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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아이콘 - 창조와 혁신의 브랜드 ‘샤넬’ 현대 여성의 몸을 해방시키다

혁신의 아이콘은 기술혁신과 기업경영에 성공한 글로벌한 인물들의 성공비하인드 스토리를 분석하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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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여성들이 가장 선망하는 브랜드 중의 하나인 ‘샤넬’은 100여년 전 패션 디자이너인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 1883~1971)이라는 여성이 탄생시킨 브랜드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받는 샤넬 감각은 당시로서는 혁신에 가까운 감각이었고, 현대라는 시대를 누구보다 빨리 읽어낸 새로운 창조였다.

글_ 박은몽 소설가

지금은 전문가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것이 어떤 분야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는 아니다.

전문가의 수준을 넘어 대가(大家)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 있다. 대가와 전문가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범상한 수준을 넘어 대가의 자리에 오른 경우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남과 다른 ‘유니크’함이 있다는 점이다.
 
예술가들은 남보다 우수하다는 수준을 넘어, 남과 다른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야만 대가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찾기 위해 수많은 예술가들이 몸부림을 친다. 그것을 발견한 다음에야 진정한 예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 개인이나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창조니 혁신이니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자신만의 세계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 여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샤넬’ 역시 그러한 창조와 혁신을 통해 탄생한 경우였다.

샤넬이라는 브랜드는 1910년 가브리엘 샤넬이라는 젊은 여성이 파리에 오픈한 ‘샤넬 모드’라는 이름의 여성 모자를 파는 상점에서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샤넬은 그저 작은 상점의 이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가브리엘 샤넬에게는 그 누구와도 다른 감각과 패션에 대한 재능이 숨어있었다. 바로 그 재능과 감각에서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창조되었다.


누구와도 같지 않은 ‘감각’에서 시작된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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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까지 여성의 패션은 여전히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때까지 여성들의 패션은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 때 궁중에서 입던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숙녀들은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숨도 못 쉴 정도로 옥죄는 코르셋 위에 겹겹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런 옷을 입은 여성들은 활동하는 데 있어서 불편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브리엘 샤넬은 달랐다. 그녀는 항상 단순함을 추구했다. 그녀의 옷차림은 항상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첫번째 연인과 함께 승마를 즐기던 20대 초반 그녀는 남자 승마복 두어벌을 가지고 양복점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이 바지와 똑같은 디자인으로 제 사이즈에 맞는 승마복 바지를 만들어 주세요.”

재단사는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다. 여성들이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다니던 시절, 바지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바지를 입고 다니던 여성이 경찰에게 경고를 받고 풀려난 일이 신문기사로 실리던 시절이었지만 결국 샤넬은 승마복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승마바지에 하얀 블라우스와 자수를 놓은 넥타이를 매고서 말이다. 남자 옷을 입고 머리를 올린 샤넬은 금세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처음 모자상점을 열었을 때도 당시 유행하던 과장된 치장과는 사뭇 다른 심플한 감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남다른 패션 감각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스스로를 상품화할 줄 알았다.

1913년 도빌에 부티크를 연 이후 샤넬의 행보는 더욱 두드러졌다. 바로 패션 혁신의 본격적인 신호탄인 ‘샤넬 스웨터’를 창조한 것이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영감을 얻었다. 연인과 함께 폴로 경기장에 갔을 때 추위에 떨다가 폴로 셔츠를 빌려입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샤넬은 편안하고 따뜻한 남성 폴로 셔츠를 응용하여 여성용 스웨터를 디자인해 냈다.

남성의 전유물이던 저지(Jersey) 감을 이용하여 코르셋 같은 것은 필요없도록 여유 있는 품에 허리띠를 두르는 셔츠를 만들어낸 것이다.

샤넬은 자신이 디자인한 스웨터에 똑같은 색상, 똑같은 감으로 수직 라인의 스커트를 코디하여 입고 다녔다. 그녀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오직 디자이너일 뿐이었지만 “나는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나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러나 예쁘기만 한 것은 본능적으로 미워했다. 나는 젊은 나이에 아주 확실한 판단력을 갖고 있었다.”

적어도 패션에 관한 한 그녀는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고, 20세기의 현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앞서가고 있었다.


“내가 곧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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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 만들어낸 패션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더욱 인기를 누렸다.

남자들이 모두 전쟁터로 나간 유럽에서 여성들은 일터로 뛰어들었고 치렁치렁한 드레스 따위는 이제 입고싶어도 입을 수가 없었다.

전쟁이 끝난 후 1920년대의 여성들은 모두가 샤넬 스타일의 옷을 입게 되었다. 긴 머리는 이미 잘려나가고, 코르셋은 사라졌다.

호리호리한 실루엣의 편안한 옷에, 허리띠를 엉덩이에 편안하게 걸치고 있었다. 현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입었다.
 
미국의 < 보그 >지는 샤넬 패션을 ‘저지 하우스’로 불렀다. 샤넬은 패션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딴 샤넬 향수를 고안해 냈다.

자신의 이름에 번호만 붙이는 방식 또한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에 해당했다. 우리가 잘 아는 두 개의 C자가 서로 대칭적으로 놓인 샤넬 로고 또한 그녀의 독창적인 작품이다.

샤넬은 “나는 정치인들이나 외교관들에게 없는 재능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바로 패션을 통해 시대를 앞서가는 재능이었다.

샤넬에게 창조란 완전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었다.

“내가 곧 스타일”이라고 말한 샤넬은 현대라는 시대를 패션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