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리포트 - (주)고감도 안향자 대표이사
강소기업의 대표나 연구소장 등을 만나 기술경쟁력을 갖기까지의 열정과 노력을 알아봅니다.
글_ 정라희(자유기고가)
사진_ 한제훈(라운드테이블 이미지컴퍼니)
지성과 감성을 채우는
오감 만족 공간 디자인
‘어떤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공간에서 일하느냐’도 필요하다. 일터의 환경에 따라 근로자의 의욕과 생산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고감도 안향자 대표이사는 ‘공간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장본인. (주)고감도는 공간이 지닌 특성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삶의 질을 높이는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다.
일할 맛 나는 일터 만드는
팩토테리어 디자인
인간에게는 오감(五感)이 있다. 보고, 듣고, 맡고, 접촉하고, 맛보는 다섯가지 감각은 우리의 일상을 진정으로 ‘살아 있게’ 한다. 그러므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의 분위기나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안향자 대표이사가 오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오감과 소통하는 쾌적한 업무 환경을 갖추는 것은 지속적인 기업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만족을 느낄 때 생산성은 물론 창의성까지도 높아지기 때문이죠.”
기업환경 디자인 전문회사인 고감도는 이 점에 주목한다. 오감의 중요성을 강조한 철학은 ‘고감도’(高感度)라는 사명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러나 고감도가 지향하는 디자인은 자극적인 화려함이나 필요 이상의 고급스러움은 아니다. 사용자를 중심에 둔 ‘인본주의’ 디자인이 바로 고감도가 지향하는 바다.
이 같은 생각은 안향자 대표가 개발한 ‘팩토테리어 디자인’(Factoterior Design)과 연결된다. 팩토테리어 디자인은 ‘팩토리’(Factory)와 ‘인테리어·엑스테리어 디자인’(Interior·Exterior Design)의 합성어로, 경쟁력을 갖춘 기업환경 문화를 구축하는 일을 의미한다.
안향자 대표가 팩토테리어 디자인에 집중한 건 대략 7~8년 전의 일. 고감도를 설립한 1991년부터 줄곧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이를 용어로 개념화 한 것은 이때부터다. 이 부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화된 전략인 셈이다.
“과거 우리나라 산업환경은 고속성장에만 주목할 뿐, 근무환경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제껏 간과했던 근무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인간 중심의 업무환경 구축이 상당부분 진행됐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산업이 세계화된 만큼 현재의 경쟁력을 지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안향자 대표가 방점을 찍은 ‘지속가능한 경쟁력의 원천’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팩토테리어 디자인은 최상의 업무 컨디션을 유지하게 해 구성원들의 근무의욕과 성취도를 높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게 하는 바탕을 마련해준다.
산업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로
완성하는 공간
물론 처음부터 공간 디자이너의 이상(理想)을 산업현장에 구현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디자이너의 관점과 다른 엔지니어의 생각을 깊이있게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이 때문에 안향자 대표는 직접 산업공학을 전공하며 ‘디자인’과 ‘공학’의 융합을 주도했다.
“실내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엔지니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잘 통하는 면이 있어요. 그렇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히는 겁니다. 산업마다 독특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간과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공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리고는 기술연구소 등을 찾아다니면서 그분들의 생각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지 공간을 단정하게 꾸미는 일이라면 고감도 외 다른 공간디자인 회사들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안향자 대표는 각 산업별로 다른 업무환경의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 기획력은 고감도가 여전히 앞선다고 자부한다.
이제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포트폴리오 역시 다방면의 산업을 아우르고 있다. 사무공간은 물론 플랜트, 상업공간, 병원, 전시장, 교육공간, 주거공간 등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온 것이다.
“공간디자인이 지닌 파급력은 상당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생산성은 물론 근무태도도 훨씬 좋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미국의 가구회사인 허먼 밀러는 생산효율성이 24% 증가하고, 입주 1년내 투자율이 400%나 늘어났습니다. 비행기를 생산하는 보잉은 불량점검 공정의 효율성이 20% 늘어나고, 투자율이 53% 증가했다는 결과도 있고요.”
