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 - (주)포스코 권오준 회장

국내 최고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향후 계획 등을 알아봅니다.

공동작성_
정원일 교수(경북대),
김공숙 전문작가(프리랜서),
이종민 과장(산기협)

대담_
권오준 회장((주)포스코)


기업의 미래는
자신만의 고유기술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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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의 기술수장 권오준 CTO가 지난 3월 14일 포스코 그룹의 CEO로 취임했다. 권오준 회장은 현장과 연구소가 서로의 시너지를 통해 확보하는 고유기술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연구개발을 신사업 개발과 엔지니어링까지 연결하는 R&BD-E(Research and Business Development-Engineering) 전략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온 권오준 회장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을 때 접견실 한켠에 서예도구가 있어 의아했는데, 회사 차원의 재능기부 서예전시회에 출품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분주한 가운데서도 틈을 내어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권오준 회장. 그는 포스코 그룹의 가치를 제고할 적임자로서 회장에 취임했고 이제 새로운 기회와 위기 돌파에 대한 책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유학 중 RIST 초기 멤버로
포스코와 첫 인연


권오준 회장과 포스코와의 인연은 미국 유학 시절 포항제철의 연구원으로 발탁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경북영주가 고향인 그는 서울사대부고와 서울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첫 직장을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으로 시작했다.
 
그는 ADD 장학금을 받아 박사과정으로 철강연구를 하기 위해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바로 이 시기에 포항제철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당시 박태준 회장은 민족기업으로 성공한 포철이 그 수익을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포항제철, 포항공대, RIST(포항산업과학연구원)를 축으로 하는 산-학-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기술연구소가 있는 상태에서 박태준 회장이 RIST를 새롭게 만든 이유는 언젠가는 사업을 다각화할 필요성이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단순하게 철강만이 아니라 철강 외에 신소재, 에너지, 환경 분야까지 확대해서 연구하기 위해 철강과 비철강 분야의 연구인력을 반반씩으로 구성하여 필요인력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추진할 실무인재를 찾아 미국까지 방문한 포철의 핵심관계자는 피츠버그대학교의 한인유학생 회장이었던 권오준을 점찍어 입사를 강권했다. 권오준 회장은 RIST를 설립하기 위해 골몰하던 박태준 회장의 강력한 초빙의지에 따라 스카웃된 것이다.

권오준 회장은 1986년 이전 근무지였던 ADD 대신 포스코기술연구소에 입사하였고 이후 산학연 삼각체제 구성에 따라 6개월 뒤에 RIST가 설립되면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10년 뒤 김만제 회장이 회사내에 연구소가 필요하다는 결정에 따라 철강분야의 담당자로서 다시 포스코기술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연구실장을 지냈다.
 
포항에만 있었던 그는 1999년 광양제철소 연구부문의 책임자로 가면서 현장을 보다 심도있게 파악하게 되었고, 2003년 유럽사무소에 파견되어 기술협력 관련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2006년 귀국한 이후에는 포스코기술연구소의 연구소장을 맡았고, 이후 RIST 원장을 지냈다.
 
권오준 회장은 입사 이래 지금까지 포스코의 연구기관이 유아기에서 청년기로 성장을 하는 동안 제철소라는 ‘현장’과 연구소라는 ‘이론’이 조화를 이루도록 끊임없이 소통을 추구해 성과를 이루어낸 실무형 CTO로서 자신의 평생을 바쳐온 사람이다.


외견은 온화한 학자, 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추진력 강한 CTO


금속공학 박사 출신인 권오준 회장의 첫 인상은 유연하고 온화한 지식인이나 학자의 느낌이었지만 이런 선입견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바뀌었다. 권오준 회장은 기술사업화 집중형 엔지니어로서 부드럽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하는 분이었다.

