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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리포트 - (주)한설그린 한승호 대표이사

줌인리포트에서는 혁신기업의 대표나 연구소장 등을 만나 기술경쟁력을 향한 열정과 노력을 알아봅니다.

글_ 정라희(자유기고가)
사진_ 이완기(라운드테이블 이미지컴퍼니)


회색빛 도시에
푸른 자연의 생기를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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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녹색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수많은 녹색기술 사이에서도 (주)한설그린의 역할은 독특하다. 진짜 식물을 다루는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는 까닭이다.
 
1984년 회사설립 이후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작은 놀이시설부터 대규모 공동주택단지, 각종 환경관련 국책사업을 수행해온 (주)한설그린.

단순히 화단을 가꾸는 것이 아닌, 생태환경 디자인까지 고민하는 연구개발의 중심에는 한승호 대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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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그린’(Green)으로 건설하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2기 출신인 한승호 대표는 우리나라 조경 1세대에 속한다. 처음부터 관련분야 창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덴마크 유학을 준비하던 중 목재 놀이기구를 제작하던 한 기업의 기술고문을 만났다.

“당시 국내에서 목재 놀이기구는 개척분야였어요. 그분 밑에서 설계를 처음 배웠습니다. 그런데 유학 준비과정에서 입학시기가 예기치 않게 미뤄졌어요. 자연스레 그 회사에서의 근무기간도 늘어났죠.”

1년 후 자신에게 일을 제안했던 기술고문이 지병으로 별세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그러나 회사에서 마쳐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유학을 포기하고 일을 계속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경험이 부족했기에 홀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이쪽 분야는 리더의 역량이 결과를 크게 좌우했어요. 사업자등록이 있다고 해서 일이 잘 굴러가는 건 아니었죠. 회사를 유지하기 어려워 취업을 하려고 해도 나이제한에 걸려 쉽지 않았어요. 초창기 회사를 차린 것은 일종의 생계형 창업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한 대표는 1984년에 조경설계실 (주)한설그린을 설립했다. 한설그린이라는 회사 이름은 ‘한국을 그린(Green)으로 건설하자’는 의미.

시작은 미약했다. 어떻게든 일거리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고민했다. 여느 건설업체처럼 공사를 수주할 능력은 부족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좀 더 파고들기로 했다.

“조경을 할 때 나무만 심는 것이 아니라, 작은 놀이시설도 같이 넣자고 제안한 거죠. 그렇게 하자니 우리만의 디자인이 필요했습니다.”

흔히 조경이라고 하면 정해진 공간에 꽃이나 나무, 놀이시설 등을 적절히 설치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속에도 섬세한 기술이 곳곳에 적용되어 있다. 부속의 다양화와 단순화는 기본. 간편한 시공까지 염두에 두는 기술적인 노하우가 필요하다.

“기술로 경쟁해야겠다는 생각에 우리가 개발한 부속을 특허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설계는 디자인 특허를 보호받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혁신적인 것을 개발해도 금세 유사한 디자인이 생겨났죠.”

(주)한설그린을 따라 한 유사기술의 경우 디자인은 비슷해 보여도 안정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놀이시설이 적용된 조경디자인은 아이들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예고된 위험을 간과할 수 없었던 한 대표는 (주)한설그린의 기술을 대외적으로 공개했다. 그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금 기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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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경기술 수준을 높인 시도

이후 (주)한설그린은 생명이 숨쉬는 도시환경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두고 이른바 ‘잔디블록’을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람이 밟아도 되는 잔디보호판은 물론 자동으로 물 공급이 가능한 잔디 주차장도 선보였다.
 
이를 통해 환경을 보호하는 생태 포장재 시대를 연 것이다.

“지금도 잔디밭이 있는 곳에 가면 어렵지 않게 ‘밟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잔디블록은 인공잔디가 아닌 천연잔디로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반응이 뜨거웠죠. 그런데 이상하게 매출은 지지부진하더군요. 그때야 우리나라 조경시장 수준보다 너무 앞서 나간 제품을 시장에 선보였다는 판단이 들더군요.”

