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1

특별기획 01 - 연구소 건축의 원류, ‘소크 생물학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건축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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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를 건축할 때 제일 먼저 물어보아야 할 질문(Question)이 있다.

‘연구소 건축’이라고 하면 연구에 필요한 복잡한 기능을 위한 치밀한 공간(室)의 구성과 설비를 먼저 머리에 떠올린다. 당연히 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건물이 그렇듯이 연구소 건축은 연구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출발하는 물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

시설이 좋은 교실을 늘어놓는다고 좋은 학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긴 복도에 학생들이 매일 지내는 교실의 합이 학교가 아닌 것이다.
 
무릇 학교를 건축하려면 학생이 어떤 상황과 목적을 가지고 이 건물에 모이는가 하는 것과, 교사는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목적이 있어야 한다.
 
결국 학생과 교사라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배움과 가르침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두고 만들어지는 것이 학교건축이다.

좋은 연구소는 연구하는 사람들의 사회와 연구라는 가치를 공간과 장소로 바꾼 건축물이다. 설비가 잘된 연구소가 곧 좋은 연구소는 아닌 것이다.



소크 생물학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는 소아마비 백신을 최초로 발명한 조나스 소크(Jonas Salk)가 설립한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미국 캘리포니아 라 호야(La Jolla)에 있으며, 20세기 최고건축가 중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루이스 칸(Louis Kahn)이 설계하였다.
 
칸은 이 건물설계를 어떻게 했는지 학생들에게 들려준 강의테이프를 얻어 들어본 적이 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가 이 건물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연구소의 과학자들을 잘 살펴보니 한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과학자들이 서로에게 질투심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참으로 놀랐다. 대개 연구소를 설계한다고 하면 복잡한 기능을 어떻게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으로 구성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상례일텐데, 이 건축가는 그런 것을 말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연구에서 숨길 수 없는 무언가의 질투심으로 건축을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이 ‘질투’라는 말은 듣기에 별로 좋지않은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연구소라는 건물을 만드는 근본적인 배경을 나타내고 있다. 곧 ‘질투’는 연구자가 독립된 개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긴 복도를 두고 방들을 척척 썰어서 칸막이를 하고 문 앞에 무슨 연구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을 나열하는 것이 연구소가 아니라, 연구자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않고 마치 자신의 주택에 있는 것과 같은 방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는 소중하다는 발견이었다.
 
이에 소크 박사도 연구실은 수도원의 개실에 비유하고 건축가에게 개실을 실험실에서 떨어뜨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개인연구실은 8개씩 모두 32개를 배치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루이스 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연구소에는 깨끗한 공기와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구역이 있어야 하고, 또 양탄자가 깔려있으며 오크나무로 된 테이블이 있는 구역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과학자들은 과학을 위한 설비로부터 숨을 곳이 있어야 하고 숙고할 수 있을만한 환경이 주어져야 함을 뜻한 것이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리처드 의학생물학 연구동은 그를 세계적인 건축가의 명성을 얻게해준 작품이었지만, 그럼에도 실수가 있었다. 이 연구동에서는 연구자들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중요한 건물도 설계해 놓고 보니 연구자들은 서로 모여 아이디어를 유발시키기는커녕 자기가 있는 장소를 로커로 에워싸고 성을 만들었다.
 
건축가는 이것을 보고 과학자들은 연구에 대하여 질투하는 마음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실토하였다. 소크 생물학연구소가 연구자마다 실험동과는 떨어진 사적인 연구실을 마련해 주게된 데에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

개별 연구실의 외벽도 따뜻한 주택처럼 티크로 마감되었다. 소크연구소에 재직하면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8명이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인 프랑스 생리학자 로지에 기르망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휴스턴에 있는 연구실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곳을 보고는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어요. 연구팀 전원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하였지요.”

물론, 연구자 중 일부는 이런 생각에 크게 흥미를 갖지 않았다. 여전히 연구동 안의 벤치에서 하루를 보내거나 비커나 튜브가 있는 실험실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건축가와 건축주인 소크 박사는 개인의 연구실을 두도록 이들을 설득하였다.

이 연구소 설계의 또다른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실을 다시 배치할 수 있게 하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장래에도 각종 설비시설이 연구에 방해가 되지않게 융통성을 주는 것, 조용하게 해 주는 것 그리고 빛에 관한 것이 있었다.
 