기업연구소는 오랜 연구 끝에 산출물(Output)인 기술을 생산한다. 이것이 현장에서 수용되고 원가절감과 품질향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고객은 해당 제품을 매입하고 현금을 지불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연구개발이 이루어낸 진정한 생산성의 향상을 체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포스코 또한 여타의 소재부품 중심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기술개발을 통한 사업화라는 녹록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기술은 실제 현장에서 검증이 되어야만 활용가치가 있다. 권오준 회장이 평생을 통해 고민하고 도전한 것은 다름 아닌 R&D 투자대비 이익을 어떻게 선순환 시킬 것인가였다고 한다.

“15년이 걸렸습니다.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 설립한 RIST가 성과를 내는 데 15년 이상이 걸렸어요.” 지난 과거를 회상하며 입을 뗀 권오준 회장의 말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데려온 연구원들은 세계에서 첨단 연구만을 해오던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연구수준과 현장수준은 너무도 큰 격차가 있었다.

고급인력인 연구원은 대다수가 한국의 현실을 모르고 지나치게 학문에만 매여 있어 현장을 모른다. 현장의 기계가 어떻게 생겼고 제품이 어떻게 나오고 그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이 누구인지 알아야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현장은 현장대로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연구소에서 수준높은 기술을 개발해도 현장에서는 실제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괜히 생산성만 떨어지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포스코의 기술은 세계의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생산기술은 나름대로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남들이 가지지 못한 고유기술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새로운 기술을 현장에서 적용하려고 해도 현장에서는 이해를 못하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던 실정이었다.

“한 때 제철소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RIST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고 했어요. 제철소에서는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나오는 결과물이라는 게 달랑 ‘보고서’밖에 없잖아요. 보고서가 나오긴 나왔는데, 한 해 두 해가 지나도 성과가 제대로 안 나오는 것입니다.”

당시 포스코는 파격적인 대우로 연구원과 교수들을 스카웃했다.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타 기관에서 지불한 장학금을 대신 변제해주고도 데려왔다.
 
이런 연구소가 1, 2년도 아니고 10년이 넘도록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니 모두가 불안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포스코의 연구개발 가치는 200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그 존재의의를 찾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산업기술 수준이 향상되고 발전하면서 세계일류 제품을 요구하는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 기업 스스로가 시장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제품을 요구하는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포스코로서는 이제 세계최고의 생산량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 즉 세계최고 품질의 철강을 생산해야만 한다는 위기감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15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준비해온 포스코의 연구가 드디어 그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그림   권오준 회장이 강조하는 R&D투자의 선순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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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4일 주총에서 권오준 회장이 경영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21세기 포스코의 선택,
신성장동력 자동차용 철강 개발의 비화


당시 철강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자동차 기업들은 국산 철강제품의 품질수준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손을 잡고 해외에서 연구개발을 추진했었다고 한다. 철강을 생산하는 포스코로서는 안팎으로 위기상황이었다. 새로운 변화의 시기에 포스코는 ‘신의 한 수’를 단행한다.

“연구소장이 제철소장으로 가고 제철소장이 연구소장으로 스위치되는 매우 보기드문 일이 발생한 것이지요.”
 
권오준 회장이 광양 연구소 부소장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 그 시기였다. 당시 연구소장으로 부임한 사람은 직전까지 제철소 소장을 지낸 분으로 제철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전문가였다고 한다.

그는 연구소의 가치나 성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돈은 제철소에서 벌어다주는데, 연구소는 해외 학회나 다니면서 돈만 쓰고,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은 실제 현업에서는 쓸데없는 귀찮기만 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비판할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학교 선배이시고 잘해주셨습니다만 연구소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데 매우 냉정했습니다. 저는 연구소 부소장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 분이 연구소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정말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명하복의 분위기가 강한 제철소는 설사 건의를 한다고 해도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권오준 부소장은 담판을 짓겠다는 마음으로 사직을 각오하고 연구소장과 독대를 결심했다.
 
