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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아이콘 - 충분히 자유롭다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 : 놀란 부시넬

혁신의 아이콘은 기술혁신과 기업경영에 성공한 글로벌한 인물들의 성공비하인드 스토리를 분석하는 칼럼입니다.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의 유일한 멘토, ‘놀란 부시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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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부시넬(Nolan Bushnell)은 미국의 게임개발자 겸 사업가로, 아타리社의 창립자이다.

그는 게임산업의 동이 트기도 전인 1972년 아타리(ATARI)라는 회사를 세워 탁구게임 퐁(Pong)을 개발함으로써 대성공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인 게임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성공비결은 바로 ‘창의성’과 ‘혁신’이다. 게임산업에 불을 붙인 그의 모든 성공작들은 바로 창의성과 혁신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글_ 박은몽 소설가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동시에 게임산업에 화려한 붐을 일으켰던 ‘퐁’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어린시절부터 가전제품을 뜯어보는 것은 물론이고 나름대로 각종기계를 만들어보는 것을 즐기던 놀란 부시넬이 처음 게임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그의 나이 19세 무렵이었다.

라쿤 놀이동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공을 굴려 병을 맞추는 놀이’ 코너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게임기기를 운영하면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되었다. 게임산업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것이다.

그 후 MIT내 동아리에서 스티브 러셀 등과 공동으로 개발한 ‘스페이스 워’, 대학졸업 후 전자기기 제조사인 ‘암펙스’에 입사한 후 개발한 ‘컴퓨터 스페이스’ 등을 거치면서 그의 게임에 대한 안목은 점점 깊어져갔다.

사실 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첫 작품인 ‘컴퓨터 스페이스’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중들에게는 다소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란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좀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수준의 게임이 필요함을 체득할 수 있었다.

퐁은 그러한 경험과 깨달음의 과정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놀란은 컴퓨터 스페이스 이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타리를 창업하여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그 무렵 그는 최초의 게임 전용기기 ‘오디세이’ 시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퐁’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아타리에서 개발한 ‘퐁’은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고 동전이 가득차서 게임기가 작동이 안되는 일화를 남겼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직원들을 회사의 방식대로 훈련시킬 수는 있지만 그들이 열정을 갖게끔 훈련시킬 수는 없다. 길게보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회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한다."

- 놀란 부시넬의 < 나는 스티브 잡스를 이렇게 뽑았다 > 중에서


야생마 스티브잡스의 가능성을 알아보다

창조적인 사람이 창조적인 사람을 알아본다.

아타리는 괴짜 인재를 많이 수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것은 놀란 부시넬이 창의성을 중시하는 인재관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이다.
 
회사경영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창의성’과 ‘혁신’이었고, 성공적인 게임개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영감을 발휘하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간파하고 있었다.
 
아타리는 채용광고에서부터 “노는 것인지 일하는 것인지 헛갈린다!” 등의 기발한 광고문구를 통해 아타리의 자유로운 이미지를 드러냄으로써 많은 젊은 인재들이 아타리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훗날 애플을 창업하게 되는 스티브 잡스도 그 중의 하나였다.

스티브 잡스는 어느날 갑자기 아타리社 로비에 나타나 놀란 부시넬과의 면담을 요청하여 “자신을 채용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아마 권위주의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였다면 그러한 돌출행동은 팀워크를 깰만한 불안정한 요소로 판단되었겠지만 놀란 부시넬은 달랐다.

그는 이제 막 스무살로 접어드는 스티브 잡스 안에 숨어있는 열정을 보았다. 그 열정이 만들어낼 새로운 혁신을 내다본 것이다.

놀란 부시넬은 그의 저서 < 나는 스티브 잡스를 이렇게 뽑았다 >에서 “잡스를 뽑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눈이었다. 면접장에서 잡스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했는데 불안해하지 않는 열정을 그 눈에서 볼 수 있었다. 잡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신있게 말할 줄 알았고 틀에 박힌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놀란 부시넬의 인재채용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행보 그 자체였다. 수영장에서 레스토랑에서 또는 강연장에서 전시장에서 등 어디서든지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발견하면 그 즉시 채용하곤 했다.

채용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엄격한 규칙 대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줌으로써 개인이 가진 창의성을 십분 발휘하도록 했다.
 
스티브 잡스와 그의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이 아타리에서 일할 때 “회사에서 잠을 자고 지내며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자 “보안문제로 철야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다.
 
심지어 “사무실에 개를 데려오고 싶은데 허락하지 않는다면 다른 일자리를 찾겠다.”는 한 엔지니어의 제안에 대해 놀란 부시넬은 그 엔지니어의 특출한 창의성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너도나도 개를 데려와 사무실을 개 사육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일 개를 데려오는 것은 안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허용한다.”는 규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NO보다는 YES를!

혁신은 부정보다는 긍정에서 나온다. 혁신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데서 비롯되기 마련인데, 새로운 것은 언제나 반대와 우려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놀란 부시넬이 처음 아타리를 세우려고 할 때 앞서가는 사람의 주변에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부정적인 예견으로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 게임산업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대였으므로 안정적인 직장인 암펙스를 그만두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새로운 분야의 창업을 하려는 놀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놀란은 주저없이 아타리를 세웠고 게임산업을 열었다.

창업 후 그는 아타리의 CEO로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운 대로 부정이 아닌 긍정의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NO가 아니라 YES야말로 혁신과 새로운 영감을 현실로 이뤄주는 단초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NO라고 말하지 말라!” 놀란은 이렇게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누구의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상관이라 하더라도 “안돼!”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에 다른 해결방안을 찾아보도록 한 것이다.

놀란 부시넬은 아타리의 CEO 자리를 내려놓은 후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며 20여곳의 회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게임개발에 성공했다.

이제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혁신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