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열쇠 - 창조경제에서 노벨과학상에 다가가는 길
혁신의 열쇠는 우리 사회 및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혁신의 키워드와 마인드에 대해 조망하는 칼럼입니다.
‘가을을 타는 남자’라는 말이 있다. 언젠가부터 10월이 되면 과학기술계도 가을을 타는 것 같아 안타까워 보인다.
21세기 들어와서 꾸준히 과학부문의 노벨상을 수상하고 있는 이웃 일본 과학자들의 소식은 우리 과학자들을 더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노벨상 후보에 우리 과학기술자들의 이름이 부쩍 오르내리고 있다.
뒤집어보면 노벨상이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창조경제나 노벨과학상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각각 새로운 사업모델과 과학업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다.
창조경제 패러다임이 정착된다면 우리 과학기술자의 노벨상 수상은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노벨상이 우리 과학기술의 목표는 아닐지라도 한 국가의 과학역량을 보여주는 중요지표임은 틀림이 없다.
특히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업적은 창조경제를 뒷받침해줄 핵심요소이다. 일본은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한국은 왜 아직 수상자가 안 나오는가에 대해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양과학을 도입한 지 150년이 되는 일본에 비해 우리는 50년밖에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세계 과학계와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스웨덴과의 긴밀한 과학기술협력사업을 추진해 온 것도 차이가 있다.
우리는 아직 한 분야를 장기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의 자율성이 부족한 것도 주요원인이라고 한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필자가 10년전에 일본 사이타마(埼玉)에 있는 히타치기초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연구내용과 수준에 깜짝놀랐던 적이 있다.
크게 놀란 것은 히타치라는 기업이 기초연구를 수행한다는 것과 이 연구소의 도노무라 박사는 노벨상 순번을 기다리는 후보라는 사실이었다.
세계최고의 권위자가 기업에 있어도 필요한 연구시설의 구축을 지원해주는 일본정부의 연구개발정책이 신선했었다.
히타치기초연구소는 양자계측, 뇌과학 응용, 나노기술 등에 차세대 이후 사업분야로 전략적 투자를 하고 있었다.
양자계측 연구는 새로운 계측시스템과 소재 및 디바이스 개발에 응용되고 뇌과학 응용은 인간의 질병치료에 응용될 수 있다.
나노기술 개발도 새로운 고기능 소재의 개발과 고온 초전도체 개발에 응용될 수 있다.
언제 제품화가 되고 이익을 실현할지 모르는 분야에 세계최고의 연구자를 고용하여 투자할 수 있는 일본기업의 높은 벽을 실감했던 적이 있다.
2014년 노벨물리학상도 토요타의 꾸준한 지원이 이룬 결실이라고 한다. 미국도 기업가의 기부로 조성된 재단(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 등)의 지속적인 연구비가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든든한 돈줄이 되고 있다.
사실 미국과 일본 및 유럽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공통된 기본요건은 개인의 열정과 창의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과학자에게도 그런 열정과 창의성이 있다고 전제하고 우리 과학기술계가 가을을 타지 않도록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차분히 논의해봐야 할 것이다.
지난 50년간 우리는 과학입국(科學立國)과 기술자립(技術自立)을 기치로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우리 경제가 압축성장한 만큼 과학기술도 비약적 발전을 해왔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설립을 시작으로 민간기업의 기술역량 제고와 대학의 연구기능 확충으로 이어지는 정부의 과학기술정책도 거의 마이더스의 손이었다.
연구개발투자와 과학기술인력의 상대적 규모도 세계 상위수준이 되었다. 적어도 따라잡는 데까지는 완벽한 성공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ㆍ사회적 환경변화에 따른 새로운 도전은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극복할 수 있다. 정부의 R&D정책과 제도가 창조경제 구현에 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R&D의 목적과 사업의 포트폴리오 구성도 창의적 기초연구와 사회이슈 해결로 중심을 이동하고, 연구수행체제도 미션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런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자율과 책임이 담보되고 성실한 실패가 용인되는 연구관리시스템이 도입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제기해왔던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이슈였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금전적인 인센티브 부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자아실현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자존감을 지켜주는 R&D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국과 일본처럼 기업가의 기부로 조성된 연구재단이 많이 나와야 한다. 정부의 연구비보다 오히려 부담이 없고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하여 기초연구에 유리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의 연구재단 설립이 기업가들의 기부문화를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정부는 기업가들의 이런 기부행위를 활성화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정책과 연구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우선 정부와 과학기술계, 과학기술분야 이해당사자(Stakeholder)간의 신뢰형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즉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담당자가 과학기술관련 당사자간의 이해를 조정하여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하나는 과학기술관련 당사자들간의 네트워크 강화와 경제·인문·사회 관련 전문가와의 협력강화이다.
이는 과학기술은 과학자간의 이해관계보다 국가와 사회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며, 사회적 이슈나 문제의 해결이 과학기술만으로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도 글로벌 메가트렌드와 과학기술간의 상호영향을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화가 정부출연연구소에 정착되어야 민간기업이나 대학으로 확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