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04 - IT인재의 대국에서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
2014년 7월 방한한 시진핑(習近平)은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대중강연을 행하였다.
그는 한-중 관계와 남북한 문제 등에 대해 여러가지로 파격적인 발언을 하여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강연이 더욱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가 선택한 강연장소가 서울대 공대였다는 점이었다.
그가 공대를 강연장소로 선택한 것은 중국 지도부가 얼마나 이공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시 주석 스스로도 중국의 손꼽히는 이공계 명문인 칭화대(淸華大)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이다.
1990년대 이래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은 모두 공학도였고, 이들 집권기간에 중국의 이공계 인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적 수준으로 부상하였다.
양적·질적으로 우수한 이공계 인재
중국은 인구대국답게 고급인력의 양적 수준이 대단하다. 2012년 말 기준 중국의 전체 대학원 재학생은 171만 9,818명이며 졸업생은 48만 6,455만명이다.
이는 2002년에 비해 각각 3배와 5배가 늘어난 수치이다. 그 중 이공계 재학생은 79만 6,503명, 졸업생은 21만 8,700명으로 절반에 육박했다.
지난 10여년간 중국은 이공계 석·박사인력 150만여명을 배출하여 같은 기간 25만여명을 배출한 한국보다 7배나 많았다.
연구개발인력은 2011년 기준 401만명으로 전세계 연구개발인력 중 25.3%를 점유하여 미국(17.3%)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연구개발인력 증가율은 15.1%로 9.2%에 불과한 한국을 훨씬 앞선다.
질적인 지표에서도 중국이 한수 위이다. 세계 100위권 대학에 한국은 서울대와 KAIST만이 올랐지만 중국은 홍콩대와 홍콩과기대, 홍콩중문대, 베이징대, 칭화대 등 5개 대학이 이름을 올렸다.
논문의 질을 가늠하는 과학기술인용색인(SCI)에 등록된 논문수와 피인용건수도 중국이 앞선다.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SCI 논문을 많이 게재하고 있으며 피인용논문 점유율도 한국의 3.5배에 이른다.
중국의 인재의 양적·질적 성장은 이미 해외에서 공신력을 얻고 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세계적인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급속하게 늘어나는 중국과학자들의 논문을 흡수하기 위해 2009년 6월부터 ‘네이처 차이나’를 창간하기도 했다.
개방화 이후 엘리트 교육 버리고 고급인재 대규모육성 전환
중국의 고급인력 양성은 1980년대 덩샤오핑 집권 이후 고등교육의 재건과 과학기술 연구로 시작되었다.
과학기술 교육을 국가재건의 기초로 삼는다는 과교흥국(科敎興國)의 기치를 내걸고 과학기술 발전 및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한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1995년 시작된 ‘211공정’은 21세기를 대비하여 100여개의 대학을 과학연구 분야에서 세계 일류대학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목표하에 추진된 국가 중장기 프로젝트이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112개 대학이 지정되었는데, 190억위안(3조 2,000억원)의 중앙정부 재정이 투입되었다.
1998년 5월 장쩌민이 베이징대 100주년 기념일에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만들자는 연설을 하면서 시작된 ‘985공정’에 포함된 대학은 39개로 총 300억위안의 재정이 투입되었다.
211공정과 985공정은 중국 대학 구조조정의 기폭제 역할을 했는데, 1990년대 이후 1,000여개의 대학이 통·폐합되어 428개로 줄어들었다.
예컨대, 저장대(浙江大), 항저우대(杭州大), 저장의대, 저장농대 등을 통합한 저장대는 현재 중국의 대학서열 3위권의 명문대로 급부상하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중국 대학들이 각종 평가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211 및 985공정의 성과가 본격화된 2000년대 이후에는 국제 대학평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26개 대학의 75개 학과가 전세계 랭킹 상위 1%에 진입하였는데, 이들 대학은 모두 211공정 선정대학이다.
아시아 대학순위에서도 베이징대, 칭화대 등은 일본 도쿄대와 함께 아시아 최정상대학의 위치에 근접했다.