비록 눈에 띄는 성공은 이루지 못했지만, 한 대표는 국내최초로 잔디블록을 개발했다는 자부심은 크다. 그러나 당시 개발한 ‘가로녹화 시리즈’는 현재 (주)한설그린의 대표기술로 자리잡아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잔디밭을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그린블록파크’(Green Block Park)는 개방형 구조에 관수시스템을 내장한 친환경 잔디블록. 제품 내부에 튜브(Tube)가 들어 있어 물은 물론 양분 공급이 간편하다.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사용해 자동차가 올라가도 하중이 적절하게 분배되어 잔디가 망가지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

잔디가 자라는 데 필요한 물을 투과하고 저장하는 기능이 강화된 ‘그린블록스텝’(Green Block Step)은 디딤돌 디자인까지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주)한설그린의 기술력의 정점은 벽면에 조경을 하는 ‘벽면녹화’ 기술에 있다.

“식물을 심으려면 우리 분야에서 하는 말로 ‘식재기반’이 있어야 합니다. 다들 잘아는 화분이 대표적인 식재기반이라 할 수 있죠. 자연지반에 나무를 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지반이 부족한 대도시에서는 인공지반을 활용해야 합니다. 벽면녹화를 하려면 벽 전체가 식재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벽면녹화는 조경수준이 발달한 지금도 가장 난이도 높은 기술로 꼽히고 있습니다. 가끔은 벽이 없는 곳에도 보조장치를 설치해 식물을 심기도 하지요."

과거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벽면녹화 기술은 철사를 활용한 와이어(Wire)형과 철망을 사용한 메쉬(Mesh)형이었다. 벽면녹화기술도 점점 발전해 이제는 담쟁이넝쿨뿐만 아니라, 활짝 핀 꽃도 벽면녹화에 활용된다.

벽면 전체를 식생공간으로 조성하는 ‘그린패널’(Green Panel)은 포트(Pot) 여러개에 식물을 먼저 재배해 벽면에 설치하는 기술. 포트는 개별 분리가 가능해 식물 교체는 물론 패턴 변경도 할 수 있다.

또한, (주)한설그린은 자체 연구농장을 운영하며 다양한 식재기반에 맞는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기성품을 제작해 시공과 조립을 간편하게하는 시스템 역시 구축했다.

“서울 잠실의 제2 롯데월드 공사현장 가림막에도 그린패널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 보기흉한 금속패널 대신 식물로 만든 패널이 설치되니 주변을 오가는 주민의 반응도 좋습니다. 여름철에는 도시내 습도조절도 가능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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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으로 새로운 비전을 찾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환경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주)한설그린은 신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대표인 자신이 연구소장으로서 회사 설립초기부터 연구개발을 챙겼고, 2002년에는 별도로 조경생태디자인연구소를 개설하기도 했다.

특히, 환경부 차세대 에코 이노베이션 기술개발사업인 ‘수생태복원사업(Eco-STAR) 프로젝트’는 (주)한설그린이 총괄수행한 장기 프로젝트.
 
2008년부터 시작해 2014년 5월말에 마무리한 이 프로젝트는 수변녹지와 생태벨트를 조성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 이를 통해 (주)한설그린은 지형과 토양 등을 고려해 수변환경에 적합한 수변녹지를 복원 또는 창출하는 기법과 모델을 개발했다.

한승호 대표가 생각하는 (주)한설그린의 비전은 ‘조경업계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아직 국내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자연환경의 가치에 사람들이 점점 주목하면서 그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조경이 건설 쪽으로 편입된 지 이제 40년 정도 됐습니다. 요즘은 IT기술을 비롯한 첨단기술이 많이 개발되지만, 자연을 다루는 일에 관해서는 첨단기술만 가지고는 안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생물을 다루고 나무를 가꾸는 데에는 사람 손이 들어가야 합니다.”

인간의 정성에 방점을 찍었지만, 한 대표가 기술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한설그린 연구개발실의 소명을 ‘융합’으로 삼고 있다. 조경을 하기 위해서는 식물을 심고가꾸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디자인도 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나 화학에 대해서도 능통해야 한다.

“요즘은 식물에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더 잘자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하잖아요. 얼마나 검증했느냐 하는 문제는 남겨두더라도, 그런 주장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 분야에 인문학적 요소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7세기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은 알게 될 것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더욱 견고한 건물을 만들겠지만 곧 그 눈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을. 정원을 가꾸는 일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마지막 완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마천루로 둘러싸인 대도시 안에서 유려한 건물보다 어여쁜 꽃밭에 더 감동을 느낀다.
 
문명을 진보시킬 첨단기술은 앞으로도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주)한설그린의 ‘녹색기술’이 회색도시에 자연의 푸르른 생기와 감동을 불러일으키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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