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 - (주)우진 유계현 대표이사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향후 계획 등을 알아봅니다.

공동작성_
이동기 대표((주)SBP 전략경영연구소),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이종민 과장(산기협)

대 담_
유계현 대표이사((주)우진)


지속적 변화와 혁신을 통한
기업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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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신경, 계측기술

오늘날의 항공기에는 소위 자동항법장치가 있다. 이는 조종사가 항공기 이륙 전에 미리 정해진 목적지와 항로에 대해 입력해둔 데이터에 따라 비행 중 항공기의 방위, 자세, 비행고도 등을 자동으로 유지시켜 주는 장치이다.

영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비행기의 조종실(Cockpit)을 한번 상상해 보자.
 
다양한 표시장치, 각종 스위치, 조종간, 통신설비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고도, 압력, 기온, 속도, 높이 등 주변의 다양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계측기와 이를 표시해주는 장치들이다.

고도의 정보화·산업화 시대에서는 더욱 빠른 교통수단과 그 과정에서의 편의성과 안락성, 안전성 등이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들이 무인으로 운영되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목적지에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듯 미래로 갈수록 산업과 생활의 수단들은 더욱 첨단화되고 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계측기와 그와 관련된 기술이다.
 
이 계측기는 일상에서의 간단한 온도측정에서부터 용광로와 원자로 등 내부의 극한적 온도와 압력, 구성성분(산소, 탄소, 중성자 등) 등의 측정을 위한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이 계측기기의 생명은 최고의 ‘정밀도’와 ‘신뢰성’이라 할 수 있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최고의 기술력이 요구되고 있다.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 이번호에는 한국 계측기기 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하는 ㈜우진의 CEO이자 CTO인 유계현 대표이사를 만나 그의 인생경험과 더불어 (주)우진이 성장해 온 배경과 성공요인들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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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선망하는 직장을 버리고
중소기업으로 간 까닭은

- KAIST생의 특별한 선택

(주)우진은 1980년 선대 사장(이성범 회장)이 과거 계기회사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한 이래 우리나라의 계측기산업을 대표해 오고 있다.

창업 이래 오늘날까지 오직 계측기기 영역에서 독보적인 기술력과 사업력으로 한국의 산업을 리드하며 계측기 부문에서만 매출신장률 18%(2005년 매출 393억원, 2013년 매출 439억원)(연평균 성장률 기준)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0년 상장을 하는 과정에서 코스닥 등록가능성을 고려했지만 오히려 증권거래소에서 코스피 등록을 권했을 정도로 사업력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유계현 대표가 (주)우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창업 3년 후인 1983년. 서울대 졸업 후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주)우진에 입사하기 전 구로의 중소기업에서 병역특례기간을 보냈다.
 
KAIST생이면 누구나 희망하는 교수직, 대기업 그리고 출연연구소 등의 직장 대신 중소기업을 선택한 데는 특별한 철학과 생각이 있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중소기업을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너도나도 대기업만 가면 산업은 누가 하냐는 생각이었죠. 교수님께도 중소기업 갈 거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을 소개해 주시더라고요. 거기서 병력특례로 3년을 보내고 지금의 우진으로 왔죠.”

일찍이 중소·중견기업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보기로 한 그는 사회에서의 첫 출발이 중소기업이라는 점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당시 국내 중소기업의 인력운용 상황은 그리 여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특히 KAIST 출신의 우수인재 활용측면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열악해 과중한 업무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연구개발은 물론 생산, 마케팅, 심지어 경리나 회계업무까지 다 해야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였죠. 쉬는 시간은커녕 주말에도 일을 했으니까요.”

그 현실적 고달픔 때문에 ‘만약 대기업에서 일하게 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좀 여유롭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누구나 다 아는 국내 전자회사에 입사면접을 치르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입사를 눈앞에 두고 있던 어느 날, 현재 ㈜우진의 이성범 회장과의 우연같은 필연적 만남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주)우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 중소기업을 선호했던 그였지만, 대기업의 입사가 결정되어 있던 시점에 많은 고민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심사숙고 끝에 (주)우진을 선택하였다.

