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IN TECH - 극한의 첨단 과학기술과 그 뒤편 : 트랜센던트(Transcendence)
MOVIE IN TECH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과학기술에 대해 알아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제작에 조니 뎁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아 온 SF영화 ‘트랜센던스’ (Transcendence)가 최근 국내외에서 개봉되었다.
제목 그대도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지만 더불어 양자컴퓨터, 나노과학기술 등도 화려하게 곁들여져있는 SF물이다.
또한 이들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우려와 공포 등을 현실화한 반(反)과학기술적인 메시지도 주목할 만한데, 여기에도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글_ 최성우 과학평론가
사진출처_ 조이앤컨텐츠그룹
사이버펑크와 첨단 과학기술
천재적인 컴퓨터 과학자인 윌 캐스터(조니 뎁 분)는 인류가 오랜 세월을 통해 쌓아온 지적능력을 초월할 뿐 아니라 스스로의 학습과 자각능력까지 갖춘 새로운 인공지능컴퓨터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반(反)과학기술단체의 습격을 받아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그의 연인이자 동료과학자인 에블린(레베카 홀 분)은 윌이 숨을 거두기 직전 그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영역을 확장한 그는 나노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온갖 물질 및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까지 마음대로 조종하는 등 매우 막강한 힘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컴퓨터와 인간 뇌의 결합 등에 관련된 이 영화의 주제들은 예전부터 SF물에 자주 등장해왔다.
즉 이른바 ‘사이버펑크’(Cyberpunk) 영화라 불리는 것들인데, ‘매트릭스’와 ‘터미네이터’ 등에서는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컴퓨터에 의해 세계가 장악되고, 인간들은 비참한 삶을 살거나 거기에 대항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론머맨’과 ‘공각기동대’에서는 사람의 뇌가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결합되면서, 인간의 의식과 감정마저 컴퓨터가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가, 유전자와 밈(Meme)으로 구성되는 인간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이 영화에도 나오는 질문들을 이미 던진 바 있다.
이 영화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양자컴퓨터와 나노과학 등의 첨단 과학기술 등을 총동원하면서 인공지능컴퓨터를 초월적인 존재, 즉 거의 ‘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양자컴퓨터란 물리학의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하여 기존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서 컴퓨터의 기본논리를 제시한다. 양자컴퓨터에서는 이른바 ‘큐비트’(Qbit)라 불리는 양자비트 하나로 0과 1의
두 상태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 큐비트의 수가 늘어날수록 처리가능한 정보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n개의 큐비트는 2의 n제곱만큼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입력 정보량의 병렬처리에 의해 연산 속도는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면서 성능의 향상은 ‘초월적인’ 수준이라 할 만하다.
나노과학기술은 현재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되면서 많은 성과들을 거두고 있는데, 그 궁극은 영화에서 윌과 에블린이 꿈꾸던 천국과도 같은 세상이라 볼 수 있고, 초소형의 나노물체들이 무한복제를 통해 급속히 퍼져 나아가는 모습 또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하게 만드는 것이라 하겠다.
반(反)과학기술과 문명비판론
이 영화와 같은 사이버펑크물의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첨단 과학기술의 부작용과 잘못된 이용에 주목하면서 그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이버펑크 영화가 인류의 미래를 매우 어둡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도 ‘RIFT’라는 이름의 반(反)과학기술단체가 가공할 위력의 인공지능개발에 반대하면서, 해당 과학자들에 대한 테러와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반(反)과학기술단체 멤버들이 급기야 윌의 동료과학자 및 정부관계자와도 손을 잡게 되는 다소 무리한 설정이 눈에 띄기도 한다.
사실 인류역사상 과학기술에 대한 반대 움직임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있었다.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19세기초 유럽에서 나타났던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즉 기계파괴 운동 역시 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20세기에도 격변기마다 정치적인 변혁 주장과 아울러 문명 비판론이 고개를 들면서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반감이 커지곤 하였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컴퓨터를 개발하는 과학자 등에 대해 무자비한 테러를 실제로 감행하여 큰 충격을 준 이가 있었으니, 이른바 유나바머(UnABomber)가 그 주인공이다.
현대문명이 인류를 파괴한다는 문명 혐오주의자였던 그는 20여년간 숲속 오지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1978년부터 컴퓨터기술자 등 과학기술과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우편물 폭탄테러를 자행하여 수십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는 처음에 주로 대학과 항공사를 공격해 대학(University), 항공사(Airline)와 폭파범(Bomber)의 조합 의미로 유나바머로 불렸다.
유나바머는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추적을 받던 중 1995년에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주요 언론지에 현대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논문을 게재해 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에 그의 논문이 실리기에 이르렀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라는 제목으로 3만 5,000자로 된 그의 논문은 현대 산업사회와 첨단 기술문명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으로서 정연한 논리를 갖춘 명문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결국 동생의 제보를 받고 체포된 유나바머의 본명은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로, 그의 정체는 놀랍게도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 대학 교수를 지낸 바 있는 천재 수학자여서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유나바머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미래의 첨단 과학기술에 대해 우려와 경고를 하는 이들은 저명과학자 중에도 더 있다.
유명 컴퓨터업체인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창립자인 빌 조이(Bill Joy. 본명은 William Nelson Joy)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찍이 한 잡지에 ‘미래는 왜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Why the Future Doesn’t Need Us)라는 글을 발표하여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여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대표적인 첨단기술인 유전공학(Genetics), 나노공학(Nanotechnology), 로봇공학(Robotics) 등의 세 분야를 예로 들어 GNR로 지칭하면서, 이들 기술에 의해 인간의 개성이 말살되고 급기야는 인류가 파괴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모두 이 영화와도 관련이 있는 기술분야들이다.
물론 상당수의 디스토피아적인 SF물들은 상업성 등으로 인하여 너무 과장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과학의 오용(誤用) 및 첨단기술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경고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만은 없으며,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이를 사전에 감안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