국내에서도 고감도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공장들이 여럿 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산업체는 리모델링 후 지원자의 학력수준이 높아진 것은 물론 이직률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근무환경의 변화가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구인난을 해소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인 것.
또한, 팩토테리어 디자인은 기업의 매력도를 높이는 방편이다. 고감도의 컨설팅을 거쳐 공간을 재구성한 후 계약성사율이 높아졌다는 피드백도 자주 받는다.
“공장의 외관이 달라지면 도시의 분위기도 좋아집니다. 일례로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폴크스바겐 공장을 보세요. 한 자동차 회사 공장이 이제는 세계에서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특화 관광상품이 되었습니다.”
창조적 사고와 소통을 위한 업무공간
이처럼 고감도는 산업의 특성에 디자인을 결합한 전문적인 디자인 개념을 창출해왔다. 특히 안향자 대표는 2005년부터 부설 기업환경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소장을 겸하면서 관련연구를 진행했다.
현재 (주)고감도 부설 기업환경디자인연구소에서는 업무공간이 창조적 사고와 구성원들의 소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행복한 사람이 창의력이 높습니다. 그런데 많은 직장인은 자신의 직장생활을 ‘지옥 같다’, ‘무료하다’, ‘스트레스받는 곳’, ‘전쟁터’ 등으로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은 창의력을 자극하는 업무환경을 독특하게 생긴 책상이나 회의실, 밝은 색깔의 페인트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이런 요소들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업무환경에서 매일매일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업무환경을 디자인 하는 것은 창조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어요.”
업무공간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로는 집기와 가구, 색채와 마감재, 전기와 공조 설비, 빛과 조명, 음향과 진동 등이 있다. 장기간에 걸쳐 자리를 잡은 산업환경을 완전히 뒤바꿀 수 없다면 화장실에 다녀오는 잠깐의 시간 속에서도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간과 공간을 오가는 복도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구성원간의 훌륭한 소통공간이 될 수 있다.
“공간에 적용한 색채의 변화로도 근무환경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LS전선의 경우 사무동 리모델링을 진행하다가 공장 컨설팅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내부에 들어가 보니 ‘위험’, ‘주의’ 등의 경고문구가 노란색 표시로 계속 이어지는 걸 발견했습니다. 노란색은 주의를 환기하는 역할을 하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근로자들의 체감온도가 높아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적절한 색채 분배로 안전문구의 주목도와 근로자의 안정감까지 살릴 수 있도록 했죠.”
현재 고감도의 디자인 컨설팅과 시공 프로세스는 ‘사전계획 수립’, ‘컨셉 및 기획 설계’, ‘기본 설계’, ‘실시 설계’, ‘시공’, ‘결과 평가’ 등의 6단계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1차 컨설팅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례조사를 자세히 하고, 해당 기업의 단기 목표는 물론 중장기 목표까지 분석해 컨셉을 잡는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기업을 위해 만든 특화제품들도 있다. 디자인적 요소는 물론 색다른 기능을 탑재한 몇몇 아이디어는 디자인 등록을 거쳐 고감도만의 지식재산권으로 자리잡았다.
“디자인을 하지만 무조건 새로운 것만을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디자인보다 환경적인 부분을 더 크게 고려할 때가 많아요. 가능한 기존의 것 중 활용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발굴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재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지금 우리 회사에서 사용하는 회의 테이블도 10여년 전부터 사용하던 걸 패널만 씌워서 꾸민 거예요. 업무공간을 더 멋지게 꾸미기 위해 새 가구를 살 수도 있겠지만, 그 비용을 절약해 다른 데 사용할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직원들의 자녀가 그린 그림을 액자로 만들어 걸면 구성원들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색다른 요소가 되죠.”
앞으로도 안향자 대표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공간 디자인을 제시하려 한다. 공간의 변화를 통해 더 많은 이가 오감이 만족스러운 행복을 느끼길 바라면서.