그의 결정에 당시 대기업 채용담당자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전직하는 이에게 그렇게 좋은 조건으로 입사를 제안한 것도 전례가 없는데, 그런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간 사람도 지금까지 없었다.”라며 의아해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유대표가 강조해서 이야기 하는 게 있다.

“사람은 모두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그 시기와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학생이 공부하는 데에도, 졸업 후 기업에서 처음 업무를 배우는데 있어서도 그리고 성장을 위한 초기단계에서 노력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말이지요.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업무영역을 넓게 보고 두루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첫 직장에서의 경험이 광범위한 기업경영활동의 단초가 되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유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소위 “T자형”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
 
연구개발자라도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시장을 알기 위한 활동도 해야 하고, 제품의 Concept이 구축되는 과정에 따라 기술개발의 목표가 설정되어 다시 개발과정을 거쳐 생산과 마케팅, 판매가 일어나는 일련의 주기내에서 다양한 업무와 Skill에 대해 이해하고, 그에 따른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기간산업인 철강산업에 주목하다
– 계측기 전문기업 (주)우진의 도전

기업의 경영자로서 유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추구하는 비전에 따른 주요 미션의 달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우진과 같이 전문화된 사업영역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항상 주변환경의 트렌드(Trend) 변화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고, 그 동향이 우리사업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기술개발의 주제와 사업의 차별화를 위한 주요 Point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은 새로운 사업을 지속적으로 탐색하여 사업화로 연결지어야 하는 것이다.

창업 초기, (주)우진은 바로 국가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각종 사업과 산업현장에서의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는 데에 주목했다.

신사업을 발굴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트렌드를 잘 읽고 그것이 우리 기업에서 어떤 것을 시사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트렌드에 대해 사업적으로는 어떤 새로운 기회가 있는가?’ 하는 지속적인 자문과 대응의 결과, (주)우진은 1980년대 국가의 주요 산업인 철강산업에 주목했다.

용광로 속 쇳물의 온도를 재는 장비를 포스코에 납품하면서 계측기 분야에서 탄탄한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정련하는 곳에서 사람이 직접 철강용 센서로 온도와 성분을 측정하는 위험한 작업을 했었던 기존과 달리 (주)우진이 개발한 측온시스템을 통해 작업자없이도 빠르고 정확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이후 광양제철소, 인천제철 등의 투자계획들이 점차 구체화된 것이 (주)우진에게는 큰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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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계측기 국산화로 ‘제2의 도약’을 알리다
- 원전기술의 확보와 성장


“그동안 수입에 의존했던 중요한 것들을 전부 개발했으니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거죠.”

정말 중요한 기술은 중소기업에서 나올 것이라는 신념으로 기꺼이 중소기업행을 택하고 오랜 세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원전 계측기 국산화에 성공한 그 날을 회고하는 유 대표의 말에서 강한 자부심과 긍지가 느껴졌다.

철강산업의 발전과 함께 계측기 사업이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한 1990년대, 새로운 도약을 위해 포트폴리오의 다양화를 모색할 즈음 (주)우진과 유 대표의 인생에 제2의 도약의 기회가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원전 사업이었다.

우리나라의 원전산업은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경험하면서 부존자원의 영향이 적고 경제성이 높은 기술집약적인 에너지개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에서 시작됐다.
 
1983년 7월 원전건설 기술자립, 즉 원전설계 및 기자재의 국산화를 통한 한국표준형 원전건설을 위해 「원전 건설사업 장기 추진방향」을 수립했다.
 
그러나 초기 고리 1,2호기, 월성, 영광 1,2,3 호기 등 원자력 발전소는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당시 CE(Combustion Engineering))의 기술을 도입해 건설하는 100% 턴키(Turn-key) 방식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원전에 사용되는 핵심부품에 대한 자립도 향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원전이 건설된 후에도 그에 따른 각종 소모성 부품이나 센서류 또한 지속적으로 구입해 사용해야 한다. 즉, 기본 노형을 도입하게 되면 그에 따라 유지·보수를 위해 사용되는 모든 부품에 대한 기술적 접근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영광 3호기에서는 이 센서 11개를 구입하는 데만 무려 영광 3호기 운영비용 전체를 초과하는 만큼의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정부는 “Nutech 2015”(이후 Nutech 2012)를 기획하고 모든 원자력 부품의 국산화 계획을 추진하였다.