그런데 용기를 내서 연구소의 여러 문제를 이야기하자 의외로 잘 수용하며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한다. 또한 연구소장이 실제 연구원들과 접할 기회가 많아지자 ‘연구원들이 아는 것이 많다’면서 호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제철소 현장의 엔지니어들은 한 두 마디 물어보면 자주 말문이 막히는데, 연구원은 아무리 질문을 해도 막히지 않는다며 연구원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연구소장으로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 연구원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빠른 시간 안에 파악한 것이다.

권오준 부소장은 신임 소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자동차를 해야 합니다’라고 즉답을 하였다고 한다. 포스코의 차기 성장산업으로서 자동차용 철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직언한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현재 포스코에서 이익률이 제일 높은 분야는 자동차용 철강이다. 그러나 자동차용 철강연구가 처음부터 회사의 주목을 받아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소에서는 연구과제 제안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안을 하면 예산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당시 기술개발부가 예산을 조정했었는데, 그 벽을 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연구소 사람들은 잘 이해할 겁니다.”

당시 권오준 부소장은 자동차용 고강도 강 개발 수행을 위해 수없이 기술개발부를 들락거렸지만 성과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해당 프로젝트를 정부과제로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소장은 “포스코의 미래를 책임질 강을 개발하는 데 정부지원을 왜 받느냐”라고 물었다. “오죽하면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수행하겠습니까? 숱하게 제안했지만 거절당해 예산 문제상 정부과제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소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서 ‘당장 예산권을 연구소로 넘겨주라’고 지시했고, 예산권은 바로 연구소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 대하기 어려웠던 소장이 이제 기술개발을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신임 소장의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권오준 부소장이 고강도 자동차용 강이라는 답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권오준 부소장은 연구소의 핵심 경영자로서 자동차용 고강도 강의 중요성을 깨닫고 미리 신속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회사내 지원금받기가 어렵자 정부가 지원하는 국가중점연구과제를 신청하기 위해 당시 5개의 자동차 회사 CTO를 직접 만나러 다니며 공동연구 개발에 참여를 요청했다.

연구소의 핵심 관계자가 제품사용자인 고객을 직접 찾아나선 이례없는 일이었다. 자동차회사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없는 제안이었다.
 
현재 (주)두산 이현순 부회장(당시 현대자동차(주) 상무)이 당시 울산에서 연구소장에 재직 중이었는데, 그 때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연구소가 연구개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항상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기술의 수준을 가까운 거리에서 파악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이 때 만들어졌다.

권오준 부소장이 미리 준비한 아이디어는 연구소장의 지원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급행선을 타게 되었다. 고위 경영자인 연구소장의 안목은 일반연구원 수준과는 달랐다. 기왕지사 밀어주기로 하자 회사의 지원은 상상을 초월했다.

“광양제철소에 가면 헬기장이 있습니다. 대통령을 포함해 VIP들이 내리는 자리입니다. 자동차 강을 개발하려니 실험실과 설비를 지어야 하는데, 부지가 부족했어요. 연구소 가까이에 위치해야 하는데, 그 바로 옆에는 헬기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임원도 아닌 부장급 부소장이었기에 그 자리를 막 쓰자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요. 그런데 복도에서 당시 사장님과 함께 연구소 위치를 논하다가 무심결에 창밖을 내다보면서 저 자리가 기가 막히게 좋은 자리라고 추천을 했습니다.”

특별한 의도없이 그냥 희망의 감정을 피력한 것뿐이었는데... 이튿날 놀라운 소식을 전해듣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헬기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헬기장을 진짜 옮기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자리에 오늘날 자동차강판가공연구센터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광양연구소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권오준 부소장과 연구소장은 연구소의 미래를 놓고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가지 도전목표를 만들었고 일곱개의 전략제품을 계획하고 추진하게 되었다.
 
당연히 진두지휘는 현업에서 제철소장을 역임한 연구소장의 몫이었다. 연구소의 성공적인 팀워크는 포스코가 기술개발 측면에서 몇 단계 점프를 하는 토대를 강건하게 만들어 주었고 연구소장의 도전적이고 과감한 업무 처리는 큰 성과로 이어졌다.