개별적인 연구실과 다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실험동은 크게는 3층이지만 더 자세히 보면 6층 건물이다. 실험동 한 층에 또 완전히 설비만을 위한 다른 한 층이 각각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설비층은 연구를 위한 기계적인 환경이 달라지더라도 그 밑에서 연구하는 작업을 중단시키지 않고 얼마든지 따로 설비부분을 변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루이스 칸은 이렇게 사람들이 연구하는 부분을 ‘봉사받는 공간’이라고 부르고 설비층은 ‘봉사하는 공간’이라 부르며 연구소의 핵심공간을 이렇게 지혜롭게 처리하였다.

이 연구소는 한가운데 비교적 넓고 아무 것도 없는 광장을 두었다. 광장에서 보면 4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비어있어서 햇빛을 피하기 위해 걸어다닐 수 있는 아케이드로 되어 있다.

그 위로 2층과 4층에 연구자의 방이 있고, 다시 그 사이에 비어있는 3층은 테라스로 이용된다. 이 테라스에서 마음에 맞는 연구자들끼리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며 잡답하기도 하고 혼자서 바람을 쐬기도 한다.
 
3층의 빈 곳은 본래 세미나실을 배치하여 필요한 경우 이 세미나실에서 만날 수 있게 하였으나 실제로는 테라스로 만들었다.
 
단면을 보면 연구동과 연구실이 떨어져 있는데, 비어 있는 3층에서 이 두 부분은 다리를 통해 이어진다. 그리고 이 3층에서 자기 개별 연구실로 두 연구자는 내려가고 다른 두 연구자는 올라간다.
 
개별 연구실은 연구동과 떨어져 있고, 이웃하는 동료과학자와도 떨어져 있다. 그러면서 모든 개인연구실은 모두 바다 쪽을 항해 창이 나있다.
 

1층의 아케이드는 연구자가 배회하게 만든 것이다. 햇빛이 강할 때도 거닐 수 있고 비가 올 때도 거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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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 박사는 1954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13세기에 지어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을 보고 이 수도원의 회랑이 생명이라는 더 큰 질문을 묵상하는 데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생물학이 최종적으로 다루는 생명의 본원적인 의미를 소크 박사는 자연과 생명을 찬미한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소크 박사의 말이 이렇게 적혀 있다.

“희망이란 꿈에 있고 상상력에 있으며, 꿈을 실현해 주는 것은 사람의 용기이다.”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연구가 최종적으로 무엇을 향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글귀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비전을 함께할 건축가를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소크가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행한 ‘과학과 예술의 질서’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은 친구가 제안하여 건축가 루이스 칸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소크가 칸을 만난 것은 적합한 건축가를 선택해 주기를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1959년에 필라델피아에서 만나 당시 공사 중이었던 칸의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리처드 의학생물학 연구동을 보았다.

이때 소크는 이 건물에 흥미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감동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감동받은 것은 건축가 칸 자신과 이 건물을 통해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연구의 장소로 여기고 있는 건축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소크 연구소의 건축가가 되어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리고 이 부탁을 하면서 들려준 말이 한 연구자에게 1,000㎡씩 10명에게 10,000㎡의 면적을 주고 싶다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이 연구소에 피카소를 초대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칸이 피츠버그의 강연회에서 한 말을 소크가 자기 것으로 사용한 것이다. 건축가 칸이 건축주인 소크 박사와 얼마나 뜻이 잘 맞았는지 이렇게 적어 두었다.

“가장 좋아하는 건축주가 누군가 묻는다면 이름 하나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이름은 조나스 소크 박사다. 그는 나 자신보다도 더 주의깊게 내 말을 들어주었다.”

이 소크 연구소는 예산문제로 실현되지는 못하였지만 집회동과 기혼연구자 등을 위한 주거동이 더 계획되어 있었다. 특히 집회동은 프로그램의 열쇠가 되는 요소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이것들이 중앙의 홀을 둘러싸도록 설계하였다.
 
집회동에는 독신자와 방문자를 위한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독서실과 집회실이 있는 도서관이나 식당이 있었다. 이곳은 누구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만나 아이디어를 서로 교환하는 장으로 마련된 곳이었다.
 