전세계적으로 원전의 노형을 설계할 수 있는 나라는 G5(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러시아) 국가들이지만, 이들 국가 대부분은 과거 CE나 Westinghouse 등으로부터 도입한 기술을 발전시켜 그 나라의 표준 노형을 확보했다.
 
그리고 원전기술은 기본 노형의 설계에 따라 그에 관련된 파트(Part)나 부품도 그에 적합하게 개발되게 된다.
 
때문에 원전을 외부로부터 도입해 설치하게 되면 그에 따른 원료부터 각종 부품들까지 기술 원천 기업의 통제를 지속적으로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국수력원자력(주)에서는 국가의 ‘원전 핵심부품의 완전 국산화’라는 정책에 따라 국내기업들 중에서 원전의 핵심부품 개발이 가능한 업체를 탐색하게 되었고, 당시 용인의 마북리 연구소에서 유 대표(당시 연구소장)와 개발 협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사업이 너무 철강용 계측기기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 발굴을 고민하던 (주)우진으로서는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하나 확보하게 된 셈이었다.
 
원전사업은 전세계를 통틀어 봐도 400기에 불과해 시장 자체로 보면 매우 작은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수익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추진된 것이 바로 원전용 계측기술이다.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초기개발 제작의뢰에 대해서도 신속한 시장대응을 위해 회사 내부자금으로 그 비용을 충당하며 개발을 진행했다. 그 결과 원전용 계측기 사업은 ㈜우진의 현재 사업과 차세대 사업 포트폴리오의 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핵심기술의 개발경험과 노하우 축적은 원전의 4대 핵심부품(ICI: 노내 핵 계측기, HJTC: 냉각수 수위 측정기, RSPT:제어봉 위치 전송기, PIRTD: 고속응답 냉각제 온도센서)의 완전 국산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한국표준형 원전기술을 갖는 데 성공했다.

“세계에서 자체 원자로 노형을 개발하지 않은 기업에서 그러한 핵심기술을 가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주)우진이 그 핵심기술을 가진 유일한 기업입니다.”

국내 최초 국산화 성공 이후 (주)우진의 기술은 우리나라가 추진한 UAE 원전수출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많은 어려움과 난관들도 있었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국가차원에서의 새로운 핵에너지 개발계획 등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원전기술에 대한 대응측면에서 본다면 사실상 초기에는 실기(失期)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수력원자력(주)으로부터 개발의뢰가 왔을 때 해당 도면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얻기조차 매우 어려웠습니다.”

원전 핵심부품 기술을 내부 개발을 통해 확보하고 난 이후에도 웨스팅하우스(CE)와의 계약 위배문제와 국내에서의 검토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맞으면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였다.
 
이에 유 대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과정은 각자의 입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입장들을 모두 담아서 사업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성가신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때를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렇게 수많은 좌절과 난관을 극복하는 속에서 명실공히 한국표준형 원자로의 핵심부품 기술이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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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기술이 먼저다”

유 대표가 그동안 (주)우진과 함께 성장해오면서 얻은 경영철학과 차별화 Point를 말할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

먼저,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기술을 얻으라는 것’이다.

하나의 기술이 아이디어에서부터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은 약 0.3%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연구원이 다양한 사업적 감각을 함께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넓은 스펙트럼으로는 시작 자체를 두려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패한 연구에 대해 그 어떠한 질책이나 개별적 손해를 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항상 ‘변화하고 도전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두번째는 광범위한 업무와 기술영역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각자의 깊은 전문성을 키우는, 즉 ‘T자형 인재상의 추구’이다.
 