이외에도, 과학기술 분야의 우수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중국정부는 ‘863계획’(국가첨단기술연구발전계획), ‘973계획’(국가중점기초연구발전계획) 등 다양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1986년 시작된 863계획은 IT, 바이오, 신소재, 항공 등 9개 첨단기술 분야에 330억위안을 투자하여 12만여편의 논문발표, 국내외 특허 8,000여건 등의 성과를 달성하였다.
인재특구를 통한 우수인재 양성
한편, 중국정부와 기업, 대학의 협력하에 전국 각지에 설립된 과학기술단지는 인재양성과 활용의 거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학기술단지에 대학은 지역산업에 적합한 우수인재를 공급하고, 정부는 자본과 해외 우수인력을 유치하는 것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에는 고학력 근로자 100만명, 석·박사 12만명, 해외파 인재 1만명이 상주하고 있다.
중관춘에는 베이징대, 칭화대 등 32개 명문대학과 200개가 넘는 연구소가 모여 있다. 최근에는 내륙개발 가속화로 베이징, 상하이 등 연해 대도시뿐만 아니라 시안(西安), 충칭(重慶) 등 내륙도시도 인재특구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역량이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3위로 평가받고있는 시안은 내륙지역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하고 있다.
시안 하이테크개발구의 매출액은 1999년 140억위안에서 2010년 3,200억위안으로 22배 이상 급증했으며 2만명 이상의 석사학위 보유자가 있다.
시안에는 시안교통대 등 이공계 명문대학이 즐비하여 중국최초의 우주선 선저우(神舟) 부품의 85%가 생산되며, 삼성전자가 70억달러를 투자한 플래시메모리 반도체 공장이 있는 곳도 시안이다.
인재 유출국가에서 글로벌 인재블랙홀로
중국의 인재대국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해외에서의 우수인력 유입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해외유학이 본격화된 이후 장기간 세계최대의 인재유출국이라는 오명을 써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귀국 유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2001년 12,243명에 불과했던 귀국유학생은 2009년 10만명, 2012년 20만명, 2013년에는 30만명을 각각 돌파했다.
귀국유학생 급증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는 중국경제의 급부상이다.
여기에 2008년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침체로 현지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만만치 않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고급인재의 귀국러시는 중국의 인재강국 전략에 따른 파격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2008년말 중국정부가 1인당 100만위안의 보조금 제공과 주택, 의료, 교육 등 12가지 혜택을 내걸고 해외인재 유치작전에 돌입한 ‘천인계획’(千人計劃)이 대표적이다.
중국정부가 공개한 천인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유치기준을 보면 자격요건은 55세 이하로 해외에서 박사학위 취득한 저명 대학 및 연구소의 교수급 인력, 다국적기업 또는 금융회사 임원, 해외에서 창업한 경험과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기업인 등이다.
여기에는 중국인 해외 유학파는 물론 외국인 전문가도 포함된다. 이 계획에 따라 해외에서 귀국한 인재는 지금까지 4,000명에 이른다.
천인계획이 목표를 초과달성하면서 중국정부는 2013년 9월 새롭게 ‘만인계획’(萬人計劃)을 출범했다.
만인계획은 향후 10년 동안 과학기술분야 등에서 국가적인 인재 1만명을 키우겠다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노벨상 수상이 기대되는 세계적인 과학자(1등급) 100명을 배양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어 주목된다.
만인계획은 인재를 1∼3등급으로 구분했다. 선발인원은 1등급 외에 국가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필수요원(2등급) 8,000명, 발전잠재력이 큰 35세 이하 인재(3등급) 2,000명이다.
이밖에 지방정부와 기업들도 각개전투식으로 해외인재 유치에 나서고 있다. 최근 상하이와 금융회사들이 미국과 유럽의 금융중심지인 뉴욕 월가와 런던에서 잇달아 연 금융인재 채용박람회에선 2,000여명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최근 중국 200개 기업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채용박람회를 열었는데, IT기업 베이다팡정(北大方正)은 최고재무책임자(CFO) 모집에 연봉 100만위안을 제시했다.
미국에 경기불황으로 감원폭풍이 부는 위기상황을 중국은 고급인재 발굴의 호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는 고급인재
천인계획으로 중국에 돌아와 모교인 칭화대학(淸華大學) 생명과학원 원장이 된 스이궁(施一公)은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시위대의 일원이었다.