“연구소에 계신 분이 아니라서 스케일이 달랐습니다. 일을 시작하니까 연구비가 저절로 나오는 느낌이었지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장비를 구매할 때 50억도 많다고 하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그 분은 ‘50억이 뭐냐? 0을 하나 더 붙여!’라고 하면서 연구의 스케일을 키우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결과는 없었겠지요.”

포스코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에 회사는 적재적소에 인사배치를 함으로써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셈이다.

“제철소장은 이쪽 계통에서는 거의 ‘지존’이지요. 제철소장 출신의 연구소장과 연구소 인력이 박자를 맞춘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제철소의 수장과 가장 진취적인 연구소의 수장이 서로 소통하였으니 그 착상이 정말 대단한 거지요. 이렇게 환경을 바꿈으로써 포스코연구소는 기술과 현장의 획기적인 상생 모멘텀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멘텀이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거지요.”

여기에 연구원들까지 가세를 했다. 연구원들은 현장에서 성과를 내어 기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표출할 기회가 없었는데, 상부에서 이런 욕구의 방향을 잡아준 것이다. 실로 효과는 엄청났다.

권오준 회장은 “연구원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포스코의 문화를 만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흐뭇해했다.

남들이 위기라고 하는 시기에 오히려 과감하고 도전적인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연구개발 사업에 적극 투자를 결정한 정책이 지금의 포스코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위기의 시기에 부소장으로서 조용하지만 강력한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그것을 큰 성공으로 이끌어낸 권오준 회장. 이제 포스코의 수장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권오준 회장이 포스코내 각기 다른 조직에 몸담으면서 겪은 이러한 생생한 경험들은 향후 회장책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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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준 회장이 취임 직후 제철소 현장을 방문하여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구원은 현장 마인드와
고객의 요구를 아는 것이 필수


“신기술은 실험실에서는 절대 개발되지 않습니다.” CTO로서 CEO 자리에 오른 권오준 회장의 신념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한 마디이다.

신기술이 시작되는 곳은 실험실이 맞지만 그것이 현실화되려면 현장에서 검증이 되어야 신기술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기술을 현장에서 상용화하려다 보면 근원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연구소는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새로운 제품개발이나 품질개선을 위해 어려운 기술을 현장에 전달하게 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연구소의 요청대로 시험생산을 해주다 보면 손실이 발생하고 불량이 증가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생산량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오고 이렇게 되면 연구소의 시험생산을 현업에서 적용하지 않겠다는 불만이 쌓인다. 이와 관련해 스스로 박사연구원이자 CTO를 지낸 권오준 회장은 연구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신참 연구원들은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지식을 얕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참 박사들을 현장에 6개월~1년 정도 생활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2~3년 후 자신이 수행하는 프로젝트를 왜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지 이해하게 됩니다.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기술만이 아니라 총체적인 환경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시험을 해야 한다면 현업과의 호흡이 절대적입니다. 현장의 오퍼레이터가 키를 쥐고 있는데,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폼잡고 가서 내가 박사인데 하면 안되는 것이지요.”

박사급 엔지니어라 할지라도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면 신기술 상용화는 어렵다. 현업에서 살아있는 기술을 접목하고 현장을 소중히 생각해야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고객중심의 사고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 놓아도 고객이 가져다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요한 강도가 40 정도인데, 잘 만들어서 45로 했다 합시다. 오버 스펙이 되면 가공이 잘 안됩니다. 그러니 고객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고객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부지런히 늘 쫓아다녀야 합니다. 현장 일이라는 것은 절대로 실험실에서만 개발되지 않습니다. 실험실은 스타트하는 장소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잘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파는 연구소 사람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권오준 회장은 연구소의 연구원이야 말로 현장 마인드와 고객의 요구사항을 모두 알아야 하는 전천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연구소와 대학은
역할과 책임이 분명히 달라


현재 포스코에는 사내 철강연구소인 포스랩, RIST(포항산업과학연구원), POSTECH(포항공과대학교)이라는 세 기관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권오준 회장은 이러한 산학연 구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세 기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했다.

