는 국가과제를 게을리 할 수 있나요. 끝까지 완료하기로 결심하고 당장 공석이 된 연구소장을 새롭게 영입하기로 했죠. 지인들이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채용공고를 냈죠. 그 때가 2008년 5월이었는데 국내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가 왔는데 면접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죠. 현재 상황이 매우 열악한데 극복해 나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새로 영입한 이가 바로 현재의 연구소장으로 지금까지 이회장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득해요. 기술유출 사건에 소송까지 휘말리다보니 과제 수행기간이 고작 2년반밖에 남지 않은 거예요. 다들 초초한 마음에 밤을 새다시피 연구개발에 매진했어요.”

그 결과 2011년 10월 정부의 최종평가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고 2012년 11월 ‘체어봇’의 시제품을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미래 캐시카우 역할을 할 제품을 확보하게 되었다.

직원들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믿고맡기는 이규대 회장의 신뢰경영이 빚어낸 결과였다.

“저는 개발과 생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또한 인위적인 통제와 관리는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경영진과 직원들을 믿고맡기는 편이에요. 꾸준히 직원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내 가족과 같이 대해줄 때 더 큰 성과와 충성심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이 회장은 잃어버린 2년을 만회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 연구소장과 연구원들에게 한없이 감사할 뿐이라며 모든 성과를 직원들에게 돌리고 있다.


기술이 경쟁력이다

“유통업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내가 개발한 제품이 아닌 남의 제품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든 물건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결국 퇴출당하기 때문이죠.”
 
지난날의 사업경험을 통해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신기술 축적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 믿는 이규대 회장은 기술개발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노력의 소유자다.

2006년 기업연구소를 만들고 큰 국가과제를 수행하면서 대경산업을 R&D회사로 전환시키고 연매출액의 10% 이상을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신기술, 신제품개발 등 기술혁신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2006년 국제우수전기제품대전에서 ‘대통령표창’, 2007년 제42회 발명의 날 ‘산업포장’, 2011년 발명의 날 ‘국무총리표창’, 그리고 2013년에는 제14회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에서 ‘동탑산업 훈장수훈’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그동안 획득한 약 180여개의 실용신안, 특허권 등은 국내외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핵심경쟁력이자 헬스케어시장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아울러 이 회장은 회사의 생존과 미래전략을 위한 2 Track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첫째는 기존의 프리미엄급 헬스케어 체어로봇과 건강용 의료기기를 캐시카우 품목으로 지속육성하고 미래를 대비한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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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시련 끝에 일구어낸 미래제품인 ‘체어봇’과 ‘요화학분석기’에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완벽한 상품화 기술개발을 통해 미래 신사업으로 육성하려는 목표를 구체화하고 있다( 그림 1 참조).

여기서 잠깐 대경산업의 주력제품 두가지를 소개한다.

먼저 ‘체어봇’은 생체인식이 가능한 지능형로봇 마사지의자로 사용자의 혈압, 심전도, 체지방 등 각종 생체측정 센서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통해 사용자의 현재 건강상태를 수치화해 알려주며 사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마사지 부위와 모드를 지능적으로 판단해 사용자가 최적의 안마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2011년 상반기에 국가과제 완료 후 본격적인 기술사업화를 위해 3년간 이 회장이 자체 R&D예산을 투입하여 글로벌 마케팅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최첨단제품이다.

최근 어렵게 정부 조달품목으로 승인을 받은 ‘요화학분석기’에도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스트립지에 소변을 묻혀 리더기로 읽히면 당뇨, 간경변, 간염 등 18가지 각종질환의 발생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소형 경량 의료기기로 가정에서도 손쉽게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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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간 각종 해외전시회에 참가하여 호평을 받으며 미국과 독일 등 7개국에 3년간 500만달러 수출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과 중국과 800만달러 규모의 수출계약 협의를 하는 등 조만간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림 2 참조).

또한, 거대시장 공략을 통한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최근 Ningbo라는 중국회사와 Medical Dream이라는 상표를 사용하며 중국내 현지시장공략을 위한 합작회사를 51%(대경) : 49%(Ningbo) 비율로 협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현지에 엔지니어를 파견하여 공동개발할 계획을 세우는 일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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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부유층의 확대와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어 이들 계층을 상대로 맞춤형 헬스케어 로봇이 개발·공급될 경우 좋은 사업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림 3 참조).