그는 천안문사태 직후인 1990년 도미하여 1995년 27세의 나이에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30세인 1998년부터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된 세계적인 바이오과학자였다.
역시 천인계획에 선정된 라오이(饒毅) 베이징대 생명과학대학원 원장의 경력도 스이궁과 비슷하다.
라오이는 1985년 미국유학 후 UCSF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노스웨스턴대학 신경과학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다 미국 국적까지 포기하고 중국으로 왔다.
이밖에 통신업체인 촹이(創毅)를 설립한 장휘(張輝) 회장, 충전기 전문업체인 푸넝(普能) 설립자인 위전화(兪振華) 회장 등도 모두 천인계획의 수혜자이다.
천인계획의 수혜자는 아니지만 중국 인터넷 검색시장에서 70%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 2위 인터넷 검색업체인 바이두(百度)의 회장 리옌훙(李彦宏)은 중국 IT인재의 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유학파의 대표주자다.
리옌훙은 베이징대 정보관리학과를 졸업한 후 도미하여 뉴욕주립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면서 인터넷 검색엔진의 미래를 발견하고 중국에 돌아와 바이두를 창업했다.
버클리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IBM에서 일하다가 1999년 귀국하여 반도체기업 중싱마이크로를 설립한 덩중한(鄧中翰)이나 조지타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1년 귀국하여 푸젠(福建)의과대학 부총장에 임명된 천이왕(陳以旺) 등도 미국에서 성공을 바탕으로 귀국하여 중국의 첨단산업 분야에서 크게 공헌하고 있는 고급인력이다.
국내파로는 세계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馬雲)회장이 있다. 마윈 회장은 유명대학 출신도 아니고 유학경험도 없는 영어교사 출신이지만 IT에 관심을 가지고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인터넷사업을 하다가 1999년 알리바바를 설립하여 대박을 쳤다.
중국의 스티브잡스로 불리는 샤오미(小米)의 레이쥔(雷軍) 회장은 공과대학이 유명한 우한대(武漢大) 컴퓨터공학과 재학시절에 인터넷사업을 시작하여 삼성을 위협하는 휴대폰기업을 만들었다.
레이쥔은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회 대표로 중국의 IT인재 양성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다.
이에 최근들어 중국 전역에는 제2의 마윈, 레이쥔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벤처창업 열풍이 불고 있는데, 중국정부는 특히 2억명에 달하는 지우링허우(90後; 1990년대 출생자) 세대를 대상으로 투자기금, 창업 공간 및 기기 등을 적극 제공하고 있다.
IT인재 대국에서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
향후에도 중국의 우수인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욱 향상 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우수 IT인재들의 벤처창업 열풍이 불고있고 해외 우수인재들의 중국 러시도 더욱 빨라질 것이다.
특히 아직 귀국을 망설이는 중국출신 해외 우수인재들 중 상당수도 결국은 중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중국은 이들에게 거대한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데다가 중국 지도부의 열렬한 환대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인 특유의 귀소본능이나 애국심도 이들의 귀국을 촉진하고 있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기간내 입학정원이 급증하면서 중국 대학원교육의 질적 저하문제가 심각하고, 해외에서 들어오는 우수인재들의 대부분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로 중국의 체제안정에 잠재적 위협요인이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은 이들이 중국경제에 공헌하는 것에 비하면 크게 우려할 부분이라 할 수는 없다.
중국의 고급인재들로 인해 ‘세계의 공장’, ‘짝퉁천국’ 등 기술과 상관없던 중국의 이미지는 빠르게 변모할 것이다.
중국은 바이오, 이동통신, 나노기술 등에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술을 축적했으며 연구성과의 상업화도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
국내외 고급인재들을 통해 중국은 기술 ‘추격’(Catch-Up)이 아닌 기술의 ‘비약’(Leap-Frog)으로 우리를 앞지를 기세이다.
물론 중국이 유치한 해외 우수인재 중에는 국내에서 홀대받다가 중국에 둥지를 튼 한국인 우수인력들도 다수 존재한다.
우리의 젊은 ‘이공계 우수인력’이 변변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에는 수많은 스이궁, 덩중한이 연구실을 채워나가고 있다.
중국의 천인계획까지는 힘들더라도 우수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