“포스랩은 철강연구, RIST는 신성장, 환경에너지 쪽으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 두 기관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며 CTO 한 사람이 총괄을 합니다. 반면 포항공대는 독립법인으로서 포스코가 지원하는 부분에 부응하여 특수대학원인 철강대학원과 엔지니어링대학원 두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수대학원 학생의 대부분은 포스코가 인력을 선발하고 포스코가 요구하는 과제를 수행합니다. 계약형 프로그램으로서 포스코가 미래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며 포스코에서 필요한 사람을 보내 학위과정을 밟게 하기도 합니다.”

권오준 회장은 기업연구소가 아닌 대학이 있어 좋은 점이 있다고 했다. 최근 신성장산업에 대한 요구가 많은데, RIST가 신성장 영역을 담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다보니 모든 분야를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분야 중에 특정분야가 사업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해당교수를 활용해 신성장기술을 개발한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두 개의 프로그램이 바이오 진단과 나노재료 기술인데, OLED, LED 소재에 사용하는 재료들을 개발하고 있다.
 
포스코는 현재 이 프로그램에 연간 20~25억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는데, 권오준 회장은 포항공대가 그 역할과 책임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기초연구가 활성화된 학교를 옆에 둔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권오준 회장은 공과대학 학생들이 향후 엔지니어로서 사회에서 출발할 때 어떤 자세를 가지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었다.

“엔지니어는 현장을 떠나서는 존재의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공대생들은 스스로를 리서처(Researcher)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대교수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화학과 물리학같은 자연과학도는 리서처가 되어도 괜찮지만 공학도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합니다. SCI 논문으로 평가하는 지금의 현실 때문에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공대 출신은 리서처 &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포스코가 내건 모토가 R&BD-E(Research and Business Development-Engineering)입니다.


신기술 개발뿐 아니라
독자적인 엔지니어링까지 해야
진짜 고유기술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 어느 회사도 갖지 못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고유기술을 확보하는 일이다. 포스코는 세계 어느 철강회사도 가지고 있지 않는 포스코만의 고유기술 개발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유기술을 확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권오준 회장은 고유기술이란 실험실에서 만들어 놓기만 하면 소용이 없고 현장에서 설비로써 구현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고유기술이라고 말한다.
 
기껏 기술을 개발했어도 설비기술이 없으면 외국의 엔지니어 회사에게 부탁을 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고유기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그 기술이 엔지니어링회사의 기술로서 경쟁사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스스로 엔지니어링하지 않으면 진정한 고유기술이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엔지니어링이 매우 약합니다. 고층건물을 지어도 엔지니어링은 외국회사에 의뢰하는 실정입니다. 포스코가 R&BD-E를 모토로 내세우고 포항공대에 Engineering 대학 설립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예를 들어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보고서가 숱하게 나옵니다. 보고서에서 말하는 성공률은 95% 이상입니다. 그렇지만 현장적용률은 5% 정도입니다. 왜 이럴까요? 엔지니어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권오준 회장은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개념이 약한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유하고 있는 설비를 이용하든가 고치든가 해야 하는데, 연구자들은 이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오준 회장은 젊은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다른 CTO들에게도 조언을 했다.
 