이 집회동에는 아주 당연한 것이지만 잊어버리기 쉬운 중요한 계획이 있다. 그것은 도서실 안에 세미나실을 만들어 책을 보다가 토론이 필요하면 이 방에 곧장 들어가게 하였다.

책을 읽다가 토론하러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불꽃처럼 나타난 생각이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마련된 계획이다.
 
식당에도 세미나실처럼 따로 독립된 방이 함께 마련되었다. 식사하다가 좋은 생각이 나면 곧바로 이 방으로 이동하여 토론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실험동 아케이드의 벽한 부분에 칠판을 걸어 놓고 의자를 마련해 놓은 것도 역시 같은 생각의 일환이다. 거닐다가 좋은 생각이 나면 그 자리에서 생각을 옮겨 적으라는 뜻이다.

동료와 대화가 시작되면 어떤 장소도 금세 교실이 되게 해야 한다는 건축가의 뜻이 담겨 있다.

소크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생각의 원천을 방해없이 받아들이는 건축. 요사이 통섭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연구를 위한 사고의 횡단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게 만드는 건축. 다른 학제 사이를 횡단하게 해주고 다른 전공 사이를 결합하게 만들어주는 건축. 식사하며 대화하는 사이에 튀어나올지 모르는 작은 생각의 씨앗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배려하는 건축이 연구소 건축의 근간이다.
 
소크 박사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중정에 관심을 둔 것은 땅과 하늘과 바람이 부는 중정에서 서성거리며 새로운 발견을 기다리게 하겠다는 탁월한 식견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연구공간과 장소는 기능으로 잘 분류되고 효율과 정확함으로 우선으로 여기는 연구소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우연과 발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연구소가 필요하다.

이 건축물이 연구소라는 용도를 전혀 몰라도 한가운데 광장과 그 좌우에서 펼쳐지는 명쾌한 건축조형 그리고 건물 사이로 보이는 태평양과 푸른 하늘에 감동한다.
 
땅과 하늘 사이에서 초연한 건축물의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이런 구성으로 이 연구소는 예전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정신적인 건축물로 인식된다.

이런 초월적인 표현 때문에 건축하는 사람들은 소크 생물학연구소를 건축의 성지와 같은 곳으로 여긴다. 좌우로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군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 눈이 부신 햇빛, 건물군 사이의 비어 있는 광장 사이로 하늘이 잘려져 있다. 마치 이 장면은 에게해를 바라보고 서있는 고대 그리스의 신전을 보는 듯한데, 건축가는 이를 두고 ‘하늘을 향한 파사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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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래 두개의 연구동 사이에 있는 이 중정은 연구자들이 휴식하고 산보하는 장으로 나무를 심고 그 나무 밑에서 조용히 묵상도 할 수 있는 정원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 광장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고 ‘하늘을 향한 파사드’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멕시코의 건축가인 루이스 바라간의 조언을 받아들여 트레버틴을 깐 광장으로 바꾸었다.

루이스 칸은 이런 변경안에 매우 만족하였으며, 또 건축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조형에 크게 감탄하고 있다. 그런데 루이스 칸을 돕던 구조기술자 오거스트 코멘던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나는 몇 사람의 과학자에게 이 변경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들은 모두 돌로 된 광장보다는 정원을 바라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주변에는 메마른 땅이 펼쳐있으니 아름다운 정원이야말로 이 장소에 어울린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나는 언젠가 이곳에 정원으로 바뀌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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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를 어떻게 지으면 좋을까를 이 소크 생물학연구소를 두고 생각해본다.
 
첫째 연구자에 개인적인 공간과 장소가 어떻게 필요하다고 보는가?

둘째 연구를 위한 연구자의 사고의 예측할 수 없는 연속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게 만드는가?
 
셋째 이 연구소의 중정을 지금처럼 초월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본래 안대로 나무를 심는 것이 좋을까?

넷째 소크 박사처럼 건축주는 연구소 건물을 건축함에 있어서 연구하는 것의 가치가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건축가에게 제시할 수 있는가?
 
이 네가지는 그 안에서연구의 영감이 떠오르는 새로운 연구소 건축을 짓게 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다. 이에 답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