이는 유 대표 자신의 과거 어려웠던 시절이 오히려 경영활동과 개인적 발전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흔히 사람에게는 두가지의 성장경로(Path)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한가지 일에 대해 깊은 전문성을 가지고 그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업무나 지식을 바탕으로 일반관리자형으로 발전해 나가는 형태다.
 
그가 말하는 ‘T자형 인재’란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업무와 지식을 습득하고, 이후 자신의 전문영역에 대한 지식의 깊이를 확보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연구자는 항상 도전과 혁신의 선봉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유 대표는 연구자와의 직접적인 대화와 그들에게 좀 더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그들보다 한발 앞서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이나 현재 사업에서의 주요기술 동향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한다.

“경영자뿐 아니라 연구자는 항상 변화하고 혁신해야 합니다. 따라서 회사의 시스템 혁신과 연구소의 분위기 쇄신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그것은 좀 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우진은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자율 출퇴근(Flexible Time)제를 시행한 기업이다. 연구자를 포함한 전체 직원들이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1999년 국내기업들은 아직 생각하지도 못했던 ‘주 5일 근무제’를 전면 실시하기도 하였다.

네번째, ‘신입사원 채용시 반드시 직접 인터뷰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중용하라’는 것이다.
 
유 대표의 면접시간은 너무나 길다. 인터뷰에서 기본적인 소양이나 인성을 체크한다. 이 때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은 ‘어려운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접근방법을 창안하고 얼마나 깊이 생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역량이다.

이제 갓 대학을 나온 사람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경우는 드물기에 어떤 난관에 대해 나름의 프로세스를 고안하고 강력한 실행 추진력을 가진 인재를 원하는 것이다.

다섯번째는, (주)우진만의 고유한 시스템인 소위 ‘Open-Door System’도 유 대표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기업업무의 시작과 끝은 기획과 실행을 위한 기안 그리고 실행과정과 결과의 보고 체계가 운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일반 기업에서의 결재시스템은 담당자가 기안을 하면 차상위자인 팀장이 그의 상위자인 직속 임원에게 보고하고, 마지막으로 팀장이나 임원이 직접 CEO에게 결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주)우진에서는 기안담당자가 해당 이슈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팀장 및 임원 보고를 거친 후 직접 CEO에게 결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업무외 개인사에 대해서도 CEO 또는 임원에게 협의와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항상 ‘문을 열어 두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계층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활동 또한 즐긴다. 생산과 마케팅 조직 그리고 연구원과의 만남을 월 1회 또는 분기 1회 이상 반드시 실시하여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과정에서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격차를 혁파하기도 하였다.
 
보통 국내의 기업에서는 고졸과 대졸간의 임금격차가 7년이나 되는 반면 (주)우진은 이를 4년으로 낮추었다. 고졸이라 할지라도 기술자(Technician)로서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Zig & Fix’, 우리에게 그리 흔한 말은 아닐 것이다. ‘현장의 일은 현장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들에 의해 개선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현장에 있어 본 사람이 그것을 혁신하고 개선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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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시대의 기술경영

오늘날 기업간 또는 국가간 경쟁은 과히 전쟁과 다름이 없다. 기술 또한 이제는 하나의 기술만 알아서는 존립이 어려울 수 있다.

기술은 융합화로 발전해가고 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중소·중견기업들도 기초기술력의 확보를 기반으로 응용기술과 융합기술(Fusion Technology)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유 대표가 이미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선배들에게 한마디 쓴 소리를 한다.

“사회에서의 선배들인 우리가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소위 명문대 출신들은 모두 대기업이나 정부출연연구소 그리고 대학 교수만을 고집하게 하고 있어요. 이러한 마인드에서 빨리 탈피해야 발전할 수 있는데, 바로 그런 점에서 선배들의 충고나 조언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주)우진은 이제 중견기업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오늘도 “기술력이 없으면 기업의 성장과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매일매일 혁신하고 새로운 것을 찾고 또한 발견해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차세대를 위한 센서로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한다.

기술경쟁이 치열한 경영환경에서 경영자는 기술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해야 한다. 경영에 기술이 내포되어 있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 대표가 생각하는 ‘기술경영’의 개념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명확한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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