“엔지니어링은 대학의 지식만 가지고는 안되고 현장에서 배운 경험만 가지고도 안됩니다. 두가지를 다 결합해야 엔지니어링이 구현될 수 있습니다. 박사에게는 지식이 있고 현장에는 경험이 있습니다. 이를 서로 동기화시키는 것이 큰 과제입니다. 반드시 연구원을 현장에 많이 보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가지고 있는 큰 맹점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를 인식하려면 현장에 가봐야 하고, 과학기술정책도 현장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CTO를 5년간 역임한 권오준 회장은 한국의 CTO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CTO는 연구원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스코기술연구소에서는 유레카를 본 딴 포레카(POREKA)를 만들었지요. 구글의 사무실처럼 미끄럼타고 내려오는 것도 만들고, 온돌방에 누워서 TV를 보게 꾸며놓았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게끔 배려를 해주자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통해서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은 것 같지만 경영자의 배려가 있어야 창의가 나오고 고유기술이 만들어집니다.”

포스코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포스코만의 기술을 100여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철강에서는 포스코가 명실상부한 기술의 정상에 올라와 있다고 자부합니다. 중국에서도 협력요청이 오고 있습니다. 이런 고유기술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만들고 키워나가는 것이 바로 CTO의 역할입니다.”

권오준 회장은 포스코 기업문화인 이른바 ‘돌격 앞으로’가 기본적인 업무수행은 물론, 직원간 화합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기에 더 나아가 창의가 샘솟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포스코 CTO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맨 처음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면 기초연구를 하고 그 다음에 응용연구를 수행합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파일럿 연구를 하고 이것이 될 성 싶으면 현장에서 데모 플랜트를 만들어 경제성을 확인합니다. 이외 여러 단계를 거쳐야 신기술이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CTO가 모든 단계를 다 관여할 수는 없기에 연구원이 연구개발활동을 수행하며 보람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CTO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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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준 회장이 산기협 제35차 정기총회에서 기술경영인상을 수상하고 박용현 회장(산기협)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많이 만드는
공감의 리더십

 
포스코의 수장이 된 권오준 회장의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그는 회장 내정자로 정해진 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권오준 회장은 조직이라 할지라도 인간과 인간이 관계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상명하달식으로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말한다.

“리더십이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나를 좋아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방을 좋아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공감을 해주어야 내가 하는 일에 따라 오게 돼있습니다. 상대방과 내 생각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목표가 주어지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열정이 발생합니다. 열정은 더 많은 사람을 따르게 만듭니다. 이렇게 공감대를 만드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리더십에 카리스마가 필요하지만 억압하는 카리스마가 아닌 유연한 카리스마로서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권오준 회장은 포스코, RIST, 유럽사무소 등 다양한 곳에 근무하면서 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을 기본으로 조직을 이끌어 왔기에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저는 공감을 통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이라는 말은 정말 흔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공감을 잘 할 수 있는지 실천방법은 잘 모른다. 권오준 회장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시작이라고 말한다.

“내가 먼저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따라갑니다. 알아준다는 것은 그 사람한테 믿음을 주는 것이고 공감대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들어주는 데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들어주고 해결까지 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한 두 번이 아니고 쌓이고 쌓이면서 나를 따라오는 사람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대화를 할 때 주로 많이 듣습니다.”
 
그는 연구원들은 각자 전공분야가 있어 CTO가 그것에 대해 보다 깊이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연구원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더 넓게 안다는 인식을 주고 그런 면에서 조언을 해주면 더 많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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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포스코 호의 선장 권오준,
CEO로 첫 출발!


이제는 CTO가 아닌 거대한 포스코 호의 선장 권오준 CEO. 그에게는 앞으로 어떠한 환경변화가 올지 자신도 궁금한 3년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회사의 미래는 기술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것은 배워오면 되는데, 기술은 하루 이틀 배워와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포스코에서 수많은 우수한 인력을 들여 현장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만드는 데 15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런 노력이 없는 한 고유기술을 통한 경쟁력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자금이 없으면 빌려올 수 있지만 기술은 아무리 유능한 경영자가 오더라도 단시일내에 극복이 안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회사의 미래는 기술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오준 회장은 CEO로서 자신이 할 일은 기술과 마케팅이 잘 융합되고 재무와 투자가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세계와의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 철강산업을 이끌어갈 포스코의 새로운 수장으로서 그의 3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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