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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 봄의 소리를 듣다 :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인문학 칼럼은 다양한 인문학적 정보와 콘텐츠를 깊이있게 다루어 읽을거리와 풍성한 감성을 전달하는 칼럼입니다.

글_ 박은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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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의 왕’이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그는 왈츠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고 그가 작곡한 서로 껴안고 돌아가는 경쾌한 비엔나 풍의 왈츠는 비엔나의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당대를 풍미했다.

그런데 그의 대표작 중에서 왈츠이면서도 유일하게 춤곡이 아닌 곡이 있다. 바로 < 봄의 소리 >이다. 봄빛처럼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선율을 따라 봄의 소리를 느끼게 해준다.



봄은 소리가 없다. 고요함 속에서 봄은 서서히 다가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화사한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때론 봄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꽃망울이 터지고 아지랑이가 올라오거나 햇살이 온누리에 부서지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봄의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진짜 봄을 소리로 표현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Ⅱ)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 봄의 소리 >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선율이다. 젊은 감각이 넘치지만 정작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말년작품이다.

1880년대초 말년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자신의 오페레타(Operetta, 희가극(喜歌劇) 또는 경가극(輕歌劇)인 ‘유쾌한 전쟁’의 초연을 위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날 한 디너파티에 초대되었는데, 그 자리에는 그의 지인이자 당대의 유명 음악가인 리스트도 함께 있었다.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슈트라우스와 리스트는 즉석에서 음악적 여흥을 마련했다.
 
리스트가 파티를 주관한 살롱의 여주인과 함께 피아노를 치자 슈트라우스는 즉석에서 왈츠를 작곡하여 파티에 모인 사람들에게 들려준 것이다. 환희에 넘치는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리듬과 멜로디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시대를 초월하여 21세기의 사람들에게까지 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는 < 봄의 소리 >는 이렇게 천부적인 대가의 영감으로 순식간에 완성된 곡이었다.


슈트라우스 vs 슈트라우스

‘왈츠의 왕’이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우리가 잘 아는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아들이다. 그야말로 ‘왈츠의 아버지’가 ‘왈츠의 왕’을 낳은 셈이다.
 
그러나 정작 ‘왈츠의 아버지’는 아들이 ‘왈츠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듯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의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왔고, 그만큼 강렬하고도 간절한 것이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이 몰래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채찍으로 매질을 할 정도로 아들의 음악인생을 막아보고자 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직업을 갖기를 원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과 열정을 이해해 주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래 음악 공부를 계속하던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는 약관의 나이가 되었을 때 비엔나의 음악계에 데뷔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천부적인 재능을 발판으로 금세 아버지와 경쟁관계로 올라섰다.
 
그에게 재능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셈이다. 비엔나의 한 언론에서는 “슈트라우스 대 슈트라우스”라는 기사제목으로 아버지 슈트라우스의 화를 더욱 자극하여 부자관계가 더욱 악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왈츠의 운명은 아버지보다 아들의 등극을 더 원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성홍열에 걸려 사망하고 그의 명성은 금세 아버지를 넘고 유럽을 넘어 국제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마침내 세계사람들은 그를 ‘왈츠의 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에게 ‘왈츠의 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만들어 준 곡은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라는 곡이다.

대가는 대가를 알아보는 법이다. 슈트라우스 부인이 브람스를 만났을 때 사인을 부탁하자, 브람스는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의 몇 마디를 적고는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불행히도 브람스의 작품이 아닌 곡….”

도나우의 강물이 지금도 여전히 푸르게 흘러가듯이 슈트라우스의 음악도 세월을 뛰어넘어 흐르고 있다.
 
400곡의 왈츠를 작곡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 의해 왈츠는 상류층의 사교춤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수준높은 하나의 음악분야로 격상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브람스와 리스트 등 낭만파 음악의 대가들조차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앞에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봄의 소리는 사랑이 오는 소리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 봄의 소리 >는 왈츠곡이지만 춤에 사용되기보다는 연주용 아리아로 작곡된 것으로서 유명 소프라노 가수인 B. 비안키라는 여성에게 헌정되었고, 슈트라우스의 지인이 붙인 가사로 그녀가 노래하면서 더욱 크게 알려질 수 있었다.

“종달새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 부드럽게 불어오는 훈풍은 그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숨결로 벌판과 초원에 입 맞추며 봄을 일깨우네. 만물은 봄과 함께 그 빛을 더해가고, 아 모든 고난은 이제 끝났어라! 슬픔은 온화함으로 다가왔노라. 봄의 소리가 다정히 들려오네. 그 달콤한 소리!”

마치 시작하는 연인들이 사랑의 밀어를 주고받는 듯이 경쾌한 이 곡은 듣는 이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해주면서 우울의 그림자를 걷어내준다.
 
슈트라우스가 < 봄의 소리 >를 작곡할 무렵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봄의 소리는 사랑이 오는 소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