끊임없는 배움과 사회공헌

대경산업을 세계최고의 전동안마의자 메이커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후 연구개발에 혼신을 다한 결과 마침내 꿈을 이룬 이규대 회장.

그의 이력을 보니 역시나 눈에 띄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서울공대 AIP(최고산업전략)과정을 포함한 연세대, 한양대, 고려대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 이노비즈협회 최고경영자과정 등 다수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한 사실에서 배움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저는 인문계 출신이라 개발과 제품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2006년 공장인수 후 제조를 하면서 이공계 출신들의 생각과 기업철학 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고 비슷한 제조업을 하는 기업주의 고민을 서로 나누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사실 이 회장은 바쁜 일정으로 인해 모임에는 자주 참석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이나 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기회가 되는 자리에는 반드시 참석하고 필요하면 정관계 인사들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대쪽같이 곧고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임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관대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과거 주변의 도움 속에서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낸 이 회장은 마음속 깊이 부채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대개의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봉사와 환원을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고 난 뒤로 미루기 쉽지만 그는 어느 정도 먹고 살 정도의 형편만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2~3억원 정도를 매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변에 어려운 기업과 이웃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해요. 직원이 입사 후 신용불량자로 밝혀지면 극복하도록 최대한 도와줍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어려움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 그 때마다 일일이 도와주고 했는데 그게 끝이 없더군요. 하지만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 되면 발벗고 나섭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때도 개인적 영달을 위한 목적보다는 상호도움이 되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서로 잘 나갈 때 만난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반면 어렵고 힘들 때 도와준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하며 서로 챙겨주는 진실한 사이가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지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냥 아무 이유없이 도와주면 자칫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공장준공식 같은 행사에 진행자로 초대해 수고비조로 사례를 하니까 서로 부담도 없고 무척 좋더라고요.” 하며 수줍은 미소를 건넨다.

그렇다면 회사내의 인력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특히 지난 2008년 발생한 기술유출 사건 이후 조직 및 인력관리체계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 때의 일은 지난 과거일 뿐 직원에 대한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아무리 CEO가 관리하고 통제해도 잘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 같아요. 비록 중소기업일지라도 각자의 전문분야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조직과 인력 담당임원들이 잘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맡겨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욱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그만큼 성과도 커진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기술유출 사건의 여파로 급락했던 매출은 3년만인 지난해 3배로 급증했으며 기술혁신제품인 ‘체어봇’과 ‘요화학분석기’ 등이 본격적인 매출로 이어질 경우 수년내에 천억대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대경산업은 크게 3개 영역으로 구분하여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영업과 마케팅은 이규대 회장이, 연구개발은 연구소장이, 그리고 원주 및 동탄공장은 공장장의 책임 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만큼 확실한 보고체계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는 제가 별도로 보고를 받지 않고 자율운영토록 맡겼으나 최근에는 2주에 한번 주요현안과 진척사항을 보고받고 있습니다.”

더불어 회사의 발전이 직원의 발전과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있다. 지난 2001년 당시 목표는 2010년쯤 되면 연봉 1억원을 받는 직원이 10명에 이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비록 결과는 기대에 못미처 현재 억대 연봉자는 3명에 불과하지만 다시 희망의 화살을 쏘아 올리는 중이다.

2020년이 되면 10억대의 고액연봉자가 나올 수 있도록 회사를 만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저는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에 욕심을 내고싶지 않아요. 다만 욕심이 있다면 기술개발과 혁신을 통한 글로벌 차원의 우수한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시한번 강조한다.

“기업의 미덕은 지속성장과 생존입니다. 지금은 기업의 존망을 위협하는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에 생존 그 자체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의 목표는 끝까지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얻은 열매는 임직원과 함께 나누고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 회장은 인재채용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학력차별이 없고, 남녀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졸자나 대졸자의 초임차이를 두지 않는다. 철저히 능력위주의 평가를 통해 ‘성과가 있는 곳에 반드시 보상이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작은 유통회사에서 시작해 이제는 당당히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헬스케어 전문기업으로 우뚝선 대경산업의 이규대 회장.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조직원들의 화합과 결속을 끌어낼 수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신뢰경영으로 구성원과 함께 더 큰 성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의 또다른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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